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월호

아프리카, 차세대 세계의 공장
아이린 위안 쑨(Irene Yuan Sun)

ECONOMICS AND SOCIETY

아프리카, 차세대 세계의 공장

아이린 위안 쑨

 

중국의 투자가 아프리카를 어떻게 바꿔 나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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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Brief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증가하는 비용 때문에 중국에서 밀려난 제조업 기업가들은 점차 아프리카의 고수익 사업모델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왜 중요한가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아프리카는 중국의 역할을 넘겨받아 두 번째로 세계의 거대한 제조센터가 될 수 있다.

 

예상되는 결과

이와 같은 산업혁명은 1억 개의 일자리와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제조기업 다수를 만들 것이며 아프리카에서는 극심한 빈곤이 사라질 것이다.

 

 

나이지리아 남서부에 위치한 거대한 세라믹공장. 천장이 낮은 사무실에서 만난 공장주 쑨젠Sun Jian은 굳이 차를 마시자고 권했다. 그는 중국에서 막 돌아왔다. 중국인들의 오랜 관습에 따라 손님에게 대접하려고 최고 품질의 차를 가져온 참이었다.

 

쑨은 중국 남동부에 있는 중소도시 원저우 출신이다. 4000년 전 이 도시에서 세라돈celadon이라 불리는, 창백하면서도 윤기가 흐르는 청자유약이 발명됐다. 그래서 원저우는 중국 도자기의 고향이 됐다. 하지만 1970년대는 원저우도 힘든 시기였다. 쑨은 초등학교를 마친 후 일하기 시작했다. 마오쩌둥 사망 2년 후인 1978, 원저우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사기업을 설립할 수 있는 도시가 됐다. 쑨은 가죽 가공공장 여러 곳을 전전하며 경력을 쌓아 나갔고, 마침내 저축한 돈으로 자신의 가죽 제조업체를 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이 되자 운영비용이 너무 급속도로 올라갔다. 그는 중국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한 친구가 나이지리아를 고려해 볼 것을 제안했다.

 

그는 먼저 나이지리아를 5일간 방문해 보기로 했다. “막 도착했는데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달라고 구걸하더군요. 하지만 한편으로 부자들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또 이 시장에서 성공하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저에게 힘든 만큼 다른 사람도 똑같이 힘든 것이죠.” 중국으로 돌아온 그는 세관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나이지리아에 대량으로 수출하는 제품 중 운반하기에 가장 무겁고 비싼 제품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대답은 바로 세라믹이었다.

 

그 한 번의 방문 후, 쑨은 4000만 달러를 투자해 나이지리아에 세라믹 타일 공장을 건설했다. 공장은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으며 약 1100명에 달하는 노동자 중 1000명이 현지인이다. 전기 공급은 불안정하고 비쌌지만 사업은 잘됐다. 중국에서는 이익률이 5% 수준이었지만 상대적으로 경쟁이 치열하지 않고 수요가 폭발적인 나이지리아에서 쑨은 7%의 이익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익률이 너무나 박한 경우가 빈번한 제조업에서 수익률 2%p 차이는 크다.

 

쑨의 이야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중국 상무부가 제공한 데이터에 따르면, 2000년에는 중국 사기업이 아프리카 제조분야에 투자한 건수가 겨우 2건이었지만 지금은 150건이 넘어가고 있다. 실제 숫자는 그보다 두세 배 더 많을 수도 있다. 현장에서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정부 데이터에 포함되지 않은 중국기업들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기업들은 이미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프리카 최대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나이지리아에서 중국기업들은 철을 제련해 건설업 붐에 불을 지피고 있다. 조그만 국가인 레소토에서 중국과 대만의 기업들은 콜Kohl의 요가바지, 리바이스 청바지, 리복 운동화를 대량으로 생산해서 미국의 쇼핑몰로 보내고 있다. 그들 덕분에 의류제조업은 레소토의 가장 큰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영국의 거대 제약회사인 GSK가 의약품 제조공장 설립 계획을 막 폐기 처분했지만 동시에 중국의 제약회사인 인복의약Humanwell은 수도 아디스아바바 외곽에 위치한 2000만 달러 규모의 공장부지에서 첫 삽을 떴다. 인복의약 이사회는 에티오피아의 제약산업에 총 1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승인했다.

