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월호

트위터 공동창업자가 전하는 기회 창출의 기술
비즈 스톤 (Biz Stone)

How I Did It…

트위터 공동창업자가 전하는 기회 창출의 기술

 

The Idea

비즈 스톤은 망해가던 팟캐스트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중 동료와 함께 140자 이내의 메시지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바로 이 아이디어가 소셜미디어 강자인 트위터의 기반이 됐다.

 

 

img_20150528_29_1

 

는 매우 부유한 동네에서 자랐지만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 아버지는 날 잘 챙겨주지 않았고 우린 가난했다. 당시 동네 아이들은 리틀 야구팀이나 미식축구팀에서 놀았지만 나는 끼지 못했다. 여덟 살 때부터 잔디를 깎아서 용돈을 벌어야 했다.

 

고등학교 진학 당시, 운동부에 소속되면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소속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운동에 소질이 있기는 했지만 정식 스포츠를 해본 적은 없었다. 농구며 야구, 축구 등을 시도해 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남자 라크로스부가 없었는데, 라크로스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와 친구들 사이에 별다른 실력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팀을 맡아줄 코치를 모셔오고 팀원을 충분히 모아오면 라크로스부 신설을 허락해달라고 학교 행정부서를 설득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해냈다. 결국 나는 라크로스를 매우 잘하게 됐고 팀 주장까지 맡을 수 있었다.

 

내 생각은 다르다.

기회를 원하는 사람은 기회가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의 설계자가

돼야 한다. 기회란 우리가 직접

만드는 것이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이 경험에서 얻은 매우 소중한 교훈이 하나 있는데, 이는 비즈니스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기회를 사전적 의미대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기회를 무언가를 가능하게 만드는 일련의 상황으로 보고 유기적으로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 기회를포착하거나 기회가문을 두드릴 때까지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기회를 원하는 사람은 기회가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의 설계자가 돼야 한다. 기회란 우리가 직접 만드는 것이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지난 40년간의 내 인생을 돌아보면 반복되는 패턴이 하나 있다.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기회를 끊임없이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사회 초년생일 때도, 친구들과 트위터를 창립할 때도 그랬다. 이런 경향은 최근 내가 시작한 벤처사업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기업가정신은 스스로 기회를 창출하는 것이다. 특히 스타트업을 한다면 더욱 그렇다. 스스로를 CEO로 임명하고, 계획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img_20150528_29_QR_1

위의 파란색 글씨의 영어원문의 표현이 궁금하세요? QR코드를 스캔하세요!
> 스캔이 어려우신 분께서는 이 곳을 클릭해주세요

 

기회를 만드는 것과 관련해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내가 처음 정규직으로 채용됐을 때다. 당시 나는 매사추세츠대 보스턴 캠퍼스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 생활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중 리틀브라운이라는 출판사에서 사무실 이전을 위한 박스 나르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면서 거기서 일하는 책 커버 디자이너들과 가까워졌다. 당시 이들은 미술용 칼과 종이를 이용해 작업하다가 맥Mac을 사용하기 시작한 직후였다. 어린 시절 맥을 가진 친구를 둔 덕분에 나는 포토숍과 쿼크Quark를 수년간 사용했었다.

 

TIMELINE

BIZ STONE @ TWITTER

img_20150528_29_2

 

사무실에 혼자 있게 된 어느 날, 나는 어떤 책 커버를 디자인하라는 서류를 발견하고, 잽싸게 컴퓨터로 커버를 디자인해서 결재서류 더미에 끼워뒀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며칠 후, 아트디렉터는 그 커버를 디자인한 사람을 수소문했다. 그 디자인을 에디터들과 영업팀이 최고로 뽑았다고 했다. 그는 그게박스 가이의 솜씨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내가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다룰 줄 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엔 정규직 일자리를 제안했다. 사람들이 대학을 가는 이유가 바로 이런 직업을 갖기 위해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대학을 그만두고 이 제안을 일종의 견습직으로 받아들였다. 나를 뽑은 아트디렉터는 나의 멘토이자 가까운 친구가 됐다. 그로부터 디자인과 창의성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문화는 만들어가되 변화는

