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12월호

인터넷이 없는 곳에 인터넷 문화를 구축한 베이트닷컴의 CEO
라비아 아타야(Rabea Ataya)

HOW I DID IT

인터넷이 없는 곳에 인터넷 문화를 구축한 베이트닷컴의 CEO

라비아 아타야Rabea Ataya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를 자주 방문하던 중, 나는 운송과 유통분야 대기업의 이사 한 명을 만났다. 나는 그에게 온라인 채용회사인 베이트닷컴Bayt.com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해 설명했지만, 그는 설득되지 않았다. 그는 화이트칼라 직원들을 끌어들이고 채용하는 데 베이트가 유용할거라는 건 이해했다. 하지만 자신의 사업에 필요한 운전사와 같은 블루칼라 근로자들에게 그 모델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단순한 시연 한 번으로 그의 마음을 바꿔놓았다. 베이트 웹사이트에 접속해 검색창에운전사를 의미하는 아랍어인세이크saeq를 쳤다. 속어와 영어단어까지 포함해 몇 건의 관련 키워드 추천이 떴다. 검색 결과 우리 사이트에 등록한 사우디 운전사가 9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사의 회의적인 태도를 극복한 일은 2000년 베이트닷컴을 설립한 이래 내가 겪어온 수많은 도전 중 하나다. 그중 가장 최근 경험한 사례일 뿐이다. 당시 미국이나 다른 많은 서구 국가들의 경우 인터넷이 잘 구축돼 있었지만, 아랍세계 사람들 중에는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이 1%도 되지 않았다. 사람을 찾는 기업들과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은 대개 서로의 부탁을 들어주거나 지인을 통해 탐색하면서 알맞은 상대를 찾아야 했다. 이는 선택을 제한하고, 비용을 높이는 비효율적인 방법이었다. 또 실업률이 치솟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기업인들은 인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의미했다.

 

 

팰로앨토에 갔다 다시 돌아오다

 

내 고향은 팔레스타인이다. 나는 1960년대 쿠웨이트에 정착한 레바논인 가정 출신으로 쿠웨이트에 살다가 전자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열일곱 살에 스탠퍼드대에 왔다. 그 당시는 팰로앨토에 있다는 사실 자체로 흥분되는 시기였다.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스탠퍼드대 학생이었고, 야후를 막 시작하려던 제리 양과 데이비드 필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인터넷의 초창기 버전을 사용할 때 느낀 스릴을 기억한다. 웹 브라우저가 출현하기도 전이었다. 나는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과 그것이 세상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궁금해하며 몇 시간씩 시간을 보내곤 했다.

 

비즈니스와 고급수학을 합친 분야인 경제시스템공학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딴 후, 나는 알렉스 브라운 앤드 선즈Alex, Brown & Sons의 샌프란시스코 사무실에서 일하게 됐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투자은행인 이 회사는 몇 개 산업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테크 산업이었다. 예를 들어 이 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IPO를 주관했다. 나는 테크 팀에 합류했고, 그 팀에서 몇 건의 유명한 M&A 거래와 IPO 업무에 참여했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단순한 아이디어를 기업으로 바꾸는 방법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됐다. 곧이어 중동에서 벤처를 시작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꿈을 좇기 위해 중동지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스물셋에 두바이로 옮겨갔다. 당시 우리 가족은 두바이가 아버지의 건설업을 위한 비옥한 토양이 될 거라고 생각해 이미 거처를 몇 년 전부터 그곳으로 옮긴 상태였다. 나는 아버지 회사에서 약 1년간 일했다. 그때가 1995년이었다. 당시 두바이에는 집중적인 개발시대가 시작되고 있었고, 중요한 서류와 파일들을 동반하는 프로젝트와 회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상황은 서류보관, 관리, 검색서비스를 제공했던 내 첫 번째 회사 인포포트InfoFort의 영감을 제공했다. 아이디어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내가 투자은행에서 근무하던 때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각 프로젝트가 끝나면 모든 파일을 박스에 넣어 기록보관회사로 실어 보내곤 했다. 어떤 서류를 참고해야 할 필요가 생기면 우리는 그 보관회사에 우리가 찾는 파일의 날짜를 알려줬다. 하루나 이틀 후면 서류가 창고에서 도착했다. 이런 검색과정은 우리 회사에 파일을 보관할 때의 과정보다 훨씬 빠르고 쉬웠다. 우리 회사에서는 당장 최근에 사용한 서류를 찾는 데도 애를 먹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인포포트는 신속하게 은행과 기업들을 고객사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1년이 되지 않아 수익성 있는 사업이 됐다. 3년 안에 우리는 아부다비, 리야드, 코바르Khobar, 지다Jidda, 카이로에 사무실을 열었다. 첫 번째 창업 시도에서 에너지를 받은 나는 그 지역의 다른 수요와, 그 수요를 충족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난과 기회

