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10월호

개인과 시스템, 윈-윈 관계를 찾아서
김주호

Commentary on Features

개인과 시스템, -윈 관계를 찾아서

김주호

 

이번 호 HBR 아티클지능형 기계와 일하는 법을 통해 맷 빈 교수는, 더욱 똑똑해지는 인공지능(AI)과 기계가 기업의 업무에 도입되면서 현장실습 기회를 잃게 된 직원들이그림자학습을 통해 저마다의 학습방법을 찾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기업이 이런 사례를 분석해서 직원교육과 업무설계에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 아티클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AI 기술을 업무에 실질적으로 도입하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다양한 이슈를 다룬다. 그중 특히그림자학습’이라는 현상에 집중해 다양한 현장사례 분석을 시도한 점이 흥미롭다.

 

사실, 그림자학습은 사람이 시스템에 적응해 나가는 하나의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학습의 기회는 필요하지만 AI가 도입되면서 그 기회가 줄어들어 위기의식을 느낀 사람이, 학습기회를 만들어 내기 위해 다양한꼼수를 찾아내는 나름의 생존전략인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는 더 똑똑한 학습자가 되기를 요구받는다. 새로운 것을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고, 현재 무엇을 알고 있는가보다 새로운 것을 얼마나 빠르게 배울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그림자학습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면서, 동시에 AI 시대의 기업과 학교가 직원과 학생들에게 어떤 학습기회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통찰을 던져준다.

 

바둑 소프트웨어 알파고처럼 사람과 직접 대결해 사람을 압도하는 AI로 인해 우리는 AI의 가능성과 위협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훨씬 더 복잡미묘한 방식으로 사람과 AI가 상호작용하고 있다. 온라인광고 경매나 검색엔진 최적화 작업을 하는 기업의 홍보담당자는 광고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자신의 콘텐츠를 검색엔진 상위에 노출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복잡한 시스템과 씨름해가며 자기 나름의 전략과 노하우를 개발한다. 카카오택시나 우버의 운전자는 AI 시스템이 알려주는 대로 손님을 태우러 이동하면서, 더 많은 수입을 올리기 위해 저마다의 전략과 노하우를 개발한다. 최근범죄인 중국 송환법에 반대해 거리로 나선 홍콩의 시위대는, 정부가 얼굴인식 기술을 사용해 시위에 참여한 시민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CCTV에 레이저를 쏴 인식을 막는다. 이 모든 사례에서 사람은 자신이 상호작용하고 있는 기술의 작동방식에 대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나름의 이해를 바탕으로 전략을 만들어낸다. 이 역시 그림자학습의 사례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대부분의 기술이 블랙박스처럼 그 속을 알기가 어렵고, 해석하고 설명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아무리 기술이 잘 작동한다고 해도 이해가 안 되고 속을 알기 어려우니, 신뢰하기가 힘들고 적대감을 갖기 쉽다. 그런 이유로 많은 그림자학습 전략은 기술이 조금만 바뀌면 더는 유효하지 않다. 아티클에 언급된 PredPol 사례처럼, 새로운 기술은 사용자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해 현업에 적용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기업에서는 새로운 기술의 적용과 기존직원의 교육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정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기술이 아니라 사람 위주로 생각하면 된다. 많은 기업이 AI의 뛰어난 속도, 정확도, 비용절감 등의 성능 측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반면, 실제 AI 기술이 쓰이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는 고려하지 않는다. 엄청난 결과를 보여주는 AI 기술이 논문 형태로 매일 쏟아지지만, 이를 자신의 문제에 적용하려는 연구자나 기업의 실무자는내 상황이나 데이터에 적용해 보면 논문과 같은 성능이 안 나온다라며 툴툴거린다.

 

논문 속, 데모영상 속의 기술과 현업에서의 기술은 큰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그 기술을 사용할 사용자의 환경, 문화, 분위기에 대해 기술은 전혀 알지 못한다. 기계가 잘하는 일들은 점점 자동화되고 AI 가 대체하기 시작했지만, 이는 전체 업무의 일부일 뿐이다. 슬픈 현실은 기계가 못하는 일을 사람이 대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기계가 하지 못하는 일을 처리하는 데 사람이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인지심리와 디자인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돈 노먼Don Norman교수는, 90%가 넘는 자동차사고가 사람의 부주의에서 발생한다는 통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기계가 아닌 사람의 잘못일까? 노먼 교수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부주의를 막지 못한, 그런 부주의가 사고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기계를 만든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지능형기계는 기계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설계돼야 한다.

