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R in DBR (~2013)

고객경험을 혁신하는 기술적 통찰력
로베르토 베르간티(Roberto Verg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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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1 10월 호에 실린 로베르토 베르간티의 글 ‘Designing Breakthrough Products’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2012 Harvard Business School Publishing Corp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얻는 일은 점차 쉬워지고 있다. 인터넷으로 가능해진 협업과 점점 가속되고 있는 열린 혁신 덕분에 우리는 아이디어와 솔루션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제는 넘쳐나는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혁신 책임자들이 마주한 최대 고민거리다. 신기술을 가장 먼저 이용하는 것 자체보다는 신기술로 열린 미개척 시장의 잠재력을 먼저 파악하는 일이 훨씬 중요해졌다.

후자의 위업을 달성한 유명 기업으로 닌텐도(Nintendo), 애플(Apple), 스와치(Swatch)가 있다. 이들 세 기업은 모두 기술을 활용해서 시장 내 상품의 의미를 파격적으로 변화시켰다. 다시 말해 고객이 상품을 구매하는 이유, 상품을 사용하는 방식 자체를 완전히 바꿔 버린 것이다.닌텐도는 MEMS(mycro-electro-mechanical systems·미세 전자기계 시스템) 기술을 응용한 가속센서(accelerometer)로 가상 세계에 대한 수동적 몰입에서 신체의 능동적 움직임을 통한 오락으로 전자 게임의 개념을 바꿨다. 애플은 아이팟(iPod)과 아이튠즈(iTunes)를 통해 사람들이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고 구매해 자신만의 재생 목록을 만들도록 했고 음반 산업을 위협하던 저작권 침해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했다. 스와치는 저렴한 쿼츠(quartz) 기술을 응용해서 단순히 시간을 보기 위한 도구에서 저렴한 패션 액세서리로 시계를 진화시켰다. 이들 기업은 해당 상품 분야에서 가장 먼저 신기술을 도입한 당사자가 아니었다(아이팟은 MP3플레이어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고 4년 후인 2001년 첫 출시됐다). 그러나 가장 의미 있는 방식으로 기술을 활용해서 수익성 높은 사업 모델을 완성시켰다.

이런 상품을 만들어 낸 전략을 기술적 통찰력(technology epiphanies)이라 부르겠다. 통찰력을 의미하는 ‘epiphany’는 ‘사물의 본질적 성질이나 의미를 인지’하는 것으로 대개 창의성이 뛰어난 외톨이 천재가 순간의 직관에 따라 얻는 영감 정도로 생각돼 왔다. 그러나 이 글에서 기술적 통찰력은 드물게 찾아오는 ‘유레카(eureka)’의 결과가 아니다. 공급자나 기업이 자사 상품에 신기술을 접합시켜 체계적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환자에게 편안한 의료 환경을 제공하는 필립스전자(Philips Electronics)의 ‘앰비언트 익스피리언스(Ambient Experience for Healthcare·AEH)’가 대표적인 예다. 필립스전자는 환자가 전산화단층영상진단(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등의 검사를 받을 때 느끼는 불안감을 완화하기 위해 혁신적인 의료 환경을 구현했다. 이들은 의례적인 혁신 절차를 따라 기술을 적용하는 대신 완전히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창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전혀 연관이 없는 광범위한 분야의 전문가를 소집해 팀을 구성하고 다양한 기술을 통합해서 아이디어를 새로운 상품으로 만드는 법을 논의하며 사용자 및 고객과 함께 시제품을 만들었다. ‘사람 중심의 의료 환경’ AEH를 요구한 건 환자나 병원이 아니었지만 일단 경험한 이들은 필립스가 만들어 놓은 새로운 의료 환경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통찰력을 얻기 위한 필립스의 노력

새롭게 개발된 기술과 만났을 때 대부분 기업은 혁신의 개념을 협소하게 정의한다. 신기술로 구기술을 대신하는 ‘기술 교체’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은 과거 기술보다 고객의 현재 요구를 잘 만족시키는가”를 묻는다. 그러나 기술적 통찰력을 추구하는 기업은 다른 각도에서 질문을 한다. 이들은 “신기술을 이용해 지금의 상품보다 더 의미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현재의 요구를 넘어서 고객이 해당 제품을 사야 하는 새로운 이유를 제공하는가”를 묻는다.

