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습관 중에서도 가장 잘 안 바뀌는 게 바로 ‘장보기 습관’입니다. 임신이나 이사, 이직, 전직같이 삶의 궤도가 정말 크게 바뀌는 순간이 오지 않은 이상 우리는 장바구니에 늘 비슷한 먹거리, 마실거리를 담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모두의 삶이 한순간에 뒤집어졌습니다. 슈퍼마켓을 한번 둘러보세요. ‘요식업계 수난 시대’라는 말이 실감 나실 겁니다. 3월에는 불과 일주일간 식료품점 매출이 돌연 전년 대비 77% 급증했습니다. 식당 매출은 66% 급감했는데 말이죠. 4월 말에도 식료품점 매출은 평균보다 8% 불어난 반면 식당 매출은 48%나 줄었습니다.
최근 미국 대다수 주가 경제활동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죠. 이에 따라 쇼핑, 요리, 외식 분야의 ‘뉴노멀’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저는 2017년에 직접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셀프쿠킹족’에 대한 글을 기고한 적이 있는데요, 셀프쿠킹족은 조리업계의 슈퍼컨슈머였지만 지난 20년간 그 인구가 3분의 1이 줄어 이젠 미국 전체의 10%에 그치고 있습니다. 저는 당시 글에서 이 같은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분석하고, 요리도 바느질처럼 쇠퇴기를 맞이했다는 주장을 펼쳤죠. 요리도 바느질처럼 과거에는 모두가 하던 일이지만 이제는 아주 소수만이 즐기는 취미가 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수백만 명이 집에만 머물게 되면서 제 주장이 틀린 게 돼버렸습니다. 식음료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업체 헌터Hunter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의 54%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시기에 비해 훨씬 더 요리를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응답자의 35%는 요리가 ‘그 어느 때보다 즐겁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셀프 쿠킹족이 3배로 늘어났고요,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업계에 큰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실 대대적인 지각변동까지는 아니어도 앞으로 ‘집밥’ 문화가 확산될 건 분명해 보입니다. 뉴노멀 시대에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가구가 늘면서 조리/장보기 및 테이크아웃/배달 산업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점은 정작 요식업계의 운명을 결정짓는 이 같은 흐름이 요식업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최근 식료품 산업 및 관련 업계에 변화를 가져오는 요인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해봤는데요, 놀랍게도 세 가지 모두 음식과는 전혀 상관없는 요소입니다.
1. 재택근무가 늘어난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를 할 여력과 의향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식품 업계에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요리는 집에 머무는 시간과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재택근무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겠죠? 구글은 2021년까지 재택근무를 연장하고 트위터 CEO 잭 도시도 코로나 사태가 종식된 이후에도 얼마든지 재택근무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2017년 재택근무를 하는 미 노동자는 전체의 5%로 2000년 대비 3% 이상 증가했습니다. 미 노동통계국은 미 근로자 가운데 29%가 재택근무를 할 의향과 여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업계와 회사가 어떻게 하면 생산적인 재택근무 환경을 만들 수 있을지 궁리하고 있습니다.
그럼 앞으로 재택근무는 얼마나 늘어날까요? 이를 파악하려면 회사가 재택근무를 통해 무엇을 얻는지, 또 직원이 무엇을 원하는지 양쪽을 두루 종합해 고려해야 합니다. 최고재무책임자를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0%가 비용 절감 차원에서 원격근무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재택근무로 10년 임대 계약 같은 고정비를 각종 수당 같은 변동비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렇다면 앞으로 재택근무가 확대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겠죠. 컨설팅기업 케임브리지그룹The Cambridge Group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소비자에게 미친 영향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의 44%는 현 상황을 크게 우려하며 사회적 거리 두기 같은 극단적 조치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저는 이 같은 회사 차원의 움직임과 근로자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감안했을 때 앞으로 전체 노동자의 20~30%가 집에서 일하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수년 전과 비교했을 때 무려 4배에서 6배까지 증가한 수치입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런 대규모 재택근무가 고소득 지역의 고소득 노동자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미 소득 상위 25% 가구의 62%가 재택근무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수치는 미국 평균의 두 배에 이릅니다. 1인당 소득 기준 도시별 순위를 보면 상위권에 캘리포니아, 뉴욕, 매사추세츠가 꼽힙니다. 이들 도시야말로 앞으로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레스토랑, 식료품은 물론 관련 수직 계열 산업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실험대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