부드럽게

 

결국 나는 리틀브라운 출판사를 떠나 개인 디자인 숍을 열었지만 프리랜서로서 할 수 있는 책 표지 작업이 많지 않았다. 1990년대 말, 웹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몇몇 사람들이 나에게 웹사이트 디자인을 의뢰했다. 나는 웹디자인을 배웠고 그 후 몇 년 동안 웹 관련 지식을 더 많이 터득해 나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하나를 공동창업하기 위해 뉴욕에 가기도 했지만 그 분야 문화가 발전하는 방향에 회의를 느끼고 다시 보스턴으로 돌아왔다.

 

 

[1]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 개최, 미디어산업 콘퍼런스 및 엔터테인먼트 페스티벌 - 역주

 

 

2003년 구글은 초기 블로그 사이트인 블로거Blogger를 매입한다고 발표했다. 블로거의 창업자인 에반 윌리암스Evan Williams가 올린 블로그를 읽다가 그에게 같이 일하고 싶다는 e메일을 보냈다. 구글이 나를 고용하도록 에반이 다리를 놓아줬다. 나는 이미 합격했다고 생각하고 구글이 있는 캘리포니아로 갔지만 하루 종일 면접이 계속됐다. 컴퓨터공학 석박사들을 주로 고용하는 구글이 왜 대학 졸업장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을 고용해야 하는지 나를 인터뷰한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에반이 그들을 설득했다.

 

나는 구글에서 에반과 함께 일하는 것이 좋았다. 구글의 주식 상장 후 내 스톡옵션은 나날이 가치가 불어났다. 계속 구글에 남았다면 백만장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생활보조금에 의지해 자라온 소년에게는 굉장한 일이었다. 하지만 에반은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구글을 떠났고,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캘리포니아에 온 이유가 구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에반과 일하기 위해서였는지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에반을 선택했다.

 

img_20150528_29_3

 

에반은 오데오Odeo를 설립했다. 우리는 팟캐스팅[2]의 초기 형태를 구축하려고 애썼다. 결과는 완전한 실패도, 성공도 아니었다. 아이팟이 유명해지면서 애플이 공격적으로 팟캐스팅 시장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2006년 초 우리 비즈니스 모델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이 자명해졌다. 그래서 에반은 사람들에게 둘씩 짝을 지어 2주 동안 신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고민하도록 했다.

 

나와 가장 친했던 회사동료는 잭 도시Jack Dorsey였다. 파트너를 찾는 과정은 마치 체육 시간에 짝을 선택하는 것과 같았고 난 당연히 잭을 지목했다. 잭은 자신이 사용하던 AOL 온라인 메신저 사용자들이 메신저에서 잠깐 퇴장할 때점심식사 중과 같은 상태 표시 기능을 이용하는 점에 착안해 이런 짧은 상태 업데이트를 이용해서 뭔가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현 상태를 문자메시지로 타인에게 알릴 수 있는 휴대폰 서비스에 집중해 시제품을 만들고 2주 후 이를 다른 팀원들에게 선보였다. 싸늘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에반은 계속 진행해 보자고 제안했고 점점 나아졌다. 쪽지를 통해 동료들로부터 이름을 추천받았는데 그중 내가 가장 지지했던 이름은 트위터Twitter였다. 로고인 새는 내가 직접 그렸고, 팔로follow와 같은 몇 가지 주요 용어도 내가 생각해냈다. (원래 계획은들어봐Listen였다.) 잭과 나는 공동으로 트위터 기술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항상 발명가를 꿈꿔왔던 나는 이 특허가 매우 자랑스럽다.