필립스는 1990년대 초반 기술적 통찰력을 통한 변신을 시작했고 2001년부터 관련 전략에 체계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당시 필립스의 경영진은 회사가 내부에서 개발했거나 외부에서 도입한 다양한 신기술의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변화를 시작했다. 이들은 기술개발 그룹 및 사업부를 지원하는 디자인팀에 해당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문했다. 새로운 임무를 안게 된 필립스 디자인은 새롭게 부상하는 기술을 활용해서 소비자 가전과 조명, 의료시장에서 신제품을 개발하는 20여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성과 중 하나가 바로 AEH. AEH 327000만 유로(463000만 달러)에 달하는 필립스의 의료 영상 사업을 강화시켰고 보다 높은 가격을 내세워 수익성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고 디자인 사업을 총괄하는 토마스 반 엘자커(Thomas van Elzakker) 총매니저는 말했다.

1970년대 초반에 CT, 1980년대 초반에 MRI가 도입된 이후 방사선 전문의들은 좀 더 뛰어난 영상을 보여주면서도 검사 시간과 비용을 낮춰줄 장비를 찾고 있었다. 그 결과 의료 영상 산업에서의 혁신은 주로 기술 대체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보다 발전된 형태의 장비가 연이어 등장했다. AEH가 도입되기 10년 전부터는 엑스레이 튜브가 한번 돌 때마다 CT 스캐너가 촬영하는 영상의 수가 16배 증가했고 엑스레이 튜브가 돌아가는 속도 또한 2배 빨라졌다. (이렇게 되면 환자가 움직여도 영상을 보전하는 능력이 개선된다.) 필립스 경영진은 필립스가 뛰어난 장비를 선보이는 경쟁에서 선두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2002년 이후 이런 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여지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AEH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면서 필립스는 시장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찾은 셈이다.

의료 영상 촬영을 할 때 장비 안에 들어간 환자들은 불안함에 몸을 움직인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촬영 영상의 질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병원은 불안을 느끼는 환자, 특히 어린이들에게 진정제를 주사해 안정시켰고, 이는 촬영 과정의 위험을 높이는 한편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요인이 됐다.

AEH LED 디스플레이와 애니메이션 영상, 무선주파수식별(RFID) 센서, 음성 제어 시스템 등 기술을 활용해서 환자의 마음을 편안히 해줄 수 있는 환경을 구현한다. 일례로 어린이 환자가 검사실에 들어오면 ‘수중 세계’ 혹은 ‘자연’ 등 테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 다음 아이는 RFID 센서가 장착된 작은 인형을 받는다. 그러면 아동 환자가 검사실에 들어섰을 때 RFID 센서에서 신호를 보내 선택 테마와 관련된 애니메이션과 조명, 사운드 등이 시작된다. 검사를 받는 동안 어린이 환자가 움직이지 않도록 돕기 위한 장치다. 준비실에 가면 간호사는 주인공이 바다로 나간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 그리고 주인공이 바닷속 깊숙이 묻힌 보물을 찾기 위해 잠수를 하는 동안 숨을 참아야 한다고 어린이 환자에게 가르쳐 준다. 그 다음 검사를 받는 동안 주인공이 잠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환자는 가만히 있어야 하는 시간에 숨을 참고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방식은 단순히 환자 경험을 개선하는 수준을 넘어 많은 혜택을 가져왔다. CT 촬영을 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1520% 감소했다. 3세 미만 아동의 경우 CT 촬영을 위해 진정제를 투여하는 사례가 3040% 줄어들었다. 또한 환자가 노출되는 방사선량도 25%에서 50%가량 감소했다.

 

기술적 통찰력의 힘

기술적 통찰력은 상품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고객 경험의 의미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킨다. 대표적인 두 사례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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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게 성공을 거둔 닌텐도 위(Wii)가 출시되기 전까지만 해도 비디오 게임으로 얻을 수 있었던 경험은 가상 세계로의 수동적 몰입이 전부였다. 닌텐도가 MEMS 가속 센서를 응용해 컨트롤러의 이동 속도와 방향을 감지하는 게임기를 만들면서 비디오 게임은 실제 환경에서 몸을 움직이는 적극적 오락으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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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카시오(Casio)를 포함한 시계 제조업체는 저비용의 쿼츠 기술과 LED 또는 LCD 디스플레이를 결합해 기존 기계식 시계를 대체하는 싸고 정확한 시계를 만드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스와치는 정확하면서도 저렴한 시계를 패션 액세서리로 활용하는 데 기술을 사용했다.

