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월호

사과는‘사과문’과 다르다 위기에 대응하는 자세부터 바꿔라
김호

사과는‘사과문’과 다르다

 

위기에 대응하는 자세부터 바꿔라

 

사과apology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인간이 사용해 온 가장 오래된 갈등 조정언어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직접 하는 개인 간의 사과interpersonal apology와 비교적 최근에 주목 받고 있는 대중을 향한 공개 사과public apology.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차원의 사과 혹은 대통령의 공개 사과 등이 정치 분야에서 일부 논의됐지만, 기업 경영분야에서 공개 사과 논의가 일어나기 시작한 최근의 중요한 배경에는 소셜미디어의 등장이 자리하고 있다. 기업의 실수나 잘못을 숨길 수 없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2014년 말땅콩회항사건도 소셜미디어의 일종인블라인드앱에서 시작됐다. 공개 사과는 보통 사과의 주체가 기업이나 책임 당사자자라는 점에서, 또 대상이 피해자라기보다는 대중이라는 점에서 개인 간의 사과와 다르다. 이번에 HBR에서 슈바이처, 브룩스, 갤린스키 교수는 <효과적인 사과를 위한 단계별 전략>에서 기업의 공개사과에 대한 경영학적 논의를 펼쳤다. 여기에 덧붙여 한국의 경영자들이 효과적인 사과를 위해 고려해야 할 점을 적어본다. 첫째,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사과할 수 있을까?” 이전에 우리가 던져야 하는 중요한 질문은어떻게 하면 사과할 상황을 만들지 않을 수 있을까?”이다. 믿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이 사과해야만 하는 상황까지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는 기업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마텔의 장난감이 아이들과의 대화를 녹음해 클라우드 서버로 전송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사생활 침해 논란, 여론의 역풍을 불러올 페이스북의 감정조작 실험에 관해 경영자들이 예상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이와 관련, 한국 기업처럼 수직적 의사결정 문화가 강한 환경에서는 한 단계 더 들어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위기를 사전에 예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이전에어떻게 하면 의사결정 과정에서 반대 의견은 물론 다양한 입장에서 사안을 검토해 잠재적인 위험을 줄여나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업에서 일어나는 많은 부정적 사건이나 문제들은 조직 내 누군가가 사전에 감지하거나 의문을 품는 경우가 꽤 많다. 만약 이들의 의견이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된다면 굳이 오너나 대표가 망신 당하면서 공개적으로 사과할 일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가 않다. 오너가 어떤 일을 추진하고자 할 때, 문제점을 포착한 소수의 개인들은 이를 공개적으로 말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임원이나 팀장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했을 때 돌아올 개인적 득과 실을 계산하게 된다. 수직적인 문화에서 오너 혹은 다수의 결정에 반하는 소수 의견은 묵살되거나 공격받기 십상이다.

 

간혹 소수 의견이 받아들여져서 추진하려던 일을 포기했다 치자. 이 경우 만약 일을 추진했을 때 실제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소수 의견을 말한 사람은 조직 내에서 별다른 혜택을 받지 못한다. 최근 아흔이 넘은 창업자와 두 형제 사이의 진흙탕 싸움으로 문제가 된 한 기업의 사례를 보자. 이 기업의 지배 구조가 언젠가는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 임원이 없었을까? 조직을 위하는 마음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했다 하더라도 이 직원은 또 다른충성그룹에 의해 조직을 떠나게 됐을 확률이 크다.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오너가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형제 간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배구조를 건전하게 개선했다 치자. 그렇게 했다면 오늘의 이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너 입장에서는 문제를 개선하지 않았을 때 이렇게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상황이 오리라고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과거처럼 지배구조를 개선하지 않고 그대로 갔어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어떤 경우라도 조직을 위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별다른 인정을 받기 쉽지 않다. 문제점을 인식하더라도 소수 의견일 경우에는 조용히 있는 것이 생존 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 차라리 문제가 터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위기 관리에 뛰어드는 것이 조직 내에서 인정 받는 길이다.

