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월(합본호)

회사의 미션을 다시 정립하고 있는 톰스의 창립자
블레이크 마이코스키(Blake Mycoskie)

How I Did It…

 

회사의 미션을 다시 정립하고 있는 톰스의 창립자

 

The Idea

 

톰스의 창립자 마이코스키는 고성장을 지속하려는 욕심이 회사의 미션을 망친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톰스의 미래와 그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자 안식년을 보냈다. 그가 낸 결론은 다소 믿기지 않지만 커피사업으로의 확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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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션은 분명했다.

톰스를 다시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는 회사로 만들기로 했다.

 

2012년 가을, 나는 그동안 생각하지도 않았던 안식년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계 일주를 위한 휴식은 아니었다. 아내 헤더와 나는 내가 자란 텍사스 주의 오스틴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회사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데 몰두했다.

 

캘리포니아 베니스의 한 아파트에서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톰스는 6년 만에 매출 3억 달러 이상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여전히 나는 회사의 모든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었고, 신발 한 켤레를 팔 때마다 신발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한 켤레를 주는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꿈을 잃어갔다. 일상은 단조로웠고 매일매일의 일상적 업무에 바쁜 간부들과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한때 내 삶의 이유였던 일들이 이제는직업으로 느껴졌다.

 

회사를 떠나 몇 달간, 나 자신에게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 톰스를 창업한 이유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고, 창업 초기에 왜 사람들이 나와 함께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의 미션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우리가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왜 회사를 계속 성장시켜 나가고 싶은지에 대한 확신은 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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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상실감을 느낀 이유는 톰스가 원래의 목적이 아닌 프로세스에 더욱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규모를 키우기 위해무엇어떻게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무엇보다 중요한 미션을 잊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업을 통해 삶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미션이야 말로 우리의 최고 경쟁우위였다. 이를 통해 우린 고객과 정서적인 유대감을 형성했고 직원들에게도 충분한 동기부여가 됐다. 그들은 톰스의 물건을 삼으로써, 또 톰스에서 일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더 중요한 활동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휴식을 마치고 나는 새로운 에너지를 안고 회사로 복귀했다. 나의 미션은 분명했다. 톰스를 다시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는 회사로 만들기로 했다.

 

톰스의 시작

 

