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월호

기업에 국제정책이 필요한 이유
존 치프먼(John Chip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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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 국제정책이 필요한 이유

- 지정학적 변동성 증가에 대처해야 하는 다국적기업

존 치프먼

 

“2014 2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침공한 러시아는 곧이어 3월 크림자치공화국 합병을 선언했다. 유럽이 맞이할 전략적 위기 시대의 서막을 열고 기업 리더들에게 일대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다.”

 

위기가 서서히 눈앞에 드러나는 가운데, 금융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ank of England 6월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당면한 최대 위기로 지정학 리스크를 꼽은 경영자가 57%로 지난해보다 13%나 상승한 수치였다. 이어지는 조사에서도 한결같이 지정학적 불안을 사이버 공격, 금융시장 붕괴, 심지어 경기침체보다 더 심각한 위기로 봤다.

 

2016, 다시 지정학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최근 우리가 목도했듯이 브렉시트Brexit EU의 미래 구조와 EU와 영국과의 관계를 극적으로 바꿀 것이다. 유럽만 위기를 맞은 것이 아니다. 점점 더 자신감이 넘치는 중국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며 강력한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중동에서는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Islamic State of Iraq and the Levant가 약진하고칼리프를 선언해 중동국가의 영토보전을 위협하고 있다. 리비아 내 ISIL 세력 확대와 서아프리카 테러집단의 활동으로 이 지역의 정치 불안정이 심화됐다.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국내정세 또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국제사회 불안정에 더해 미국은 이제 기존 체제에 대한 도전이 심각한 지역에는 개입하지 않으려고 한다. ‘세계경찰국가의 퇴장,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이웃감시neighborhood watch프로그램, 그리고 게임의 규칙을 무시하는 무장단체와 국가들의 창궐로 지구촌 곳곳이 불안하다. 기업은 더 이상 절묘한 힘의 균형 또는 초강대국의 외교적 지원 약속으로 유지되는 전략적 현상 유지를 가정할 수 없다.

 

새로운 기업환경에서 다국적기업의 핵심 성공요인은 국제관계 전문성 확보와 국제정책 수립 역량이다. 국제정책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효과적인 기업 외교를 펼쳐 해외시장에서의 경영능력을 제고하고, 둘째, 지정학 리스크를 사전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함으로써 모든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다국적기업이 처한 환경, 산업은 매우 다양하지만 성공적인 국제정책에는 공통된 원칙이 있다. 이 원칙을 따르는 기업에는 경쟁우위의 새로운 원천이 주어진다.

 

Idea in Brief

 

도전 과제

미국의 국제분쟁 개입 감소, 경제제재 확산, 개발도상국 간 교역 증가라는 원인이 결합돼 기업이 당면한 지정학적 환경의 복잡성, 불안정성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해결 방안

지정학 리스크에 현명하게 대처하려면 외교정책의민영화’, 즉 국가경영에서 채택하는 여러 전통적인 전략의 기업 내부화가 필요하다.

 

실행 전략

기업 국제정책은 두 가지 핵심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첫째, 지정학적 주의 의무를 다해 지역, 경제권, 국제 수준에서 발생 가능한 모든 리스크를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 둘째, 기업 외교를 통해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위상과 역량을 제고하고 각 나라에서의 사업적 성공 또한 거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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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당면한 지정학 리스크

 