 

나는 다른 직원들처럼 코딩이나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디자이너로서 기술에 휴머니티를 접목시켰다. 또한 제품에 대한 개선점을 제안하고 우리를 외부에 어떻게 알릴지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처음에는 사용자 규모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이는 숫자를 중시하는 엔지니어들에게 특히 중요한 사안이었다. 나는 누군가 우리 회사와 관련한 숫자를 물어본다면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해야 하며, 우리의 브랜드가 실제보다 더 대단하게 여겨지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구글에 다니던 친구가앞으로 5년 뒤에 트위터가 어떤 모습이기를 기대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우리 모두가 그 질문을 되새길 수 있도록 애썼다.

 

나는 또한 회사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일조했다. 좋든 싫든 회사의 문화는 조성되기 마련인데, 만약 여기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회사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문화를 만들 수 있다. 나는 이런 기업 문화를 만들기 위해 매일 회사 홈페이지에 블로그를 하나씩 올렸다. 이를 통해 우리의 휴머니티와 취약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는 많은 기업과 경영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초기에 회사 홈페이지가 자주 다운되곤 했는데, 나는 다음과 같이 이런 일들에 대해 숨김없이 알리려 했다. “홈페이지가 다운됐다. 이유는 이것이다. 다시는 같은 이유로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

 

img_20150528_29_QR_2

위의 파란색 글씨의 영어 원문의 표현이 궁금하세요? QR코드를 스캔하세요!
> 스캔이 어려우신 분께서는 이 곳을 클릭해주세요

 

트위터의 공공정책을 수립하는 것도 내 역할 중 하나였다. 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어 글의 문구가 단지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삭제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중대한 법률적인 사유가 있을 때만 사용자의 콘텐츠를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제한을 뒀다. 또한 트위터는 정치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중립성은 결국 아랍의 봄Arab Spring[3]이나 다른 정치적 활동 참가자들이 트위터를 소통의 장으로 사용했을 때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나중에 공개된 미 국가안전보장국NSA•National Security Agency의 국내 정찰 활동에 관한 문건에는 트위터가 정부의 사용자 추적을 돕지 않는 유일한 IT 회사였다고 기록돼 있다. 나는 이 점이 자랑스러웠다.

 

 

[2]인터넷망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 역주

[3]2010 12월 이래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일련의 민주화 시위 - 역주

 

 

img_20150528_29_4

 

지금까지 단 한번도 트위터의 CEO가 되기를 바란 적이 없고, 그런 역할을 맡은 적도 없다. 항상 나는 주연을 받쳐주는 조연으로 생각했다. 권력을 탐하지 않았으며, CEO의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 친구들을 존경하고, 뒤에서 그들의 지원자 역할을 맡았다. 사실 이 점은 회사 경영진이 바뀔 때 큰 빛을 발휘했다. 경영진 교체가 부드럽게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잭 도시가 트위터의 첫 CEO였지만 이후 이사회는 경험이 더 많은 새로운 사람을 원했고, 에반이 그 뒤를 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그 즉시 잭을 퇴출시키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자연스런 CEO 교체가 일어나도록 잭을 회사에 남겨두는 쪽을 지지했다.

 

그 후에 에반과 나는 최고운영책임자COO로 딕 코스톨로Dick Costolo를 채용했다. 딕은 제품에 관한 한 뛰어난 실력자이면서 똑똑하고 유머 있는 사람이라 회사 사람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사회가 에반을 내보내고 다음 CEO로 딕을 임명하려 했을 때, 나는 에반에게 새로운 역할이 주어지도록 이사회를 설득했고 이는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매번 CEO가 바뀔 때마다 임직원들이 새로운 리더에게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 조직원이 아닌 조직에 최선이 될 수 있는 방법들을 구상하도록 북돋았다.

