2015
12월호

왜 협상에서 감정이 중요할까? 지금은 2015년이니까…
최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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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을 무기로 한 협상의 기술, Emotion and the Art of Negotiation

-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협상을 장악하라, Control the Negotiation Before It Begins

- '', '', '', '하이' 그리고 ''에 이르는 길, Getting to Sí, Ja, Oui, Hai, and Da


모두 뉴스에서 들어본 얘기다.

잘생긴(진짜 잘 생겼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신임 총리에게 기자가 물었다.

 

“내각 구성을 남녀 동수로 한 이유는 뭔가요?”

 

답은(모두가 알다시피) “2015년이잖아요!”

 

이번 호에 실린 스포트라이트감정을 무기로 한 협상의 기술을 읽는 동안 계속 이런 생각이 들었다. ‘2015년에 딱 어울리는 아티클이다!’ 한마디로 최신 협상학의 트렌드와 시대정신에 맞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는 얘기다.

 

#1

왜 감정일까?

 

60여 년 전만 해도 미국 대학에서 협상을 가르치던 교수들은 대부분 법대 출신이었다. 이들은 협상테이블에서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논리적, 법적 지식을 가르쳤다. 30여 년 전부터는 경영학과 교수들이 협상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상대와 경제적 이익을 제대로 나눌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론을 가르쳤다. 한마디로 딜deal을 설계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는 심리학과 교수들인 협상을 가르치고 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의 저자인 다니엘 샤피로 하버드대 교수도 경영학자가 아니다. (심리학자다!) 이처럼 협상학의 무게중심은 점차 심리 분야로 이동하고 있다. 이유는 뭘까?

 

하나, 공급과잉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비슷비슷한 경제적 가치를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따라서 경제적 가치나 논리만으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휴대폰 매장에서 전화기를 고르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 과연 이 휴대폰이 주는 경제적 가치를 꼼꼼히 논리적으로 따져 가면서 휴대폰 구매를 결정하는가? 아닐 것이다. 아마 특정 브랜드에 대해 당신이 갖고 있는 감정(그냥 이 브랜드가 좋다)이나 인식(멋지고 세련되게 느껴진다)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더 크다. 그만큼 이제는 압도적인 경제적 가치를 제공해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시대는 끝났다. 협상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협상의 대상이 제한되거나 단선적인 갑을 관계가 존재했다. 한마디로 여기 아니면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협상 주체들 간에 감정이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협상이 진행됐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비슷비슷한 경제적 가치를 제공하는 경제 주체가 상호 간에 늘어나면서 경제적 이익만으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기 힘들어 졌다. 그만큼 서로 간에 좋은 감정이 있어야 협상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행동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인간은 생각보다 그렇게 이성적인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라고 믿어졌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그런 전제는 판판히 깨지고 있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나만 해도 그렇다. 8살짜리 아들이 마트에 가서 뭔가를 사달라고 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초등학생이 벌써부터 과소비 병에 걸렸어. 역시 마르크스가 옳아. 물질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어….” 반면 6살짜리 딸이 마트에서 뭔가를 사달라고 하면 이런 생각이 든다. “. 요즘 애들은 필요한 게 많아. 내가 어릴 때와는 완전히 다르지!”

 

결국 감정이다. 내가 평상시에, 또는 협상테이블에서 상대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상대 제안에 대한 나의 수용성은 달라진다. 그래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의 저자인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와튼스쿨 교수는 주장한다. “감정을 중시할 때, 논리에 집중했을 때보다 네 배 정도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된다.

 

결국 감정이다. 내가 평상시에, 또는 협상테이블에서 상대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상대 제안에 대한 나의 수용성은 달라진다.

 

#2

‘불안’에 대해

 

‘감정을 무기로 한 협상의 기술에서 주목하는 감정은 크게 6가지다. 불안, 분노, 실망, 후회, 행복감, 흥분이다.

 

‘불안감이 크면 좋은 협상결과를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명제는 상식적인 얘기다. 하버드대에서 실험을 했다. 두 그룹의 협상력을 5050으로 동등하게 설계한 후 협상 전에 각각의 그룹에게 물었다. “당신 그룹과 상대 그룹의 협상력을 각각 얼마로 평가하냐. 첫 번째 그룹이 답했다. “우리 측이 30, 상대가 70.” 상대 그룹에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답은 동일했다. “우리가 30, 상대가 70.”

