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에게 ‘애자일’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으로 2001년 탄생한 애자일은 2018년을 전후해 경영계의 주목을 받으며 다양한 회사들의 선택을 받았다. 아마존, 구글, 넷플릭스 등 IT기업뿐만 아니라 ING은행, 알리안츠보험 등 금융사, 보쉬(Bosch), 사브(SAAB), 테슬라 같은 제조업체 등 다양한 회사들이 적극적으로 애자일을 받아들이며 혁신에 성공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열풍과 맞물리면서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애자일 도입이 필수인 것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에 최근에는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 심지어 공기업들도 애자일에 관심을 갖는 추세다.
그러나 애자일의 인기만큼이나 애자일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기업 경영진의 애자일에 대한 몰이해가 애자일 전환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애자일을 단순히 ‘빠른 일 처리’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애자일을 잘못 이해한 경영자들은 ‘애자일’이라는 명사보다는 ‘애자일하게’라는 형용사를 주로 사용한다. ‘애자일하게 진행해’, ‘애자일하게 잠깐 회의할까’ 등이 대표적 예다. 이때 ‘애자일하게’의 뜻은 ‘빠르게’다. 여기에 ‘고객 중심’이나 ‘의사결정 권한의 위임’과 같은 애자일의 철학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을 빠르게 처리해 줘”라는 말을 돌려서 할 때 주로 애자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애자일을 새롭게 유행하는 업무방식 정도로 바라보는 시각 역시 문제다. 스스로 애자일을 도입했다고 주장하는 기업 중 상당수는 사무실을 공용좌석제로 바꾸고, 벽면에 스크럼보드를 설치하고 매일 아침 이 보드 앞에 모여서 10분 정도 스탠드업 미팅을 한다. 또 조직구조는 스포티파이(spotify)의 매트릭스 조직구조를 따른다. 덕분에 최근 기업 중에는 트라이브, 스쿼드, 챕터 등과 같은 팀 이름을 쓰는 회사가 많아졌다. 그러나 이런 기업들 중 상당수는 애자일 조직을 흉내 낸 전통 조직에 불과하다. 애자일의 본질인 문화와 철학의 이식 없이 겉모습만 흉내 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에서 출발한 애자일이 수년 전부터 다양한 기업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스크럼, 칸반, 데브옵스 등 잘 알려진 애자일 방법론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변화무쌍한 최근의 경영환경에 애자일이 갖고 있는 철학과 문화가 잘 맞다고 기업들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철학과 문화를 조직 내 이식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유명한 애자일 방법론을 배우고 애자일로 유명한 회사의 조직구조를 벤치마킹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