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월호

계획된 기회주의
비제이 고빈다라잔(Vijay Govindarajan)

 

미약한 신호를 활용해 혁신을 촉진하기

 

Idea in Brief

 

도전과제

미래는 비선형적 변화와 우연한 사건으로 결정된다. 당신의 조직을 어떻게 미래에 대비시킬 것인가?

 

출발점

기업은 업계에 닥칠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미미한 신호를 감지해야 하고 그런 변화가 선사할 기회도 포착해야 한다.

 

발전 방향

유망한 아이디어를 뽑아내고 키울 수 있는 실험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외 콜센터 사업이 한창 성황을 이루고 있던 2000년대 초, 인도의 매머드급 정보기술 서비스 기업 타타 컨설턴시 서비스TCS는 자사의 콜센터 운영 사업을 철수하겠다는, 언뜻 납득이 되지 않는 결정을 내렸다.

 

대체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당시만 해도 외주 콜센터는 이 회사에서 가파른 성장가도를 타던 사업 영역이긴 했지만 TCS 경영진은 머지않아 이 사업이 골칫덩어리로 전락할 것이라고 믿게 됐기 때문이다. 콜센터의 직원 이탈이 유난히 심했던 탓에 HR 부서는 연간 50만 명에 이르는 신규 인력을 채용하고 교육하느라 밤낮없이 혹사당해야 했다. 이 때문에 회사의 재원이 엄청나게 낭비됐을 뿐만 아니라 수준 높은 역량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본연의 목표에도 차질이 생겼다.

 

이처럼 수요가 절정을 누리던 시기에 콜센터 사업을 과감히 퇴출한 덕에 TCS는 회사의 미래가 엉뚱한 사업에 발목 잡히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었다.

 

TCS의 행보는계획된 기회주의의 결과였다. 미래는 비선형적 변화와 우연한 사건에 의해 만들어지므로 예측하기 어렵다(‘기회주의’)는 인식이 이 개념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리더의 대응이 바로계획에 해당한다. 계획된 기회주의에는 미약한 신호를 예민하게 감지해 내는 능력이 요구된다. 미약한 신호란 인구통계, 기술, 소비자의 취향과 요구, 그리고 경제, 환경, 규제, 정치 세력에 걸쳐 나타날 중요한 변화를 가늠케 하는 트렌드들을 포착할 수 있는 초기 징후를 뜻한다. 미미한 신호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조직은 참신한 시각과 비선형적 사고를 길러 갖가지 가능한 미래를 상상하고 대비할 수 있다.

 

TCS 경영진은 몇 가지 희미한 신호를 예민하게 감지해 냈다. 우선 기술이 클라우드 환경으로 이전되는 경향을 보고는 향후 비즈니스 서비스가 전통적인 기업이 소유한 기술 인프라보다는 온라인상의 도구를 통해 제공될 것임을 예측했다. 그리하여 결국 글로벌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보다 높은 수준의 전략적인 외주 서비스가 요구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부가가치 서비스일수록 직원 1인당 매출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런 서비스에 주력하면 TCS는 적은 인력으로도 서비스 수준을 크게 높일 수 있을 터였다.) 또 이들은 TCS가 앞으로 더욱 우수한 인재들을 유치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HR 부서에서 채용에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한다고 봤다. 마침내 이들은 회사가 추구하는 미래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콜센터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계획된 기회주의는 앞으로 다가올 변화와 그 변화가 가져올 기회를 인식하는 한편 유망한 비선형적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선별하고 확대할 실험을 개발하는 체계적인 과정이다. 이는 세 가지 측면에서 기업에 큰 보탬이 된다. (1) 새로운 아이디어 발굴을 위한 순환 시스템을 마련한다. (2) 이런 아이디어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깊이 있게 연구하고, 실행할 역량을 개발한다. (3) 지속적인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적응적 문화[1]를 조성한다. 결국 수동적이라기보다 적극적으로 변화를 주도하는 조직을 만든다. 분명 계획된 기회주의는 시나리오 기법 같은 기존 도구들은 물론, 조직의 수평화와 자율권한을 보다 많이 지닌 인력 구성 등 문화적 목표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그저 하나의 이벤트나 활동, 도구가 아니다. 적응 유연성을 높이고 성장을 유도할 다양한 프로세스와 행동을 아우르는 하나의 훈련이라고 봐야 한다.

