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습식 사료는 아래쪽 선반에 놓여 있었다. 무릎을 꿇어가며 잔뜩 웅크린 채로 재고를 점검하는 동안 주문이 또 들어왔다. 스마트폰이 울렸다. “치즈 포함/불포함 해산물 사료, 다양한 맛의 캔 사료 스무 개.” ‘다양한 맛’이라는 건 ‘치즈 포함/불포함’이라는 말과 상충하는 말 아닌가? 아니면 해산물 사료에 여러 가지 맛이 있나? 내가 너무 깊게 생각하는 건가?
경영대 교수로서, 그리고 고양이를 기르지 않는 사람으로서 필자는 그날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하지만 유명 배달 업체 포스트메이트(Postmates)에 소속된 한 명의 배달부로서 생각하면 이 일은 내가 수행한 238건의 배달 중 한 건일 뿐이었다. 필자는 배달부들이 어떻게 자신의 근로 정체성을 수립하는지 그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배달부가 돼 18개월간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포스트메이트에서 일하면서 130시간을 운전했고 유사 플랫폼인 우버, 리프트, 도어대시(DoorDash), 그럽허브(Grubhub), 인스타카트(Instacart) 등에서 총 17만 건의 배달과 운전을 했다. 그 과정에서 다른 배달부들을 인터뷰했으며 대면 및 화상회의에 참석했고 페이스북, 레딧 등에 개설된 배달부 모임에서 활동했다.
필자의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놀랍지 않다. 필자는 배달부로 일하면서 “왜 내가 사는 아파트 구조를 속속들이 모르느냐” “왜 현관 비밀번호를 모르느냐”고 질책하는 고객들을 상대했다. 앱에서 활동하는 많은 근로자는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필자 또한 가장 벌이가 좋은 곳을 선택하고 미로같이 어지러운 아파트를 피하는 등 배달부로서 최고의 효율을 도모했다. 하지만 손에 쥐는 것은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기는 돈뿐이었다.
이 연구가 심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노동의 본질 자체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본 연구를 통해 필자는 시스템이 근로자들 개인의 독특한 정체성과 각자가 가진 경험, 미래에 대한 포부를 어떻게 억제하는지 직접 목격하고 경험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배달 시스템은 사람들을 ‘발전의 대상’이 아닌 그저 적절히 활용돼야 하는 프로그램 코드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란 체력과 지능을 단순히 돈으로 치환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일하면서 더 폭넓은 방식으로 삶을 설계하고 이는 곧 우리의 정체성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