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월호

“동의는 이제 그만! 가능하지도, 옳지도 않다.”
스콧 베리나토(Scott Berinato)

Q&A: Helen Nissenbaum

“동의는 이제 그만!

가능하지도, 옳지도 않다.”

디지털 프라이버시의 선구자, 철학자 헬렌 니센바움이 데이터 수집 정책의 근본 결함을 파헤친다.

스콧 베리나토

 

 

 

 

헬렌 니센바움Helen Nissenbaum은 개인 데이터 수집, 활용, 보호의 틀을 만드는 데 적극 참여하는 특이한 철학자다.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니센바움은, 현재 뉴욕 시 소재 코넬 공과대학원에서 정보과학 교수를 지내며 기술 및 디지털미디어 분야에서의 정치, 윤리, 가치 사이의 교차점이라는 까다로운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그가 제시한 디지털 프라이버시 이해 체계는 실제 정책에도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니센바움은 여러 단행본을 출간하고 수많은 연구를 발표하는 한편, 트랙미낫TrackMeNot, 애드노지엄AdNauseum, 애드노스틱Adnostic등 여러 웹 브라우저의 프라이버시 플러그인 작성에 참여하기도 했다. 데이터 수집 기업이 소비자의 개인 데이터에서 정보와 가치를 있는 대로 뽑아내고 있지만, 불분명한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가 소비자의 적절한 대응을 가로막고 있는 지금의 시장 환경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데 이런 코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니센바움은 생각한다. 이런 관행은 명확하지 않은 가치를 소비자에게 제안하는 동시에 디지털미디어, 사회제도, 개인 보안의 온전함을 위태롭게 한다.

 

스콧 베리나토 HBR 선임편집자는 니센바움을 만나 동의의 개념, 프라이버시의 올바른 정의, 프라이버시가 도덕적인 문제인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의 명확성과 분량을 고려해 주요 내용을 아래 발췌·편집해 실었다.

 

형편없는 동의서

 

HBR:사용자 동의를 활용한 개인정보 보호 방법에 대해 불만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니센바움:, 정말…… [잠시 침묵이 흐른다] 지금 우리가사용자 동의를 활용하는 방식은 너무 엉망입니다. 예를 들면 유럽의 개인정보보호법이 실시되면서우리가 당신의 쿠키를 사용할 테니 여기를 클릭하세요라는 사실을 알리는 팝업창이 항상 뜨는 걸 볼 수 있죠. 무의미한 짓이에요. 사용자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에 동의하는지 전혀 알 수 없거든요. 사용자가 의미 있는 선택을 하려면쿠키를 이용해 내 정보를 추적해도 괜찮습니다” “추적당하기는 싫지만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이용하고 싶습니다” “이번 거래에 대한 쿠키는 사용해도 되지만 불필요한 데이터는 폐기하고 절대 공유하지 마십시오같은 여러 옵션이 제공돼야 합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이런 옵션을 찾아볼 수 없어요. 이걸 과연 의미 있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용자 동의 활용 관행은 의미 있는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는 잘못된 인상을 심어 줍니다. 오히려 악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어요. 사용자는 다른 방법을 찾자니 전문지식이 없고, 서비스를 당장 이용하고 싶은 조급함이나 이용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그저 믿고 맡기는 수밖에 없죠. 사용자 동의가 근본적인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장치라는 인식이 강한데요. 물론 사용자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동의서는 엄밀히 말해 동의서가 아닙니다.

 

 

동의서에 문제가 있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동의 여부를 결정하는 건 사용자 본인이니까요.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죠. 제가 당신에게 우편번호를 알려 달라고 해서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에 동의한 걸까요?

 

어디에 쓸지는 모르겠지만 제 우편번호를 써도 좋다고 동의한 거죠. 아마 마케팅용이겠죠.

