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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최고의 연사는 청중을 먼저 생각한다

디지털
2023.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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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필자는 세계 커뮤니케이션 포럼의 폐막 기조연설을 위해 미국 뉴욕에서 스위스 제네바로 날아갔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 아이디어와 자신에 대해 자신감 있게 표현하는 방법을 세계 리더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런 귀한 기회가 생겨 기쁜 마음이었다. 필자는 45분간의 발표를 위해 양질의 연구 자료를 모으고 관련 사례나 해당 주제에 관해 직접 집필한 책에서 발췌한 정보, 청중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 등을 다양하게 준비해갔다.

그런데 회의 진행이 지연됐다. 필자의 순서에 앞서 진행된 모든 프레젠테이션 과정과 패널들이 제한 시간을 넘겼다. 결국 마지막으로 필자의 순서가 돌아왔을 때는 시간이 고작 8분밖에 남지 않았다. 45분짜리였는데 말이다. 발표를 위해 대서양까지 건너왔는데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울고 싶었다. 8분을 넘겨 원래 주어진 시간대로 발표를 마친 뒤 뉴욕으로 돌아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에 몸을 싣고 싶었다.

하지만 감정을 다스렸다. 중요하지 않은 내용은 다 걷어내고, 즉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조언을 중심으로 8분간 발표를 진행했다. 이 발표는 어떻게 됐을까. 성공적이었다. 참석자들은 나의 융통성과 집중력, 유머 감각에 감탄했다며 저녁 식사에 늦지 않게 해줘서 고맙다고도 했다. 위기의 순간 필자는 이기심이 아닌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택한 것이다.

서번트 리더십은 로버트 K. 그린리프(Robert K. Greenleaf)가 만든 용어다. '권력을 공유하고 타인의 필요를 우선시하며 사람들이 최대한 성과를 거두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리더를 말한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앉은 사람의 권력에 초점을 맞추는 전통적인 리더십 모델과 대조된다.

연설자로서 회의실 앞에 있으면 마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수 있다. 발표를 청중이 알고 싶어 하고, 알아야 하는 내용을 다룰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기보다 연설자가 알고 있는 내용을 보여주는 자리로 여기기 쉽다. 이는 청중이 아닌 연설자 중심의 사고방식이다. 반대로 서번트 리더로서의 화자는 자기 인식과 공감 능력, 선견지명을 보여준다. 서번트 리더의 특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자기 인식

앞서 언급한 발표 자리에서 몇 달 동안 힘겹게 작업한 프레젠테이션의 약 80%를 잘라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분노와 불안이 동시에 밀려왔다. 다른 연사들이 할당된 시간을 넘겨 화가 났다. 줄어든 시간에 맞춰 발표 내용을 간결하고 설득력 있게 고칠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걱정도 됐다.

게다가 필자는 감정이 겉으로 잘 드러나는 편이라 내가 가진 분노와 불안이 청중들에게 전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은 전염성이 있다. 리더는 자신의 감정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더욱이 감정이 잘 드러나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이 당사자의 표정을 알아차리고 모방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을 기억하자.

청중을 화나게 하거나 불안하게 만들긴 싫었다. 무대에 오르기 전 감정을 다스려야 했다. 필자는 프레젠테이션 전, 여러 감정 중에서도 주로 불안을 느꼈다. 이런 자기 인식을 통해 청중들에게 나의 감정이 전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 가지 전략은 '이름을 붙여 길들이는name it totame it‘ 방법이다. 이 기술은 본래 UCLA ‘마음챙김 연구센터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의 창립 공동 책임자인 대니얼 시겔Daniel Siegel 박사가 개발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이름을 붙이는 방법이다. 자신의 감정을 파악하면 그 감정이 불러일으키는 뇌와 신체의 스트레스 및 불안을 빠르게 줄일 수 있다.

또는 '내 감정이 무슨 역할을 하려고 하는지' 스스로 질문해 볼 수도 있다. 하버드 의대 맥린McLean병원 코칭 연구소의 공동 창립자이자 공동 책임자이며, 하버드 의대 심리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수전 데이비드Susan David 박사는 사람의 감정에는 다 역할이 있다고 말한다.