 

지난 수년간 나는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에서 활동하는 중국 제조분야 기업가 약 50명과 대화를 나눴다. 이제부터 나는 이들이 어떻게 아프리카의 경제와 사회를 변모시켰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이들은 수백만 아프리카인들에게 최초로 정식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고, 한 세대의 아프리카 기업가들을 길러내고, 정부기관들을 자극해 제조업 클러스터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들 중국 기업가들이 물론 성인군자는 아니다. 뇌물, 열악한 노동환경, 환경오염 문제 등이 만연해 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수의 중국 기업가들이 아프리카로 몰려오고 있다. 천연자원 개발이나 서비스 분야와는 달리, 제조업은 국가적 산업화의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아프리카의 산업혁명은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노동력 풀

 

중국 기업가들은 아프리카로 밀려나기도 했지만 동시에 끌려 들어왔다고도 할 수 있다. 밀려났다는 관점은 중국이 과거 글로벌 제조분야에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위치였지만 지금은 그 위치가 구조적인 압력을 받고 있다는 데 기인한다. 한 자녀정책의 영향력 하에 있던 한 세대 동안 중국의 노동력 풀은 쪼그라들었고, 해안지대의 제조업 허브에서는 노동력 부족 사태까지 일어났다. 그리고 인건비는 최근 수년간 급격하게 상승했다. 제조업 시간당 임금은 2001년부터 매년 12% 증가했다. 생산성을 반영해 산정한 제조업 임금은 2004년부터 2014년 사이 거의 세 배로 뛰었다.

 

세계은행의 수석 경제학자였던 저스틴 이푸 린Justin Yifu Lin에 따르면, “중국은 지금 낮은 기술 수준의 제조업 일자리를 졸업하려는 참이다. 그럴 경우, 1억 개의 노동집약적 제조업 일자리가 중국을 떠나게 되고 이는 다른 저소득 국가들의 제조업 고용을 네 배 이상 늘리고도 남을 만한 수치다”. 감을 잡기 위해, 미국에서 제조업 고용이 최고조에 달했던 1978년도에 미국 내 공장에서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은 2000만 명에 불과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지금 그 숫자의 다섯 배에 달하는 일자리가 중국이라는 나라 밖으로 옮겨가려고 하는 중이다.

 

한편, 아프리카는 인구 붐의 초기 단계에 있다. 2050년까지 인구가 20억 명으로 증가할 것이다. 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노동력 풀이 될 것이다.(동남아시아의 인구는 그때까지 8억 명 수준에 그칠 것이다.) 반면 아프리카 국가의 실업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나이지리아의 경우, 공식 실업률은 12.1%지만 나이지리아 정부는 생산연령인구의 19.1%가 추가적으로불완전고용underemployed[1]상태에 있다고 보고 있다. 젊은 사람들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청년 실업률은 42.2%에 달한다. 따라서 중국의 제조업 일자리가 아프리카를 향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업 투자가들의 관점에서 볼 때 물론 여러 측면에서 어려운 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프리카가 제공하는 한 가지 장점은 시장 선택에 있어서 가장 폭넓은 다양성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나이지리아는 상대적으로 경쟁이 치열하지 않으면서도 높은 이익률을 거둘 수 있는, 거대한 소비재 내수시장을 자랑한다. 레소토의 경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훌륭한 인프라와 물류 서비스에 근접해 있는 데다가 미국 시장에 대한 관세 면제혜택을 누릴 수 있다. 에티오피아는 수익성이 좋은 중동시장에 가까우며 전기가 저렴하고 세금우대 조건도 매력적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아프리카는 제조기업들이 보유할 수 있는 거의 어떠한 사업 모델에도 매력적인 입지가 될 수 있다.