 

어떤 경우라도 조직을 위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별다른 인정을 받기 쉽지 않다.…

 

차라리 문제가 터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위기 관리에 뛰어드는 것이 조직 내에서

인정 받는 길이다.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어떻게 하면 오너나 최고 경영자 입장에서 사과할 상황을 줄일 수 있을까? 한국처럼 수직적 문화 체계에서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은 레드팀Red Team의 운영이다. 이 제도는 HBR 2014 12월에 소개된 헤이스티와 선스타인의 <바보 같은 집단을 현명하게 만드는 법>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다. 최근 일부 언론에 따르면 신한은행의 조용병 행장은 임원회의에 레드팀 제도를 도입했다. 임원회의에 참석하는 사람 중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돌아가면서레드팀역할을 하게 되는데, 안건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논리를 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레드팀은무엇이 잘못될 수 있는가What can go wrong?”라는 질문을 던지며 문제점을 찾아가는 역할을 한다. 나 역시 레드팀을 국내 대기업에 제안해 운영해본 경험이 있다. 임원이 돌아가면서 레드팀을 맡는 것보다는 회의 안건에 관련된 전문가 혹은 언론사나 경쟁사 등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 그리고 임원뿐 아니라 젊은 직원들을 섞어서 운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CEO와 거리가 먼 젊은 직원들이 오히려 소신 있는 발언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고려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질병관리센터CDC에서 10여 년간 운영해오고 있는 B팀이다. 이는 레드팀과는 다르다. 최근 메르스 사태에서 보듯이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과거의 지식 체계나 경험만으로 파악하기 힘든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사스SARS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 질병관리센터에서는 감염병과 같은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조직 내외부의 전문가로 구성된 B팀을 운영한다. 위기상황에서 직접적으로 위기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시야가 좁아지거나 뜻밖의 변수를 생각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B팀은 위기 관리팀으로부터 매일 시시각각 모든 정보를 공유 받으면서, 위기관리팀과는 별도로 새로운 시각에서 해법이나 의견을 제시한다. 반대의 입장에 서는 레드팀과는 달리 B팀은 최고 의사결정팀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내는 창의적 역할을 하게 된다. 레드팀이나 B팀의 운영은 공개 사과까지 해야 하는 위기 상황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보다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하도록 만들어준다.

 

둘째, <효과적인 사과를 위한 단계별 전략>에서 한국의 경영자들이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부정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법적인 렌즈legal lens’를 통해서만 바라보는 문제다. 이 부분도 조직 내부의 정치적 역학 관계와 관련이 있다. 보통 위기상황에서 법무팀의 의견은 오너에게 타 부서보다 훨씬 우월한 힘을 행사한다. 하지만 공개 사과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사과문을 어떻게 작성하고, 누가 발표할 것인지에 대해 의사결정을 할 때 법률자문을 어디까지 수용해야 할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공개 사과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들은 부정적 사건에 휘말린 자신들의 평판을 관리하기 위해 공개 사과를 한다. 공개 사과란 결국 대중을 향한 평판 사과reputational apology. 공개 사과는 법정에서 판사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여론을 향해 하는 것이다. 평판과 관련한 중요한 결정에 법률자문은 어느 정도 해야 할까? 최소한이어야 한다. 법적으로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만 최소한의 의견을 제시하고, 전반적인 문구나 전달 방법은 여론 전문가의 의견을 참조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다룰 때 법률 자문과 여론전문가의 생각은 반대에 가깝다. 법정에서잘못의 인정은 피고에게 불리할 수 있으며, 상대방(법정)이 밝힐 때까지 굳이 스스로 잘못을 밝힐 필요가 없다. 소위무죄추정의 원칙때문이다. 하지만 여론 관리의 측면에서는 상대방(언론이나 검찰 등)이 기업의 잘못을 공격하기 전에 혹은 공격한 직후에 제대로 공개 사과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저자들이 효과적인 사과는 주장 증명이라기보다 대중의 감정이나 긴장완화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 대목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법정에서건 공개적인 자리이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결국 불리해지는 것 아닌가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적절한 사과로 여론이 악화되면 법정에서도 기업에 유리한 판결을 받는 데 상당한 부담이 된다. 땅콩회항 사태는 이런 역학 관계를 잘 보여준다.

 