1994년 런던 국제전략연구소IISS기업에도 국제정책이 필요한가(Do companies need a foreign policy)?’라는 주제로 기업경영인을 대상으로 개최한 워크숍은 아쉽게도 큰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이해관계자 참여stakeholder engagement라는 당시로는 생소한 글로벌 전략 채택만으로도 뿌듯함을 느끼는 경영자에게 국제정책은 먼 세계, 먼 미래의 일이었다. 정쟁과의 거리 두기 또는 정치 위에 군림함으로써 독립성을 유지하는 전략이 기업의 이익을 지키고 명성을 드높이는 최선의 방책이었다. 지금 같은 주제를 기업 리더에게 꺼내면 대부분 국제정책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태도 변화는 아래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발을 빼는 미국.최근 세계질서를 위협하는 도전에 미국과 동맹국은 신속하고 결정적인 보복을 가하지 않았다. 물론 ISIL에 대한 공습이 진행 중이고, 나토는 유럽의 부활을 꿈꾸며, 미국은 여전히 아시아 중시 전략pivot toward Asia을 고수한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의 진행속도와 미국의 소극적인 대응은, 현대는 바로 눈앞에서 전략의 근본적 수정이 일어나는 전술의 시대임을 시사한다. 차기 미국 대통령들이 좀 더 공격적인 태도를 취할 가능성도 있지만 정치권과 국민은 개입주의로부터 등을 돌렸다. 미국의 변화는 결과적으로 세계정세 불안정을 심화시키고 이는 다국적기업이 지정학 리스크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를 제공한다.

 

경제제재의 확산.지정학 리스크에 대비하는 역량을 키워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외교정책 수단의 하나인 경제적 제재조치의 확산이 국제교역과 지정학 사이의 연결고리가 더더욱 단단해지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 분야에서 한동안은 초강대국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고 EU 또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EU의 대이란 경제제재 동참은 유럽 기업의 발목을 잡았다. 미국과 EU, 특히 G7의 러시아 경제제재 또한 마찬가지다.

 

워싱턴의 입장은 절대적이어서 다른 나라 기업도 제재 대상국과의 교역이 미국 정부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 워싱턴, 브뤼셀, 유럽 각국 수도에서 정부 관료를 만나 제재 조치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설명하고 경고하는 데 익숙하며, 정부 컨설팅은 머지않아 국제통상의 일반 현상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현명한 경영자라면 경제제재의 파급효과와 속도를 쉽게 짐작한다. 양국 관계가 악화되었지만 법적 구속력까지는 부과하지 못할 때 이전과 다름없이 사업을 영위하는 방법 또한 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모스크바와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캐나다 정부는 자국 기업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 보이콧을 권유했다. 하지만 캐나다 금광업체 킨로스골드Kinross Gold CEO 20년 동안 러시아에서 활동한 기업으로서 주주와 러시아 노동자에 대한 의무를 저버릴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정부의 압력을 거부했다.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은 2000년대 초반 국제사회에서 버림받은 국가인 미얀마 투자를 중단하지 않았으며 태국에서 계속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국제정책의 성패는 경제제재나 외교적 긴장 속에서 기업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경영자의 예리한 통찰력에 달려 있다.

 

개발도상국 간 교역 증가.서구의 중개 없이 이루어지는 신흥국 간 직접무역 증가와 이들 고속성장 시장의 국내정치 불안이 세 번째 원인이다. 개발도상국에서의 사업은 새로운 시장기회의 발견과 새로운 경쟁자의 출몰을 지켜보는 과정이다. 기회와 경쟁의 역동성을 정확하게 포착해야 한다는 의미다. 가나에 투자하는 미국 기업은 미국 외교정책과 가나의 정치상황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 막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 정부의 움직임까지 살펴야 한다. 미얀마에 진출하려면 복잡한 국내정치와 함께 중국, 인도, 아세안 국가의 이해관계까지 파악해야 한다.

 

국내정치 불확실성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고속성장 시장에 잠재된 지정학 리스크는 더더욱 복잡해진다. 대이란 경제제재가 해제됐지만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 특정 기업과 정권 그리고 보안당국 간 연계성을 이해하지 못한 기업이 이란에 대한 확신에 찬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섣부른 결정을 내리기 전에 지정학 리스크에 대한 실사due diligence를 벌여야 한다.

 

기업 국제정책의 의미

 

현대 사회의 복잡한 지정학 리스크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외교정책의민영화’, 즉 정부가 전통적으로 채택해 온 다양한 정책도구를 도입해 기업 내부에 정착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부의 외교정책 수립은 이해관계 정의, 정보 수집과 분석, 지역 또는 경제권 수준의 동맹관계 탐색, 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환경 조성의 과정을 거친다. 문화상대성을 고려해 도덕적 기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전략 수정도 허용한다. 기업의 국제정책 또한 다르지 않으며 더 다양한 활동을 요구한다.