 

미약한 신호를 감지하고 포착하라

 

조직의 적응 유연성은 비즈니스에 우호적이거나 위협적인 상황을 확실히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장난감과 게임을 만드는 기업 하스브로를 예로 들어보자. 1990년대 중반 무렵에는 기술이 기존 게임 공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뚜렷한 신호가 나타났다. PC의 부상과 아타리 비디오 게임 시스템의 등장 등이 여기에 해당됐다. 그러나 하스브로는 미국의 출생률이 떨어지고 인종 구성이 다양해지면서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는 등의 미미한 신호들도 주목했다. 더구나 세계화가 가속화하면서 전세계에 걸쳐 있는 미개척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하스브로의 야망도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스브로는 향후 20년간 회사에 영향을 끼치게 될 변화의 흐름들을 전부 다 예측할 수는 없었지만(‘비선형적 변화에 대처하는 하스브로의 자세참고) 회사에 발전적인 방향을 제시할 미미한 신호는 충분히 감지했다.

 

미약한 신호를 포착하고 그에 대비한 미래를 구상하려는 목적으로 CEO 브라이언 골드너가 개발한 프로세스 덕분에 하스브로는 업계의 잦은 변화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는 세 가지 질문이 포함된다. 현재의 성공은 어떤 요인이나 상태에 기인하는가? 그중 앞으로 변화할지도 모르는(또는 이미 변화하고 있는), 그래서 현재의 성공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요소는 무엇인가? 이런 변화가 가져올 충격을 완화하거나 역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대비할 수 있겠는가?

 

골드너가 개발한 프로세스는 하스브로를 위한 맞춤형처럼 잘 통했지만 그것과 차별화되면서도 마찬가지로 효과적인 접근법을 마련해 낸 조직들이 또 있다. 현재 30만 명이 넘는 TCS의 직원들은 내부 디지털 플랫폼인 울티매틱스를 활용해 불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산업계의 변화에 대해 경영진, 그리고 동료 직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 회사는 엄청난 양의 의견을 꼼꼼하게 살피고 거기서 공통된 주제를 뽑아내는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까지 개발했다.

 

울티매틱스는 직원들의 힘을 빌려 미미한 신호를 감지하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접근방식의 예다. 태스크포스 팀을 꾸려 같은 임무를 맡기는 방법도 있다. GE의 컨설팅을 맡았던 2008~2009년에 우리 팀은 향후 인도에서의 GE 헬스케어 사업에 영향을 줄 희미한 신호들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할 수 있는 하나의 프로세스를 고안해 냈다. 여기서는 현지의 소규모 업체를 비롯한 특수한 라이벌과 경쟁하면서 비고객(이 경우에는 보건서비스를 충분히 이용할 수 없는 농촌 주민들)을 위한 사업을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우리는 회사 간부(전부 다 조직의 최고위 간부는 아니었다) 20명과 병원 관리자, 보건학자, 공무원, 비소비자, 규제기관 관계자 등 외부인 20명을 엄선해 프로젝트 팀을 구성했다. 그 구성원들은 GE 헬스케어의 과거, 특히 GE가 인도의 주요 병원에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납품하던 고성능 의료 영상 장비 사업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 주가 흐른 뒤 다양한 비선형적 변화들을 시사하는 미약한 신호들을 밝혀냈다. 이를테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보건 서비스, 고객의 낮은 경제력, 병원과 유능한 의사의 부족, 건강보험 산업의 미성숙함, 부실한 물리적 인프라, 양호한 디지털 접속 용이성 등이 그것이었다.

 

[1]조직을 둘러싼 도전적인 환경의 변화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문화

 

 

프로젝트 팀과 개방형 접근방식을 결합해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울티매틱스 같은 시스템에서 건진 아이디어를 프로젝트 팀에서 다듬거나 팀 성과에 대해 대중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다. 조직이 어떤 접근법을 선택하든 관계없이 이 과정은 다음 문제들을 검토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누가 미래에 당신의 고객이 될 것인가?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무엇인가?

•어떤 혁신 기술이 새로운 기회의 장을 펼칠 것인가?

•미래에 당신은 누구와 경쟁을 할 것이며, 그렇게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당신의 시장 접근 방식은 미래에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인가?

•앞으로 어떤 규제 개혁이 이뤄질 수 있을까?

 

이 단계에서는 미약한 신호 목록의 범위를 굳이 좁힐 필요가 없다. 되도록 아이디어를 다양하고 포괄적으로 정리해 보도록 하라.