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 발생 가능성과 관련,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된반올림사태를 대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담당팀을 법무팀에서 커뮤니케이션팀으로 바꾼 바가 있다. 이는 시각과 태도에서 대단한 변화인데 반올림과의 소송이나 법적 논리의 다툼이 아닌 긴장완화와 여론과의 대화로 전환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조정위의 중재안에 대해 최종 합의가 되지는 않았지만, 커뮤니케이션팀이 담당 채널이 된 이후로 대화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원문에서 저자들은 미국 유통업체 타깃의 사례를 잠시 언급했다. 해킹 사건으로 타깃이 엄청난 위기에 휩싸였을 때다. 당시 CEO였던 스타인하펠은 첫 입장을 담은 보도자료 초안이마치 변호사가 쓴 것처럼 타깃의 입장만을 변호했다고 불만을 표시해 다시 수정하게 했는데, 이는 그가 법정과 여론의 차이와 균형을 알고 있어 가능했던 것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영진이 많은데 이는 순진한 발상이다. 기업이 실수나 잘못을 저질러 위기가 발생하고, 공개 사과를 고려해야 하는 시점은 법이 아닌 공중의 기대치public expectation와 관련한 게임이 된다(원문에서 저자들은 이를심리적 계약으로 표현한다). 법적 보호legal protection는 전체적인 보호total protection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소셜 미디어가 기업의 실수나 잘못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위협적 요소가 된 상황에서 기업들은 위기관리를 위해 소셜 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할 때가 됐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사과는 어떤 효과가 있을까? 카이스트의 정재승, 차미영 교수, 박자람 연구원과 함께 필자는 2009년 미국에서 벌어진 도미노 피자의 위기 사례, 도미노 CEO의 유튜브 동영상 사과와 관련, 트위터 상의 실제 대화 2773개를 분석해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바 있다.[1] 2009 4 13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도미노 피자 지점에서 일하던 남녀 직원 두 명이 부엌에서 고객에게 배달될 피자라고 소개하면서 피자의 치즈를 코 속에 넣었다가 뺀다든지, 피자 위에 재채기를 한다든지 하여 매우 역겨운 동영상을 찍은 후 이를 유튜브에 올렸다가 순식간에 5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이 동영상을 보게 되고, 트위터 등을 통해 분노를 표출했던 사건이었다. 패트릭 도일 사장은 동영상으로 공개 사과를 했고, 도미노 피자는 트위터에 공식계정을 열어 소비자들과 소통을 시도했다. 컴퓨터를 활용해 감성분석을 해본 결과, 사고 직후 대화의 양과 부정적 감성이 급격히 증가했으며, 공개 사과 직후에는 부정적 감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질적 분석을 해본 결과 80%였던 부정적 태도는 52%로 떨어진 반면 긍정적 태도는 0.3%에서 6.3%로 증가했다. 질적 분석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사과 이후에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단순 정보 공유 등의 중립적 태도가 20.1%에서 41.7%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는 공개 사과가 감정적이었던 트위터 상의 대화를 보다 중립적으로 완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사과는 부정적 여론을 줄여줄 수 있지만 긍정적 태도를 급격히 늘리는 데는 제한적임을 보여준다.

 

2010년 한국의 이마트에서 수입쇠고기에 한우 라벨이 붙어 트위터 상에서 문제가 되고, 이마트 최병렬 대표와 정용진 부회장이 트위터로 사과했던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우리 연구팀은 감성분석을 실시했는데 이때도 유사한 결과를 확인했다. 이 사례에서 특이한 것은 당시 트위터 상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정 부회장의 팔로어와 팔로어가 아닌 사람들의 감성을 비교 분석해본 결과 팔로어 사이에서 사과 직후, 보다 급격히 부정적 감성이 감소한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도미노 연구에서도 도미노 피자의 공식 트위터 계정과 대화를 직접 나눈 트위터 사용자들의 감성을 분석한 결과 이들의 부정적 감성은 10.3%에 그쳐, 사고 직후 전반적인 부정적 감성(79.6%)이나 공개 사과 직후의 부정적 감성(52%)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이마트와 도미노 피자 사례는 소셜 미디어 상에서 기업의 위기에 대한 부정적 뉴스가 확산될 때, 소셜 미디어를 통한 사과를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 이외에도 평소 소셜 미디어 상에서 기업이나 리더가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과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으면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유튜브 등의 동영상을 통한 공개 사과가 많이 활용되지 않고 있다. 이런 공개 사과는 언론사 카메라 앞에서의 사과에 비해, 말실수나 잘못을 사전 편집을 통해 예방할 수 있고 사과 뉴스의 배포 시점을 기업이 주도적으로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국내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1]Kim H, Park J, Cha M, Jeong J (2015) The Effect of Bad News and CEO Apology of Corporate on User Responses in Social Media. PLoS ONE 10(5): e0126358. doi:10.1371/journal.pone.0126358

 

땅콩회항 사건에서 해당기업은 오너 일가의 아버지와 딸, 그리고 기업 명의의 사과를 여러 차례 했다. 심지어 조현아 부사장은 피해자인 사무장의 집에까지 가서 사과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이 모든 사과가 효과를 발휘할 수 없었다.