 

이 수요 중 하나가 채용에 관한 수요였다. 내가 인포포트에서 직접 경험한 바였다. 우리는 훌륭한 인재를 찾는 데 애를 먹고 있었고, 이런 채용 이슈들은 큰 어려움과 동시에 기회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랍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기업들은 직원을 찾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이들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나는 실업문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아랍세계의 인터넷 사용까지 개선하려면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가 해답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곳 사람들이 온라인에 접속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생계를 유지할 길을 찾기 위해서일 거라고 추론했다. 나는 아랍어로을 의미하는 베이트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의미 있는 일을 찾고, 따라서 더 나은 삶을 이끌어갈 힘을 얻는 중심장소가 되는 상상을 했다.

 

나는 즉시 만만치 않은 장애물과 맞닥뜨렸다. 웹사이트를 구축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부족했던 것이다. 당시 중동지역에는 이 분야 전문가가 매우 드물었다. 마케팅 전문가도 필요했다. 인터넷 사용경험이 부족한 인구집단에 접근해서 온라인에 접속하도록 설득하고, 그중에서도 우리 웹사이트를 방문하도록 유도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세일즈 리더도 필요했다. 기업들에 접근해서 우리 사이트가 돈과 시간을 절약해 주며 다른 방법보다 더 훌륭한 채용후보들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득해야 하는데, 이 역할을 해줄 팀을 모을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초기 팀 멤버들을 구하기 위해 개인적인 네트워크에 의지하기로 했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그 지역의 액센추어와 오라클에서 근무하며 개발의 마술사라는 명성을 얻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 여동생 모나를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영입했다. 모나는 프록터앤드갬블과 존슨앤드존슨을 포함해 마케팅 분야에서 글로벌한 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 영업팀을 이끄는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여러 번 창업을 했던 기업가이자 친한 친구였다. 베이트는 2000 6월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직원으로 공식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두바이에 있는 베이트닷컴 본사에서 직원들과 함께 있는 아타야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타이밍은 그보다 더 나쁘기 어려울 정도였다. 닷컴의 몰락이 그해 3월 시작됐고, 인터넷 기업들의 주가는 자유낙하 중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운이 좋은 타이밍이기도 했다. 직전 해 가을에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Sheikh Mohammed bin Rashid Al Maktoum두바이 인터넷 시티라는 야심찬 새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이 도시는 자유경제지역이자 신흥시장을 목표로 하는 기업들의 전략적 기반을 구축할 의도로 지어진 IT단지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사업허가를 처음으로 신청한 회사들 중 하나였다. 신청은 불과 이틀 만에 받아들여졌다. 사무실 공간은 아직 제공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인포포트의 창고 한 곳에서 본부를 구축하고 미래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수익성을 향한 길

 

베이트는 플래닛아라비아닷컴Planetarabia.com(웹 포털), 아지브닷컴Ajeeb.com(다른 웹사이트를 아랍어로 번역해 주는 사이트), 마크툽닷컴Maktoob.com(이메일을 제공하는 콘텐츠 포털) 등 아랍 지역에서 몇 안 되는 플랫폼들의 뒤를 이어 출범했다. 이들 플랫폼은 각각 닷컴몰락 이전에 상당한 벤처캐피털 자금을 확보했다. 그 기회를 놓친 기업들은 투자 유치를 하는 과정에서 훨씬 운이 없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는 친구들과 가족에게 초기자금으로 40만 달러를 조달했고, 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뉴욕과 런던, 중동 전역을 여행했다. 수백 명의 잠재적 투자자들과 대화했지만, 단지 한 곳만 150만 달러를 제안하는 의향서를 우리에게 제시했다. 우리는 더 많은 벤처캐피털을 끌어들일 수 없다면 곧 자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베이트의 현금흐름은 18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결국 베이트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졌고, 한 메이저 투자회사는 일부 고객이 보유한 회사주식을 구매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후에 그 주식들을 다시 사들였다. 그 결과 베이트는 19년의 역사 동안 자금조달을 오직 한 차례만 실시한, 온전하게 창업자들이 소유한 회사다.