 

미래에 대한 가설을 만들어라

 

미약한 신호는 현재 시장에서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분야에 접근하는 방법이나 전혀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 방법에 관한 아이디어를 내는 선까지만 가치가 있다. 이 아이디어를 진짜 기회로 전환하려면 몇 가지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하는데, 이는 가설로 규정될 수 있다. ‘이 아이디어가 큰 성과를 내려면 어떤 추정이 진실이 되어야 하나?’ 이처럼 단순한 질문을 심도 있게 검토할 다기능팀을 구성해 가설을 개발할 수 있다.

 

일단 기술 기반의 게임 공간 비즈니스에 전면적으로 진출하겠다는 결정을 내리자 하스브로는 심각한 불확실성을 피할 수 없게 됐다. 1995년만 해도 앞으로 인터넷이 강력한 채널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 잠재적 경쟁자와 파트너도 파악해야 했다. PC가 일반 가정에서 지배적인 기술 플랫폼으로 남을지, 이것이 텔레비전이나 전혀 새로운 장치로 대체될지도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인터넷이 성숙기에 이르면서 또 다른 의문점도 나타났다. 기업이 물리적 영역과 가상적 영역 양쪽에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업계의 거래 수단이 아날로그 화폐에서 디지털 화폐로 바뀌면 경제 모델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하스브로는 이 불확실성을 잠재적 기회를 설명해 주는 가설들로 재구성했다. 그런 가설의 예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하스브로 브랜드를 바탕으로 한 출중한 게임 타이틀을 개발할 수 있다. 브랜드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성공적인 타이틀을 개발할 수 있다. 컴퓨터와 여타의 게임 플랫폼은 더욱 정교해졌지만 우리는 개발 비용과 소요 시간을 최소로 유지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가정용 컴퓨터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으므로 인터넷 매장을 활용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우리는 웹 세상에서의 존재감을 창출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 새로운 계층의 고객을 끌어들여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 제품 라인을 확대해 현재 고객을 대상으로 한 판매를 증대시킬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1990년대 말, 마힌드라 그룹의 자동차 제조업체인 마힌드라&마힌드라M&M는 미래의 사업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갖가지 가설을 개발해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M&M은 서구 회사들의 주문을 받아 인도 소비자를 겨냥한 자동차를 조립해 왔다. 그러나 M&M은 자사 고유의 자동차, 특히 SUV 차량을 설계하고 제조하는 신규 비즈니스를 시작할 적기가 도래했다고 믿었다.

 

인도의 중산층은 경제 자유화 이후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M&M에서 포착한 미약한 신호는 이 새로운 고객층이 현지인의 취향을 반영하고 지역 물가 수준에 맞게 가격이 책정된 국산 브랜드의 고성능 자동차를 환영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신규 사업의 수익성을 판단하려니 여러 가설들을 검증하는 작업을 거쳐야만 했다. 고객의 취향, 적절한 시장 규모, 합리적인 가격의 SUV가 신흥 중산층에 호소력을 지닐지 여부, SUV를 비용 효과적으로 디자인하고 제조하며 공급자의 역량을 높여 비용을 줄일 M&M의 역량 등과 관련한 가설들이었다.

 

미미한 신호가 주는 암시는 대개 중립적이어서 기회나 위험, 또는 둘 다로 해석될 수 있다.

 

또 그것들은 진짜 신호일수도 있지만 그저 잡음에 불과할 수도 있다. 당신의 회사가 그 신호들을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로 전환하고, 아이디어를 가설로 압축하고, 가설을 테스트하면서 신호가 주는 암시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그 활용 가치는 점차 증대된다.

 

저비용, 저위험의 실험으로 가설을 검증하라

 

M&M SUV 사업인 스코피오는 분명 위험천만한 도박이었다. 이 회사가 자동차를 설계할 역량을 갖췄는지는 증명된 바 없었고, 스코피오 개발에 소요될 예상 비용은 무려 12000달러에 이르렀다. M&M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에 해당되는 투자 금액이었다.