 

필자는 AI 같은 새로운 형태의 기술이 적용되는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컴퓨터와 상호작용을 하는지 이해하고 더 나은 상호작용을 위한 기술을 만들어내는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HCI) 연구분야가 갈수록 중요해질 거라고 전망한다. 물론 필자가 HCI 연구를 하기 때문에 사심이 섞인 발언이기도 하지만, 정말 그럴 것 같다. 그중 특히 사람과 AI 기술의 협업과 경쟁을 다루는 인간-AI 상호작용(Human-AI Interaction)은 학계와 기업현장 모두에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더 많은 기업이 기술이 적용되는 현장에서 기술과 직원의 상호작용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 그에 맞춰 업무환경, 교육체계, 기술도입 등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런 면에서, 기술을 사용하는 사용자에게 실질적 도움을 줘서지능형 기계를 솔루션의 일부로 만들라는 빈 교수의 제안이 유용할 수 있다. 빈 교수는 그림자학습의 교훈을 활용하는 조직전략을 제안하면서, 지능형 기계의 사례로 필자의 박사학위 연구주제인러너소싱(learnersourcing)’을 언급한다. 러너소싱은 필자가 만든 용어로, 학습자(learner)와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을 결합한 합성어다. 크라우드소싱의 일반적인 형태는 많은 사람의 시간과 노력을 아웃소싱의 형태로 돈을 주고 사서 원하는 작업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필자가 생각한 모델은, 학습자가 금전적 보상 없이 자신의 학습을 위해 수행한 자연스러운 행위의 결과가 크라우드소싱 형태로 모여 후속 학습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나 자료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Crowdy’라는 필자의 온라인학습 시스템에서는 학습자가 강의영상을 시청하는 중간중간에 영상 내용을 한줄로 요약하는 퀴즈를 내준다. 학습자 입장에서는 퀴즈를 푸는 행위가 학습에 도움이 된다. 시스템 입장에서는 강의영상의 해당 부분에 대한 요약을 금전적 보상 없이도 얻을 수 있게 된다. 시스템은 여러 학습자가 퀴즈를 풀면서 제출한 결과물을 취합하고 처리해 영상에 대한 양질의 요약을 만들어 내고, 후속 학습자는 이렇게 생성된 요약을 보면서 긴 영상의 내용을 한눈에 이해하거나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학습할 수 있다. 물론 양질의 요약을 제출하지 못하는 학습자나 일부러 무의미한 요약을 제출하는 학습자도 있겠지만, 데이터 품질관리 기술을 활용하면 양질의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다. 이런 품질관리 기술은 크라우드소싱 기반 시스템을 만드는 데 있어 핵심요소로, 크라우드소싱 연구에서는 효과적으로 양질의 결과물을 추출하는 다양한 기법들이 소개돼 왔다. 본 연구에서 필자가 속한 연구팀은, Crowdy 시스템을 사용한 학습자가 배운 내용을 오래 기억해서 개인의 학습효과를 향상시킬 수 있고, 동시에 시스템이 생성해 낸 영상의 요약이 전문가가 요약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를 기업 상황에 적용해 본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러너소싱 기반 시스템을 도입해 직원들에게 체계적으로 설계된 학습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또 그렇게 쌓은 학습결과물이 유용한 지식 데이터베이스가 돼 다른 직원들이 유용하게 활용하는 선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다.

 

러너소싱의 목표는 결국 개인과 시스템의 의도가 다르지만, 양쪽의 의도가 동시에 달성되는 윈-윈의 학습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개인은 자신의 학습을 위해 시스템을 사용하고, 시스템은 사용자로부터 의미 있는 데이터를 얻어내고자 한다. 성공적인 러너소싱 시스템에서는 이렇게 서로 다른 의도를 가진 개인과 시스템이 공존할 수 있다. 특히 온라인교육 환경에서는 수천, 수만 명의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을 하기 때문에 규모가 기본전제인 크라우드소싱을 적용하기 좋다. 많은 직원이 공동의 작업과 학습의 필요성을 공유하는 기업환경 역시 러너소싱의 아이디어를 접목하기 좋은 환경이다. 관심 있는 분들이 참고할 수 있는 사례가 되길 바란다.

 

 

 

김주호 KAIST 전산학부 교수로, 인터랙션 연구실(KIXLAB, kixlab.org)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학사와 스탠퍼드대 석사를 거쳐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 연구를 통해 대규모 사용자의 학습, 시민 참여, 토론 등을 지원하는 온라인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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