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월호

금융인의 시각으로 본 양성평등 문제와 개선책
존 리

Commentary on ‘여성, 권력, 영향력

 

금융인의 시각으로 본 양성평등 문제와 개선책

존 리

 

 

몇 년 전 유럽의 한 연기금 책임자가 필자가 몸담고 있는 회사를 방문하고 싶다며 연락해 왔다. 당시 그는 한국시장에 대한 투자를 고려한다며 펀드매니저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약속된 날짜 직전, 그는 방문을 1년 연기해야겠다고 연락해 왔다. 그 이유가 신선했다. 동거하던 여자친구가 임신을 해서 가정일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에 비해 선진국들이, 특히 유럽이 양성평등 수준에 있어 얼마나 앞서 있는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해 준 경험이었다.

 

HBR코리아 2020 1-2월호에 게재된 멜린다 게이츠의 글은 직장 내 양성평등 이슈에 대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문제, 가령 여성에게 불리한 승진제도나 남녀의 급여차이, 혹은 성희롱 등의 이슈가 아니라 그보다 휠씬 광범위한 문제를 다룬다. 게이츠는 여성들이 겪는 괴롭힘이나 임금격차 등의 문제들만 단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충분치 않으며, 훨씬 더 대담하고 야심에 찬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실제로 그런 목표가 실현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는 (1)여성의 직업적 진출을 가로막는 편견을 없애고 (2)여성의 진입을 가속화하며 (3)외부 압력을 증폭시키는 세 가지 방법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는 아주 현명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이 중에서도 편견을 없애는 일은 양성평등 실현을 위해 가장 중요하면서도 근본적인 일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금융정보서비스 업체 블룸버그의 창업자인 마이클 블룸버그는 양성평등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블룸버그사는 양성평등지수(Gender-Equality Index·GEI)를 만들어 해마다 발표하고 있다. 여성의 직장 내 지위향상에 힘쓰는 기업만을 선정해 그들의 재무실적을 집계하는 인덱스다. TV에 자주 출현하는 앵커나 다른 출연자 포지션을 가능한 한 여성으로 채우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 과거에는 블룸버그방송에 출연하는 펀드매니저들이 대부분 남성이었지만 지금은 여성 펀드매니저나 금융전문가를 흔히 볼 수 있다.

 

오랫동안 쌓였던 고정관념은 이런 노력에 의해 하나씩 깨질 것이다. 특히 모든 업계에서 여성의 진출을 촉진하려 하기보다는 힘과 영향력이 큰 분야(공직, 기술, 학계, 미디어, 투자업계, 기업경영)를 집중 공략하는 접근은 큰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한국은 양성평등 이슈의 사각지대라고 할 만큼 수준이 낮다. 정부정책은 여성가족부라는 부처가 있을 정도로 비교적 여성 친화적이라 할 수 있지만, 기업들의 양성평등 노력은 각종 지표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OECD 멤버 중 최하위 수준이다. 그나마 교육이나 의료부문에서는 여성의 진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정치권과 기업, 특히 금융 분야에서는 참혹할 정도로 여성 진출이 빈약하다.

 

필자는 얼마 전 한 여자대학의 MBA과정 학생들에게 금융강연을 한 적이 있다. 당시 학장이 필자에게 전한 이야기가 충격적이었다. 금융MBA 학위과정에 여학생들이 지원하지 않아 금융MBA 프로그램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필자가 대학을 다녔던 시절에도 경제학과는 전원이 남학생이었다. 여학생의 진출을 법이나 제도가 막았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학은 여학생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정형화된 편견이 주된 이유였다.

 

이런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비단 경제학뿐 아니라 공학 등 지금까지 남성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던 분야에 적극 도전해서, 여성과 연관성이 없는 영역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한다. 양성평등에서 이해당사자들의 진정한 협조를 얻으려면, 이해당사자들 스스로 여성을 평등하게 대하려는 노력이 스스로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지만, 이런 인식을 이끌어내기가 쉽지는 않다. 이를 위해선 남성들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려는 노력과 동시에 여성 스스로도 자신들이 갖고 있는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힘써야 한다.

 

 

 

자본시장의 힘으로 돕는 양성평등

 

이 밖에 게이츠의 기고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을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해당사자와 금융자본 간의 협업이 중요하다는 주장이었다. 금융업계에 종사하는 필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게이츠는 실제로 미국에서 여성평등 캠페인들은 대부분 자금부족에 시달려 왔음을 지적하며 자선가, 벤처투자자, 기업, 정책입안자들의 참여가 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선 때로 강제적 수단이 동원돼야 효과적일 때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주주행동주의는 하나의 큰 가능성을 제시한다.

 

최근의 예를 들어보자. 얼마전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P)에서는 포트폴리오에 속한 기업 중 여성이 없는 이사회를 퇴진시키는 쪽으로 주주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압박했다. 그 결과 많은 기업들이 한 명 이상의 여성을 이사회에 선임했다. 이처럼 주주는 투표를 통해 기업이 임금과 승진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등 양성평등을 촉진하기 위한 전면적인 변화를 단행하도록 압박할 수 있다. 자본의 힘을 통해 이 같은 강제적 조치가 더해지고, 실제로 양성평등이 당사자들에게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진정한 양성평등이 실현되는 시점을 훨씬 앞당길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일본공적연금(GPIF)에서 투자를 받으려면 회사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일본여성활약지수(MSCI Japan Women Empowering Index·WIN)에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규제제도를 만들어 과감히 시행하고 있다. 이 지수는 앞서 말한 블룸버그 GEI와 마찬가지로 직장내 성별 다양성과 여성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대기업들을 선정한다. GPIF 2018년 기준 자산이 1600조 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연기금이고 일본 자본시장에서 영향력이 크다. 최근 일본 주요 기업들에서 여성 임원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이유다. 출생아 감소로 인해 노동력이 부족해진 일본은 여성인력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양성평등의 이슈를 과거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해당사자와 자본의 협력이 이뤄낸 사례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경우 지금까지 각종 공적기금이 양성평등 이슈에 의견을 내거나 관심을 보인 적은 없다.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현재 상황으로서는 공적기금보다는 민간자본을 통한 압박으로 기업에서의 양성평등 움직임을 구체화하는 방법이 보다 현실적인 수단으로 보인다. , 양성평등 이슈를 중시하며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세우는 회사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펀드에 개인투자자들이 적은 금액이라도 참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하루 1만 원씩 투자하는 사람들이 1만 명, 10만 명이 모여서 이런 양성평등펀드에 투자한다면 한국이 양성평등의 가장 모범 국가가 될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문화를 바꾸고 개인의 인식을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자본일 수 있다. 많은 개인들이 투자를 함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으며, 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뉴욕대 회계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부터 미국 월가의 투자회사인 스커더스티븐슨앤드클라크에서 코리아펀드를 15년간 운용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도이치투신운용과 라자드자산운용을 거쳤다. 메리츠자산운용은 2018 11월 한국 최초의 양성평등 테마펀드인메리츠더우먼펀드를 론칭한 바 있다. 조직 내 양성평등에 힘쓰는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다.

  • 아티클 다운로드
    (PDF)
    5,000원

    담기바로구매

  • 디지털서비스
    1년 150,000원

    디지털서비스란

    신청하기

혁신 다른 아티클

무료 열람 가능 아티클 수 0/1 회원가입 | 서비스상품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