 

마케팅용일 가능성도 물론 있습니다. 그런데 우편번호를 저에게 알려주겠다고 동의했나요, 아니면 타깃 마케팅에 동의했나요? 저는 이미 갖고 있는 당신에 대한 정보와 우편번호를 조합해 당신의 본명, 정확한 주소, 전화번호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거기에도 동의했나요? 아니면 동의하시겠습니까? 어쩌면 당신이 사는 동네를 기반으로 당신의 재무 프로필을 구축할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는 동의하셨나요? 당신이 전해준 말을 근거로 당신 동네에서 정치 타기팅 광고를 할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는 동의하셨나요?

 

 

계산이 점점 복잡해지는데요.

 

특히 의미 있는 자연언어를 기술용어로 변환하는 일이 복잡합니다. 위치 데이터 수집 동의 여부를 묻는 팝업창이 떴다고 해보죠. 위치 데이터가 과연 무슨 말일까요? 사용자 기기를 이용한다면 GPS 좌표 등으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겠죠. 그런데 사용자 위치를 알아내는 다른 방법도 많습니다. IP 주소를 통해 위치를 확인할 수 있죠. 아니면 당신이 파리에서 출발하는 어떤 항공기의 도착시간을 알아보고 있다고 해봅시다. 당신은 친구에게 “3시에 A터미널로 데리러 갈게”라는 문자를 보냅니다. 이 경우에는 지리적 위치 추적 방법이 동원되지 않았죠. 사용자가 이런 위치 데이터를 제공하는 데에도 동의했을까요? 사용자는 위치 제공에 동의한 걸까요, 아니면 GPS 좌표정보 제공에 동의한 걸까요?

 

어쩌면 소비자와 기계가 모두 GPS라는 상당히 정밀한 정보를 위치 데이터로 간주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은 다릅니다. 제가 동료들과 함께 수행한 한 연구 프로젝트에서, 실험 대상자들은 좌표정보보다병원이나 ‘A상점처럼 의미론적 내용semantic content이 담긴 위치 데이터를 공유하기 더 꺼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위치 데이터를 통해 어떤 정보를 추론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면 훨씬 더 격렬한 반응을 보였죠. 따라서 단순히 위치 데이터 수집 동의 여부를 묻는 것과,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제대로 하기 위해 알아야 할 상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소비자는 자신이 무엇에 동의하는지 모르고, 데이터 수집 기업들은 개인정보를 어떻게 활용할지 확실히 말할 수 없고, 정확히 공유하는 데이터가 무엇인지에 대해 양측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군요. 상당히 까다롭고 복잡한 문제처럼 들리는데요.

 

완벽하게 투명한 동의서는 절대 만들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진 기업이라도 수집한 정보가 어디에 쓰일 수 있는지 다 알 수는 없어요. 온라인 추적과 행동 타기팅을 활용해야 한다는 압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업의 경우 특히 더 그렇죠. 데이터가 어디로 가고 어떻게 활용될지는 그들도 모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니까요. 그렇다고 모든 활용 방안에 동의를 받게 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개인정보 활용의 폐해와 편익을 동시에 막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특성과 특정 암치료법 간의 연관성을 밝힌 새로운 과학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해봅시다. 개인정보 제공자들로부터 이에 대한 재동의를 받아야 한다면 연구에 큰 지장을 줄 겁니다.

 

 

반면, 앞으로 등장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활용 방안에 동의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외과의사가 상세한 의학 정보를 동원해 수술에 대해 환자에게 설명한 후여기에 동의하십니까?”라고 묻는 상황에서, 우리는 수술의 진행과 성공을 가로막는 유일한 요인이 환자의 동의인 듯 착각하게 되죠. 대다수 사람들이 이때 동의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상세한 의학 지식과 수술 결과를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의사를 교육하고 양성하는 기관을 믿고, 의료인의 정직함을 신뢰하기 때문이죠. 이런 신뢰가 없는 경우라도, 병원과 의사도 욕을 먹거나 소송을 당할 가능성만은 피하고 싶어하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동의를 하는 겁니다.

