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의 중국 탈출 행렬이 심상치 않다. 링크트인과 카르푸가 각각 8년, 24년 만에 영업을 접고 법인 지분을 매각하는 등 중국 철수에 한창이다. 월마트와 맥도날드 등 다른 기업들도 지분의 상당 부분을 정리하고 폐점에 나섰다.
일단 그럴 수밖에 없다. 중국의 패권 야심으로 정치 및 경제 분야에서 마찰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기존의 서구 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들의 대중국 투자 리스크가 늘어나고 있다. 요즘 어디서나 디커플링 이야기가 들린다.
하지만 지정학 리스크 탓만 할 순 없다. 이미 미중 갈등이 본격화하기 전부터 서구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었다. 물론 상황이 불리해졌음에도 여전히 잘나가는 서구 기업도 있다. 따라서 지정학이 아닌 전략 문제라는 지적을 귀담아들어 볼 만하다.
명암이 극도로 갈리는 다음 몇 가지 사례를 보자.
2006년 대형 전자제품 유통업체 베스트바이는 중국 대도시를 중심으로 대형 쇼룸 매장을 열고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월드 엑스포를 앞두고 정부가 추진하는 중국 도시개발 정책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중국 소비자 그룹을 사로잡을 심산이었다.
완벽한 필승 전략 같지 않은가?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베스트바이는 큰 손실을 기록했다. 중국 내 시장 점유율은 고작 1.8%에서 주춤하고 말았다. 불과 수년 만에 수천만 달러가 날아가자 2011년 베스트바이는 중국 시장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이번에는 반도체 제조사 AMD를 보자. 최근 베스트바이와는 차원이 다른 높은 실적을 보였다. 2020년까지 AMD의 가장 큰 고객은 중국 시장으로 중국 내 매출이 23억 달러에 달한다. AMD의 등장으로 인텔의 시장 지분이 줄었다. AMD 제품에 열광하는 마니아가 수천만 명으로 늘어나면서 특별 매장을 따로 개점했을 정도다. AMD가 크게 성공하자 인텔은 지역 시장용으로 저가 프로세서와 핸드폰을 개발하는 유사한 전략을 도입했다.
두 기업의 운명은 시장 진입 전략에서 갈렸다. 지정학적 요인이 아니었다. 베스트바이는 부유한 소비자가 모여 있지만 경쟁이 치열한 시장을 공략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와 달리 2004년 AMD는 저렴한 제품으로 중국 소도시나 변두리 등 지방 시장에 있는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자 했다. 이 전략으로 당시 시장 선두주자였던 인텔과 경쟁을 피할 수 있었다. 판 샤오밍(Pan Xiaoming) 중국 AMD 고위 임원은 “시골 2억 가구 가운데 10%만 컴퓨터를 사도 컴퓨터에 들어가는 칩과 더불어 컴퓨터 2000만 대를 파는 셈이다”라고 강조했다. 또 AMD는 농촌 등 지방에 저렴한 가격으로 가전제품을 보급하도록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중국 정부 사업인 가전하향(Home Appliances going to the Countryside 또는 家电下乡) 정책에 참여해 지방 시장의 매출을 한층 더 크게 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