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혁신의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인 병사들은 부품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자체 제작한 패치로 항공기와 지프를 수리했습니다. 아폴로 13호가 폭발한 후 나사 엔지니어들은 우주비행사를 안전하게 지구로 데려올 기발한 솔루션을 개발해냈지요.
오늘날의 팬데믹도 이미 수많은 혁신을 낳고 있습니다. 다이슨은 열흘 만에 새로운 환풍기를 개발했습니다. 알리바바와 종바이Zhongbai는 협업을 통해 무인 스토어를 열어 필수품과 소독제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테이크아웃 음식의 수요가 치솟는 가운데 치킨 전문점 칙필레Chick-fil-A는 드라이브 스루 주문 과정을 개선해서 안전과 효율성을 극대화했습니다.
사실 이런 사례들이 크게 놀랍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애자일 경영의 원칙과 실천을 연구하고 많은 기업에 컨설팅해 왔는데요, 많은 기업이 이미 관료제의 굴레를 벗어나 애자일 방식을 택하면서 빠른 혁신을 이뤄내는 것을 숱하게 목격했습니다.
기업들은 어쩌다 우연히 애자일의 힘을 발견하는 것 같습니다. 혁신을 이룬 기업 임원들이 전략적으로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혁신을 이뤘다고 보상을 받는 직원도 없습니다. 혁신이 고위 임원이나 기획팀의 작품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전형적인 의사결정 관문을 거치지도 않습니다. 대개 직원 몇 명이 모여 긴급한 니즈를 발견하고, 우선순위가 낮은 활동을 멈추죠. 전형적인 관료제적 절차를 탈피해 평범한 회사원이 아닌, 기업형 맥가이버로 변신해 스스로도 놀라고 보스도 놀라게 하죠. 애자일도 비슷합니다.
오늘날 기업이 얼마나 애자일한지를 보여주는 현상은 또 있습니다. 기업의 '에너지 대사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대형 유통업체의 한 임원은 매일 30분 정도 여러 부서의 직원들로 구성된 그룹과 미팅을 열고 그날그날의 과제를 해결한다고 합니다. 이 팀은 ‘안전’ 같은 핵심 원칙만을 세우고 운영 관련 세세한 결정은 각 부서의 관리자에게 일임합니다. “과거에는 한 달에 다섯 가지 정도의 큰 의사결정을 내렸는데 요즘은 매일같이 다섯 가지의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결정이 크게 잘못된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런 갑작스런 순간의 애자일의 힘은 약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혁신이란 체계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돌발적으로 나타납니다. 긴급 상황이 해소되고 나면, 사람들은 대부분 명령과 통제 형태의 전통적인 혁신으로 복귀하죠. 다음 위기가 또 닥치면 그제야 다시 애자일 방식을 고려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위기가 끝난 후에도 애자일을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