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i Did It…
애널리시스 그룹Analysis Group CEO가 ‘소프트’지표로 경영하는 법
The Idea
애널리시스 그룹의 CEO 마사 새뮤얼슨은 경쟁사들이 채택하는 수익성 평가와 연봉 산정 공식 대신 정성적인 ‘소프트’ 지표들과 공정성에 기반을 둔 블랙박스 시스템을 도입했다. |
내 아버지는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다. 나도 그 대학을 나왔다. 재학 당시 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느라 경제학엔 한 발짝도 들여놓고 싶지 않았다. 대학 시절 내내 경제학 수업은 일절 듣지 않았다. 예일대 졸업 후 나는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했고, 그 후 5년간 법조계에서 일했다.
남편 될 사람을 집에 데리고 오면서 내게도 우리 집안의 유전자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은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폴 새뮤얼슨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법조계에 지친 나는 경제학을 포함한 경영을 배우기 위해 MIT에 입학했다.
졸업할 무렵 나는 두 아이의 엄마였고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싶었다. 경제 컨설팅은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되는 업무라 일정을 조율하며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80년대에는 그런 회사가 드물었다. 취업 인터뷰를 할 때마다 훌륭한 엄마인 것 같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합격했다는 연락은 없었다. 그러다 결국 작은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게 됐다. 어쩌다 보니 시작하게 된 일이고 원대한 계획도 없었지만 일은 마음에 들었다. 경제 컨설팅이란 것이 복잡한 문제해결 과정이기에 전공이었던 법학 지식이 큰 도움이 됐다. 경제 컨설팅은 오페라와도 비슷하다. 모두 한데 모여 각자 맡은 부분을 노래해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재정난에 빠진 92년 무렵 나는 애널리시스Analysis그룹으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았다. 나는 그 회사 창립자들이 마음에 들었다. 더 큰 회사에서도 제안을 받았지만 애널리시스 그룹이야말로 내가 있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눈을 딱 감고 뛰어내려야 할 때가 있다면 내겐 바로 그때가 그 중 하나였다. 애널리시스 그룹은 무섭게 성장했고 나는 업무를 잘 수행했다. 나는 98년 공동 CEO가 됐고, 2004년엔 사장 겸 CEO가 됐다.
우리는 누가 어떤 매출을 올렸는가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버렸다.
고객사에 보낸 청구서만 가지고 그 사람의 보수를 결정하지 않는다.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정보를 충분히 검토해 결정한다.
애널리시스의 파트너십[1]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고민하면서, 내가 다녔던 예전 회사의 리더들이 어떤 방식으로 경영을 했는지 기억을 되살렸다. 그 전 회사에서는 개별 사무소와 사업 부문의 수익성을 꼼꼼히 확인하고 측정했다. 업계 대부분의 회사들이 비슷한 방식을 따랐다. 이런 방식이 합리적인 것 같지만, 이로 인해 내부 경쟁과 분열이 일어났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보상 책정은 공식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는데, 새로운 매출을 누가 올렸느냐에 따라 파트너들의 보수가 정해지는 일종의 중개료 시스템과 같았다.
애널리시스 그룹은 상당히 다른 방식을 택했다. 공식에 의존하지 않고 파트너들의 보수를 책정한다. 우리는 누가 어떤 매출을 올렸는가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버렸다. 고객사에서 올린 매출만 가지고 그 사람의 보수를 결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각 개인이 회사에 기여한 다양한 활동에 대해 포괄적이고 충분한 정보에 기반한 공정한 심의를 한다. 데이터와 공식을 신봉하는 경제학자들이 비정형화된 프로세스를 통해 보수를 결정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또한 이 같은 보수 책정 모델이 모두의 입맛에 맞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모델이 우리의 견고한 문화를 이루는 한 축이며 장기적으로 더 가치 있는 회사를 만드는 데 일조할 거라고 확신한다.
[1]합명회사, 합자회사, 조합처럼 여러 명의 ‘파트너’가 영리를 목적으로 공동으로 운영하는 조직을 말한다. 주주와 경영진이 분리되는 일반 주식회사와는 달리, 파트너십으로 운영되는 회사는 파트너들이 회사의 경영도 맡고 거기서 발생하는 이익과 손해도 나눠 갖는다. 법무법인, 노무법인, 창업투자사, 투자은행, 컨설팅업체 등이 이런 형태를 많이 띠고 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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