 

우리가 동의의 뜻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의 동의를 실현시키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상당히 강경한 입장이신 듯합니다.

 

동의는 이제 그만 생각해야 합니다! 동의는 가능하지도 않고, 옳지도 않아요. 저는 개인정보 제공 동의 메커니즘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동료들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결코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디지털 기술의 시대에진짜동의서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거나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동의서가 결코 개인정보 보호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죠.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사건을 한 번 보세요. 이 분야를 잘 아는 사람들이페이스북이 사용자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공유했다고 항의했죠. 그런데 과연 이게 동의 여부에 대한 문제였을까요? 인간의 행동양식을 근거로 제가 장담하건대, 이들이 사용자의 동의를 받으려고 했다면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페이스북이 비겁하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겁니다. 동의는 애초에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어요. 마음만 먹었다면 동의를 어렵지 않게 받아냈을 거예요.

 

우리는 동의서를 계속 사용하면서도 동의서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동의 이후의접근법에 주목해야 합니다. 동의서가 부적절한 안전장치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때 비로소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적 차원에서 프라이버시와 데이터 수집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맥락과 데이터 흐름

 

바로 제가 묻고 싶은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동의서가 효과적이지 않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저는 프라이버시를 균형 잡힌 가치로 보는 관점을 지지합니다. 물론 프라이버시는 데이터 주체의 이익을 증진하죠. 여기서 프라이버시가 단순히 선호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익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데이터 주체의 이익을 넘어 다른 관련 당사자들에게 끼치는 이익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양측의 이익이 서로 충돌할 수도 있어요. 어떤 경제학자들은 이해관계 기반 분석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인과 개별 이해당사자 너머에까지 미치는 영향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조지메이슨대 교수 프리스 리건Pris Regan의 주장처럼, 우리는 프라이버시의 사회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프라이버시가 교육, 정의, 자유, 자율성 같은 사회적 가치의 증진에 기여하는 역할을 이해할 때, 비로소 프라이버시를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프라이버시는 맥락적 가치 혹은 제도적 가치를 증진합니다. 개인의 동의는 선호 표현의 메커니즘, 더 나아가서는 이해 증진의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프라이버시가 데이터 흐름을 적절히 제한해 사회적 가치와 맥락적(혹은 영역 특수적) 가치를 증진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데이터 흐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셨는데요. 저는 늘 프라이버시가 정보의 주인과 그 정보에 접근하고자 하는 이들 사이의 거래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프라이버시를 다르게 보고 계신 건가요?

 

저는 프라이버시를정보(혹은 데이터)의 적절한 흐름이라고 정의합니다. 강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강의 흐름을 조정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죠.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다양한 이유로 강물의 흐름을 잠시 멈추거나, 댐을 만들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당신이 제 전화번호를 달라고 해서 제가 줬죠. 이런 단순한 과정 속에서도 제 데이터가 당신에게 흘러갔습니다. 이 경우에는 정보의 흐름이 동의에 의해 제약됐죠. 당신이 정중하게 전화번호를 물어봤으니까요. 어쩌면 다른 방법으로 제 번호를 알아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 방법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방법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데이터의 흐름은 지금과 달랐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제 번호를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기를 바랄 겁니다. 남의 전화번호를 공유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그런 부탁을 하지도 않았지만, 기밀유지에 대한 암묵적 이해(규범)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더 나아가서는, 이런 행동이 신뢰를 증진하고 존중을 표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데이터 흐름의 유형에 따라 제약의 유형도 달라집니다. 판사가 정보를 요구하는 행위는 사실상 명령입니다. 소득신고서를 작성하는 행위는 각종 정보를 제공할 법적 의무를 따르는 겁니다. 이런 정보 거래는 당신이 동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반드시 따라야 하는 요구죠. 미 국세청도 마찬가지로 제약을 받습니다. 알다시피 국세청은 지극히 제한적인 조건에서만 정보를 공개할 수 있죠. 셜록 홈스는 어떠한 정보 거래도 없이 추론만으로 데이터를 얻었습니다. 머신러닝이 우리의 개인정보를 추론할 수 있게 되면서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 유형의 데이터 흐름이라고 할 수 있죠.