 

 

무슨 의미인가? 한마디로 협상 전에 대다수의 협상가들은 자신의 협상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자신의 협상력에 대한 과소평가는 과도한 불안감을 생산한다. 제안할 때 소심해지고, 빨리 협상테이블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 이상의 양보를 하게 된다. 그래서 뛰어난 협상가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하나, 내가 떨고 있다면 상대는 더욱 떨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 상대가 나와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는 그도 뭔가를 나로부터 원하고 있다는 의미다.”

 

심리적 믿음 외에 협상테이블에서 나의 불안감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협상장에 들어가기 전에 나의 배트나BATNA · 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1]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신립 장군은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일본군과 결전을 벌였다. 여기서 지면 죽겠다는 사생결단의 각오로 왜군과 맞섰다. 협상에선 이랬다간 망한다. 이 협상이 결렬됐을 때 내가 도망갈 수 있는 다른 선택지를 갖고 협상에 임해야만 불안감을 줄이고,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3

‘분노’에 대한 오해와 진실

 

협상테이블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행위에 대해선 사실 학자마다 의견이 갈린다. HBR 이번 호에 실린감정을 무기로 한 협상의 기술의 저자 브룩스는 분노에 대해 득보다 실이 많은 행위라고 규정한다. “분노는 공동의 이익을 감소시키고, 협동을 줄어들게 하고, 제안이 거절당하는 비율도 증가시킨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하지만 나는 이 주장에 100%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로 협상테이블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다 보면 상대가 나의 감정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고, 반응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할 때가 많다.

 

이는 마치 심리학에서 말하는굿가이 콤플렉스Good Guy Complex’를 갖고 협상에 임하는 것과 같다. 협상테이블에서좋은 사람’, 나이스nice한 파트너이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상대의 마음에 거슬릴 만한 얘기를 하지 못한다면 어떨 결과가 벌어질까? 갈등을 초래할 만한 심각한 협상안건에 대해 회피하거나 명확히 하지 않고 대충 넘어가 나중에 더 큰 혼란과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또는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터무니 없는 양보를 하게 된다.

 

그래서 중요한 게 분노를 표현하되세련되게표현하는 기술이다. 협상테이블에서 분노의 감정을 느낄 때 무능한 협상가들이 많이 쓰는 화법은 판단 화법이다. “그런 터무니 없는 제안을 하시는 걸 보니 우리 회사를 우습게 여기시는군요. 됐습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분들과 더 이상 협상할 이유가 없습니다.”

 

발견했는가? 위의 말 속에는당신이 우리 회사를 우습게 여긴다’ ‘당신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두 가지 판단 화법이 들어가 있다.

 

반면 유능한 협상가들은 분노를 표현할 때판단 화법이 아닌감정설명 화법을 쓴다. 이는 상대의 행동, 제안에 대해 내가 상대의 본질(인간 됨됨이나 사고능력)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협상 이슈에 대한 나의 감정과 의도 등을 솔직하게 말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감정설명 화법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사실을 먼저 언급하고, 이에 대한 나의 주관적 감정과 내가 지금 이 대화를 통해 진짜 얻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밝히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보자. 당신은 중소기업의 영업 담당자다. 회사 매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거래처인 대기업 구매담당자와 납품 단가를 결정하기 위해 협상테이블에 앉았다. 원자재 가격이 10% 상승해서 아무래도 납품 단가를 약간이라도 올려야만 하는 상황. 하지만 이런 상황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구매 담당자는 오히려 납품 단가를 20% 낮춰 달라며 윽박지른다. 나의 분노 게이지는 점점 상승하고 있다.

 

[1]협상이 결렬됐을 때 내가 갖고 있는 차선책

 

 

이때 판단 화법을 쓰는 협상가는 이렇게 말한다. “뭐요? 지금 장난하시는 겁니까? 가격을 올려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20% 낮추라고요? 지금 협상하지 말자는 얘기죠? 합리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분들이군요!”

 

반면 감정설명 화법을 쓰는 협상가는 이렇게 말한다. “통계청 자료에도 나와 있듯이 원재료 가격이 10% 올랐습니다. 그런데 납품가를 20% 낮추라니 저희 입장에선 30% 정도 가격이 깎이는 셈입니다. (논쟁의 여지 없는 사실) 그런 제안을 들으니 저희 측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나 존중이 느껴지지 않아 섭섭하고 솔직히 불쾌합니다. (감정) 앞으로 서로 간의 지속적인 거래를 위해선 납품가격에 대한 좀 더 현실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대화를 통해 내가 얻고 싶은 것).”

 

어떤가? 사람이 협상테이블에서 분노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세련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화법이 중요하다. 칸트가 말하지 않았던가?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때로는 화법(형식)이 협상 성과(내용)를 결정한다.