 

사업을 구축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인터넷에 대한 경험이 없는 기업들에게 우리 서비스를 팔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때때로 컴퓨터를 사용해본 적도 없고, 과도한 비용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채용방식에만 집착하는 인사관리자와 소통해야 하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는 고객들에게 디지털 세상의 아주 작은 세부사항까지 가르쳐야 하는 책임을 떠맡았다. 많은 고객들의 컴퓨터에 첫 웹브라우저를 설치했고, HR 임원들에게 인터넷에 접속하는 법을 교육했고, 이력서를 프린트하고 직접 전달했다. 이 모두가 우리 서비스에 대한 계약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잠재적인 구직자들을 접촉하는 일은 또 다른 어려움을 불러왔다. 단순히 온라인 세계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근로자들은 현 고용주들이 자신이 일자리를 탐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봐 지원서 공개를 경계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름이나 현재 회사 같은, 식별이 가능한 세부정보를 빼고 이력서를 게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그들이 프라이버시를 철저히 통제할 수 있는 기능을 만들었다. 근로자들은 공개된 일자리를 검색하면서 자신의 이력서가 보이지 않도록 숨길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회사들이 그들을 볼 수 없게 하면서도, 관심이 가는 것을 찾으면 우리 웹사이트를 통해 직접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기능은 구직자들에게 스스로 장래의 고용주들을 찾아 접촉할 수 있는 힘을 제공했다.

 

그 지역에는 온라인 경제의 개념이 구축되지 않았고, 많은 국가들이 인터넷 회사들을 통제할 법령을 아직 만들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우리는 기업들과 구직자 양쪽에서 발생하는 추가적인 장애물들을 마주해야 했다. 우리 데이터를 훔치려는 이들도 있었다. 채용과 관련 없는 문제에 대한 콘텐츠를 올리고 다른 가입자들과 부적절하게 소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력서 세부사항을 가짜로 꾸며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몇 가지 대책을 수립했다. 구직자들에게 위반사항이나 부적절한 행동을 발견한다면 우리에게 통보해 달라고 요청했고, 기업들에는 거짓 이력서나 그들을 괴롭히는 대화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등록된 회사는 수만 개이고, 구직자는 3600만 명 이상에 달한다. 우리가 상당수의 정부들보다 더 큰 규모의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 사이트에 등록한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적 혹은 직업적 정보를 제공할 때 우리를 신뢰하며, 우리는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지킬 것을 약속한다.

 

이것이 내가 물리적인 문서를 보관하는 인포포트에서 디지털 문서를 보관하는 베이트로 옮겨간 방식이다.

 

 

두바이를 넘어서

 

우리는 언제나 두바이 바깥으로 확장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3년간 우리는 아부다비, 리야드, 쿠웨이트시티, 암만, 카이로, 라호르를 포함해 열두 곳의 사무실을 더 열었다. 이는 내가 자주 출장길에 올라야 했음을 의미한다. 디지털 회사에 왜 그토록 많은 오프라인 거점이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종종 이 문제를 지적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의 목표는 영업의 핵심에 사람들을 놓고, 새로운 유형의 업무문화를 구축하는 데 있다. 그러려면 새로운 차원의 고객서비스가 필요하다. 기업에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설득하려면 관리자들에게 안내를 해야 하고, 투자 대비 혜택을 극대화하도록 교육시키려면 우리가 가까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일상적인 기반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 모델은 특정 문제들을 해결하고 떠나버리는 모델이 아니다. 우리는 전반적으로 고용업무를 개선할 수 있는 진실한 관계를 키워 나가기를 원한다. 또 현장운영 역량을 발전시키는 일은 글로벌 기업들이 우리의 성공을 알아채고 끼어들려고 시도할 때 결정적으로 전략적 우위를 제공한다. 이 때문에 어떤 글로벌 경쟁자도 이 지역에서 사업을 본 궤도에 올리지 못했다.

 

중동지역 전역에 걸쳐 상당한 존재감을 갖게 되니 다른 면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잡을 수 있었다. 우리는 각 시장 간 근본적인 차이를 파악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2011년 사우디 정부는 국내 기업들에 인력의 일정 비율을 외국인 근로자가 아닌 내국인 근로자로 채우도록 요구하는사우디화Saudization이니셔티브, 니타카트Nitaqat를 발표했다. 우리가 만약 육체노동자부터 최고임원 레벨에 이르기까지 전 직원에 적용되는 이 필요조건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사우디 고객사들의 채용을 효과적으로 돕지 못했을 것이다.