 

넷째,원문에서 사과의 공식에 대해 다루었는데, 여기에 한 가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추가하고자 한다. 공개 사과가 효과를 얻으려면 사과문 자체보다 사과 이전의 맥락pre-apology context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지난 수년간 사과에 대한 국내외 사례를 연구하면서 얻은 중요한 결론 중 하나는사고사과사이에 어떤 맥락이 형성되는가에 따라 사과의 효과가 좌우된다는 점이다. 두 가지 사례를 보자. 2014 12월 이슈가 됐던 땅콩회항 사건에서 해당기업은 오너 일가의 아버지와 딸, 그리고 기업 명의의 사과를 여러 차례 했다. 심지어 조현아 부사장은 피해자인 사무장의 집에까지 가서 사과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이 모든 사과가 효과를 발휘할 수 없었다. 왜일까? 12 5 <블라인드> 앱을 통해 땅콩회항의 전모가 알려지고 나서, 12 8일 해당 기업은 첫 입장 발표문을 통해 대중에게는 사과의 뜻을 표하면서 엉뚱하게 피해자인 사무장을 공격하는 내용을 담았다. 해당 사무장을규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변명과 거짓을 저지른 사람으로 표현했다. 결국 이 입장문 발표는잘못한 것도 모자라 약자인 사무장에게 뒤집어 씌우는 기업이라는 불리한 상황을 자초했다. 이렇게 되면 여론은 해당 기업이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오너 회장과 기업, 그리고 당사자인 조 부사장이 나서서 사과해봐야 여론을 돌리기는 힘들다.

 

반면 메르스 사태로 큰 위기를 겪은 삼성서울병원과 관련 이 부회장의 사과는 여론으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 과연 무엇 때문에 긍정적 반응을 얻었을까? “설마 오너가 나와서 사과하겠어? 월급 사장이 나와서 하겠지…” 당시 여론은 과연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서 공개 사과를 할지 의문을 갖고 있었다.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취임 후 첫 공개석상에서 사과를 하는 일은 큰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전격적으로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그가 직접 나서서 사과했다는 사실만으로 대중은 사과문의 내용을 떠나 긍정적 반응을 하게 된다. 이처럼 공개 사과의 효과는 사과문을 어떻게 구성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사고가 터지고 나서 사과하기 이전에 해당 기업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그리고 사고와 사과 사이에 해당기업이 어떤 맥락을 만들어내는지에 크게 좌우된다.

 

다섯째,저자들이 제안한 역할극 및 사과 리허설을 살펴보자. 바쁜 임원들이 무슨 역할극 연습이냐고 말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위기 관리에서 앞서가는 기업의 경우 CEO를 비롯한 임원들이 모여 위기 시뮬레이션Crisis Simulation을 진행한다. 지난 4, 10년 넘게 위기 대응 준비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해온 한 글로벌 기업과 함께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참고로 이 기업은 지난 10여 년 동안 큰 위기를 단 한 차례도 겪은 적이 없지만, 끊임없이 훈련한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유럽 본사의 담당 임원이 한국을 방문했고, 당시 유럽 출장 중이던 한국 지사장은 이틀간의 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훈련을 마치고 다시 출장지로 돌아갔다. 이처럼 최고 경영층에서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으면 위기 대응 준비는 조직 내 우선순위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시뮬레이션이란 기업에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무엇일지 함께 그려보고, 실제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떤 난관이 있는지, 제대로 대응할 준비는 돼 있는지 의사결정게임을 해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어떤 경우에 사과를 해야 하는지, 사과를 한다면 누가 어떤 타이밍에 어떤 채널을 통해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고 실제 역할 연습도 하게 된다. 최소 1년에 하루(8시간) CEO와 주요 임원 및 팀장들이 모여 이런 워크숍을 해야 한다. 이것은 만일에 대비해 보험을 드는 일처럼 중요한 투자다.

 

기업 경영분야에서 공개 사과가 주목 받게 된 중요한 배경으로 앞서 소셜 미디어의 등장을 꼽았다. 소셜 미디어는 뉴스와 상업적 거래, 관계와 소통 방식 등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이처럼 소셜 미디어로 인한 엄청난 변화는 기업에 또 다른 숙제를 안겨준다. 과거에는 주요 언론사와의 관계와 소통만으로이미지를 관리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대중 전체와의 관계와 소통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기업이 직접적 소통 방식을 통해 평판과 여론에 신경 써야 하는 시대가 왔고, 공개 사과는 기업 경영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실수와 잘못을 관리하는 중요한 언어로 부상했다.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공개 사과에 대한 논의나 대중의 압력은 더욱 커졌고 실제 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직접 나서서 사과하는 사례 역시 급증하고 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몇 가지만 강조하고자 한다.