기술보다 사람이다

기술적 통찰력을 발휘하면서 AEH가 시작됐다. 병원이 아닌 장비 제조업체가 환자의 불안함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환자에게 진정제를 투여하며 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요하는 방식 말고 다른 대안이 있다는 생각을 실현시킨 최초의 사례다. 또한 환자의 스트레스 강도가 치료 경험이 발생하는 환경에 크게 좌우되며 환경에는 검사 자체뿐 아니라 검사 전후의 상황 모두 포함된다는 사실을 인정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필립스가 이런 깨달음을 얻은 후 의료 시장에서 치료 환경을 생각하는 ‘앰비언트 기술’의 막강한 잠재력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필립스는 자사가 얻은 통찰력을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첨단 기술이 개발될 때마다 이를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기업이 기술적 통찰력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기업들은 통상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사하거나 이들의 상품 사용 행태를 면밀히 관찰하는 방식으로 고객의 필요를 분석한다. 이런 노력은 기존 제품을 개선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사용자가 해당 기술에 익숙하지 못할 경우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실제로 검사를 받는 환자들이 가장 걱정했던 것은 진정제 주사를 맞을 때의 아픔이었다. 이들은 애니메이션을 보며 마음을 안정시키면 주사가 필요 없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방사선 전문의 또한 병원의 진료 환경 변화가 임상적 성과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필립스 디자인은 기술을 통해 제공할 수 있으며 기존 상품보다 의미가 큰 새로운 비전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비전을 찾기 위한 첫 단추는 바로 적절한 전문가다. 같은 상황에서 상품을 사용하는 동일한 고객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며 해석할 줄 아는 해설가다. 이들은 조직 내부인일 수도 있고 학자나 연구자, 설계자, 혹은 다른 산업이나 보완 기술을 제공하는 협력업체 사람 등 외부인일 수도 있다.



필립스 디자인 CEO를 지내다가 현재 필립스 그룹의 최고디자인책임자가 된 스테파노 마르자노(Stefano Marzano) 1990년대 초반 양방향 디자인이나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 사회학, 문화인류학 등에서 전문성을 보유한 젊은 직원들로 팀을 구성해 육성했다. AEH 개발로 이어진 수년의 연구 기간 동안 이 팀은 사람이 자신의 환경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앰비언트 기술이 어떤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내는지를 연구했다.

일례로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에서는 잠자리에 들고 자며 일어나는 모든 경험을 연구했다. 이 연구는 피험자의 침실 천장에 구름이나 시 등의 영상을 띄워서 휴식과 친밀감, 상상력, 놀이 등을 지원하는 양방향 시스템 실험으로 이어졌다.

또 다른 프로젝트 ‘포고(Pogo)’에서는 시에나대(University of Siena)와 리에주대(University of Liège)에서 교육학과 문학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참여해 미디어 기술과 RFID, 동영상을 이용한 이야기 전달을 통해 아이들을 교육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케네스 고핑클(Kenneth Gorfinkle) AEH 프로젝트에서 중요 외부 자문가로 활동한다. 뉴욕 장로병원 및 아동 병원(New York Presbyterian Hospital and Childrens Hospital)에서 임상 심리학자로 근무하는 고핑클은 치료 과정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고통을 연구하는 전문가다. 필립스 디자인팀이 병원을 방문했을 때 고핑클 박사는 팀원들을 데리고 검사실을 돌았다. 의료 장비나 기기를 설명하는 대신 그는 병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스트레스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검사 4년이 지난 후에도 아이들은 진정제 주사를 가장 무서운 경험으로 기억하더라는 연구 결과 또한 함께 들려줬다.

진정제는 보통 따로 마련된 작은 방에서 투여된다. 고핑클은 이 공간을 최대한 편안하게 꾸미고 검사는 다른 방에서 진행해서 검사에 대한 아이들의 마지막 기억이 진정제 투여와 상관없도록 만드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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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스 디자인의 사친 베헤르(Sachin Behere) 디자인 컨설턴트는 중요 내부 자문가로 활동한다. 코넬대(Cornell University)와 뭄바이에 있는 인도기술연구소(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디자인과 환경 분석을 연구한 건축가 사친 베헤르는 건축 및 시설 설계업체에서 근무하다가 필립스에 입사했다. 입사 후에는 중동 국가의 병원 설립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병실을 어떻게 배치해야 환자와 직원의 안정을 돕고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지에 대해 자문을 제공한다.