 

제가 방금 아주 평범한 용어로 맥락적 완전성 이론theory of contextual integrity을 설명했습니다. 맥락적 완전성 이론은 정보 흐름을 프라이버시의 기본 구성 요소로 간주합니다. 특히 어떤 정보 흐름이 프라이버시를 위협하는지 확실히 평가하는 방법으로, 정보 흐름을 설명하는 다섯 가지 매개 변수(발신자, 수신자, 대상, 정보 유형, 전송 원칙)를 상정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 이론은 정보의 흐름이 정당한 정보 제공 규범을 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기존에 확립된 규범을 선호하고요.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계속 변화하고 여러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을 고려해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빨리 규범의 변화에 적응합니다. 기술 기업들이 이런 변화를 강요해서가 아니라, 이익과 가치를 증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적절한 제약은 맥락에 따라 다른가요? 댐을 만들거나, 흐름을 바꾸거나,

자유롭게 흐르도록 내버려두는 식으로요?

 

, 바로 그겁니다.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려면 데이터 주체와 데이터 수집자 사이의 데이터 흐름을 조절하는 적절한 제약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런 제약은 제3, 데이터 수집자, 데이터 주체와 직접 관계되지 않은 다른 이들 사이의 데이터 흐름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국세청은 특정한 선거 출마자의 정보를 상대 출마자에게 알려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교사는 초등학교 학생의 성적을 아이의 의사와 무관하게 부모에게 알릴 의무가 있습니다. 적절한 정보 흐름이 프라이버시 보호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개인정보를 선택적으로 공개할 수 있는 권리가 프라이버시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개인이 그런 권리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요.

 

아뇨! 아닙니다! 저는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정보가 근본적으로 개인의 선호나 이익에만 근거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주장하는 프라이버시의 정의는 단순히 사용자, 소비자, 시민, 가족 구성원의 입장에서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가 아닙니다. 물론 어떤 관계 내에서는 말씀하신 정의를 적용할 수도 있겠죠. 예를 들면 친구나 지인 관계라면, 당사자가 어떤 정보를 공개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구직 면접 자리에서는 구직자가 종교 같은 특정한 개인정보를 공개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지만, 경력 같은 정보는 반드시 밝혀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프라이버시가 정보를 선택적으로 공개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라는 기본 가정이 처음부터 잘못됐다고 봅니다. 본인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그리고 본인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사람들의 개인정보 프로필을 만들어도 문제없다고 여기는 경우들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프라이버시를 제공한 대가로 다른 가치들을 얻는 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프라이버시 권리가 이미 제한적이거나 균형적인 권리이기 때문이죠.

 

 

프라이버시와 공공의 이익

 

프라이버시가 도덕의 문제라고 보십니까? 데이터 수집 관행 가운데 그 가치나 우리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전적으로 옳지 않은 관행도 있지 않나요?

 

맞습니다. 프라이버시는 도덕적 무게를 지닌 가치입니다. 다만, 방금 하신 질문을 저는 두 가지로 나눠보고 싶습니다. 첫째, 데이터 주체의 동의를 받았더라도 옳지 않은 데이터 수집 관행이 있는지에 대해서는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일상에서 마주치고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수많은프라이버시정책만 훑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죠. 규제당국은 이런 관행을 눈감아주고 있습니다. 데이터 주체에게 경미하게 해를 끼치거나 무례를 범하는 관행이 있더라도 기업이 얻는 혜택이 훨씬 크다는 논리에 설득됐기 때문입니다. , 편익이 비용보다 크다는 논리죠. 편익과 비용이 고르게 분배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깊은 이유들도 있습니다. 그중에는 아주 곤란한 이유도 있죠.

