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월호

LIFE’S WORK: 마이클 오비츠 인터뷰
마이클 오비츠

LIFE’S WORK

마이클 오비츠

 

 

마이클 오비츠

미국의 유명 연예기획사 CAA(Creative Artists Agency)의 공동창업자인 오비츠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영화, TV, 음악 그리고 미디어기업 관련 큰 거래들을 성사시키며 업계를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이후 디즈니에서 사장으로 잠시 일하다 나와서 직접 모바일 콘텐츠 기업을 창업하기도 했던 그는 이제 실리콘밸리의 벤처자문가로 거듭나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인터뷰어 앨리슨 비어드

 

 

HBR: 처음 CAA를 시작했을 때 어떻게 연예인들과 클라이언트 계약을 맺을 수 있었나요?

 

오비츠:아주 고생스러운 일이었죠. 우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회사여서 차별화가 필요했습니다. 종래의 기획사들이 했던 것처럼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서 우리 클라이언트의 출연을 성사시켜 보려는 방식으론 성공할 수 없었어요. 창업 첫날부터 우리는 클라이언트들이 꿈꾸는 바를 모으고 그에 기반해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자고 정했습니다.

 

 

여럿이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판단하셨어요?저는 현재 실리콘밸리에서그 누구도 나를 멈출 수는 없어라고 믿는 사업가들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일했던 연예계의 사람들 역시 실리콘밸리 사람들만큼이나 개성이 강했죠. 하지만 누군가가 남의 조언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면 그가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를 한번 보세요. 그는 자신에게 싫은 소리 하는 뛰어난 인재를 고용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영화고스트버스터즈를 만들 땐 댄 애크로이드가 각본을 썼지만 빌 머레이도 자기 생각을 넣었고 감독이자 제작자였던 이반 라이트만과 고인이 된 배우 해럴드 래미스도 의견을 보탰죠.(해럴드의 명복을 빕니다.) 창작물이 만들어지는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각 프로젝트 참여자들에 대해 미리 조사를 해 보면 함께 일할 수 있는 인물인지 아닌지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질문을 드리지 않을 수 없는데요. 할리우드에서 일어난 모든 성희롱과 성폭력 문제를 알고

계셨나요?지금 우리가 알게 된 사실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우리는 하비 와인스타인과 거래했지만 그런 일은 전혀 알지 못했어요. 게다가 불만을 제기하는 클라이언트가 많지 않았습니다. 클라이언트가 불만을 제기할 땐 그 문제를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클라이언트가 이상한 곳에서 미팅하게 되는 일을 아예 만들지 않았어요. 대부분, 특히 여성 클라이언트의 경우에는 담당자가 동행했습니다.

 

회사 내 여러 에이전트들이 협업할 수 있게 만든 비결은 무엇이었나요?직원 간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경영할 수도 있겠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쓸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미국의 팀 스포츠와 일본의 네마와시[1]철학을 결합하는 거죠. 네마와시는 합의에 의한 경영을 말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서로 돕습니다. 우린 모든 것을 기록하고 정보를 공유했어요. 직원회의에 들어가면 이런 대화를 듣게 됩니다. “영화를 찍고 싶어하는 가수가 한 명 있는데요라고 누군가 말을 꺼내요. 그러면 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을 담당하는 직원이제가 도울게요라고 대답합니다. 도와야 할 이유는 없지만 돕는 거죠. 그렇게 해서 우리는 영화 한 편을 탄생시켰습니다. 가수프린스가 주연한퍼플레인이었어요. 멍청한 생각이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여섯 명의 담당자가 이렇게 말했죠. “한번 해봅시다.”

 

 

디즈니에 재직하셨던 기간은 왜 그렇게 짧았나요?[2]마이클 아이스너 회장은 자신과 대등한 사람을 곁에 두거나 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잃는 걸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웃긴 건 우리 두 사람 앞에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 그 책임을 나누는 일은 한 번도 제대로 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에요.

 

 

디즈니를 나오신 뒤에 그리고 새로 창업한 회사도 성공적으로 자리 잡지 못하는 걸 보시면서 어떻게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셨어요?제가 실패를 겪을 때마다 친한 친구인 작가 마이클 크라이턴이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레이스는 또 열리기 마련이야. 그냥 좀 쉬었다가 흥미가 가는 일이 생기면 뛰어들어.” 1990년대 중반 저는 테크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1999년엔 한 회사의 이사회에 참여하라는 제의도 받았죠. 저는 실리콘밸리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어요. 실리콘밸리에서 일한 첫해에는 CAA 시절에 제가 가졌던 정도의 네트워크를 확보하기 위해 400건의 미팅에 참여했습니다.

 

 

번역 허윤정 에디팅 조진서

 

 

[1]根回. 큰 나무를 옮겨 심을 때 미리 뿌리 주변을 파고 정리해두는 것처럼,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에 사전 의견조정 작업을 하는 것을 말함.

 

[2]아이스너는 1995년 마이클 오비츠를 디즈니 사장으로 끌어들였다. 둘 사이 의견 대립으로 14개월 만에 오비츠가 사임했다. 그는 스톡옵션과 위로금으로 14000만 달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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