 

이 회사는 절약형 엔지니어링 전략을 추구하기로 결정했다. 절약 정신이 경험 부족과 결합되자 실험을 통해 촉진할 수 있는 기발한 혁신안이 나왔다. 그중 한 가지는 (미국 기업의 라이선스를 얻어) 기존 지프의 새 버전을 개발하는 실험이었다. 이는 스코피오의 부품, 기술, 디자인 요소, 개발, 마케팅 전략을 적용해 볼 실험대가 될 수 있을 터였다. 스코피오 프로젝트를 지휘한 파완 고엔카(현재는 M&M의 상무이사)에 따르면 볼레로라는 이름의 실험 차량은 스코피오에 비해 소형으로 저렴한 가격대로 생산할 예정이었다. 스코피오보다 족히 2년은 앞서 출시한 덕분에 실험 결과를 충분히 도출해 낼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스코피오를 개선할 시간적 여유도 주어졌다. 예를 들어 M&M은 볼레로를 통해 과거에는 외주를 맡겼던 차체 패널의 설계와 제조 역량을 시험했다. “스코피오는 완전한 혁신이었습니다.” 고엔카의 말이다. “새로운 시장을 겨냥한 새로운 제품군이었고 참신한 개발 전략, 급진적인 비용 목표, 새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약 500만 달러를 투자해 실험용 제품인 볼레로를 생산했죠. 스코피오에 좀 더 큰 승부를 걸기 전에 볼레로에서 많은 것을 배운 셈입니다.”

 

볼레로는 스코피오만큼 정교하고 멋진 설비를 갖추진 못했지만 세련되고 안락하게 설계됐고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흥미를 선사하는 제품이었다. M&M의 기존 방식보다 훨씬 교묘한 메시지와 콘셉트를 강조하는 새 마케팅 방식도 테스트했다. 고엔카의 설명에 따르면 과거에 이 회사의 마케팅은 스타일과 감각보다 기능과 효용을 부각시키는, 브랜드를 내세우지 않는심심한방식을 띠었다. 볼레로는 이런 방식을 뒤엎고 도시 구매자들의 신뢰를 얻는 새로운 마케팅 스타일을 개척했다. 볼레로의 세련된 디자인과 이미지가 소비자에게 받아들여지면서, 스코피오 역시 인도의 도시 중산층에 어필할 수 있으리라는 추정도 옳았다는 점이 증명됐다. 또 개발팀은 인도에 아직 SUV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 굳이 이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우리는 그것을 그냥 자동차라 불렀습니다.” 고엔카의 말이다.

 

 

마케팅 캠페인에서는 마힌드라라는 브랜드를 강조하지 않았다. 마힌드라가 주로 농촌지역 소비자를 대상으로 지프 비슷한 차량을 제조하는 회사로 강하게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엔카는 이렇게 말한다. “광고에서 우리는 그저 스코피오라 칭한 다음 아래쪽에 깨알만 한 글씨로 ‘by 마힌드라라고 적어놓았죠. TV 광고에서는 인도의 소비자들이 잘 받아들이는 전형적인 롤스로이스 광고 스타일을 채택해 뭔가를 열망하는 감각을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또 볼레로 실험은 공급자와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면 스코피오의 절약형 혁신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아이디어를 시험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M&M은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했던 터라 공급자를 지시하고 감독하기보다 그들로부터 배우는 입장에 서야 했다. 그래서 M&M은 성능적인 특성과 예산 목표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한편 공급업체들을 제품 설계에도 동참시켰다. 이는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례적인 방식이었기에 받아들여지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급업체들은 M&M이 자신들의 전문지식을 존중하고 일반적인 자동차 제조업체들에 비해 많은 자유재량을 준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인식했다.

 

볼레로를 통해 절약형 혁신 역량을 키운 덕분에 M&M은 고품질, 저비용 제품인 스코피오에 경쟁업체들에 비해 30~40% 낮은 가격대를 책정할 수 있었다. 지금도 스코피오는 포드, 르노 등이 생산하는 경쟁 제품들보다 판매량에서 앞선다.

 

저비용, 저위험 실험은 조직에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IBM 1993년에 퍼베이시브 컴퓨팅[2]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려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개념은 인터넷 상거래가 컴퓨터를 넘어 휴대전화나, PDA, 자동차, 주방가전, 기타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는 기기에 급속도로 퍼질 것이라는 전제에서 나왔다. 현재 사물인터넷이라 부르는 개념을 미리 예측한 것이다. 그러나 퍼베이시브 컴퓨팅 사업은 관심을 얻는 데 고전했다. 폭넓은 연구 분야를 포괄하는 사업일 뿐 공식적으로 설립된 조직이 아닌 탓도 있었다. 이렇게 느슨하게 연관된 프로젝트 모음은 결국 잘게 쪼개져 저마다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여러 개의 핵심 사업 부문에 흡수되고 말았다. 이런 개별 사업들은 아직 발전 단계에 있는 시장을 겨냥한 스타트업보다는 기존 업체들에 적합한 개발 접근방식을 적용했다.