 

오늘날의 기업은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명성과 이미지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17세기부터 19세기 후반까지 대영제국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의 동인도회사처럼 국가의 상업적 무기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미국의 1954년 과테말라 군부 쿠데타 지원의 단초를 제공한 유나이티드프루트컴퍼니United Fruit Company의 전철을 따르려는 기업도 없다. 역사상의 전례가 다국적기업에 대한 불신이라는 유산을 남겼고 기업은 20세기 후반 들어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자 애를 썼다.

 

적어도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기업들이 사회공동선 추구와 탈정치를 표방하기 위한 구체적 노력을 기울인 것이 사실이다. 사회적 책임 강조, 브랜드와 명성 관리, 이해관계자 관리, 그리고 NGO의 비판에 대한 적극적 대응과 선제적 홍보, 파트너십 구축 등 광범위한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영 도구도 내전, 정부 개입, 정권과 결탁한 신흥재벌의 부상, 협력자의 정치적 부침, 여론의 변덕 앞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투자와 경영권을 지켜내는 기업의 핵심 활동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기업은 정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며 정치적 중립성을 고집하는 것도 21세기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기업의 정치적, 외교적 활동이 요구된다. 지정학적 리스크 분석과 기업 외교라는 두 핵심요소로 이루어진 국제정책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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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적 리스크 분석의 새로운 원칙

 

기업이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때 규제, 법률, 재무 실사가 필수인 것처럼 지정학 리스크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와 분석을 실시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국가위험도라는 지표에 의존했지만 초국가적, 지역적 위협이 난무하는 오늘날에는 다른 수준, 다른 영역에서 발생하는 리스크 분석 또한 필요하다.

 

지정학적 대변동의 시대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등 여러 전략 도구는 시장기회 포착 또는 대규모 투자 결정을 앞둔 기업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

 

초국가적 리스크를 분석하라. 2013 1월 노르웨이 석유기업 스타토일Statoil은 넓은 경제권 수준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는 국가 리스크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아주 심각한 위협을 가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스타토일, 영국의 BP, 알제리 국영 석유회사 소나트라크Sonatrach가 운영하는 알제리 천연가스 생산시설에서 일어난 테러에서 10개국 노동자 4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어진 노르웨이 정보국 조사 결과, 기업의 보안활동만으로는 지정학적 위협을 당해내지 못하며 스타토일에 가해진 위협은 국가와 국가 간 관계로 분석되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다. 테러를 주동한 알카에다는 말리 내전에 개입한 프랑스에 대한 보복을 계획했고 리비아 남서부에서 작전을 개시해 알제리에서 테러를 벌였다. 초국가적, 지역적 위협 요인에 대한 철저하고 면밀한 분석만이 예상할 수 있는 리스크였다.

 

지정학 리스크 분석이 효과를 가져오려면 국가 수준과 초국가 수준의 위협 요인을 모두 파악한 다음 이들을 조합해 여러 가능성을 가정한 후 결과를 예측해야 한다. 교훈을 얻은 스타토일은 즉시 변화를 도모했다. 공식적인 설비투자 계획과는 별개로 국가위험, 초국가적 위협, 보다 광범위한 지정학적 추세를 관리 가능한 구체적인 수준에서 분석한다. 지정학 리스크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분석하는 팀을 구성하였으며 국제관계 전문가를 이사회에 초청하여 조언을 구한다.