 

과거에는 주요 언론사와의 관계와 소통만으로

이미지’를 관리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대중 전체와의

관계와 소통에 신경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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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미디어로 인한 변화 속에서 기업이 소통하는 방식도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을 하면서 깨닫게 된 가장 중요한 교훈과도 맞닿아 있다. 21세기에 커뮤니케이션은 보다 쿨해질 필요가 있다. 아래 쿨 커뮤니케이션 매트릭스로 표현한 그림과 같이 내가 잘한 일은 남의 입에서 나올 때 가장 힘이 있고 신뢰를 받는다. 기업이 스스로 자신들이 잘한 일을 광고할 때, 자랑의 효과나 신뢰도는 감소한다. 소셜 미디어의 입소문이나 신뢰받는 제 삼자의 의견이 대중에게 전달될 때 이는 훨씬 커다란 힘을 얻는다. 반면 실수하거나 잘못한 것은 남들의 입에 회자되거나 공격받기 이전에 내 입을 통해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비록 잘못했어도 투명하게 공개하면 개선의 의지가 있다는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소셜 미디어 시대 이전에는 기업이 잘한 것만 이야기하고, 잘못한 것은 침묵하는 게 일반적이었고, 그것이 기업에 더 유리했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의 상황이 됐다. 공개 사과는 바로 이러한 쿨 커뮤니케이션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언어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공개 사과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무엇일까? “아이 엠 소리I am sorry에 해당하는유감입니다혹은죄송합니다일까? 사과에 대한 연구에서 최근 내가 가장 주목하는 사람은 변호사였다가 철학교수로 변신한 뉴 헴프셔 대학의 닉 스미스Nick Smith이다. 그의 첫 저서 제목은이다. 사과에 대한 연구를 한 사람의 책 제목이미안하다가 아니라내가 잘못했다라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과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유감 표현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도 틀에 박힌 건조한 사과문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할 필요가 있다. 원문 저자들은 페이스북이 새롭게 소개했던 뉴스피드 기능에 불만이 폭주하자, “우리가 이 일을 완전히 망쳤습니다”, “일을 제대로 못했다와 같이 스스로를 공격함으로써 오히려 사과의 효과를 높인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유감과 미안함을 소극적으로 표현하는 데서 벗어나 정확히 무엇을 잘못했는지 쿨하게 사과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덧붙이면, 흔히 국내 기업의 사과문 끝에는 “00기업 직원 일동내지는 00기업 대표라는 식으로 리더가 자신의 이름을 감추려고 하는데, 이런 의례적인 사과를 탈피하라고 제안하고 싶다. 최고 경영자가 자신의 이름은 물론 서명까지 하는 방식으로 진정성을 담는 게 좋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이 권위 있는 경영학 잡지인 HBR에서 기업의 사과에 대해 다룬 의미를 좀 더 넓게 생각해보면 좋겠다. 기업의 사과와 관련해 꼭 강조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사과는 사과문이 아니다. 경영에서 공개 사과에 대한 논의를 사과문 작성의 기술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사과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회의 패러다임 자체가 투명하게 바뀌었고, 공개 사과에 대한 논의는 기업이 자신들의 실수나 잘못을 어떤 자세와 태도로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로 확장해서 봐야 한다. 즉 이 글을 읽으면서 독자들은앞으로 혹시 공개 사과문을 쓰게 된다면 어떻게 기술적으로 접근해 이미지 손상을 최소화할까?”라는 질문보다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기업의 각종 실수나 잘못으로 인한 위기 사태에 대응하는 자세와 태도를 앞으로는 어떻게 바꾸어야 할 것인가?” 새로운 공개사과에 대한 논의는 스스로의 실수와 잘못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과 조치로 연결돼야 한다.

 

김호 대표는 리더십 및 조직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위기관리 컨설팅을 20년 가까이 수행했다. 한국외대(불어와 철학)와 미국 마켓대(PR)에서 학사와 석사를,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공개사과에 대한 인지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세계 19명만이 있는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공인 트레이너(CMCT)이며, 세계 최대 PR컨설팅사 에델만 한국법인대표를 지냈다. <쿨하게 생존하라>(2014)를 썼으며, <쿨하게 사과하라>(2011) <평판사회>(2015)를 공저했다.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다.

*참고: <쿨하게 사과하라>는 정재승 공저, <평판사회>는 김봉수, 김용준, 김윤재, 유민영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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