 

아프리카는 수요 측면에서도 유리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아프리카의 정부들은 지역시장을 통합하기 위해 과감한 조치들을 취해 왔으며, 이런 조치 덕분에 신규 진입자에게 기회는 늘어나고 비용은 줄어들 것이다. 2015년에는 아프리카에 있는 국가들 중 절반이 자유무역협정[2]에 가입했다. 이 협정은 6억 명의 사람을 단일 무역블록에 통합시킴으로써 세계에서 13번째로 큰 경제단위를 형성할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동아프리카의 여섯 국가들은 무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관세동맹을 결성했고, 수월하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제들을 조화롭게 맞춰 나가고 있을 뿐 아니라 국경을 통한 원활한 이동이 이루어지도록 단일방문 비자를 만들었다.

 

이제 중국의 투자가 아프리카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자.

 

[1]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기대 이하의 일자리에서 일하는 경우

[2]Tripartite Free Trade Area

 

 

미래를 향한 약속

 

사람들 사이의 입소문을 들어보거나 신문에 나타난 정서를 살펴보면 아프리카에는 중국 기업들이 아프리카인들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면밀하게 이루어진 모든 분석결과를 살펴보면 실상은 정확히 그 반대로 나타난다. , 아프리카에 있는 중국 공장들은 현지인들을 압도적으로 많이 고용하고 있다. 수집된 다양한 통계자료를 활용한 최근의 한 메타분석에서도 현지 노동자의 비중이 78%가 안 되는 샘플 기업은 없었고, 직원이 수천 명이 넘는 일부 기업에서는 그 수치가 99%를 넘기도 했다. 비록 작은 규모이긴 했지만 내가 나이지리아에서 수행한 현장연구에서도 중국 제조업체들이 고용한 노동자 중 85%가 현지인들이었다. 케냐에서 중국어로 수행된 대규모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제조/건설기업 직원들 중 90%가 현지에서 고용됐다. 또 중국 기업이 케냐에서 영업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현지 고용인의 비율은 증가했다.

 

아흐메드 이브라힘Ahmed Ibrahim역시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 나이지리아에서 내가 방문했던 한 카드보드 박스 공장에서 안내를 맡았던 사람이다. 나는 그가 카드보드를 만드는 모든 공정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펄프 공급자들의 특성, 트럭으로 싣고 온 원자재를 내리는 과정, 모든 기계의 구석구석, 최근 고객주문 현황, 오프셋 인쇄 기술 등. 게다가 그는 모든 근로자의 이름도 알고 있었다. 그의 상관이자 이 공장의 주인인 사람은 중국인이었지만, 이브라힘이 모든 일을 알아서 하고 있음은 명백했다.

 

이브라힘은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중등교육을 마친 후, 그는 많은 젊은 나이지리아 남자들처럼 잡다한 일들을 하면서 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일할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니제르와의 국경 인근에서 자란 덕분에 그는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았다. 그는 베냉과 인접한 곳에 살면서 틈새시장을 발견했다. 베냉의 자동차 수입관세가 훨씬 낮다는 점을 활용하고 싶어하는 나이지리아 사람들을 대리해서 프랑스어를 쓰는 레바논 자동차 딜러들로부터 차를 구입하는 일이었다. 2009년에 그는 중국에서 막 나이지리아로 들어와 사업을 시작하고 싶어하는 왕준슝Wang Junxiong의 운전사로 취직했다. 이브라힘은 이내 상사를 위한 일종의 다목적 현지 해결사로 변신했다.

 

그들 관계에서 결정적인 순간은 왕이 막 시작한 회사에서 필요한 차를 사야 했을 때 발생했다. 왕은 높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현지인들처럼 베냉에서 차를 사고 싶어했다. 왕이 프랑스어를 몰랐기 때문에 이브라힘이 그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 많은 돈을 맡길 만큼 이브라힘을 신뢰할 수 있을까? 왕의 중국인 매니저들은 불안해했다. 왕은 순식간에 결정을 내렸다. 이브라힘의 눈을 쳐다보며 새 차를 사기 위한 돈 전부를 현금으로 건넸다. 이브라힘이 베냉으로 떠날 때 중국인 직원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머리를 저었고, 이브라힘과 그 돈을 다신 볼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모두가 놀랐다. 이브라힘은 차와 잔돈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잔돈 중 일부를너무나 아름다워서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던 신발을 구입하는 데 썼다며 이를 사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는 다음 번 급여에서 그 돈을 감봉해 달라고 고집했다. 그날부터 이브라힘은 왕의 오른팔이 됐다.

