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대에 아마 빅데이터만큼 막강한 무기는 없을 겁니다. 웬만한 문제는 다 해결할 수 있을 정도지요. 특히 헬스케어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곤 합니다. 감염 추적이나 의료진•의약품 공급망 관리에도 빅데이터를 사용하고요. 나이 들어 병에 걸렸을 때 치료비를 어떻게 감당할지 계획할 때도 빅데이터가 사용됩니다.
하지만 데이터와 프라이버시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란 쉽지 않습니다. 빅데이터 관련 법규나 규정이라 해봐야 기껏해야 EU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이나 미국 캘리포니아의 소비자개인정보보호법(CPA) 정도일 뿐입니다. 규제 기관이나 소위 전문가라는 분들은 그동안 데이터의 ‘수요’ 측면에만 중점을 둬왔습니다. 정작 데이터의 주인인 개인은 배제한 채, 페이스북이나 구글, 우버와 같은 기업 프로그램에서 이 데이터를 어떻게 사용하고 판매할 것인지에만 신경 써왔다는 것이지요. 반면, 데이터의 ‘공급’ 측면은 간과해왔습니다. 즉, 데이터가 어디에서 만들어졌으며, 누가 만들었고, 누가 실제로 그 데이터의 주인인지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이 모든 데이터는 우리의 디지털 ID, 즉 인터넷상에서 만들어진 ‘가상 세계 속 나’의 일부인 셈입니다. 기업이나 기관 대부분도 이 디지털 ID를 가지고 나라는 사람을 바라봅니다. 디지털 식별 기업인 WISeKey의 카를로스 모레이라(Carlos Moreira) CEO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정체성은 여러분의 것이지만 그 정체성이 세상과 소통하면서 만들어내는 데이터는 다른 이의 소유입니다.”
그동안 우리 스스로도 자신의 데이터에 대해 기업들만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 달라져야 합니다. 데이터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아야 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우리 자신의 데이터를 주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의 주도권을 쥐어 우리 삶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분야는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헬스케어 분야가 앞으로 가장 기대됩니다.
어째서 헬스 데이터인가
경제학자 로버트 샤피로(Robert J. Shapiro)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동차회사 GM이 자동차의 원재료인 강철, 고무, 유리를 공짜로 사용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지금 딱 대형 인터넷 업체들이 그런 상황이에요.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모으길 원하면서도 동시에 프라이버시나 개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의 리더들에게는 진짜 어려운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럼, 우리가 여태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 일단 나 자신의 데이터로 헬스케어 관련 장기 계획을 세울 수도 없습니다. 치료 계획, 사용하는 의약품·의료용품, 의료보험이나 기타 보험, 건강저축계좌(HSA) 사용 등에 있어 나에 대한 자료를 하나도 쓸 수 없어요. 이 모든 데이터가 다른 사람의 손에 들려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 곳도 아니고, 헬스케어 서비스 업체, 제약회사, 보험사, 국가 기관 등 무수히 많은 곳의 서로 다른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돼 있습니다. 나의 데이터에 정작 나 자신은 접근할 수 없는데 제삼자는 할 수 있죠. 그것도 보통 우리가 모르게 말이에요.
• 그럼 뭔가 혜택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혜택은커녕 오히려 데이터가 유출되거나 잘못 사용되기라도 하면 뒷감당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 됩니다. 2019년, 미국 의료정보수집기관이 해킹당했을 때 50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습니다. 혈액 검사 회사인 Quest Diagnostics, LabCorp, BioReference Lab 등에서 검사를 받은 사람들의 정보였죠. 이들 업체 중 단 한 곳도 사기를 당하거나 피싱스캠의 쓰나미에 시달린 곳은 없습니다. 아마존, 테스코 같은 업체들과는 달리 이런 헬스케어 업체들은 고객 데이터를 고객의 건강 증진이나 비용 절감에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데이터를 오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 또한, 나와 내 가족을 위해 내 데이터를 관리하거나 돈을 벌 수도 없습니다.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 사건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헨리에타 랙스의 암세포는 암 치료제 개발에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그녀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 개인의 사생활은 언제나 위험에 노출됩니다. 가족의 사생활도 마찬가지고요.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감시카메라를 사용했습니다. 확진자의 추적 데이터, 즉, 어디에 사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감염됐는지, 언제 회복했는지, 자가 격리는 했는지, 외출했을 때 몇 도였는지, 누구랑 접촉했는지 등을 확인하는 데 쓰였죠. 프라이버시는 자유의 근간이지만 팬더믹 같은 특수 상황에서는 사회적 이익을 위해 개인 프라이버시가 희생되곤 합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도 개인 데이터를 되돌려 받거나 지울 방법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 의료 정책을 만드는 데 목소리를 낼 수도 없습니다. 다른 환자들과 힘을 합쳐 의료 서비스 가격을 낮추거나 서비스 향상을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의료 시스템에서 우리 자신을 뺀 다른 모든 이해관계자는 우리의 데이터로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보험료율이나 보장 범위에 관해 정부와 협상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규정을 만들도록 로비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 데이터를 갖고 말이죠. 미국 제약협회(PhRMA) 혼자 2018년에 로비 활동에 2750만 달러를 썼습니다. 개별 기업 역시 무려 총 1억9430만 달러를 썼고요.
요즘은 웨어러블 기기가 보급되고 IoT가 발전함에 따라 인슐린 수치나 혈압을 쉽게 잴 수 있게 됐습니다. 하루에 몇 걸음을 걷는지, 계단은 몇 개나 오르는지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의료 데이터나 여타 개인정보를 소유함으로써 위에 언급한 다섯 가지 문제, 즉, 데이터에 대한 접근권, 데이터 보안, 프라이버시, 수익화, 법안지지(advocacy)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기존 기술을 이용해 우리 필요에 맞게 데이터를 관리한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