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장은 2021년 말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후 2022년 폭락했다. 가치 하락 폭은 매우 컸다. 2021년 11월 2조9000억 달러에서 1년 뒤 약 8000억 달러로 떨어졌다. 시장 가치가 하락하면서 주요 암호화폐 대출 업체와 거래소도 함께 무너졌다.
현재 이들 플랫폼 상당수가 소송과 범죄 혐의에 시달리고 있다. 셀시우스(Celsius)는 사기 혐의로 고소당했다. 보이저 디지털(Voyager Digital)은미등록 증권 판매 및 고객 호도로 집단 소송에 직면했다. 블록파이(BlockFi)도 유사 혐의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및 32개 주정부와 합의했고, 여전히집단소송을 겪고 있으며 결국 파산 신청했다.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USD(TerraUSD) 창시자 테라폼 랩스(Terraform Labs)의 공동 설립자에 대해서는 두 건의 집단 소송이 제기됐으며 한국에서 체포 영장이 발부됐다. 최근 파산 신청한 중앙화 거래소 FTX는 ‘심각한 사기 및 관리 부실’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으며 공동 설립자 샘 뱅크맨 프라이드(Sam Bankman-Fried)는 의회,검찰,민사 소송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사태를암호화폐의 종말로 본다. 최근 일련의 사건은 암호화폐가 단지 허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암호화폐의 기반이 붕괴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투명하지 않은 암호화폐 거래 플랫폼들의 실패라고 봐야 한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자신이 감수하는 위험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운영 방식 말이다. 투자자가 플랫폼 간 암호화폐 자산을 상대적으로 쉽게 옮길 수 있다는 점은 플랫폼 간 경쟁을 치열하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암호화폐 거래 플랫폼들은 투자자들에게 심각한 위험을 숨기는 대신 매력적인 부분만 홍보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붕괴는 사실 새로울 것이 없다. 불투명한 거래 플랫폼과 플랫폼 간의 치열한 시장 경쟁은 다른 많은 상황에서도 금융 붕괴로 이어졌다.
그러나 고정 알고리즘을 비롯한 극도의 투명성에 바탕을 둔 분산형 프로토콜에 기반한 암호화폐 시장은 사정이 달랐다. 이 부문의 플랫폼은 동일한 시장의 힘에 영향을 받았지만 혼란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이 글에서 최근 일련의 사건을 야기한 경제적 역학에 대해 설명해보겠다. 그리고 분산형 금융이 성숙하면서 더 나은 투명성과 소비자 보호를 통해 암호화폐 인프라의 경쟁 이점을 활용할 방법에 대해 논의해 보겠다.
웹 3.0의 경쟁과 불투명성
왜 이런 상황이 야기됐는지를 이해하려면 암호화폐/웹 3.0의 경쟁이 여러 전통적 비즈니스 환경과 다르게 작동하는 이유부터 알아야 한다.
기존 금융기관과 웹 2.0 플랫폼에서 데이터와 자산은 ‘담장이 쳐진 정원(walled gardens)’에 비유돼 왔다. 자산을 옮기는 데 상당한 비용과 노력이 들었기 때문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에서는 사용자가 직접 만든 콘텐츠를 추출하기 어렵고, 추출한다 해도 다른 플랫폼으로 쉽게 이전하기 어려운 파일 형식으로 추출된다. 사람들 역시 자산 전환 비용이 상당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실제로 더 좋은 금융 상품을 잘 찾으려 하지 않았다.
반면 암호화폐는 사용자의 자산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쉽고 직관적으로 옮길 수 있게 해준다. 자산이 상호 운용 가능한 공개 블록체인에 저장되고 관리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플랫폼 전환 비용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낮아진다. 사용자는 자신의 자산을 통제할 수 있으며 경쟁사 플랫폼으로 떠날 때 기존 플랫폼에 알릴 필요조차 없다. 결과적으로 플랫폼은 사용자 유치뿐만 아니라 유지하기 위해서도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경제학 법칙에 따르면 이런 경쟁은 긍정적인 결과로 나아가야 한다. 플랫폼의 가격을 낮추고 품질을 향상할 뿐 아니라, 구매자 대중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그들을 보호해 소비자에게 이익이 돼야 한다. 바로 그 때문에 규제기관과 정책 입안자는 소비자 후생을 높이기 위한 메커니즘으로 경쟁을 명시적으로 권장한다.
경쟁이 소비자 후생으로 이어진다는 경제학 법칙은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일정 부분 작동했다. 낮은 사용자 전환 비용을 이용해 대체 가능한, 대체 불가능한 암호화 토큰을 모두 거래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이 출범했으며, 이 플랫폼은 새로운 기능과 낮은 수수료를 제공해 시장점유율을 확보했다. 애그리게이터를 통해 사용자는 수많은 플랫폼에서 손쉽게 거래 기회를 비교할 수 있었고 플랫폼은 사용자에게 더 많은 거버넌스 토큰과 기타 보상을 제공하며 서로 경쟁했다. ‘이자 농사(yield farming)’가 또 다른 예다. 사용자는 다양한 제공 상품과 낮은 전환 비용에 대한 공개 정보에 의존해 알고리즘에 따라 가장 높은 이자 상품에 자본을 즉시 재할당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