 

내 업무 시간 중 50%를 소통을 위해

쓰고 있지만, 그래도 항상 우리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이사회가 CEO를 자주 교체하는 경향은 정말 유감이다. 현실적으로 이사회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하다. 이사회는 회사 제품을 개선시키지도 않고 핵심 지표를 성장시키지도 않는다. 그래서 상황이 안 좋을 때는 회사의 리더들을 교체한다. 현재는 내가 이사회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런 충동을 뿌리치려 한다. 나는 평상시에 “CEO를 퇴출시키는 대신 그 사람의 약점을 파악해서 좀 더 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자라고 말하곤 한다. 정말로 CEO의 교체가 불가피할 때라도 좀 더 예의를 갖춰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처리할 수 있다.

 

img_20150528_29_QR_3

위의 파란색 글씨의 영어 원문의 표현이 궁금하세요? QR코드를 스캔하세요!
> 스캔이 어려우신 분께서는 이 곳을 클릭해주세요

 

세상의 지식을 이용하라

내가 최근에 창업한 젤리인더스트리의 사업 아이디어는 우연하게 시작됐다. 나는 걸으면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서 정기적으로 똑똑하고 유쾌한 사람들과 긴 산책을 겸한 미팅을 한다. 2012년 어느 날 나는 트위터에서 함께 일했던 벤 핀켈Ben Finkel과 걷고 있었다. 우리는 검색 엔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 만약 새로운 엔진을 만들 필요가 생긴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구글 검색사업부의 한 임원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현재 인터넷에는 방대한 양의 정보가 있지만, 여전히 세상의 많은 지식은 사람들 마음속에 갇혀 있습니다. , 당신은 그런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검색 엔진을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다양한 소셜네트워크를 하나로 합치고 앱을 통해 질문하고 대답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해파리의 분산 신경망에 착안해 애플리케이션 이름을 젤리로 정했다. 젤리는 사람들이 서로 돕기 원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질문에 기꺼이 응답해 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다. 반응은 좋았지만 4년을 공들인 것에 비해 큰 성공은 아니었다. 나는 영향력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2014년에 새로운 애플리케이션 슈퍼Super를 만들었다. 슈퍼는 Super-latives(최상급)의 줄임 말이다. 슈퍼는 젤리의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 애쓴 노력의 결과다. 슈퍼 사용자들은가장 좋은…” “가장 나쁜…” “내가 사랑하는…” 등과 같은 공감을 일으키는 문구로 메시지 입력을 시작해서 문장을 완성하게 된다. 이것은 그동안 사용자들이 다른 플랫폼에서는 일상적으로 공유하지 않았던 생각들을 끄집어내게 한다. 슈퍼는매시업리믹스문화를 장려하고, 사람들은 감성적이며 자신을 잘 표현하는 내용을 포스팅하게 된다.

 

나는 젤리인더스트리에서 처음으로 CEO를 맡았다. 과거에 다른 CEO들의 성공과 실패를 보며 소통의 부족이 결국 스타트업을 실패로 몰고 가는 원인임을 알게 됐다. 우리 회사 직원은 7명이며 모두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기 때문에 서로가 생각하는 바가 같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내 업무 시간 중 50%를 소통을 위해 쓰고 있지만, 그래도 항상 우리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이사회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만약 이사들이 당신으로부터 무언가를 듣지 못한다면 그들은 당신이 잘못하고 있다고 추측한다. 당신이 이사회에우리 실정이 좋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적어도 그들은 상황이 나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신이 맡은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여긴다. 나는 매주 이사회 구성원들에게 e메일을 쓴다. 사용자들이 보내는 모든 e메일에 답장을 한다.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왜냐하면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CEO가 해야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임을 배웠기 때문이다.

 

비즈 스톤Biz Stone

  • 아티클 다운로드
    (PDF)
    5,000원

    담기바로구매

  • 2015년 6월 (품절)
    17,000원
    15,300원

    구매하기

  • 디지털서비스
    1년 150,000원

    디지털서비스란

    신청하기

운영관리 다른 아티클

무료 열람 가능 아티클 수 0/1 회원가입 | 서비스상품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