 

IBM 1990년대에새롭게 각광받는 사업 기회?, 줄여서 EBO라는 사업 조직을 설립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발아기에 있는 신규 사업을 배양하고, 혜성처럼 떠오르는 인터넷이라는 비즈니스 플랫폼에 정면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EBO IBM이 기존 사업을 운영하던 방식과는 현저하게 다른, 명백히 스타트업 친화적인 프레임워크를 따랐다. 특히 신흥 기술 시장을 연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고위 경영진은 EBO 과정에서 습득한 새로운 원칙을 사용해 퍼베이시브 컴퓨팅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나의 단일 사업으로 통합했다. 퍼베이시브 컴퓨팅은 경영 부서의 통제를 받기보다 IBM 부회장 존 톰슨에게 직접 보고하는 전속 팀으로 재구성돼 핵심 사업이 주는 단기적인 압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이 조직은 꾸준히 실험을 계속하고, 유동적인 시장에 접근하고, 전략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발전에 대한 평가는 단기 재무성과가 아니라 얼마나 새로운 배움을 얻었느냐에 기준을 뒀다. 기본적인 추정을 시험하고, 전략을 가다듬고, 초창기 시장이 안정화되면서 장래에 이익을 가져다 줄 요소가 무엇인지 밝혀낼 지표를 마련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됐다. EBO 사업이 진행되던 시기에 이 조직을 이끌었던 로드 애드킨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성과는 대부분 IBM의 고객과 힘을 모아 시장 내에서 실시한 실험에서 비롯됐습니다.” 예를 들어 퍼베이시브 컴퓨팅 팀은 멀티미디어 형태의 데이터를 풍부하게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에서 모바일 단말기 공급자와 협력했다. 이는 고객의 독특한 요구에 대응해 맞춤형 서비스를 개발하는 과정이었다. 이 협업의 결실은 다른 고객들을 위해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도록 결국 제품에 반영됐다. 머지않아 퍼베이시브 컴퓨팅 사업은 IBM에 어마어마한 가치를 안겨주는 비즈니스로 자리매김했다.

 

EBO IBM이 그 연구 역량을 성공적인 신규 사업으로 승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또 자율적인 권한을 지닌 팀들에 가설 검증을 맡기는 방식은 회사에 유익하게 작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저위험 전략이라는 사실도 증명됐다.

 

하스브로가 과거에 추진했던 신규 사업들 중에는 반복학습을 거치지 않고 새로운 시장에 무작정 진입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1970년에 닉슨 행정부는 워킹맘을 위한 보육사업에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하기 위해 하스브로는 롬퍼룸Romper Room 브랜드(미국의 인기 어린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방영되면서 이름을 날리게 됐다) 산하에 어린이집 체인을 발족했다. 저비용 실험을 실시해 짧은 기간 내에 그 결과에서 교훈을 얻는 방법 대신 하스브로는일단 만들어 놓으면 고객이 찾아온다식의 가까운 접근법을 택한 것이다. 하스브로는 롬퍼룸 장난감 브랜드의 성공이 어린이집 사업의 지렛대 역할을 하리라 자신했다. 하지만 하스브로는 서비스 제공업체가 아닌 제조기업이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분야에 진입한 것이다. 하스브로의 창립 멤버인 앨런 하센펠드는 <월스트리스 저널>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는 연락이 오면 회사 전체의 업무가 마비되곤 했습니다.” 대담하고도 경솔한 전략을 5년간 끌던 하스브로는 결국 보육원 사업을 완전히 접었다.

 

‘통제 가능한 말에 투자하라

 

기업이든 CEO든 어떻게 미래에 대처할지는 물론이고 미래에 대한 어떤 사고방식을 지녀야 최선인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수평선에서 까마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지점, 즉 언젠가 때가 왔을 때 대처해야 할 현실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미래는 아득한 저편이 아니다. 오히려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같다. 지속적으로 감지하고 이해해야 하는 일일 할당량이 있다.

 

그러므로 날마다 조금씩 미래를 대비해야만 당신의 기업은 비선형적 기회나 위협이 닥쳤을 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계획된 기회주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실제로 발생하기 전에 통제하는 전략이다. 물론 여기에는 인생에서 우리를 가장 끈질기게 괴롭히는 난제도 포함된다.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자신의 회고록 성격을 지닌 소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나란히 달리는 두 마리 말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는 서커스 곡예사처럼 인생을 질주한다. 한 발은운명이라는 말을, 다른 발은자유 의지라는 말을 딛고선 채. 우리는어느 말이 어느 말인가?’라는 질문을 날마다 던져야 한다. 어차피 내가 통제할 수 없으므로 신경을 꺼도 될 말은 어느 것이며, 전력을 다해 몰아야 할 말은 어느 것인가?”

