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8월(합본호)

Life's Work: 그레그 루가니스(Greg Louganis) 인터뷰
그레그 루가니스(Greg Louganis)

Life’s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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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그 루가니스
Greg Louganis 1980년대 세계 다이빙대회를 휩쓸었고 올림픽에서도 2회 연속 금메달 2관왕을 달성했다.[1] 그러나 그로부터 몇 해 후 이룬 업적은 금메달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었다. 자신이 동성애자이며 HIV 감염자라는 사실을 대중에 공개하며 인권운동가로 전향한 것이다. 현재 그는 미국 정상급 잠수부들의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어
앨리슨 비어드
Alison Beard

 

HBR: 집중력이 좋기로 유명한데, 경기 전에 어떻게 정신적으로 대비하시나요.

 

루가니스: 생후 18개월 무렵부터 춤과 아크로바틱을 시작했고, 세 살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배웠습니다. 처음으로 무대에서 공연할 때였어요. 작은 턱시도를 입고 중절모를 쓰고, 기술시스템 리허설과 드레스 리허설을 해야 했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공연 프로그램을 지나치게 반복해 연습하다 보면 너무 지쳐서 정작 그날 밤 공연을 잘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셨죠. 연습실에 절 세워 놓고 음악을 튼 다음, “네가 실제로 공연하고 있다고 상상해 봐라고 하셨어요. 네 번이나 머릿속으로 연습한 끝에 머뭇거리지 않고 완전히 매끄럽게 공연을 할 수 있었어요. 그 다음에는 템포를 빠르게 해서 반복했죠. 결국 그날 밤 공연에서 한 동작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이 방법을 쓰게 됐죠. , 체조, 다이빙을 모두 같은 방식으로 준비합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머리를 부딪혔을 때[2], 어떻게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금메달을 딸 수 있었나요?

 

그런 일을 이겨내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처리하고, 이해하고, 분석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다음 다이빙 순서까지 22분밖에 남질 않았어요. 당시 코치였던 론 오브라이언Ron O’Brien출전을 포기해도 돼. 어떤 결정을 하든 난 네 편이야라고 말해줬어요. 하지만 전 반사적으로 대답했죠. “이곳까지 오려고 정말 열심히 연습해 왔어요. 이제 와서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자 론은하키선수는 30바늘씩 꿰매고 난 뒤 바로 빙판에 다시 오르기도 하지. 넌 겨우 5바늘 꿰맸잖아?”라고 말했고 우린 함께 웃었어요. 그리고 론은 이렇게 덧붙였죠. “, 방금 사고는 완전히 우연이야. 경기장으로 돌아가서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하는 거야. 난 너를 믿어.” 그렇게 다시 다이빙보드에 오를 수 있었어요. 문제를 이겨냈다기보다는 잠시 옆으로 치워 버리는 방법을 쓴 것입니다.

 

1988년 당시 당신이 HIV 감염자였다는 사실이 이후 공개됐죠. 이것이 당신의 생각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제 상태를 자각하는 순간이 됐죠. ‘신이시여, 저의 책임은 무엇입니까?’라고 자문했어요. 한국은 제가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이 알려졌다면 입국조차 못 했을 나라였으니까요. 제 책을 통해서도 공개했지만[3], 전 공포에 사로잡혔어요. 하지만 그 순간에도 제가 확실히 알고 있던 한 가지는 다이빙이었고 거기에 집중했죠.

 

선수 생활 후반기에야 다이빙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는데,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나요?

 

코치인 론 덕분이었죠. 그는 제가 목표를 달성해낼 줄 아는 사람이란 걸 파악하고 있었거든요. 경기에서 이기는 상황인데도 도전의식이 크게 들지 않았는데 그가 저를 위해 목표를 만들어 냈습니다. 우리만의 채점 시스템인데 3m 스프링보드, 10m 플랫폼에서 700점을 넘기는 식이었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곁눈질하면서 옆 선수를 이기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 배짱이 필요했죠.

 

왜 코치가 아닌 멘토를 하시나요?

 

론은 코치이면서 멘토였어요. 달력을 보면서 중요한 경기와 관련한 이슈를 챙겼을 뿐 아니라 다이빙과 상관없는 목표까지 계획하곤 했죠. 지금은 그런 경우가 드물어요. 저는 다이빙과 관련된 일로 선수들을 만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경기장 밖의 삶을 얘기하죠. 직업적인 포부는 어떤지, 2년 후, 5년 후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단계적으로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지 물어보죠. 좀 더 전체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거든요.

 

 

드디어 위티스 박스Wheaties Box[4]모델이 됐어요. 전성기 때 이루지 못했던 일인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모델이 됐기 때문에 더 의미가 큽니다. 완전한 인간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뜻이니까요. 56세인 게이 에이즈 환자인데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5]1980년대엔 상상할 수 없던 일 아닌가요?

 

번역: 석혜미

 

[1]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3m 스프링보드와 10m 플랫폼 금메달을 획득했다.

[2]서울 올림픽 다이빙 예선전에서 공중회전을 하던 중 스프링보드에 머리를 부딪혔으나, 다섯 바늘을 꿰매고 다시 경기에 임해 우승했다.

[3]1996년 출간된 자서전 . 5주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지켰다.

[4]‘Champion’s Breakfast’를 슬로건으로 한 시리얼. 유명 운동선수를 박스 모델로 기용한다.

[5]루가니스는 2013년 법무사 자니 체일럿과 동성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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