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회의실에 앉아 있다고 상상해 보자. 발표 주제에도 어느 정도 관심이 있고 발표자가 썩 발표를 잘하는 것 같다. 회의를 마친 지 30분이 지난 후 발표 내용을 기억해 보려 한다. 커피가 쓰지 않았고, 방이 너무 추웠으며, 발표자가 분홍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는 것은 기억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필자도 신경과학자로서 이에 공감한다. 필자 또한 직장에서 몇 시간 동안 학술 강연을 듣고 수많은 연구 논문을 읽지만 보통 그 정보의 극히 일부만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최근에는 책을 집필하면서도 결국 현장에선 전하고자 한 대부분의 세부 사항이 잊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인간의 기억에 관한 지난 약 100년에 걸친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경험한 일의 대부분을 하루 안에 잊어버린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 중 극히 일부만이
향후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노벨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박사는 "우리는 기억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메시지가 효과적이려면 반드시 기억에 남아야 한다.
무엇이 기억에 남는 메시지를 만들까?필자는 <
Why We Remember>를 집필하면서 기억의 과학에 대한 한 세기가 넘는 연구를 독자들이 이해하고 일상생활에 적용 가능한 방식으로 요약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이를 바탕으로 ‘기억에 남는 메시지 작성을 위한 네 가지 C’를 고안했다. 당신도 기억 과학
memory science의 개념을 활용해 프레젠테이션, 이메일, 연설 등 기억에 남는 메시지를 작성할 수 있다.
1) Chunk: 정리하기
인간의 뇌는 한 번에 기억할 수 있는 정보량이 제한적이다. 심리학자들은 이 한계를 “작업 기억 용량
working memory capacity”이라고 부르는데 서너 개 정도의 정보에 불과할 수 있다. 이러한 병목 현상은 청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량을 크게 제한한다. 다행히도 한 가지 중요한 허점이 있다. 바로 무엇이 하나의 정보를 구성하는지에 대해 확립된 정의가 없다는 것이다.
작업 기억 용량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중심 아이디어 아래에 전달하려는 요점을 명시적으로 묶는 ‘
청킹chunking’을 사용할 수 있다. 청킹을 사용하면 청취자는 조각들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연결해 해당 자료에 대한 풍부한 기억을 구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도 기억력을 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할 때 예전에는 해야 할 일이 나열된 긴 목록을 알려주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뇌는 신체의 일부이므로 몸에 좋은 것이 뇌와 기억력에도 좋습니다"라고 간단히 대답한다. 필자는 이 간단한 개념을 바탕으로 해야 할 일(유산소운동, 지중해식 식단, 충분한 수면 등)과 피해야 할 일(만성 스트레스, 감염, 대기오염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하나의 기본 원칙에서 출발해 두 가지 하위 범주로 세분화해 단절된 사실들의 나열을 응집력 있는 지식 네트워크로 정리한다.
2) Concrete: 구체화하기복잡한 주제를 전달할 때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면 메시지를 기억에 남게 만들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정의"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판사봉"과 같이 쉽게 시각화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개념보다 더 외우기 어려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도 과학자로서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커뮤니케이션에 적용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수년 동안 필자는 학생들이 배우기를 원하는 개념에 모든 시간을 집중해 수업했다. 하지만 <
Why We Remember>를 집필할 때는 같은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른 접근 방식을 채택해야 했다. 그래서 필자는 독자의 몰입을 위해 감각적인 디테일로 장식된 감성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각 장을 시작했다.
그중 한 가지는 엉망이 돼버린 생일 파티를 주최했던 이야기였다. 필자가 골프채로 피냐타
piñata를 부수고 "한 아이가 잔디밭에서 발견한 스니커즈 미니 초콜릿 바를 가지려고 마당을 가로질러 올림픽 체조 선수처럼 뛰어가는" 이야기로 끝이 났다. 어떤 기억은 오래 남고, 어떤 기억은 그렇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려는 필자의 요점과 이러한 디테일은 큰 관련 없다. 하지만 이러한 세부 사항은 독자의 감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생생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독자들은 그 챕터에서 관련 정보를 불러올 때 이러한 정보를 정신적 책갈피로 사용할 수 있다.
3) Callbacks: 되새김 유도하기이전에 배운 내용을 기억해 두면 필요할 때 더 강력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스와힐리어로 단어를 외우려고 할 때 단어를 기억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시험에서 단어를 상기시키는 것만큼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는 청중을 테스트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유쾌하지 않기 때문에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조사했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뇌를 스캔했다. 각 이야기의 한 지점에서 몇 분 전에 설명했던 사건을 다시 언급하는 문장이 있었다. 되새김하는 동안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 데 관여하는 뇌 회로가 더 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러한 되새김은 피험자들이
이야기에서 더 많은 정보를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됐다
책 전반에 걸쳐 "지난 장에서 알아본 대로…"와 같이 전략적으로 선택한 몇 가지 되새김 문구를 넣어보자. 각 되새김 문구는 현재 주제와 책의 앞에서 다룬 주제 사이의 연관성을 강조해 독자들이 이전에 읽은 내용을 떠올리며 스스로 테스트해 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보너스로 이전에 읽은 내용과 새로운 정보를 연결해 독자가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된다.
4) Curiosity: 호기심 자극하기프레젠테이션의 초점을 최종 메시지로 이어지는 데만 맞춘다면 큰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필자는 200편 이상의 학술 논문과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연구 지원서를 작성하면서 기억에 남는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답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력 있는 질문을 설정’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한 직관은 필자의
동적 기억 연구소에서 수행한 뇌 영상 연구를 통해 더욱 강화됐다. 자기공명영상(MRI)을 사용해 사람들이 질문에 직면하고 답을 알고 싶어 할 때 도파민을 처리하는 뇌 영역의 활동이 급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러한 뇌 영역은 좋아하는 피자집에 가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과 같이 보상을 좇는 데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도파민은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 뇌의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이는 호기심이 학습을 촉진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도파민 분출을 자극하는 핵심은
지식 격차를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세상에 대한 지식의 격차를 갖고 있지만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청중이 알고 있는 것과 알기를 바라는 것 사이의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뇌에 약간의 오류 신호를 유도해 새로운 학습에 도움이 되는 상태를 유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필자의 책 제목은 간단한 질문을 담고 있다. "기억의 목적은 무엇인가?
What is the purpose of memory" 직관적으로 우리는 대부분 기억의 목적이 과거의 모든 경험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사람들에게 기억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청중은 명백해 보이는 질문에 대한 반직관적인
counterintuitive 대답을 마주했을 때 흥미를 느끼거나 회의적일 수도 있지만 강연이 어디로 향할지 궁금해할 가능성이 높다.
이 글을 읽는 동안 이 글을 더 기억에 남게 하기 위해 앞서 설명한 “C”를 포함시켰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모든 내용을 기억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글에서 한 가지만 기억한다면 우리의 즉각적인 경험은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보를 공유하고 싶다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기억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원문 | https://hbr.org/2024/08/how-to-craft-a-memorable-message-according-to-science차란 랑가나스는 UC 데이비스UC Davis의 신경과학센터 및 심리학과 교수이자 동적 기억 연구소 소장이다. <Why We Remember: Unlocking Memory’s Power to Hold On to What Matters>를 집필했다. 에디팅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