 

각 지역 경제권의 정치 동향에 주의를 기울여라. 특정 경제권 수준에서의 주의 의무는 위험평가에 그치지 않으며 정치발전 과정을 지켜보고 기회를 포착하는 적극적인 전략까지 포함한다. 지역 경제권의 발전계획에 호의적인 기업은 든든한 지지세력을 업고 미래가치를 선점할 수 있다. 멕시코, 콜롬비아, 페루, 칠레가 창설한 태평양동맹Pacific Alliance의 통합과 자유무역 기조를 지지하는 기업은 이들 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크다. 브라질 정부에 태평양동맹은 또 다른 경제블록인 남미공동시장 메르코수르Mercosur의 달갑지 않은 경쟁자이지만, 브라질 기업의 시각은 긍정적이다. 실제로 브라질의 대표적인 투자은행 비티지 팍투알BTG Pactual은 태평양동맹 회원국 네 곳에 사무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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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내 특정 지역의 위험을 구분하라.국가 불안정 속에서도 지역에 따라 좋은 투자처가 존재한다. 쿠르드자치정부가 관할하는 이라크 북부는 상대적으로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원유개발회사들이 기꺼이 투자하는 지역이다. 인도네시아는 발리 폭탄테러 등 테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지역이지만 비교적 안전한 항구도시인 수라바야에 취항하는 해운회사는 정치적 위험보험을 갱신한다면 당장 철수할 필요는 없다. 멕시코 시나올라 주의 살인율은 2015년 세계에서 가장 살인율이 높았던 엘살바도르에 맞먹지만, 치아파스 주의 경우에는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는 하와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위협 또한 국지적이다. 나이지리아에서도 카노와 바가는 위험지역이지만 라고스는 그렇지 않다.

 

물론 위험국가에서의 사업 의사결정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몇 년 전 쿠르드 지역 유전개발에 참여한 인도의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즈Reliance Industries는 셰브론Chevron에 지분을 매각하고 잠재적 시장기회가 훨씬 크다고 판단한 이라크 남부지역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한국, 미국, 오스트리아 기업의 행보는 달랐다. 남부와 북부 모두에서 성공이 가능하다는 입장 또는 아직은 북부에 머물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전략적 의사결정의 문제지만 모든 회사가 나름의 논리적 일관성을 갖춘 국제정책에 근거해 이라크 정치체제에 접근했다. 정치적 중립성을 고집했다면 어떤 기회도 잡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자국과 인접 국가의 상황을 무시하지 마라.정보와 이해도가 부족한 낯선 곳에 최대한의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당연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위협은 때때로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가 가져올 어마어마한 후폭풍을 목전에 둔 영국 기업들은 정치적 이슈에 대한 침묵은 노동자와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2016년 봄 EU 잔류를 지지하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면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인접국의 정치적, 경제적 발전과정을 간과하는 실수도 흔하다. 브라질 광산업체 발레Vale는 충분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 모잠비크에 투자했다. 반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아르헨티나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11년 멘도사 주 서쪽에 막대한 자본을 퍼부었지만, 환율 규제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콜로라도강 인근 광산시설에 소요되는 비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회생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2013 4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회담 후 발레의 아르헨티나 철수가 발표됐으며 발레는 수십억 달러의 손해를 입고 물러나야 했다. 이웃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더욱 신중하게 접근했더라면 치를 필요가 없는 희생이었다.

 

 


기업 외교의 새로운 원칙

 

지정학적 리스크 분석이 의미를 가지려면 투자결정 이전뿐만 아니라 투자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지역, 경제권, 국제적 수준에서 일어나는 힘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키우고 각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기업 외교를 펼쳐야 한다. 기업의 세계적 명성은 특정 국가에서의 성공과 실패가 만들어내고, 역으로 새롭게 등장한 흥미로운 시장의 진출과 매력이 다한 시장으로부터의 우아한 퇴장의 성패는 국제적으로 획득한 명성에 영향을 받는다.