감정은 우리의 관심을 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발표할 때 나에게 생기는 감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스스로 질문해 보자. 어쩌면 내가 불안한 까닭이 정확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싶지 않아서일 수 있다. 또는 화합을 중시하는 사람으로서 평지풍파를 일으킬 수 있는 내용을 발표하자니 걱정되는 것일 수 있다. 또는 청중에게 완전히 인정받고 싶거나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 자체가 불안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잘하고 싶은 마음을 이용해 동료를 상대로 큰 소리로 발표를 연습하자. 그리고 피드백을 받아 발표를 개선해 나가도록 한다. 인정받지 못할까 걱정된다면 동료에게 건설적인 비판자devil's advocate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해 함께 연습한다. 반발이나 이의 제기에 대한 대처법을 연습하면 그 과정에서 통찰력을 얻을 수 있고 어떤 순간이 닥쳤을 때 막힘없이 답할 수 있도록 대비할 수 있다.

공감

발표자가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가 무엇일까? 단지 '음' '어'처럼 의미 없는 군더더기 말을 했다거나, 파워포인트가 지루하거나 어려운 질문에 답하지 못해서는 아니다. 그보다는 청중의 희망과 두려움에 공감하지 못한 채 발표자가 하고 싶은 말과 생각만으로 끌어가는 자세가 가장 큰 문제다.

서번트 리더십 방식의 발표는 이런 모델과는 정반대다. 나 자신의 의제에 우선순위를 두기보다는 청중의 의제가 먼저다. 청중에게 이해받기보다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타인에게 호기심과 관심, 연민을 보인다.

제네바에서 필자는 약속대로 45분간 발표하고 싶었다. 그러나 발표 시간을 더 달라고 싸운다면 그건 나를 위한 것이지 저녁 식사도 못 한 채 안절부절못하는 청중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은 필자의 욕구보다는 내 발표를 통해 가장 적절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청중의 필요에 무게중심을 뒀다. 필자는 “이제 마지막 발표만 끝나면 저녁 식사 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다”며 “식사가 늦어지지 않도록 빨리 끝내겠다”라고 했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앉아만 계신 것 같은데 발표를 진행하는 동안 일어나서 좀 걷거나 스트레칭도 하시고 뭐든 필요한 일을 하시라고 말했다.

서번트 리더십의 관점에서 보여줘야 할 공감 능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는 훈련이 있다. 먼저 머릿속에 침대를 그려본다. 어떤 침대라도 좋다. 그 침대를 떠올리면서 서번트 리더십과 관련해 청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질문해 본다.

• 청중을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게 하는 건 무엇일까? 청중은 무엇에 흥분하고, 무엇으로부터 동기부여되는가? 성장? 기회? 협동? 혁신? 이런 질문이 발표 시 무엇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지 알아낼 단서가 된다. 내부 프레젠테이션인 경우 발표자가 이미 우선순위를 알고 있을 것이다. 발표를 듣는 사람이 이전 회의나 대화, e메일을 통해 이런 목표들을 이미 공유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부 청중인 경우 회의 개최자에게 물어보거나 몇 명의 참석자에게 미리 e메일이나 간단한 전화를 통해 그들의 관심사나 우선순위를 알아볼 수 있다.

• 청중이 잠 못 이루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을 걱정하는가? 시간? 돈? 품질? 인원수? 가시성? 실행 가능성? 평판? 그것이 무엇이든 발표할 때의 우선순위를 파악할 수 있는 두 번째 단서가 된다.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찾아내도록 한다.
청중의 마음과 생각을 파악했다면 이런 주제를 도입 부분에 다룰 수 있도록 발표를 준비한다. 청중들은 이기심보다는 공감을 보여준 발표자에게 더 높은 집중도와 호응을 보일 것이다.

선견지명

서번트 리더는 자기 경험과 직관을 활용해 과거 경험에서 교훈을 얻고, 오늘날의 현실을 이해하며 결정에 대한 미래의 결과를 합리적으로 예측한다. 좋은 발표자도 이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30년간 전문 연설가이자 연설 코치로 살아왔다. 따라서 예정된 연설 시간이 지났을 때 청중의 관심과 흥미, 선의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은 결국 ‘지는 싸움’이라는 점을 경험해왔다. 청중으로서도 그런 경험을 한 적 있다. 정해진 시간이 지났는데도 연사의 발표를 계속 집중해 들어야 할 때만큼 긴장되고 짜증이 날 때가 또 없다.

