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회계법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증권사, 자산운용사, 그리고 지금의 PE펀드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기업의 사업계획서를 봐왔다. 사업계획서는 간단히 말해 회사의 미래 손익계산서를 추정한 자료다. 회사가 미래에 이런 성과를 내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회사의 계획이다. 사업계획서상에는 기업들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수많은 매출 상승 및 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 미래에 대한 임직원들의 목표가 숫자로 반영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업계획서상 회사의 미래는 마냥 장밋빛인 경우가 많다. 많은 임직원들의 목표가 반영돼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기업의 사업계획서는 PE펀드가 그 기업에 투자하거나 기업을 인수할 때 반드시 검토하는 자료다. PE펀드가 투자 의사결정을 할 때는 사업계획서 작성을 위해 기업이 고려하는 사업상 가정, 그리고 그 가정의 실현가능성을 검토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바꿔 이야기하면 회사가 미래에 얼마나 성과를 내고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본다. 물론 회사의 과거에 대해서도 많은 스터디와 분석을 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회사의 미래를 가늠해보기 위한 과정일수도 있다. 즉, PE펀드에 미래가치는 그렇게 중요하다.
대기업들이 M&A를 하는 이유
이번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실린 로저 L. 마틴 교수의 아티클 ‘자본에 대한 경영자의 착각’을 읽고 떠오른 사례가 있다. 바로 2014년 진행된 한화그룹과 삼성그룹간의 M&A다. 2조 원이라는 높은 인수가격뿐만 아니라 국내 대기업 그룹 간 M&A라는 이유로 업계에서 큰 화제가 됐던 거래였다.
삼성그룹은 그룹 내 핵심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이유로 계열사 4개를 한화에 약 2조 원에 매각했고, 한화그룹은 기존의 비즈니스와 시너지 있는 기업을 인수한다는 명분이 있어 거래가 성사됐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한화가 인수했던 삼성 계열사들은 2014년 대비 영업이익이 약 8배 상승하면서 한화그룹의 성장에 큰 밑거름이 됐다. 혹자는 이 결과를 보고, 미래가치를 바탕으로 과감한 승부를 건 한화그룹의 승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과연 이런 평가는 옳은 것일까? 마틴 교수의 의견에 따르면 그렇게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 기업 경영에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과감한 베팅으로 삼성계열사를 인수해서 8배나 성장시킨 한화그룹은 M&A의 승자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삼성그룹도 2조 원이라는 매각대금을 반도체 같은 핵심산업에 투자하면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을 수행했고, 현재는 업계 경쟁자들과의 ‘초격차(超格差)’를 실현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도 선두그룹에 속하는 기업이 됐다. 삼성그룹도 자신들이 매각한 계열사의 미래가치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선택과 집중이 적절한 전략이라고 판단해서 매각을 단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화그룹뿐만 아니라 삼성그룹도 그런 의미에서 M&A의 승자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대기업은 특정 계열사 혹은 사업부를 M&A 할 때 단순히 미래가치만이 아니라 여러 상황을 고려해서 판단을 내린다. 기업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이기 때문이다. 마틴 교수의 글은 이런 부분에서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