 

환경 보호를 비유로 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삼림지를 갖고 있는데, 어떤 제지회사가 나무를 구매해 벌목하고 싶다고 제안한다고 해보죠. 사업 제안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괜찮을 거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 비용, 외부 비용, 그리고 저와 제지회사 말고도 이 거래로 인해 영향을 받는 모든 것을 고려해 본다면 나무를 베는 결정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냉철한 경제학자라도 이런 고려 사항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 철저히 경제성을 분석해서 미래 비용과 외부 비용을 따져 보겠죠.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까다로운 문제 중 하나는, 개인 차원에서 정보 공유에 동의했을 때 소셜네트워크, 공통 유전자, 또는 그저 공유 프로파일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연결된 다른 사람들이 위태로워질 경우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겁니다.

 

 

 

프라이버시 관련 정책이 데이터 주체인 개인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공공의 이익에도 초점을 둬야 하는 경우들도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어떤 경제학자들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두고누구도 이끌어낼 수 없는 가치를 끌어내는 사람들이라고 칭송하는 데 그치겠죠. 하지만 기존 프라이버시 정책들이 체계적 불균형을 야기하고, 심지어 중요한 사회기구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우리 사회가 이해하게 된다면 재조정이 필요해질 겁니다. 지금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개인의 데이터를 소유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단지 그 개인이 플랫폼의 사용자라는 이유만으로요. 하지만 우리는 이 전제를 세심히 살펴봐야 합니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가치와 사회에 미칠 잠재적 위험이 어마어마합니다. 사회 정책을 재조정해서 편익을 더 고르게 분배하고 피해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데이터 수집자만이 아니라 모두가 데이터의 가치를 누릴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공공보건을 증진하기 위해 의료 데이터를 공유하는 일처럼 말이죠.

 

,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례 중 하나를 말씀해 주셨네요. 보험회사는 아주 상세하고 고도로 정형화된 환자 데이터를 제공받습니다. 보험사는 미국의 법률에 따라 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접근권과 소유권을 갖습니다. 엄청난 가치를 지닌 정보죠. 만일 이 정보를 이용해 의료비 인하, 질병 감시 강화, 치료 후 예후 판정 개선 등 공익에 부합하는 사회적 가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다른 당사자들에게도 접근권을 주는 정책을 만들었다고 해봅시다. 이런 정보 접근권이 보험사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테고, 보험사는 접근권을 제공하기 꺼릴 수도 있지만, 사회에는 분명 유익한 일이죠. 현재로서는 데이터 접근권에 대한 재량을 보험사만 갖고 있습니다. 전 세계 데이터가 생성, 캡처, 복제되는 양을 정량화 한데이터스피어datasphere를 지배하는 다른 많은 기업과 조직들도 이와 비슷한 독점적 데이터 접근권을 누리고 있죠. 기회비용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합니다.

 

이런 사회적 편익을 실현하는 일이 간단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정보 접근권을 풀었을 때, 우리가 전에 겪어보지 못한 문제에 맞닥뜨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장 직면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들도 있습니다. 완벽한 개인정보 제공 동의 메커니즘을 만들겠다는 불가능한 시도를 멈춰야 합니다. 이보다 훨씬 생산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데이터 흐름을 적절히 제약하는 방법을 마련한다면 비용과 편익을 공정하게 분배하고 보건, 민주주의, 교육, 무역, 가족, 친구 등 여러 사회적 영역의 대의와 가치를 증진할 수 있습니다.

 

번역 장효선 에디팅 조영주

 

스콧 베리나토(Scott Berinato) HBR 선임편집자다. 저서로 <  Good Charts: The HBR Guide to Making Smarter, More Persuasive Data Visualizations  >(2016)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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