나는 과거 안식년과 같은 휴식기에 톰스의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방문세탁 사업, 옥외광고 회사, 온라인 운전자교육 서비스 등 수차례에 걸쳐 창업하고 회사를 매각했다. 그리고 여동생과어메이징 레이스라는 TV 프로그램에 나가기도 했고 리얼리티 케이블전문 채널을 잠시 만들기도 했다. 그 후 2006년에 잠시 쉬면서 아르헨티나에서 가서 폴로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나도 이게 얼마나 이상한 조합인지 안다. 하지만 난 항상 현재의 관심사를 좇을 때 가장 행복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동안 나는 비영리기관에서 일하는 한 여성을 만났는데, 그녀는 가난한 시골의 어린이들에게 신발을 전해 주는 일을 했다. 그가 하는 일에 동행했던 경험이 내 인생을 변화시켰다. 모든 마을에서 우리는 환호와 눈물이 섞인 인사를 받았다. 열 살, 열두 살 형제를 만났는데 그들은 어른 사이즈의 신발 한 켤레를 나눠 신고 있었다. 학교에선 신발 착용을 의무화했기 때문에 두 형제는 교대로 수업에 참여해야 했다. 내가 그 형제에게 딱 맞는 신발을 그들의 어머니에게 건넸을 때 그녀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나는 그런 작은 행동이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무언가 더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집으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신던 신발이나 금전적인 기부를 부탁하는 것보다, 하나를 사면 하나를 기부하는 아이디어에 기반한 영리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회사 이름을 슈즈포투모로Shoes for Tomorrow라고 짓고, 그 후에 줄여서 투모로즈슈즈Tomorrow’s Shoes, 최종적으로 신발에 있는 작은 태그에 맞도록 톰스TOMS로 줄였다.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나를 만나면 어리둥절하기도 하는데, 내 이름이 톰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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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로 강사였던 알레호와 나는 현지 신발제조 업체를 설득해서 아르헨티나에서 100년 동안 신어왔던 캔버스화인 알파르가타를 본떠 좀 더 패셔너블한 신발을 제작하기로 했다. 에릭 리즈의 <린스타트업>에 나온 용어를 빌리면 우리의 첫 신발은최소기능제품minimum viable product이라고 할 수 있었다. 초기 제작된 신발들에는 접착제 변색도 있었다. 사이즈도 미국 사이즈가 아닌 아르헨티나 사이즈였으며 동일 사이즈이면서도 서로 크기가 맞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친구들에게 테스트용으로 팔기에는 충분했다. 250켤레를 팔아서 아르헨티나에 250켤레를 나눠주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집에 돌아와, 나는 조언을 구하기 위해 몇몇 여자친구들을 저녁 파티에 초대했다. 그들은 신발을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돕고자 하는 내 비전을 더 높이 샀다. 그들의 도움으로 유통판매점이 될 만한 몇 곳의 지역 부티크 상점들을 추천받았다. 그중 하나인 아메리칸 라그American Rag에 찾아가 구매담당자를 만났다. 우리 신발이 품질이나 가격만으로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왜 내가 신발을 팔고 기부하고 싶은지 얘기했다. 아메리칸 라그는 우리의 첫 번째 소매 채널이 됐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은 토요일 오전, 블랙베리폰 진동에 잠을 깼다. 그 당시 톰스 웹사이트는 판매가 이루어질 때마다 내 휴대전화기로 이메일 수신이 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보통 가족이나 친구들이 주문을 넣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가끔 전화가 울릴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날은 휴대전화가 계속 울리고, 울리고, 또 울렸다. 브런치를 먹으면서 나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를 넘기기 시작했다. 톰스에 대한 패션기자의 짧은 기사를 기대했는데, 뜻밖에 캘린더 섹션 첫 페이지에 톰스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날 하루 2200켤레의 신발을 판매했다. 이는 놀라운 일이었지만 동시에 처음으로 서플라이체인 관리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내 아파트에는 200켤레도 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후 6개월 동안 인턴들과 함께 나의신발 프로젝트를 실제 회사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보그, 피플, 타임, 엘르와 같은 잡지사로부터 기사 요청이 쇄도했다. 곧 토비 맥과이어, 키이라 나이틀리, 그리고 스칼렛 요한슨과 같은 유명 인사들이 톰스를 신고 다니는 모습이 찍혔다. 노드스트롬Nordstrom백화점에서도 우리 톰스를 살 수 있다고 광고했다. 여름이 끝나갈 때쯤 우리가 판매한 신발은 1만 켤레를 돌파했다. 톰스의는 분명히 공감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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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멸

 

2011년까지 톰스는 5년 연속 연간 300%씩 성장했고, 그 무렵 즈음 1000만 번째 신발을 기부한 상태였다. 톰스 초창기에 기존의 사업자들은 하나 사면 하나 기부하는 원--one-for-one모델은 좋은 아이디어지만 재정적으로 지속하기 힘들 것이라고 우리를 무시했다. 하지만 우리의 사업은 분명히 성공적이었다. 안경으로도 사업을 확장했다. 안경 하나를 판매하면 하나를 기부하거나 시력 회복을 위한 의료 시술을 제공했다. 우리는 여러 방법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웹사이트를 통한 소비자 직접 판매가 우리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실제로 기존 방식의 광고에 지출하는 비용이 없고, 그 대신 소셜미디어 500만 팔로어들의 입소문에 신경 썼다.

 

2012 9월 헤더와 나는 결혼했다. 나는 경험 많은 경영진을 영입해 회사 운영을 맡기고, 창립 이래 처음으로 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안심하면서도, 매우 불안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느꼈던 흥분과 동지애가 상하 조직문화로 변해 가고 있었다. 경영진의 주요 멤버들은 우리가 시행하는 프로세스와 시스템이 그들의 전 직장에서 사용한 방식과 유사하다고 주장하면서 갈등과 논쟁을 이어 갔다. 조직으로서, 우리는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지키려고만 하고, 아무도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직원들이 하나 둘씩 기업가 정신이 강한 회사로 이탈하기 시작했다.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그들을 따라가고 싶었다.

