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10월(합본호)

느리게 가는 혁신의 이점
데리코 로드리게스 타르디티(Federico Rodriguez Tarditi),샘 퍼드 (Sam Ferd)

PRODUCT DEVELOPMENT

느리게 가는 혁신의 이점

샘 퍼드SAM FORD, 페데리코 로드리게스 타르디티FEDERICO RODRIGUEZ TARDI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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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까지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혁신을 추진하는 경영자들은 규모가 큰 프로세스(신제품이나 신규 사업모델 개발 등), 아니면 신속히 진행되는 프로세스(해커톤, 래피드 프로토타이핑, 이머징 플랫폼 등) 중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두 접근법 모두 큰 보상이 따르므로 그 자체로 틀린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외 다른 방법도 있다. 작은 규모로 진행하는 점진적인 혁신, 이른바슬로 이노베이션slow innovation’이다.

 

슬로 이노베이션 사업도 중장기적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조직 입장에서는 슬로 이노베이션 프로젝트에 대한 제안, 우선순위 조정, 예산 확보 등이 쉽지 않다. 슬로 이노베이션 프로젝트의 범위와 속도는 목표 달성을 위해 달려가야 하는 조직의 일반적인 업무 리듬과는 잘 맞지 않는다. 타임라인이 늘어지다 보니 경영진이 교체되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리고 복잡한 기업조직의 역학관계를 이겨내고 오랫동안 지속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 두 사람의 필자는 유니비전Univision의 자회사인 퓨전미디어그룹Fusion Media Group에서 이런 접근법을 사용해 한 부서를 관리한 경험이 있다. 상당한 가능성을 발견하기는 했지만 조직 전체에 변화를 줄 만한 지속성을 이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을 지면으로 공유한다.

 

‘슬로 이노베이션이라는 문구는 수년간 다양한 의미로 쓰였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슬로 이노베이션은 문화인류학자 그랜트 맥크래켄Grant McCracken등 자신의 저서에서 언급한 것에 가까운 맥락이다. 맥크래캔은패스트 컬처슬로 컬처를 구분해 설명한다.

 

패스트 컬처는 1시간 단위로 최신 트렌드, 새로운이달의 유행어를 발견하기 위해 소셜 데이터를 모니터링하는트렌드 관찰자trendspotters쿨 사냥꾼coolhunters들의 주된 활동 영역이다. 패스트 컬처에서는 레이더에 포착되는 작은 신호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며, 빠르게 움직여 기회를 잡는 기업이 승리를 가져간다. 미국의 온라인매체 버즈피드Buzzfeed가 인기를 끌게 된 것도 패스트 컬처 덕분이고, 버즈피드가 스스로를 계속 리모델링해 가는 과정 역시 패스트 컬처에 기반한 프로세스 덕분이다. 마찬가지로 패션업체의 관점에서는초커목걸이의 유행이 가고크롭톱(배꼽티)’ 유행이 오는 것을 발 빠르게 파악해 크롭톱 쪽으로 투자를 돌리는 것 역시 패스트 컬처다. 어떤 단어가올해의 단어로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되기 전에 광고 문구에 사용하는 것이 패스트 컬처다.

 

슬로 컬처, 혹은 슬로 이노베이션은 패턴의 인식에 대한 영역이다. 여기서는 당장 조직의 시야 바깥에 있거나, 속도는 더디지만 꾸준히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을 찾는다. 슬로 이노베이션은 우리가 느끼고는 있지만 당장 비즈니스를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낄 정도로 급하지 않은 변화들에 초점을 맞춘다. 자동화와 자율주행차 기술을 생각하면 쉽다. 발전 속도는 더뎌 보이지만, 끝에 가서는 전체 고용시장과 새로운 전략 수립에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슬로 이노베이션이 주는 가장 큰 이점 중 하나는 바로 통찰의 힘이다.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관심을 쏟으면, 슬로 이노베이션 프로젝트는스쳐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해 간과했을 아이디어나 트렌드, 틈새시장의 존재를 포착할 수 있다.

 

 

프로레슬링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 2014년 디지털 정기구독 서비스를 출시했을 당시, 이는 너무 성급한 전략으로 보였다. PPV(종량제)를 중심으로 수익화가 이루어진 TV방송 사업을 잠식할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WWE의 결정 뒤에는 디지털 구독 서비스가 성공할 수 있음을 가리키는 충분한 데이터가 있었다. 바로 과거의 WWE 경기 비디오테이프를 거래하거나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에 올리는 등의 시청자 행동패턴을 20년 넘게 관찰하며 누적된 자료였다. WWE는 이런 충성고객을 유지하기 위해 몇 차례 다양한 모델을 실험했다. WWE의 결정은 얼핏 트렌드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꾸준한 관찰과 슬로 이노베이션의 결과였다.

 

그러나 슬로 이노베이션에는 극복해야 할 난관이 많다. 슬로 이노베이션 프로세스를 통해 발생한 비즈니스의 변혁은 외부자 시각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그리고 마침내 변혁이 이루어져도 이전까지 수년 동안 진행된 슬로 이노베이션 작업은 그 중요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이는 자연히 소규모로 시작해 천천히 진행되는 슬로 이노베이션 프로젝트보다 빠르고 크게 혁신하는 프로젝트에 투자금이 몰리는 현상을 심화시킨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당장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프로젝트, 예컨대긴급현안 순위 제6쯤에 해당하는 과제에 슬로 이노베이션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해당 분기나 연도의 성과에서는 영향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 경영진의 지원을 받기도 어렵다.

 

그뿐만이 아니다. 오랫동안 기존 방식을 고수해 온 다른 사람에게 기존 방식에 한계가 있다고 설득하는 것은 더 어렵다. 월간, 주간 단위 지표에서는 현재 방식의 허점들이 거의 보이지 않을 테니 말이다.