그날은 필자보다 먼저 발표한 다른 연사 몇 명이 발표 시간을 넘긴 것이 현실이었다. 긴 하루가 지나고 저녁 식사 시간까지 고작 8분 남은 시점이었다. 45분 분량의 내용이 있었지만 그만한 시간이 없다는 것도 현실이었다. 남은 시간보다 오래 발표한다면 청중이 더 이상 집중하지 않으리라는 합리적 예측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준비한 내용 전부를 짧은 시간 동안 서둘러 다루려 한다면 청중은 너무 많은 정보를 감당하지 못해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그러면 연사로서 내 신뢰도도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필자는 청중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내용만 전달하고 콘퍼런스를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기로 했다. 이런 선견지명 덕분에 청중들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지나고 나서 보니 역시 옳은 선택이었다.

청중을 고려한다

청중을 대상으로 발표한다고 생각했을 때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해 본다. ‘청중이 이 주제에 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모른다면 아는 사람에게 물어본다. 주제에 대한 청중의 이해도가 낮다면 발표 초반에 기초적인 지식을 전달하도록 한다. 청자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전문 용어나 내부자 용어, 약어, 기술 용어 등을 최소화한다. 발표란 내가 이해한 것을 과시하는 시간이 아닌 청중의 이해를 돕는 시간임을 기억하자. 청중이 발표 주제에 대해 이미 교육받았거나 경험이 있다면 청중의 눈높이에서 출발한다.

청중 사이에서도 사전 지식의 격차가 있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수많은 청중을 대상으로 발표하는 경우에는 꽤 헷갈릴 수 있다. 그럴 때는 주요 대상이 누구인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들에게 맞춰 발표를 진행하도록 한다. 일부 청중을 소외시키고 싶지 않다면 그런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도 좋다. “이 분야를 처음 접하는 분들도 계시고 여러 해 동안 몸담아 오시거나 수십 년간 경험이 있는 분도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몇 가지 기본 용어를 정의하고 난 뒤 여러분께서 알고 계시는 세부 사항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전문가께서는 오늘 대화에서 여러분의 소중한 경험과 관점을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문가를 대상으로 발표할 때 필자는 보통 이렇게 얘기한다. 그러면 청중은 자신이 소외되지 않고 인정받았다는 점을 고맙게 여긴다.

청중 입장에서 지금 발표자가 이해해줬으면 하는 현실은 무엇인가? 청중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발표자가 권력을 가진 위치에 있거나 발표자의 입장과 청중의 상황이 다른 경우 이런 부분이 특히 중요하다. 이런 경우에는 청중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먼저 만나야 한다. 나의 생각을 교육하거나 설득하기에 앞서 연민을 갖고 청중의 상황과 감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청중의 위치에서 만난다는 것은 대략 이런 느낌이다. "제가 이해한 게 맞다면 여러분은 최근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변화가 걱정되고, 위에서 정보가 잘 내려오지 않는 듯해 초조하시죠?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혼란스러우실 거예요. 제 생각이 맞나요? 제가 놓친 것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말한 다음,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이 과정을 통해 '발표자'도 독백이 아닌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사실 자주 그래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청자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발표자가 원하는 것만 얘기하면 청자는 제대로 이해와 존중을 받지 못한 채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뿐 아니라 분노마저 느낀다. 경험상 그런 발표는 효과적이고 성공적인 발표가 아니다.

발표 후에도 발표자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청자로서는 공유하고 싶은 질문이나 반론, 아이디어가 있을 수 있지만 발표자가 이를 주어진 시간 동안 다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청중이 발언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지 않도록 발표 도중 이렇게 말하면 된다. "더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발표가 끝난 후에도 계속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회의를 마친 뒤에 남아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거나, e메일 주소를 공유하고 링크트인을 통해 연락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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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발표한다고 뛰어난 연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청자가 듣기 원하고, 들어야 하는 내용을 다뤄야 한다. 이를 통해 그들이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내리게 돕고, 그 과정에서 공감과 주인 의식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원문 | https://hbr.org/2022/12/the-best-public-speakers-put-the-audience-first


데보라 그레이슨 리겔(Deborah Grayson Riegel)은 전문 연설가이자 전문 회의 진행자, 커뮤니케이션 및 프레젠테이션 기술 코치로 현재 듀크대 푸쿠아경영대학원(Fuqua School of Business)에서 리더십 커뮤니케이션을 강의하고 있다.

번역 류아람 에디팅 장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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