 

그는 곧 공장의 일상적인 운영을 주관하게 됐다. 왕은 그를 너무나도 좋아해 이브라힘이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매니저라고 찍은 명함을 들고 왔다. 동일한 직급을 가진 중국인 매니저는 이를 모욕적이라고 여겼다. 이브라힘은 평화를 유지하고 싶었다. 어차피 자신이 사실상 권한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명함을 사용하지 않았다.

 

카드보드 박스 공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이브라힘의 삶이 변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부족에 속한 남자들은 결혼을 하려면 일정한 금액의 돈이 필요했다. 이브라힘도 이 일자리를 얻기 전에는 독신으로 사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 지금 그는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부인을 얻었고(그의 부족은 중혼제를 허용한다), 부자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그리고 사실상의 공장 관리자인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남동생 이시마엘Ishmael을 사업에 끌어들였다. 이시마엘은 곧바로 감을 잡았고, 이제는 이브라힘이 왕이 요구한 다른 일을 처리할 때 대신 공장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이브라힘은 공장 내부를 오가면서 공장이 있는 나이지리아 남서부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북부 나이지리아 언어인 하우사어[3]로 직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 직원들은 인근 지역 출신이 아니었다. 이브라힘은 말 그대로 자신이 살던 마을을 그대로 직장으로 옮겨온 것이었다.

 

똑똑하지만 일할 기회가 부족하거나 교육이 부족한 1억 명의 청년들이 공장에서 일할 수 있게 된다면 그들은 지속성이 없는 비정규직 일자리에서 글로벌 경제와 연결된, 생산성이 높은 정규직 일자리로 옮겨갈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이 기회는 심지어 더 큰 잠재력과 함께 다가온다.

 

[3]아프리카 하우사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

 

 

아프리카의 신세대

 

아프리카인들이 제조업의 경험을 쌓아가면서 그들 중 많은 수가 창업을 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소유권의 현지화가 발생하는 원인은 부분적으로 제조업의 본질에 있다. 제조업 기업은 비용을 절감하고 더 민첩하게 움직이기 위해 공급사슬을 단축하려고 노력할 수 밖에 없다. 어디든 공업단지가 들어서면 현지 공급업체들도 생겨나고 규모도 커진다. 국가 정책 역시 한몫을 하고 있다. 정부가 발주하는 사업들은 현지 업체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거는 경우가 많고, 국가 차원의 은행 자금 지원도 현지 기업에만 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중국기업이 현지기업과 파트너십을 맺도록 격려하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외국인 투자자들은 현지 지식을 높게 평가하고 믿을 만한 현지 파트너를 찾아 나서는 경우가 많다. 중국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아디스아바바 출신의 자프 게브렛사딕Zaf Gebretsadik을 만나보자. 1980년대 초기에 약학대를 졸업한 후 그는 국립병원에서 약사로 일했다. 1980년 대 중반, 대가뭄과 기근이 에티오피아 전국을 덮쳤다. 게브렛사딕은 구호기관에 합류했고 살충제를 연구하는 일로 업무를 전환했다.

 

1992년에 그녀는 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농업이 대부분인 경제시스템하에서 농업 연구자로 일하다보니 인간과 동물 모두에 적용할 수 있는 약의 필요성에 눈뜨게 됐다. 아울러 그 약을 판매할 수 있는 사업기회가 있음도 알게 됐다. 에티오피아에서 생산되는 약이 거의 없는 만큼 그녀는 약을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중국과 프랑스, 스위스 대사관의 문을 두드렸다. 중국 대사관만이 응답해 왔다. 경제참사관의 도움을 받아 그는 다수의 중국 제약회사들과 연락을 할 수 있었고, 에티오피아 시장에서 그들을 공식적으로 대리하게 됐다. 2년 만에 그녀는 에티오피아 정부로부터 대규모 의약품 공급 계약을 따냈다.