 

다른 가치는 모두 무시한 채 단 하나의 도덕적 쟁점만 외치며 해결책 찾기에 열을 올리는 어설픈 NGO를 흉내내면 안 된다. 섣불리 정부의 역할을 떠맡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공공재를 제공하려는 시도도 위험하다. 정부 그리고 시민사회와 매우 광범위하면서 동시에 깊은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시장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확인하고, 기업 목표 지지세력과 비판세력을 모두 이해한 다음, 각 이해관계자와 효과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효과적인 기업 외교전략 수립의 네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독자적인 국제정책을 개발하라. 외국 정부에 접근할 때는 자국의 외교정책을 그대로 따르거나 또는 외교정책을 유리하게 바꾸려고 시도하지 말고 독자적인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정부의 공식적인 압력이 발휘하는 위력은 무시하지 못한다. 2016년 이탈리아 기업 트레비Trevi는 붕괴 위기에 놓인 이라크 모술댐 보수공사 수주에 결국 성공했다. 마테오 렌치 총리가 ISIL의 댐 공격에 대비한 450명 규모의 병력 지원을 발표한 직후의 일이다. ‘번영 어젠다prosperity agenda에 따라 영국 정부는 세계 곳곳의 영국대사관과 고등판무관에게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영국 기업의 목표를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한다. 일본 정부는 국내로부터 눈을 돌려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기업을 경제적으로 지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기업의 국제정책은 종종 난관에 봉착한다. 미국 정부가 유럽 시장에 유전자조작 식품을 공급하기 위해 전방위 로비를 펼쳤을 때 몬산토가 혜택을 누렸는지 분명하지 않다. 최근 10년 동안 국부펀드 운용사들은 외교 현안과 독립된 투자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들을 계속 설득했다. 독자적인 국제정책 개발과 실행에 있어 대기업이 훨씬 좋은 조건을 갖춘 것이 사실이다.

 

화웨이의 미국 진출은 연방정부가 창업자 런정페이의 인민해방군 경력에 우려를 표하면서 실패로 돌아가는 듯했다.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통해 중국 보안당국으로 기밀이 유출될 가능성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주정부로의 방향 선회가 화웨이의 대응전략이었다. 거대 통신사에 대한 접근이 가로막히자 스피드커넥트와 같이 미 전역의 중소도시에 기반을 둔 소규모 통신사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중국 정부로부터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좀처럼 인터뷰를 하지 않는 런정페이가 인민해방군의 최전선을 수호하는 기업으로 각인된 점을 의식하며우리의 목표는 화웨이를 유럽 기업으로 인식시키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때때로 기업은 정부의 공식적 외교정책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질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아주 명쾌하게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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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다면 초국가적 이미지를 개발하라.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국제적 이미지를 갖추는 일은 더 중요해진다. 기업 또는 투자그룹이 국적을 전면에 내세우면 정치적 분쟁의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2008년 중국에서 티베트 독립 지지자들의 파리 시위에 보복하는 카르푸 불매운동이 일었다. 중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글로벌기업으로서 카르푸가 지닌 위상과 신임을 강하게 주장하고 중국 카르푸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노동자가 중국인이라는 점을 호소한 다음에야 사태가 진정되었다. 오늘날 카르푸는 프랑스 기업이라기보다는 글로벌유통업 강자의 이미지가 강하다.

 

뿌리를 밝히지 않는 전략에는 두 가지 단서조항이 따른다. 첫째, 특정 국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전략이 오히려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일본 기업의 아프리카와 남미 진출 성공요인 중 하나는 노동 착취로 악명 높은 중국 기업과의 차별성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둘째, 어느 곳에도 납세의 의무를 질 필요가 없다고 느낄 정도로 무국적기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당하게 부과되는 법인세 납부 거부는 기업의 명성에 흠집을 내어 국제정책의 실패로 이어진다. 최근 미국 정부가 조세회피 목적의 법인 해외이전에 강력한 법적 제재를 가하기로 한 사례처럼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크다.

 

 

정치적 관계를 다양화하라.정부 연줄과 CSR 활동만 믿고 당장 해결이 필요한 지정학 리스크에 단기적으로 대응하지 말라. 여러 이해관계자와 좋은 관계를 맺는 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 재계, 재벌, 시민단체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들과 역동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특히 격동의 정치를 겪고 있는 고속성장 시장이 대상이라면 정치와 경제분야에서 힘의 균형을 이루는 핵심 주체의 동향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시시각각 변하는 축의 이동을 예의 주시하고 재빨리 적응해야 한다.

