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비즈니스리뷰

FEATURE MONPROFIT MANAGEMENT

세상을 바꾼 자선활동

사회변화를 불러온 열다섯 가지 자선사업이 우리에게 준 교훈

수전 울프 디트코프, 에이브 그린들

지난 한 세기 동안 사회적으로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성공사례들 가운데는 개인 자선사업가의 지원 덕분에 가능했던 일들도 있다. 소아마비를 지구상에서 사실상 퇴치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미국 아동들에게 무료급식과 급식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911서비스 시스템을 미 전역에 구축하고, 미국 내 동성결혼 합법화를 지원한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노력은 수백만 명의 삶을 크게 변화시키거나 생명을 구했다. 이제는 이런 변화들이 당연해 보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성공이 확실한 일들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성공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요즘 등장하는 수많은 대규모 자선사업가들도 이런 대담한 성공을 꿈꾼다. 이들은 노숙자쉼터와 무료식품배급소에 돈을 기부하는 대신 노숙자와 굶는 이들이 더 이상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한다. 꾸준하고 연속적인 진전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이들은 파괴적이고 촉매적이며 조직적인 변화를 원한다. 그것도 단기간 내에. 오늘날 우리 사회가 부의 쏠림 현상과 연계된 중요한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는 와중에도 많은 자선사업계 거물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에 따르는 책임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품은 야심의 크기는 이들이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부의 크기만큼이나 엄청나다.

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 상당한 좌절감을 토로하는 독지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수년째 막대한 돈을 기부해 왔지만 사회에 도움이 되는 변화를 아직 제대로 이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선사업가들이 기후변화를 저지하거나 미국 공교육을 개선하기 위해 개입했던 사례만 떠올려봐도 그렇다. 최고의 자선사업가는 걸림돌과 대중의 비난에 직면했을 때 의사결정 과정 중에 지원 대상 공동체에 다가가는 방법 등 기존의 목표와 접근방식을 재검토한다. 하지만 대학이나 미술관에 기부를 하는 등 보다 안전해 보이는 기부방식으로 타협을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기부활동을 아예 철회해 버리는 이들도 있다.

대담한 사회변화를 일으키는 일은 상당히 힘든 도전과제다. 하지만 절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역사는 말해준다. 안타깝지만 단 한번의 기부나 하나의 묘책으로는 결코 사회변화를 달성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협업과 정부의 참여, 끈기가 필요하다. 어떤 활동들이 어떻게 예상 밖의 성공을 거두었고 오늘날의 자선사업가들이 과거의 성공사례에서 배울 점은 무엇인지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말기환자 돌봄서비스의 확대, 미국 내 이민 농장노동자에 대한 적정임금 보장, 방글라데시에서 수많은 생명을 살린 수분보충용액 등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15가지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살펴봤다.(‘지난 100년간 대담한 사회변화를 만들어 낸 사업들’ 참조) 우리는 이번 조사를 통해 야심적인 대규모 변화를 목표로 하는 자선사업가들에게 도움이 될 프레임워크를 구성하는 5가지 요소를 찾아냈다. 성공한 사업들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해결해야 할 문제와 이를 둘러싼 생태계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다.

•‘달성 가능한 단계별 목표’를 설정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다듬는다.

•광범위하게 효과를 낼 수 있는 접근방식을 설계한다.

•수요를 추정하는 대신 주도한다.

•방향 수정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성공 사례들에서 자선사업가들이 맡은 역할은 제각기 달랐다. 이들은 대체로 다른 이들의 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대주는 역할을 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실무를 책임지는 쪽은 NGO 리더, 서비스제공자, 활동가 등 사회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이었다. 이들 성공사례의 자선사업가들은 모두 앞의 5가지 요소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했고,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에나 자금을 기꺼이 지원했다. 이들은 남들이 미처 손대지 않은 지점들을 파악하고 이에 따라 자원을 투입하며 융통성 있는 자금원 역할을 했다. 때로는 5가지 요소 중 단 하나에만 집중적으로 보조적인 지원을 제공한 결과 상황을 완전히 뒤바꾼 경우도 있었다.

이 프레임워크는 단순하거나 연속적인 해법 하나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진정한 변화는 상당히 복잡다단하고 여러 세력의 주도하에 일어나며, 운과 타이밍이 큰 역할을 하고, 행위와 결과 간 인과관계를 확실히 증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대담한 자선사업가들이 자선사업 진행 과정에서 이 프레임워크를 적용한다면 변혁적 변화를 달성할 확률을 현저하게 높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문제

과거 성공 사례들을 자세히 살펴보기에 앞서, 그렇게 많은 자선사업들이 실패하게 된 대략적인 이유 몇 가지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연구한 자선사업 대부분은 다음 네 가지 패턴을 공통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첫째, 사업이 성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연구한 사업들의 거의 90%가 20년 이상 소요됐으며, 중간값은 약 45년이었다. 둘째, 정부의 협조가 빈번했다. 정부의 재정지원, 정책, 혹은 조치가 필수적이었던 경우가 전체 성공사례의 80%에 달했다. 셋째, 협업을 요하는 경우가 많았다. 거의 75%의 사례에서 다양한 분야의 주요 행위자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66% 이상의 사례에서 기부자들이 1000만 달러가 넘는 거액의 기부를 한 차례 이상 했다.

아쉽게도 이런 패턴은 오늘날 대다수 자선사업의 성격과 배치된다. 광범위한 변화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기부자들도 개념적으로는 알고 있다. 중대하면서도 간단한 아이디어가 마련돼 있다 해도 말이다.(손씻기와 수술 도구·시설 소독 같은 기초적인 습관을 통해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유수 의학저널에 발표된 지 30년이 지난 후에야 이런 관행이 제대로 자리잡았다고 의사인 아툴 가완디^{Atul Gawande}가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자선사업가들은 기부 수혜자가 단 몇 년 안에 훨씬 복합적인 변화를 이뤄주길 기대한다. 미국 정부가 가장 골치 아픈 사회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매우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수조 달러를 쏟아붓고 있는 상황에서도 많은 기부자들이 번거로운 절차와 ‘너무 정치적으로’ 비칠까 하는 우려 때문에 미국 정부가 깊이 관여하는 사업에는 자금을 지원하기를 꺼려 왔다. 게다가 어떤 유형의 협업이든 어려움이 뒤따르고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정부와 협력해야 하는 사업에 대규모 지원을 하거나 이에 관여하는 자선사업가는 거의 없다. 정작 자선사업가 대부분은 변화를 위한 노력이 폐쇄적으로 이뤄져 효율적으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인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제공된 기부금 가운데 실질적인 영향을 조금이라도 미칠 수 있는 규모의 기부금은 그리 많지 않다. 반면에 대학 도서관이나 미술관 증축 등 훨씬 단순한 사업들에는 많은 이들이 2000만 달러 이상씩 기부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연구한 어떤 성공사례에서도 완벽한 승리를 선언한 자선사업가는 없었다. 유아용 카시트가 거의 보편화됐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자동차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무료급식과 급식할인 혜택을 통해 미국 전역의 아이들이 점심을 먹을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굶는 아이들이 있다. 농장노동자들의 임금이 예전에 비해 대폭 상승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먹고살 정도는 아직 아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프레임워크의 5가지 요소들에 초점을 맞추자 이런 사업들을 추진한 기부자와 변화 리더들은 상당한 진전을 이룰 수 있었다. 5가지 요소를 하나하나 상세히 살펴보고 기부자들이 각 요소를 철저하게 이해한 덕분에 의미 있는 변화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탐구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