 

몇 년 후, 에티오피아에서 그가 대리하는 중국기업 중 한 곳에서 매력적인 제안을 가져 왔다. 약을 감싸는 젤 캡슐을 만들기 위해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하겠다는 것이었다.

 

게브렛사딕은 즉시 그 기회를 잡으러 뛰어들었다. ‘중국에티오피아 어소시에이트 아프리카Sino–Ethiop Associate Africa라는 이 합작회사의 지분 30%를 얻기 위해 지금까지 그녀가 번 돈 전부를 투자했다. 이 회사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젤 캡슐 제조회사가 됐다. 에티오피아 시장과 관료주의를 헤쳐나가는 능력에 있어서 그녀가 가진 전문성은 다른 중국 파트너 두 명의 전문성을 완벽하게 보완했다. 중국 파트너 중 한 명은 개발도상국에서 의약품을 판매하는 분야에서 전문가였고, 다른 한 명은 젤 캡슐 제조기술 전문가였다. 그들의 공장은 곧 가동에 들어갔고 매우 신속하게 수익을 창출했다. 처음에는 200만 캡슐이던 일일 생산량은 600만 캡슐로 늘어났고, 1100만 캡슐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들이 생산한 제품은 에티오피아 제약 수출에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와 중동 전역에서 팔리고 있다.

 

오늘날 게브렛사딕이 전부 혹은 공동으로 소유한 세 회사는 모두 합쳐서 300명가량의 직원을 두고 있다. 그와 같은 아프리카 기업가들은 과거 중국, 일본, 그리고아시아의 용이라 불렸던 네 국가[4]에서 기업가들이 했던 일들을 수행하고 있다. 해외 투자자와 파트너가 되었다가 스스로 제조업 재벌이 되는 것이다. 게브렛사딕의 이야기는 쑨의 이야기와 아주 유사하다. 현재 중국에서 공장을 소유한 사업가들 역시 처음엔 해외 투자자들을 위해, 혹은 해외 투자자들과 합작해서 사업을 시작한 세대다.

 

거의 20년 전 게브렛사딕이 평생 모은 돈을 제조공장에 투자하기로 한 결정을 되돌아볼 때, 그녀는 사업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았다. 고정투자가 매우 적게 필요한 영업과 마케팅 사업에서 고정비용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한 제조업으로 전환했음에도, 그녀의 결정은 경제적 측면이나 사업계획에 근거해 내린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재무 측면에서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저에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사람들을 1992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들을 신뢰합니다.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죠.”

 

 

좋은 사업에서 좋은 제도로

 

아프리카에 진출한 중국기업들은 종종 현지의 사회적, 제도적 시스템을 망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전 미국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중국의 아프리카 투자를 두고새로운 식민주의new colonialism라고 표현한 바 있다. 2011년 잠비아 TV와의 인터뷰에서 아프리카에서 증가하는 중국의 영향력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클린턴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아프리카에 투자하러 오는 사람들이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그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아프리카의 바람직한 지배구조를 망가뜨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적받은 대로, 중국의 아프리카 투자 기록을 살펴보면 흠결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살펴본 수많은 중국 기업들은 아프리카에 제도적 역량을 구축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과거 시장이라는 제도가 존재하지 않던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 체제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대국으로 바꿔 놓은 것과 동일한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반복적으로 정부와 상호작용하고 공동으로 제도적 혁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4]홍콩, 싱가포르, 한국, 대만

 

 

이런 접근방식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치린Qi Lin이 아마도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중국 남동부의 작은 도시에서 미용사로 일을 시작했고 의류매장을 운영하려고 노력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치는 할아버지에게서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그의 할아버지는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차지한 몇 년 후 중국 정부에 의해 소말리아에 친선 의료봉사단으로 파견됐다. 치는 직접 아프리카에 가보고 싶었고, 결국 중국의 중장비회사가 케냐에서 근무하는 조건으로 제공하는 일자리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이제 그는 현지 택시운전사보다도 나이로비의 뒷골목을 구석구석 알고 있으며, 대부분의 케냐인들보다 더 많은 케냐의 부족언어로 인사말을 할 줄 안다.