 

사람이 협상테이블에서 분노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세련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화법이 중요하다.

 

#4

‘실망’의 미덕

 

“실망은 협상이 끝나갈 때 상대방에게 표현된다면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실전 협상에서 중요한 얘기다. 이 주장을 좀 더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인간의 뇌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단순하게 말해 인간의 뇌는 이성을 담당하는 전두엽, 감정을 유발하는 편도체 등으로 이뤄져 있다. 전두엽이 점잖은 선비처럼 뒤에서 생각하는 존재라면, 편도체는 뇌를 지키는 문지기처럼 앞에서 외부 자극에 빠르게 반응한다.

 

협상테이블에서 표출되는 거친 분노는 대부분 상대방의 편도체를 자극하고 뇌에 부정적인 감정을 퍼뜨린다. 그 결과 상대방의 전두엽은 생각 활동을 멈추게 된다. 이성(전두엽)이 멈춘 상황에서 창의적인 대안(협상학에서 말하는 서로의 욕구를 만족시키는Creative Option을 만드는 일은 점점 어려워 진다. 반면 협상테이블에서 표현되는 실망감은 대부분 상대방의 전두엽을 자극하고 상대방이 스스로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보자. 아빠가 친구와 싸운 초등학생 아들을 앉혀 놓고너 깡패냐? 너 혼날래?”라고 감정을 표현할 때 아들의 뇌에선 편도체가 활성화된다.

 

반면 아빠가 아들에게아빠는 이번 일에 대해 너에게 정말 실망했어라고 감정을 표현할 때 아들의 뇌에선 전두엽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협상테이블에서 표현되는 실망이라는 감정은 상대방으로 하여금이성적 자기 성찰의 기회를 주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5

결국, 협상이란

 

협상워크숍을 진행하다 보면 가끔씩 이런 근원적인 질문을 받는다. “뛰어난 협상가란 어떤 사람인가요?” 나는 답한다. “뛰어난 협상가란 한마디로 상대방에게 착각을 갖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입니다무슨 말인가? 협상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갈 때 협상 상대의 마음속 평가는 크게 셋 중 하나다. 이번 협상에서 내가이겼어또는적어도 비겼어또는졌어”.

 

 

뛰어난 협상가란 협상이 끝나는 순간, 상대방의 마음속에적어도 내가 비겼어또는이겼어라는 생각을 갖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비록 그 생각이 그만의착각일지라도. 그래서 협상학자들은 말한다. “결국 협상이란 상대방의 주관적 만족도를 높여주는 게임이라고.

 

협상테이블에서 나의 행복감이나 흥분을 노출하면 안 되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다. 협상테이블에서 최종 계약서에 사인을 끝내는 순간, 당신의 협상 상대가 히딩크 감독의 어퍼컷 세리모니를 재현하며 괴성을 지른다. “야호! 결국 내가 해냈어! 나는 역시 최고의 협상가야!” 어떤가? 당신의 주관적 만족도는 안녕하겠는가? ‘이건 뭐지? 내가 뭘 잘못했나. ~ 아까 그건 양보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후회와 불안이 스물스물 자라난다. 기억하자. 결국 상대의 주관적 만족도는 이성적 논리보다는 감정의 문제일 때가 훨씬 더 많다.

 

2040년까지 현존하는 직업의 80%가 사라질 것이라는 유엔미래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다. 불안감에 떨며 사라질 직업 리스트를 꼼꼼히 챙겨봤다. 정말, 매우, 아주 다행스럽게도협상컨설턴트는 사라질 직업 리스트에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몇 가지 당연한 명제를 새삼 떠올려봤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사람들은 협상할 것이다.’

 

‘협상테이블에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앉을 일은 없을 것이다.’

 

‘협상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며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감정적 존재다.’

 

결국, 협상은 감정이다.

 

최철규 HSG 휴먼솔루션그룹 대표는 2012 HSG 휴먼솔루션그룹을 창업했다. 한국경제신문사 경제부/금융부 기자로 일했으며 2004년 한국기자협회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IGM 세계경영연구원 부원장과 IGM 협상스쿨 원장으로 일했다. 경영전문지 동아비즈니스리뷰(DBR)에 협상과 갈등관리에 대한 고정 칼럼을 썼으며 조선일보에최철규의 소통 리더십’ ‘실전 MBA’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협상의 신> <협상은 감정이다> <협상의 10계명>, 역서로는 <성공하려면 협상가가 되라>가 있다. 연세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으며 런던정경대(LSE) 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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