 

그동안 여러 회사를 세우고 매각해 봤지만 톰스는 좀 달랐다. 내게 톰스는 회사 이상의 의미이고 내 삶이기도 하다. 그래서 모든 것이 불확실한 이 기간이 결혼생활 중 생기는 문제들처럼 느껴졌다. 당신이 비즈니스의 소울메이트를 찾았다고 생각했었는데, 더 이상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내게 안식년은 부부 상담을 받으러 가는 것과 같았다. 피하려고 하지 않고, 톰스와 내가 화해할 수 있는지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노력했다.만약 그게 단지 순수한 비즈니스 문제였다면, 전략적 외부 조직을 꾸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기업의 문제이자 개인의 문제였다. 나는 회사의 향후 방향과 그 안에서의 내 역할을 찾아야 했다. 나는 혼자 있을 때 가장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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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으로 떠날 때 너무 유난을 떨지 않으려 했다. 사람들에게는 신혼여행의 연장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정작 오스틴에 도착해서는 사적인 명상의 시간을 많이 가졌다. 그리고 훌륭한 조언이나 좋은 영감을 불러일으켜 주는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정기적으로 임원 코치나 창업가 친구들, 내가 존경하는 사업가들과 비영리단체의 리더들을 만나기도 했다. 또한 사회적 기업 및 국제 개발의 전문가 의견을 듣기 위해 미국 전역의 여러 학회에 참가했다.

 

사이먼 사이넥의 소설 <’부터 시작하세요Start with Why>를 읽었던 때도 바로 이 시기였다. 이 책은 마틴 루서 킹처럼 대중들의 행동을 이끄는 인물과 애플처럼 강력한 제품 개발로 구매자들을 줄 서게 만드는 기업들에 대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사람들에게라는 당위성을 심어줄 때 지속될 수 있고 본인들의 신념과 서로 일치할 때 그 회사를 믿고 제품을 사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말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톰스는라는 목적 의식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 초기에는 우리만의 확신을 가지고 일했다. 단순히 신발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된 나머지 한 켤레가 신발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회사의 고도성장을 유지하겠다는 욕심 때문에 톰스는 결국 이런 사명감으로부터 멀어지고 다른 경쟁사처럼무엇어떻게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공격적인 판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례에 없던 프로모션과 할인을 시작했고 회사의 마케팅 전략은 점점 목적 지향에서 제품 중심으로 바뀌었다.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나의 실수였고 이를 통해 쓰디쓴 경험을 맛보아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미식축구 경기에서 또 한 번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 경기장에서 조 포드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그의 아들 스콧이 커피 무역사업을 통해 르완다 주민의 삶을 향상시켜 왔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조의 말에 따르면 물은 커피 공급 사슬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커피 원두를 가공할 때 더러운 물이 아니라 깨끗한 물을 쓰기만 해도 훨씬 고가의 고품질 커피가 나온다. 스콧의 회사 웨스트록 커피Westrock Coffee는 르완다 커피 재배농가를 도와 지역공동체 소유의 세척 장소를 건설했는데, 이로 인해 커피의 품질을 높이고 물로 인한 질병의 확산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재배농가에 직접 원두를 구매함으로써 불공정한 가격정책을 타파하고 악덕 대출업자로부터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대안으로 저금리 대출을 가능케 했다. 가장 훌륭한 점은 웨스트록은 엄청나게 좋은 커피를 파는 수익성 있는 사업체라는 점이다.

 

스콧과의 만남 이후, 나는 톰스가 커피 벤처를 시작해도 그런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성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또 현재 톰스에서 내가 느끼는 이 혼란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거라고 믿었다. 나 또한 대부분의 사업가들처럼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생각지 못한 일을 진행 시키는 데 설렌다. 그 누구도 톰스의 신발사업에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톰스가 커피사업도 할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 했을 것이다. 커피사업 진출을 통해 톰스는 예전부터 갈망해 왔던 새로운 사업영역에서의 경험도 축적할 수 있다. 카페를 만들어 지역사회의 모임 장소로 쓰게 하면 사람들이 모여 아이디어와 영감을 교류하며 톰스의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비전과 새로운 사업 도전은 내 삶에 큰 활력소가 됐다.