 

케냐로 옮겨간 후, 치는 낮시간에는 선반과 밀링머신 판매영업을 했다. 공장에서 주문제작 부품을 만들 때 사용되는, 책상 크기의 강력한 장비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금세 문제에 부딪쳤다. 케냐에서는 아무도 그의 회사가 판매하는 첨단기계들의 사용법을 알지 못했다. 케냐의 직업과 기술교육은 적어도 한 세대는 뒤처져 있었다.

 

온 나라의 기술교육을 개선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치의 회사는 케냐 교육부와 국립청소년서비스라는 두 정부부처와 손을 잡았다. 대부분의 직업교육 사업을 시행하는 부처들이었다. 치의 회사는 최신 기계들의 가격을 상당히 낮춰서 직업교육센터에 공급했다. 이후 2년간 치는 자동차로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전기가 연결되는지 확인하고 학교 교장들을 만났다. 10개의 교육센터에 장비를 설치했다. 그는 거대한 기계들의 설치가 끝났을 때 이제 힘든 일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계들은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하루는 치가 교육부 공무원인 비나드 시콜리 이살람보Benard Shikoli Isalambo와 함께 직업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살람보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좋은 장비를 제공해 주셨지만 저희가 활용을 잘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장비의 활용을 활용하는 대회를 실시한다면 우리 학생들이 자신감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나이로비로 돌아가 제안서를 작성했고, 치는 내부채널을 활용해 이 제안서에 승인을 받았다. 그 아이디어는 결국 2014년에 출범한아프리카 테크 챌린지Africa Tech Challenge·ATC’로 결실을 맺었다. 이 대회에서는 케냐 전역에서 학생들이 모여 산업기계 기술과 관련해 심화교육을 받고 경쟁을 벌인다. 치의 회사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여기에 매년 50만 달러를 지출한다.

 

하지만 이 대회가 문제를 해결했을까? 물론 아니다. “ATC를 하면서 분명해진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강사들이 학생들보다 훨씬 실력이 떨어져요!” 이살람보가 말했다. 다시 한 번 치는 자신의 꺾이지 않는 낙관주의와 문제해결 기술을 총동원했다. 그는 NGO 활동가들과 컨설턴트들로 작은 팀을 구성했고, 회사는 케냐 정부와 함께 교사 훈련센터를 설립했다.(저자도 대학원 재학 중 여름방학을 이용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년간의 밀고 당기기 끝에중국아프리카 산업기술 업그레이딩 센터the Sino–Africa Industrial Skill Upgrading Center’의 설립이 2016 7월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치의 이야기는 어떻게 중국기업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아프리카의 새로운 제도적 현실을 빚어 나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한 사례다. 중국 내에서도 정부와 다른 기관들이 여전히 진화단계에 있는 만큼, 중국에서 온 기업들은 아직 불완전하고 진화하고 있는 상태의 제도와 기관들을 봐도 두려워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전진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현지 파트너를 다양하게 바꿔가며 힘을 빌리고,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계획을 바꿔가면서 말이다. 그들은 아프리카 파트너들이 제시하는 아이디어에 개방적인 태도를 가진다. 무자비할 정도로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말릴 수 없을 정도로 긍정적인 중국 기업들은 상황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행동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바로 그 상황을 바꿔 놓는다.