 

길버트의 주장은 개인의 신념에 대한 것이지만 이 비유는 조직과 리더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어떤 활동을 하든 기업은 끊임없이 이렇게 자문해야 한다. “어느 말이 어느 말인가?” 자유 의지의 말은 조종할 수 있지만 운명의 말은 그럴 수 없다. 계획된 기회주의는 리더들에게 열정과 관심을 전자에 쏟도록 요구한다.

 

그렇다고 통제할 수 없는 말을 완전히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이 가져올 파괴적인 잠재력을 이해하고, 평가하고,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말을 관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통제할 수 있는 말에 집중하는 것이다. 미약한 신호를 찾고 그에 대한 조치를 취하는 하스브로의 과정, M&M의 실험을 통한 학습, IBM EBO 프로그램은 미래를 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계획된 기회주의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수동적으로 말려들기보다는 확고한 통제권을 손에 넣는 방법이다. 변화에 항시 대비하는 기업문화가 요구되지 않는다. 계획된 기회주의는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의 문화가 되기 때문이다.

 

번역: 김효정

 

[2]컴퓨터와 관련된 기술이 생활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음을 뜻하는 용어. 편재형 컴퓨팅이라고도 불린다

 

 

비선형적 변화에 대처하는 하스브로의 자세

 

 닷컴의 붕괴와 대침체를 겪은 2001~2015년 사이에 경쟁사 마텔의 주가는 15달러에서 25달러로 상승하는 데 그친 반면 하스브로의 주가는 11달러에서 72달러로 급등했다. 하스브로는 가정용 오락산업에 극적인 비선형적 변화를 예고한 미약한 신호들을 포착하고는 발 빠르게 대처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 신호들 중 일부를 소개한다.

 

혁신 기술

1990년대 초에는 모노폴리 같은 보드게임이 주류를 이뤘지만 얼마 후에는 새로운 기술이 게임 공간의 판도를 바꿨다.

•디지털 휴대기기가 게임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떠올랐다.

•앱 형태의 게임들이 진입 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디지털 게임이 급속히 퍼져나가 전통적인 수익 모델을 뒤엎으며 세계적인 판매량을 달성했다.

 

새로운 유통 경로

1990년대 초만 해도 장난감과 게임은 주로 오프라인 소매점을 통해 유통되었다. 그 이후에는

•대형할인점이 영세소매점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아마존을 비롯한 전자상거래 업체가 등장했다.

 

고객의 근본적인 변화

1995년에 하스브로의 주요 타깃은 15세 이하였지만 이후 20년간 다음과 같이 변화했다.

•맞벌이 부모들이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고 가처분 소득은 높아졌다. 자녀 한 명당 소비하는 돈이 증가했다.

•부모들이 교육적인 장난감과 게임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스케줄이 극도로 빡빡해져 그들의 시간과 관심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아이들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진행 속도가 빠른 비디오 게임을 선호하게 됐다.

•어린 손자들을 돌보는 조부모들이 높은 가처분 소득을 지닌 매력적인 대상 고객이 됐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중에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비전통적인 새로운 경쟁자

1995년 이후로 새로운 경쟁자들이 등장했다.

•일렉트로닉 아츠,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닌텐도 등의 기술기업이나 가전제품 회사

•스마트폰과 통신, 컴퓨팅, 가전제품이 통합된 제품

•디즈니 같은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기업

•첨단 기술로 무장한 중국, 인도 등지의 게임회사

•자체 브랜드를 제공하는 대기업

 

세계화

1995년만 해도 하스브로는 미국 기업에 지나지 않았지만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부유한 나라의 출생률은 떨어지는 반면 가난한 나라의 출생률은 높아지고 있다.

•놀이에 대한 색다른 관념, 낮은 구매력, 독특한 유통경로를 지닌 신흥시장이 새로운 역량과 참신한 비즈니스 모델을 요구하고 있다.

•신흥 시장은 저비용 생산 기지를 제공하며 저렴하면서 숙련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다.

 

비제이 고빈다라잔

 

비제이 고빈다라잔은 다트머스대 터크경영대학원 교수이며 하버드경영대학원의 마빈 바우어 펠로다. 이 글은 그의 저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출판, 2016)>을 바탕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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