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전반기 네덜란드에는 무서운 흑사병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하필이면 스페인군에 맞서 수십 년째 독립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는데 집단 전염병까지 주기적으로 찾아왔죠. 인구가 뚝뚝 감소하는 일이 십수 년마다 반복됐습니다.
나라가 망했을까요? 아니요. 오히려 쑥쑥 성장했습니다. 전쟁이나 전염병 유행과는 별개로, 네덜란드는 동방무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며 부를 쌓았습니다. 해군력을 키워서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과학과 예술도 융성했습니다. 화가 렘브란트와 페르메이르(베르메르)가 이때 활약했고, 시중에 돈이 넘쳐나다 보니 튤립 구근 한 뿌리가 집 한 채 값에 거래됐다는 전설 역시 바로 이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이때 확보한 인도네시아 식민지는 이후 300년 동안 네덜란드를 먹여 살렸고요. 그래서 역사가들은 17세기 전반기를 ‘네덜란드의 황금시대(The Dutch Golden Age)’라고 부릅니다.
기나긴 전쟁과 전염병의 혼란 속에서 국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설명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클수록 인간은 더 많은 용기와 창의력을 발휘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언제 어떻게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이니 조상님이 물려주신 땅에 가만히 앉아서 농사만 짓고 사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은 먼 바다로 목숨을 건 항해를 떠나거나 신사업에 전 재산을 투자하는 데 익숙했습니다. 리스크-테이킹을 당연히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덕분에 많은 혁신이 일어났습니다.
미래의 불확실성은 단기적으로는 사람을 움츠려들게 하지만, 장기화되면 오히려 변화를 촉진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사신(死神)의 랜덤 방문을 기다리느니 밖에 나가서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요즈음, 벌써 반년이 넘어가는 코로나19 위기와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도 이제 새로운 일상이자 ‘뉴 노멀’이 돼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엑셀 시트 속 떨어지는 숫자들을 보며 가만히 기다리거나 수비적으로 반응하는 비즈니스에 과연 어떤 미래가 있을지 자문해 봅니다.
움직입시다. 위기의식을 변화의 에너지로 사용해 봅시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로컬에서 글로벌로 혹은 글로벌에서 로컬로 비즈니스의 프레임을 옮겨 봅시다. 10명 하던 일을 2명이 해보거나, 2명이 하던 일에 10명을 투입해 봅시다. 나이나 경력과 상관없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데 도전해 봅시다. 지금은 뭘 해도 내외부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기 쉬운 시기입니다.
시간이 지나 이 시기를 뒤돌아봤을 때, 2020년의 코로나 위기는 나와 우리의 황금시대의 시작이었다고 회상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