 

이런 과정을 일컫는 용어도 있다. 바로부트스트래핑 개발bootstrapping development[5]이다. 이는 콜롬비아대 사회과학학자인 찰스 세이블Charles Sabel이 사용한 용어로, 불완전한 기관들이 끊임없이 시장상황에 대해 배우고 적응해 나감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는 수단을 말한다. 사회제도에 대한 이런 역동적이고 낙관적인 관점은 지금 현재 처해 있는 상황보다 미래에 이루어 나갈 가능성을 더 강조한다. 세이블이 말했듯, “하나의 움직임이 다음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부트스트래핑 과정을 통해 사회제도와 기관들이 만들어진다면, 그런 제도와 기관들은 발전의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시작점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성공 스토리들이다. 많은 경우 이만큼 성공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리스크가 클 때도 있다. 그리고 중국기업들은 아프리카의 정부 및 공공기관들에게 변화와 개선을 요구하기보다는 현재 상황 그대로 함께 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이 무능력하거나 무책임한 지방 정부들을 인위적으로 떠받치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사회제도와 기관들은 완벽한 형태로 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사용되면서 존재를 형성해 간다. 따라서 기업들은 기관들과 기꺼이 협조하고 이들에게 개선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5]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힘으로 유지하고 개선하는 과정

 

 

세계은행의 스티븐 낵Stephen Knack과 스탠퍼드경영대학원의 니컬러스 유뱅크Nicholas Eubank는 그 대안적인 경우를 연구했다. 이들은 서구의 NGO들이 아프리카 현지의 제도와 기관을 우회해서 자체적으로 일하는 경우들을 살펴봤다. 그들은 “NGO들이 자체적인 시스템을 통해 지원활동을 관리할 때 현지 국가의 공식적 시스템은 손상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이런 자체적 지원 시스템이 소중한 인재들을 빼내간다는 점이다. “구호단체에서 국가 시스템을 우회할 때, 종종 정부에서 가장 유능한 공무원들을 빼내어서 자신들의 직원으로 고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처음부터 완벽함을 요구하는 것보다 차차 개선해 나가는 부트스트래핑 방식이 훨씬 나은 전략으로 보인다.

 

 

제조업의 기적

 

세라믹 타일 공장에서 쑨이 대접하는 향기로운 차를 여덟 번째인가 아홉 번째로 홀짝거리고 있을 때, 쑨은 더 철학적이 됐다. 그는 말했다. “우리 중국인들은 경제발전이라는 기차가 먼저 어떤 역을, 그리고 다음에는 어떤 역을 통과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그 경로를 알고 있습니다. 나이지리아는 중국에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쑨은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자신도 모르게 개발경제학 이론 중기러기 편대 패러다임[6]이라고 불리는 이론을 말하고 있었다. 아카마쓰 가나메 Kaname Akamatsu가 처음 얘기하고 저스틴 이푸 린 덕분에 최근 유명해진 이 이론은, 비용과 수요가 변화함에 따라 제조기업들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기러기처럼 행동한다고 가정한다. 이 비유에 따르면, 선발국가에 있던 공장은 노동비용 상승 압력 때문에 후발국가에 투자하게 된다. 후발국은 선발국 기업의 도움으로 점차 기업 소유권을 축적해서 기술 커브를 따라잡는다. 이런 움직임으로 인해 생산성이 낮은 농업과 비공식 서비스 산업부터 시작해서 생산성이 높은 제조업까지, 많은 산업이 선발국가로부터 후발국가로 이전된다. 추격하던 국가는 결국 선두의 자리에 끼어들게 되고, 이 국가의 기업들은 새로운 생산기지를 찾아다니게 된다. 이 패러다임은 일본과 아시아의 용국가들, 그리고 중국까지 어떻게 차례로 발전했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모델을 제공한다.

 

