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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과거를 들춰내는 것이 도움이 안될 때도 있다

디지털
2020. 5. 12.
200324
사회 불평등을 논하다 보면 과거에 존재했던 차별의 근거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여러 유명인들의 성폭력 혐의가 #미투(MeToo)와 #타임즈업(TimesUp) 운동에 불을 지폈고, 이 때문에 여성이 겪은 차별과 학대의 오랜 역사가 다시금 주목을 받기도 했죠. 또 노예제의 잔재가 남아 있는 미국에서 인종차별 논의는 풀리지 않는 숙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과거의 부당함을 들춰내면 오늘날의 행동을 바로잡는 데 더 유리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요? 수치스러운 과거의 불평등을 떠올리는 것이 오히려 의도치 않게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까요? 우리 연구진들은 이런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우리 팀은 어떻게 구성원들의 지지를 얻으면서 기업 내 성차별을 바로잡는 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있는데요, 현재 S&P 500 기업 중에서 여성 대표이사의 비율은 5.6%밖에 되지 않으며, 여성 이사진은 21%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정부나 관련 기관들은 이런 고질적인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소수집단 우대 정책(미국)이나 고용 평등법(캐나다) 과 같이 다양성과 평등을 존중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캐나다에서는 고용평등 정책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과거에 특정 집단이 불이익을 당했다고 언급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예컨대, 과거 여성들이 교육이나 고용 등 여러 방면에서 배제되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거죠. 미국의 소수집단 우대 정책에도 과거의 차별을 바로잡으려는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최근 미국의 고용인 1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도 남녀 직원 중 58%가 다양성과 평등을 위한 제도를 과거의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론적 배경: 사회 정체성 이론

직관적으로는 현재의 차별을 과거의 불평등과 연결 짓는 것이 타당해 보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조직과 기관들이 어떻게 과거의 억압적인 체제가 현재의 불평등을 만들어냈는지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우리 연구팀은 사회 정체성 이론을 고려해 과거의 불평등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행동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가정했습니다. 왜냐하면 기득권층이 오히려 현재 시점에는 과거의 차별이 사라졌다고 주장하면서 차별 개선 프로그램을 지지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 정체성 이론은 사람의 정체성과 자아존중감은 성별이나 인종, 종교, 정치 성향, 심지어는 스포츠팀에 이르기까지 개인이 속한 집단에서 비롯되며, 사람은 자신이 속한 사회 집단의 긍정적 이미지를 유지하고 지키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전제합니다. 개인이 자신이 잘못한 행동을 돌이켜보면 자아상이 흔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소속된 집단이 과거에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사회 정체성에 위협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입니다. 이렇게 위협을 느끼면 비평을 폄하하거나 회피하는 식으로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게 됩니다. 사회 정체성 이론을 우리 연구에 적용하면 과거에 이득을 봤던 집단인 남성이 과거 여성들이 불평등을 경험했다는 근거를 접하게 되면 사회 정체성에 위협을 느끼고 방어적으로 반응할 것입니다. 우리 연구팀은 최근 조사에서 이 가설을 검증해 보기로 했습니다.


실험 1.
우리의 첫 번째 실험은 한 캐나다 대학교의 경영학과 15명(여성 59%)을 표본으로 진행했습니다. 학생들은 학기 시작 전, 20세기 초의 삶을 기술한 짧은 역사학 관련 글을 읽는 온라인 과제를 받고 이를 완료한 상태였는데요, 이 학생들 중 절반은 1900년대 초 여성들이 겪은 불평등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이를테면 여성들은 투표를 하거나 재산을 소유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학생 중 나머지 절반은 성차별에 관한 내용 없이 휴대전화와 컴퓨터가 나타나기 전의 일반적인 삶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그런 후 현재 시점의 성차별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설문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제시했습니다. “여성들은 차별받지 않을 때 차별받는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캐나다 사회는 남성과 여성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 이어서 학생들에게 각 문장에 대해 동의하는 정도를 1~7점 척도로 나타내라고 했습니다. 1점은 ‘매우 동의하지 않는다’, 7점은 ‘매우 동의한다라는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여성 대상 고용 평등 제도에 얼마나 찬성하는지 점수를 매기도록 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가설과 마찬가지로 과거 여성 차별의 역사적 근거를 읽은 남학생들은 방어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이 그룹 남학생들은 일반적인 역사 장면에 관한 글을 읽은 남학생들보다 현대사회에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더 부정하는 경향을 보였고, 고용 평등 제도에 찬성하는 비율도 낮았습니다. 이에 반해 여학생들은 어떤 역사 장면에 대한 글을 읽었든 지 상관없이 현대사회의 성차별을 인식하고 있으며 고용 평등 제도를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고, 역사적 근거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 연구팀이 가정한 대로 과거의 불평등을 상기시키면 특혜를 받는 집단이 차별 받는 집단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역효과를 낳는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과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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