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하면 폭군 같은 상사가 가만히 있는 부하 직원을 말도 안 되게 괴롭히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괴롭힘은 궁극적으로 권력에 관한 것으로 직급은 수많은 권력의 원천 중 하나일 뿐이다. 직장 내 괴롭힘 연구소(WBI)에 따르면 미국 전체의 직장 내 괴롭힘의 14%가 상향식 괴롭힘(upward bullying), 다시 말해 부하 직원이 상사를 괴롭히는 경우였다.
괴롭힘을 당하는 관리자들은 괴롭힘당하는 부하직원이나 동료 직원들이 느끼는 것처럼 동일한 정신적, 실체적인 피해를 경험한다. 관리자가 괴롭힘 때문에 우울증, 불안, 자신감 상실, 건강 악화를 경험하는 것이 흔하고, 이 괴롭힘이 관리자의 실직과 커리어 이탈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부하직원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의 금기나 마찬가지다. 많은 관리자가 부하직원에게 괴롭힘당했다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느끼기 때문이다. 말을 하더라도 피해자인 상사가 손가락질당하기도 한다.
필자 캐롤라인(Caroline)의 클라이언트인 레일라(Leila)는 다국적 기업의 영국 지사에서 제품개발팀의 단합에 몇 달 동안 힘썼다. 레일라는 팀의 리더로서 여러 피드백을 수용하고 그룹 브레인스토밍을 이끌며 적극적으로 일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업무를 붙잡고 팀원들에게 하나하나 가르쳐줬고 샘플을 만들겠다며 야근도 불사했다.
그런데 에인절(Angel)이라는 팀원은 일을 질질 끄기 일쑤였다. “비전이 정확히 뭔가요? 정말 꼭 필요한 비전인가요? 이게 어떻게 잘될지 저는 감도 안 잡히는데요. 직접 하시는 게 어떨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레일라는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팀장으로 일하며 각종 혁신상을 받고 언제나 예상치를 웃도는 성과를 냈었는데도 말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신의 프로젝트가 자신과 상관없는 윗선의 결정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레일라는 자신이 까맣게 모르는 사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눈을 가린 채 비행기를 모는 듯 막막함이 밀려 왔다. 그러다 에인절이 자신을 무시하고 자신의 상사에게 직접 가서 보고하고 논의하며, 그 과정에서 나온 최종 결정을 자신에게 전달하지 않고 에인절 자신이 직접 이행해 마치 팀장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에인절 때문에 자신의 평판이 하락하고 있는 것이었다.
레일라는 자신의 상사인 젬마(Gemma)를 찾아가 왜 에인절이 자신을 거치지 않고 바로 젬마에게 보고하는 것을 허락했는지 물었다. 그러자 젬마는 레일라가 비전이 부족하고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리더십이 떨어진다며 깎아내리는 한편 에인절이 얼마나 적극적(initiative)인지 추켜세웠다. 젬마는 레일라에게 이 상황을 먼저 문제 삼은 적이 없었지만 레일라가 말을 꺼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퇴사하든지, 강등당하든지 양자택일하라고 종용하기까지 했다.
이미 이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이 바닥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레일라는 퇴사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출근 마지막 날, 레일라는 우연히 에인절이 흥얼거리며 노래 부르는 것을 듣고 말았다. “내가 이겼네. 마녀가 죽었다.”
이후 레일라가 무너진 자신감을 어느 정도 추스르면서 부하 직원에게 괴롭힘당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됐을 무렵, 레일라는 에인절이 자신으로부터 승진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에인절의 파트너와 젬마의 파트너가 서로 같이 일하는 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 혼자 “눈먼 비행”을 하고 있다는 그 수상쩍은 느낌은 착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에인절과 젬마는 처음부터 작정하고 중요한 정보를 자신에게 감췄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레일라와 같은 사례는 흔하다. 상향식 괴롭힘은 대개 정보 은폐하기와 미묘한 가스라이팅처럼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상향식 괴롭힘은 이렇게 상사의 권위를 끌어내리고 심리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밀어 넣은 다음, 상사에 대한 터무니없는 헛소문을 퍼뜨리고 따돌리며 불복종하는 단계로 진행된다. 그 결과 제물이 된 상사의 위치는 위태로워지고 생활도 무너진다. 일반적으로 부하 직원의 괴롭힘은 희생양이 된 상사보다 한두 직급 더 높은 임원의 묵인 또는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아무리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크더라도 젬마가 용인하지 않았더라면 에인절은 레일라를 괴롭힐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