자료 ‘올바른 자문가 찾기’를 보면 기업이 고핑클이나 베헤르 같은 전문 자문가를 어떻게 찾아내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우선 전문가를 물색할 올바른 분야를 선택하는 일이 중요하다. AEH 관련 프로젝트에 몸담았던 자문가 중 일부는 의사, 병원 관리자, 의료기기 엔지니어, 마케팅 전문가 등 의료영상장비 프로젝트에서 봤음직한 인물들이다. 반면 건축가, 심리학, 현대 인테리어 디자인, LED 기술, 동영상 프로젝션, 양방향 디자인(소프트웨어 서비스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 기술)과 함께 양방향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등 특이한 분야에서 이력을 쌓은 전문가들도 있었다.

특이하면서도 적절한 전문가를 찾기 위해 사용자의 경험 전체를 포괄하도록 분석 범위를 넓혀야 한다. CT MRI를 찍는 ‘동안’ 환자가 경험하는 일로 제한하는 대신 필립스는 검사를 받기 ‘전’과 ‘후’까지 분석 범위를 넓혔다. 병원에 들어가고, 검사 받을 부서를 찾고, 대기하다가 탈의실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검사실에 들어가 검사를 받고, 다시 탈의실에 들어가 원래 옷으로 갈아입은 후 다음 방문 날짜를 예약하는 모든 과정이 분석 범위에 포함됐다.

다음으로는 상품 개발 과정에서 고려하거나 전문가의 자문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경험을 살펴보고 이런 경험을 좌우하는 요소를 찾는다. 필립스 의료영상촬영장비 부서에는 아동 심리학자, 병원 건축가, 병실 및 가구 등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포함됐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필립스가 문제를 대중에게 공개해 해결책을 찾는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필립스는 아이디어가 아닌 사실을 해석해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했고 수천 개의 해석으로는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한 상황을 분석해 기존과 차별화하면서 확실하게 해석해줄 수 있는 소수의 사람을 신중히 선별했다.

적절한 전문가를 찾기 위해서는 사용자 경험에 관해 연구한 적이 있거나 기존 지배적 가설에 의문을 제기하며 신선한 해석을 내놓을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고핑클이 그 좋은 예다. 고핑클은 심리학 임상 교수로 근무하면서 다년간 실험을 주도했고 그 과정에서 고통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남들과 다른 지식을 축적해왔다. 저서 <자녀의 고통 달래주기(Soothing Your Childs Pain)>에서 고핑클은 부모님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방법을 설명한다. 그가 연구를 통해 얻은 통찰력은 AEH 프로젝트에 많은 도움을 줬다. 애니메이션 화면을 보여주거나 검사받기 전 아이들에게 인형을 주고 그 인형을 검사할 수 있는 소형 CT 모형을 설치하는 활동은 모두 그의 연구에 힘입은 바 크다. 이런 ‘야옹이 CT(kitten CT)’ 같은 기계는 아이들이 의료 장비에 친숙해지도록 해서 검사실에서 진짜 장비를 보는 두려움을 완화시킨다. 또 검사를 하는 동안 가만히 누워 있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 준다. 검사를 하는 동안 인형을 흔들면 영상이 망가진다는 사실을 몸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찾아낸 전문가가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면 그에게 다른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한다. 고핑클은 필립스 측에 의료 시술의 스트레스와 충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단체 아동생명위원회(Child Life Council)를 추천해 줬다. 위원회는 환자와 직원, 환자 가족 간의 긍정적 상호작용을 촉진할 수 있는 병원 환경에 대해 자문을 제공했다.

전문가를 찾을 때 반드시 해당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을 찾을 필요는 없다. 이보다는 젊고 전향적인 연구원들이 더 효과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실제로 지배적인 정설을 만들어 낸 권위 있는 전문가보다는 새롭게 부상하는 전문가들이 기존 통념에 의문을 제기할 가능성이 더 크다. 또한 유명한 전문가라면 경쟁기업에서 이미 영입을 시도했을 가능성도 크다.

 

올바른 전문가 찾기

이미 알려진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사용자가 큰 도움이 되지만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낼 때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기술적 통찰력을 얻으려는 기업은 동일한 상황 속에서 동일한 사용자를 연구하지만 차별화된 시각을 가진 전문가를 해설자로 둬야 한다. 이들은 기업 내부에서 찾을 수도 있고 외부에서 영입될 수도 있다. 다음의 질문은 이들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전체 사용자의 경험을 살펴본다.

