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벌써 다 갔네’라고 생각하는 분 많을 겁니다. 찬바람이 불고 달력이 또 한 장 넘어가면서 올해를 되짚고 내년을 계획하는 분도 있겠지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도 어느덧 2021년 마지막 호입니다.
지난 일을 되돌아 볼 때 우리의 기억은 그다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삶을 어떻게 경험하는지와 어떻게 기억하는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경험하는 순간에 존재하는 자아를 ‘경험자아(experiencing self)’, 경험한 일을 재구성해서 기억하는 자아를 ‘기억자아(remembering self)’라고 했습니다. 경험하는 자도 나요, 기억하는 자도 나지만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는 별도로 존재하며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누구나 좋은 일도 겪고 나쁜 일도 경험하지만 기억에 남는 형태와 내용은 저마다 다릅니다. 행복한 사람은 유독 행복한 기억을 머금고 살아가는데, 행복한 기억은 경험 그 자체보다는 경험하며 채워지는 충족감이나 성취감, 경험 당시 주변을 둘러싼 공기의 느낌이나 색깔, 공유한 사람과 긴밀히 연결된 어떤 순간들로 저장됩니다.
조직은 어떨까요? 우리 조직은, 그리고 구성원들은 올 한 해를 어떻게 기억할까요?
HBR 이번 호가 던지는 화두는 ‘프로젝트’입니다. 전통적으로 기업은 조직을 ‘운영’하는 데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성과를 평가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모두가 운영의 관점에서 행해졌습니다. 운영은 한마디로 ‘현재 역량의 효율적 활용’입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해서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통칭합니다. 프로젝트는 ‘새로운 역량의 탐색’입니다. 이제껏 꺼내 쓰지 않던 역량을 끌어올려 새롭게 도전해보는 모든 과정을 말합니다. HBR은 조직이 유지(운영)와 변화(프로젝트) 사이에 균형을 잡아야 한다며 양손잡이가 될 것을 조언합니다.
일상적인 업무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계속 도전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경영자는 없을 겁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애자일이나 린 방법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등 작고 가벼운 모듈형 조직 운영을 촉진하기 위한 방법이 잇따라 소개되며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다수 경영자에게 프로젝트 베이스의 조직 운영은 그다지 익숙한 일이 아닙니다. 구성원은 물론 리더들도 빼곡한 ‘to-do list’에 압도돼 새로운 어떤 것에 고개 한 번 돌려보지 못한 채 올해를 마무리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HBR은 리더가 프로젝트 관리를 무시하고 그 중요성과 잠재력을 간과하면 조직의 미래가 심각한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조직에 성장 동력을 제공한다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제가 눈여겨 본 것은 ‘프로젝트가 업무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입니다. 조직 구성원 차원에서도 경험과 기억은 다릅니다. 일상적인 업무에 빠져 매일을 비슷하게 보내는 구성원이라면 회사 또는 회사 일에서 가슴 뛰는 순간을 만나기 어려울 겁니다. 구성원들이 두고두고 꺼내보며 활력과 영감을 얻는 기억은 대체로 ‘프로젝트’에서 나옵니다. 때로는 실패한 프로젝트라도 말이죠. 우리 조직에서 진행되는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다시 한번 점검해 봐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