기러기 편대 패러다임에는 두 번째 차원이 존재한다. 이 패러다임은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기업들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각 국가 내에서 한 제품에서 다른 제품으로 산업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지는 과정도 설명한다는 것이다. 먼저 특정 제품을 생산해 보려고 시도하는 몇몇 기업이 나타난다. 그들이 학습을 해가면서 벌어들이는 이익은 다른 제조업체들을 끌어들여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해당 분야가 과밀해지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익이 박해지면 일부 기업은 다른 제품을 찾아 나선다. 이번에는 좀 더 복잡하고 따라서 모방하기가 더 어려운 제품을 찾아 나선다. 이러한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모방하고 학습하던 기업은 불과 한 두 세대만 지나면 발명하고 가르치는 기업이 된다. 148개 국가에 대한 분석에 따르면, 한 국가의 GDP가 증가함에 따라 그 국가의 제조기업들은 당연히 점점 더 복잡한 제품 쪽으로 나아간다. 10년 내지 20년 후 아프리카에 있는 공장들은 세라믹이나 의류 대신 컴퓨터를 대량으로 찍어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제조업에 대한 투자가 아프리카의 발전에 핵심이 되는 이유다. 장기적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생산성 향상이라는 걸 경제학자들은 알고 있다. 서비스업은 지역 기반이며 규모를 키우기 쉽지 않다. 반면 제조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생산적이 된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수입품과 경쟁을 해야 하거나, 제품을 더 경쟁적인 시장으로 수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조업 투자는 큰 승수multifplier효과를 갖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모든 제조업 일자리 1개당 1.6개의 서비스 일자리가 따라온다. 과거 오바마 대통령의 제조업정책 선임 자문역이던 론 블룸Ron Bloom이 말했듯, “자동차 조립공장이 생기면 월마트가 따라온다. 하지만 월마트가 생긴다고 자동차 조립공장이 따라오지는 않는다.”

 

물론, 산업화는 좋은 방향으로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만큼 나쁜 방향으로도 그 힘을 행사한다. 아프리카에서도 이런 부분들을 명백히 볼 수 있다. 뇌물은 지방정부가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환경오염 관련 나쁜 관행들은 아프리카의 공기와 물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근로자에 대한 잘못된 처우는 임금만이 아니라 때로는 업무 현장에서 생과 사를 결정하기도 한다. 부패 스캔들과 스모그로 가득한 공기로 고생하고 있는 중국이란 나라 자체가, 이렇게 경제 팽창이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나쁜 결과들을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또 하나의 확실한 사실이 있다. 아프리카는 다른 방식으로 산업화를 경험할 것이다. 아프리카의 국가와 사회들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 혹은 사회적으로도 중국과 닮지 않았다. 새로운 장소에 공장을 건설하면 수입이 증가하고 노동 관련 문제가 생기는 등 다수의 예측 가능한 결과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형태나 결과, 그리고 성격은 상당히 다양하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자유로운 뉴스미디어의 활동이 산업화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레소토의 경우 강력한 노조 활동이, 케냐에서는 부족 및 인종에 대한 고려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요인들은 대부분 중국에서는 볼 수 없다. 실제로 중국 투자자와 아프리카 현지의 이해관계자들, 즉 노동자, 공급업체, 유통업체, 정부, 미디어 사이의 만남에서 새로운 유형의 조직, 파트너십, 권력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다. 낯익은 주제이지만 스토리는 새로울 것이다.

 

 

산업화 덕분에 아프리카는 일본, 한국, 대만, 중국의 발자국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 폭발하는 인구를 고용할 수 있는 공장을 건설하고, 현대 자본주의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사회제도와 기관들을 개조하게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산업화가 폭넓은 계층에 걸쳐 삶의 질을 높이는 진정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이다. 만약 중국이 지난 30여 년 동안 했던 것의 절반만큼만이라도 아프리카가 할 수 있다면, 아프리카에서는 극심한 가난이 사라질 것이다. 이는 약 4억 명의 사람들에게 굶주림과 배부름, 일자리를 찾는 고생과 안정된 일자리, 아동노동과 그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의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오늘날 아프리카에 오는 중국인들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나이지리아에 특별경제구역을 건설하기 위해 일하는 한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정확하게 30년 전의 제 고향과 같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었다면, 이 사람들도 할 수 있습니다.”

 

 

번역: 이희령 / 에디팅: 장윤정

 

아이린 위안 쑨(Irene Yuan Sun)은 맥킨지의 워싱턴사무소에서 engagement manager로 일하고 있다. (Harvard Business Review Press, 발간 예정)의 저자다.

 

[6]Flying geese paradigm(贋行形態論). 일본이 동아시아 경제발전의 선두에 서고 다른 나라들이 기러기 편대 모형으로 뒤따르고 있다는 뜻으로 주로 쓰이는데 이 글의 저자는 중의적으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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