 

회사 확장을 위한 다음 단계에는 회사를 지역채용 수단에서 글로벌한 기술 플랫폼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이 포함됐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지원자추적시스템(ATS·applicant tracking system)을 추가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제 회사 웹사이트에 채용공고를 내거나 지원서를 접수한다. ATS는 회사들이 채용공고 작성부터 유망한 후보자 식별, 인터뷰 일정 잡기, 인터뷰 기록 열람까지 모든 관련 과제들을 자동화하고 더 잘 관리할 수 있게 해준다. 오늘날 우리는 중동 전체에서 수백 곳의 기업과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ATS를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는 자리 하나에 대한 지원서가 수백 건씩 쇄도하는 상황에 처한 기업들을 위해 맞춤형 비디오 평가 플랫폼인 이밸류파이Evalufy를 추가했다. 많은 관리자들이 전화통화 2분만으로도 적합하지 않은 후보자를 가려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2분 통화라도 횟수가 많아지면, 이는 곧 상당한 시간 낭비가 될 수도 있다. 이밸류파이는 구직자들이 고용주가 제시한 몇 개의 질문에 대답하는 짧은 비디오를 제출할 수 있게 해준다. 관리자들은 그 비디오를 통해 후보자의 적합성을 신속하게 판단함으로써 이후 스크리닝 전화나 면접 인터뷰 횟수를 줄일 수 있다.

 

다음으로 우리는 취업전람회와 제품전시회의 대안으로 브이페어즈vFairs를 출범시키고 확장함으로써 지리적 범위를 넓혔다. 방문자 입장에서 전시회장 방문은 이동이 어렵고 시간소모적인 일이다. 수많은 인파 때문에 그곳에 나온 회사들과 의미 있는 소통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참가기업들은 이런 형식이 비용이 많이 들고, 부담스럽고, 종종 비효과적이라고 느낀다. 브이페어즈를 활용하는 참가기업들은 이런 전시회 대신 디지털 플랫폼을 준비한다. 박람회에서 방문자들이 부스에서 부스로 옮겨가면서 브로셔와 다른 홍보용 자료들을 집어가듯이 누구나 세계 어디에 있든 비디오와 다른 콘텐츠를 보거나 자료를 다운로드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할 수 있다. 참가자들은 디지털 플랫폼에서 이력서를 기업들과 공유하고, 명함을 교환하고, 서로 소통하기 위해 채팅 윈도를 활용할 수도 있다. 브이페어즈는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으며 성공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다른 유형의 고객들을 위해서도 활용했다. 예를 들어, 대학들은 이제 가상 페어에 참석해 예비 학생들에게 그들의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입학허가 지원서를 받기도 한다. 오늘날 이 사업은 북미 매출의 90% 이상을 창출한다. 포천 500대 기업들과 아이비리그 대학들을 포함해 수백 곳이 우리의 고객사다.

 

창업가정신은 여전히 베이트팀 안에 강하게 흐르고 있다. 우리는 창의성과 자율성을 중심에 둔 업무문화를 만들어 왔고, 지역기업가들을 위한 일종의 인큐베이터가 됐다. 2010년에 우리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최초의 일일 할인거래 사이트인 고내빗GoNabit을 출범시켰으며, 이 회사는 다음해 리빙소셜Living-Social에 인수됐다. 2012년 우리 팀 멤버들은 자동차를 사고파는 플랫폼인 얄라 모터Yalla-Motor를 개발했다. 2011년에 우리 회사 CMO인 내 동생은 우리를 떠나, 엄마와 아기를 위한 제품을 파는 온라인 소매사이트 맘즈월드Mumzworld를 시작했다. 같은해 영업관리자였던 다니 파르하Dany Farha도 베코캐피털BECO Capital을 설립하기 위해 우리를 떠났다. 이 회사는 운송네트워크 회사인 카림Careem과 부동산 포털인 프로퍼티파인더Property Finder를 포함해 그 지역에 있는 성공적인 스타트업 여러 곳에 투자했다.

 

그러는 동안 베이트는 데이터 기술과 인공지능을 온라인 채용에 적용하면서 사업경로를 더욱 넓혔다. 만약 당신이 우리가 관리하는 모든 지역의 도시별 검색을 시행한다면, 주어진 지역 3분의 2에 해당하는 근로자들이 우리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렸음을 알게 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사이트에 등록된 사용자의 수는 걸프지역에 있는 거의 모든 국가의 인구를 넘어선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하나 구축하려 애썼던 인터넷 문화가 이제 중동 대부분의 지역에서 번성하고 있다.

 

번역 이희령 에디팅 김윤진

  • 아티클 다운로드
    (PDF)
    5,000원

    담기바로구매

  • 디지털서비스
    1년 150,000원

    디지털서비스란

    신청하기

전략 다른 아티클

무료 열람 가능 아티클 수 0/1 회원가입 | 서비스상품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