자사 상품을 사용하기 전이나 사용하는 중, 그리고 사용한 후에 소비자가 겪는 경험은 무엇인가?

전향적 시각을 가진 연구자를 찾는다.

각 영역에서 해당 경험을 연구한 전문가는 누구인가?

이들 중 경쟁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사람은 누구인가?

새로운 시각을 연구하는 신진 연구원은 누구인가?

선택된 전문가는 다른 해설자를 추천해줄 수 있는가?

자사 네트워크 바깥에서 찾는다.

(자사 사업 영역과 만날 일은 별로 없지만) 사용자의 전체 경험에 관여하는 색다른 영역은 무엇인가?

모든 요소의 통합

사실을 관통해서 보고 새로운 해석을 내려줄 전문가로부터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상품을 경험하는 모습을 전문가와 함께 관찰하는 게 효과적이다. 전문가들은 기업이나 사용자들이 혼자서는 눈치 채지 못하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행동을 지적하고 해석해줄 것이다.

필립스는 ‘미래 시장환경(Future Landscapes)’이라 불리는 워크숍을 열었다. 워크숍에는 전문가들이 참여해 의료 환경 변화에 대해 논하고 기술을 통해 제공 가능한 새로운 경험에 대해 각자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워크숍에서 이들이 내린 결과는 사용자 경험을 새롭게 정의하는 데 사용됐다. 이 과정에서 필립스 디자인팀은 ‘경험 흐름도’를 만들었다. 환자와 가족, 임상 직원들이 검사 전과 후, 검사 진행 중에 겪게 되는 경험을 단계별로 서술한 지도다. 각 단계는 3개로 이뤄진다. 첫 번째는 ‘사람(people)’이다. 자문가의 해석에 따라 각 단계 경험이 어떻게 개선될 수 있는지 설명한다. 두 번째는 ‘상황(context)’이다. 새로운 경험을 위해 필요한 의료 환경의 변화 내용을 살펴본다. 세 번째는 ‘변화 동인(enablers)’이다. 의료 환경의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 앰비언트 기술이나 다른 방안을 어떻게 활용할지 설명한다.

검사 전 단계를 예로 들어 보자. 우선 ‘사람’ 차원에서는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앞으로 진행될 검사를 설명한다는 자문가의 아이디어가 들어간다. 이 아이디어는 애니메이션 상영이나 야옹이 CT를 통한 검사 경험의 변화로 이어진다. (이 내용은 ‘상황’에 들어간다.) ‘변화’ 차원에서는 동영상 상영, 애니메이션, 인형에 내장된 RFID 등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필립스는 전체 AEH 시스템의 시제품을 실제 크기로 제작했다. 그러면 잠재 고객이나 협력사, 기업 조직원들은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지 스스로 느끼게 된다. 실제로 AEH는 실제 크기와 맞는 시제품이 2003년 시카고 북미방사선학회(Radiological Society of north America) 총회에서 공개됐을 때 고객사들은 그 잠재력을 인정했다. 고객사들의 긍정적인 반응은 AEH 프로젝트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던 필립스 의료 사업부 임원들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려놨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최초의 AEH 시설은 2004년 일리노이 시카고 교외 지역 파크리지(Park Ridge)에 위치한 애드버킷 루터 아동종합병원(Advocate Lutheran General Childrens Hospital)에서 문을 열었다. 현재는 전 세계 260여 개의 병원이 AEH 시설을 갖고 있다. AEH는 필립스가 의료영상장비 공급업체로서는 진출하지 못했을 의료 사업 분야를 활짝 열어 줬다. 일례로 2009년에는 필립스 의료영상장비가 포함되지 않은 AEH 시설이 필립스의 도움을 받아 플로리다 아동병원(Florida Hospital for Children) 응급부서에 설치됐다.

첨단 기술에 대한 접근권을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시장에서는 기술을 가장 먼저 확보하거나 현재 존재하는 제품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승자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보다는 해당 기술을 이용해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 ‘경험’을 개선하는 기업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최고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술적 통찰력을 발휘한 새로운 경험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번역 |우정이 woo.jungyi@gmail.com

로베르토 베르간티

로베르토 베르간티(Roberto Verganti)는 밀라노 공과대학(Politecnico di Milano) 혁신관리학 교수이자 <디자이노베이션(Design-Driven Innovation)>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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