 

이런 여러 생각을 경영진에게 이야기했다. ‘톰스 로스팅톰스 신발처럼 기부 형태로 커피 한 봉지를 팔 때마다 물이 필요한 사람에게 일주일치의 물을 제공하게 된다. 회사로부터 허락을 받자마자 작은 팀을 꾸리고 버랩Burlap이라는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아내 헤더도 이제 안식년을 마쳐야 할 때라고 얘기했다. 톰스의 전 직원이자 누구보다도 사업과 나에 대해 잘 아는 아내와 새로운 계획을 상의하면 할수록 그녀의 확신은 확고해졌다. 오스틴에 이미 집도 사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지만, 2013년 초에 아내는 회사 일에 다시 전념하려면 회사와 가까운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시 톰스의 일에 전념하려면 먼 곳에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복귀

 

새 사업은 직원들이 현 상태를 넘어 더 크게 생각하고, 우리 회사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상기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회사로 돌아오니 기뻤다. 하지만 나는 곧 회사에 복귀한 창립자들이 흔히 범하는 몇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첫째, 나는 톰스에 또 다른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을 커피사업을 제안하면서 완전한 계획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 점이 몇몇 동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둘째, 나는 회사의 최고마케팅책임자에게 자리에서 물러나 달라고 요청했다. 새로운 사업을 통합하고, 고객들의 열정에 다시금 불을 당기면서 새로운 지향점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브랜드 마케팅과 홍보를 총괄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곧 내가 틀렸으며, 나는 마케팅이나 다른 부서를 이끄는 것보다는 비전을 세우고 전파하기 위해 전국을 누비는 창립자로서의 역할을 더 잘 수행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시행착오들에도 불구하고 2013년 말, 우리는 미국 전역의 홀푸드 매장에서 커피사업을 시작했고, 카페 세 곳도 문을 열었으며, 사업을 해외로 확대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175000주 동안 마실 수 있는 깨끗한 식수를 전 세계의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공했다. 신규 사업은 수많은 입소문을 만들어 냈으며, 고객들이 다시금 톰스에 열광하게 했다. 또한 직원들이 현 상태를 넘어 더 크게 생각하고, 또 회사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상기하게 해 주었다.

 

새로운 사업은 나 역시 더 크게 생각하도록 이끌었다. 나의 목표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회사를 만드는 것임이 더욱 명확해졌다. 더 많은 도움이 필요했다. 회사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는 투자회사들을 만났고, 면밀한 조사 끝에 2014년 여름 베인캐피털에 톰스 지분의 50%를 매각했다. 우리는 나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정의하고, 세계적 수준의 CEO를 영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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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찾은 적임자는 톰스의 핵심가치를 깊이 이해하는 짐 알링Jim Alling이었다. 스타벅스 고위 임원으로 커리어를 쌓아온 그는 우리의 커피사업 진출 결정에 약간의 의구심을 갖긴 했지만, 사업의 의미를 잘 이해했다. 톰스 로스팅 설립은 다른 대규모 체인점들과 경쟁하기보다는 지역사회와 협업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돕기 위한 용감한 시도였다. 지난 1년간 짐은 사업에 큰 안정성과 전략적 사고를 도입했다. 현재 우리는 손가방도 판다. 판매 수익은 어려운 형편의 임산부와 아기들을 돕는 데 쓰인다. 백팩도 판다. 이 수익은 학교에서 왕따 예방 프로그램에 지원하고 있다.

 

톰스의 10주년을 맞으면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치고 의욕이 충만하다. 그간 우리가 걸어온 길처럼, 나에겐 우리 활동을 성장시키기 위한 수많은 기회들이 보인다. 사업을 통해 삶을 개선시킨다는 톰스의라는 사명감은 나 자신이나 우리가 파는 신발, 또는 앞으로 출시할 어떠한 제품보다 크다. 안식년은 우리가 만들어온 것들의 힘을 느낄 수 있게 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최선의 방법을 깨닫게 했다. 현재 나에게는 확고한 목표와 나를 도와주는 멋진 파트너들이 있다. 나는 회사의 향후 10년과 내 앞에 놓인 수많은 도전들에 맞설 준비가 됐다.

 

블레이크 마이코스키Blake Mycos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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