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직무나 행정적 직함으로 묶인 안정적인 업무 개념이 현대 직장에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팬데믹 이후 노동 환경의 변화, 글로벌 불확실성, 기술의 급속한 발전 속에서 기업은 더욱 유연한 업무 구조로 전환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대표 사례가 직무 해체job deconstruction다. 이는 직원의 기술을 고정 역할이 아니라 특정 과제나 프로젝트에 따라 유동적으로 배치하는 새로운 업무 조직 방식이다.
직무 해체는 업무 재설계의 여러 접근 방식을 포함한다. 그 적용 범위는 연속적인 스펙트럼을 따른다. 급진적인 예로 자포스Zappos는 전통적인 직함과 위계를 완전히 없애고 오직 임시적인 기능적 역할을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한다. 이런 대담한 접근 방식은 조직 구조를 완전히 새롭게 재구상하는 사례다.
스펙트럼의 중간 지점에는 유니레버Unilever와 같은 기업이 하이브리드 모델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유니레버의 ‘유 워크(U-Work)’ 프로그램은 일부 직원이 고정된 역할 없이 여러 프로젝트에서 유연하게 일하면서 정규직 혜택을 유지할 수 있게 설계됐다. 이를 통해 조직은 내부 인재를 기민하게 활용할 수 있으며 직원은 조직문화와 내부 프로세스에 익숙한 상태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외부 프리랜서를 활용할 때 발생하는 비용과 통합의 어려움도 줄일 수 있다.
정규직을 유지하면서 직무 해체 기회를 제공하는 사례도 있다. DBS은행, 슈나이더일렉트릭Schneider Electric, 미국 연방 정부의 내부 인재 이동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다. 여기서는 직원이 기존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부서 간 협업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런 이니셔티브는 직원에게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경력을 성장시킬 기회를 제공한다. 동시에 기존 직무를 유지할 수 있어 조직과 개인 모두에 이점을 가져다 준다.
직무 해체는 조직 내 인재 배치를 최적화하는 혁신적인 방식으로 떠올랐지만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도전 과제가 따른다. 이런 과제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필자는 직무 해체 도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핵심 갈등을 연구했다. 이 연구는 직무 해체를 시범 운영하는 여러 조직과 협력한 연구자 및 컨설턴트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또한 포천 500대 기업과 공공기관을 포함한 여러 조직의 사례 연구 및 보고서를 분석해 실제 적용 사례를 조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