 

스페인 석유회사 렙솔Repsol YPF사를 인수해 렙솔YPF를 설립하는 형식으로 아르헨티나에 진출했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의 최측근 기업인이 대주주로 있으면서 이사회를 이끄는 좋은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아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후임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YPF의 국유화를 선언했고 날개를 잃은 과거의 인맥은 속수무책 지켜보기만 했다.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으며 국유화는 기업보다 아르헨티나에 더 큰 타격을 준 것 같지만, 렙솔 사례는 소중한 교훈을 남겼다.

 

특정 정권 또는 이해집단과 너무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면 오히려 그 관계가 취약점으로 작용하여 지정학 리스크의 타격을 견뎌내지 못한다. 넓고 깊은 관계들을 형성하여 잠재적 라이선스를 확보하는 전략이 최선의 정치적 보험이다.

 

파괴적인 결정을 내리지 마라.정치적 리스크는 가만히 있는 방관자에게만 들이닥치지 않는다. 오랜 파트너를 영원한 우군으로 당연시하거나 국가 또는 지역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주주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등의 어리석은 판단이 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함으로써 변화의 움직임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자국의 외교정책을 그대로 따르거나 정책을 수정하려 하지 말고 기업의 독자적인 국제정책을 개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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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월 나이지리아 정부는 아프리카 최대 통신사 MTN 52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심카드를 구입하며 주소를 등록하지 않은 500만 가입자에 대한 서비스 중단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는 안보상의 이유로, 보코하람과 같은 무장단체가 추적 불가능한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심카드 등록을 의무화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투자자는 말할 것도 없고 나이지리아 정치에 무심한 방관자라도 보코하람과의 전쟁이 국가 최대 현안임을 모를 리 없다. MTN은 아프리카 최대 경제국인 자국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나이지리아의 경쟁관계를 염두에 두고 정치외교적 기지를 발휘하여 신중하게 나이지리아에 접근해야 했다.

 

2012년 거대 광산업체 앵글로아메리칸이 칠레에서 저지른 실수도 비슷한 사례다. 국영기업 코델코Codelco가 앵글로아메리칸이 보유한 구리광산 지분 매입 의사를 밝히자 코델코가 요구한 지분의 절반인 24.5% 54억 달러에 미쓰비시에 넘기는 협상을 진행함으로써 국영기업에 맞섰다. 회사는 주주이익 극대화를 위해 더 나은 조건의 거래를 받아들이는 것은 정당한 권리임을 주장하며 오히려 코델코의 위협행위를 비난했다. 교착상태가 지속되었고 양측 모두 손해를 입었다. 결국 지분 30%를 시장가격에 코델코에 넘기는 것으로 갈등은 일단락됐고 앵글로아메리칸이 쌓은 위상에는 금이 갔다.

 

앵글로아메리칸 입장에서 주주에 대한 신탁 의무를 지켜야 하며 최종 협상결과는 모두의 체면을 살려주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해외시장에서 국영기업을 상대로 한 싸움은 승리하기가 극히 어려우며 교착상태를 풀기 위해서는 신속한 판단과 행동이 요구된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정학적 변동성에 대한 대처 또한 다른 변동성과 다를 바 없다. 포괄적 리스크 분석과 빈틈없는 국제정책을 갖춘 리더에게는 도전의 시대에도 순항이 보장된다. 투자자들은 여전히 재무 성과라는 전통적인 기준에 의존하여 기업가치를 평가하겠지만, 지정학적 충격 흡수와 복원력 그리고 국제정책 역량이 점점 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번역: 백승빈

 

존 치프먼은 국제전략연구소 소장이다. 성장시장에 투자하는 두바이 소재 글로벌사모펀드 아브라즈그룹Abraaj Group사외이사, 인도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즈Reliance Industries 회장 특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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