 

가장 어려운 과제는 출장이나 마감시한 등 업무 일정으로 바쁜 동료들이 자발적으로 슬로 이노베이션에 동참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경영진이 슬로 이노베이션 문화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슬로 이노베이션 프로세스의 소유주처럼

 행동할 것이 아니라 중간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두 사람은 2015년 유니비전Univision혁신 및 참여 센터Center for Innovation and Engagement’의 총괄 운영을 맡으면서 슬로 이노베이션 조직이 주는 이로움과 어려움을 처음으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센터를 맡은 후 20개월 동안 우리의 임무는 회사의 장기적인 평판, 목표, 비즈니스 모델과 관련한 과제들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분기별 성과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터득한 조직 전체가 슬로 이노베이션에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방법 중 일부를 소개한다.

 

1. 조직 내부의 기대수준을 신중하게 설정한다.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내부 주요 이해관계자들에게 무엇을 어떤 이유에서 하려는 것인지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슬로 이노베이션은 패스트 컬처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프로젝트보다 개념을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를 신중하게 관리하지 않는다면 프로젝트에 적합하지 않은 KPI로 성과 측정이 이루어지게 되고, 그 결과는 리더들의 기대에 못 미치게 마련이다. 이로 인해 투자가 축소되는 시기에는 슬로 이노베이션 프로젝트가 더욱 취약해진다.

 

 

2. 성과를 분명히 조명한다. 조직 내부 구성원들을 고객으로 하는 부서가 늘 겪는 고민이 있다. 프로젝트에 대한 성과가 대내외에 널리 알려져도 정작 이들에게 그 공을 돌리지 않는다는 문제다. 물론 다른 부서와 팀들이 슬로 이노베이션에 대해 공동의 주인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조직이 슬로 이노베이션으로 일군 성과만큼은 확실히 내부적으로 그 공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 조직 내부의 관계 증진에 투자한다.어떠한 슬로 컬처 패턴을 팀원들에게 잘 설명하고 전달하려면, 우선 그들이 나를 잘 알고 신뢰하며 내가 설명하는 내용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혁신센터와 같은 조직의 운영은 오직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내게 무언가를 요청하고 함께 일하고자 할 때 가능하다.

 

4. 최고의 슬로 이노베이션은 외부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명심한다.나와 내 조직이 슬로 이노베이션의 주인공이라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슬로 이노베이션에 필요한 문화 패턴을 더 능숙하게 찾아낸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 조직에 속하지 않은 외부 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은 기업의 우선순위 사안이나 성과 목표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슬로 컬처 관찰과 연구에만 집중하는 것이 가능했다. 사실상 우리 조직의 주된 역할은 새로운 문화 패턴을 직접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누군가 찾아낸 패턴을 해석해 사내에 전파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다양한 학술단체와 비영리기관, 스타트업을 비롯한 여러 파트너사들의 연구 결과를 추적 연구했다.

 

5. 예산 편성은 린lean 방식으로 한다.슬로 이노베이션에는 그다지 대단한 예산이 필요하지 않다. 나의 역할은 촉매제일 뿐이며, 작게 시작해야 한다. 그 대신 다른 팀들이 스스로 자체 예산을 투입할 만한 가치를 지닌 시도들을 장려하자. 만약 잠재력을 가진 어떤 기능 하나를 개발했다면, 내가 그것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보다 운영 인프라를 갖춘 다른 부서로 보내는 것이 좋다. 장기적으로 예산을 투입해야 할 곳은 바로 핵심 부서의 역량 강화, 임직원 교육 및 양성 프로그램, 전략적 외부 파트너십 등이다.

 

6. 그냥 보는 것과 관찰은 다르며, 그냥 듣는 것과 경청은 다르다는 점을 기억한다.슬로 이노베이션을 추진할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를 발굴하려면 단순히 듣는 것만이 아니라 문화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경청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 필터링filtering, , 정보 합성synthesizing, 그리고 잠재적 패턴을 발견할 수 있는 프로세스의 개발이다.

 

7. 익숙하지 않은 환경을 계속 경험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이미 대처 방법을 아는 질문만 계속 던져서는 창의적인 길을 발견할 수 없다. 반드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창의적인 경로를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시간과 노력이란 조직 내부의 팀들 사이에 접점을 만들어주는 것을 말하며, 조직 내부의 팀들이 외부 프로젝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도록 연결시켜주는 것을 말한다. 이는 팀을 익숙한 영역을 벗어나 낯선 공간과 낯선 대화로 이끄는 시도(대학 캠퍼스 방문이나 콘퍼런스 참가, 현장 견학 등)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우리는 유니비전에 몸담았던 동안 충분히 스스로를 기존의 기업문화에 동화시키지 못했고, 우리의 가치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으며, 주어진 시간 안에 우리 부서의 진정한 가치를 충분히 입증하지는 못했다. 그 결과 슬로 이노베이션에 대한 투자의 장기적 효과에 대한 가능성을 살짝 엿보는 데 그쳐야만 했다. 하지만 이처럼 짧은 경험만으로도 우리는 슬로 이노베이션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굳혔으며, 앞으로도 이에 대한 투자의 필요성을 계속 전파하고자 한다.

 

번역: 최원일 / 에디팅: 석정훈

샘 퍼드는 엔터테인먼트, 언론, 시민단체, 마케팅 분야의 리더들에게 문화 관련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으며, 스토리텔링, 참여, 오디언스 참가에 대한 접근 방식에 대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MIT Comparative Media Studies/Writing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페데리코 로드리게스 타르디티는 혁신 컨설턴트다. 현재 Parley for the Oceans에 근무 중이며, 해양 보존을 위한 새로운 접근법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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