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여러 조직은 백인 중심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흑인 자본주의’ ‘흑인 은행’ ‘에스닉 식당’이란 말들을 자주 쓰지만, 백인이 운영하고 백인 고객을 둔 은행은 그냥 ‘은행’이라 부른다. 백인이 소유한 기업은 그냥 ‘사업체’다. 이런 사고방식은 인종이라는 말 자체가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 백인들의 권력장악 현상을 잘 보지 못하게 만든다. ‘핏fit’이라는 애매한 개념에 기반한 직원 채용방식, 백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 자리를 잡는 기업, 유럽식 미(美)의 기준에 뿌리를 둔 복장과 스타일 강요, 비백인 직원은 당연히 코드스위칭을 해야 한다는 기대 등은 모두 비백인 직원들에게 미묘한 불이익을 가할 수 있다. 조직이 얼마나 백인 중심인지를 체크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차별 금지 정책과 다양성 증진 정책을 펴왔는데도 별로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식의 정책들이 더러 소수집단의 대표성을 높이는 경우도 있지만, 예전부터 미국기업 안에 자리잡은 인종 계층화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기업의 인종 다양성을 높이는 방법을 묻는 것보다, 어째서 백인들이 이렇게 많은 권력과 조직적 권위를 여전히 쥐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 옳다.
나는 ‘인종 중립적 조직’이라는 개념이 일터에서의 인종 간 관계를 이해하는 데 큰 지장을 줬다고 본다. 학자들은 흔히 조직은 대체적으로 인종 구분에 무관심한데, 가끔 그런 기준에서 벗어나서 인종차별을 하는 곳이 있다는 정도로 간주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보통 우리가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미국의 수많은 주류 조직들은 백인 우위로부터 이득을 얻었고, 백인 우위 현상을 강화해 왔다.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많은 미국 기업들은 능력주의가 아니라 ‘백인다움’을 우선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이해가 바탕이 됐을 때에만 경영자가 비로소 인종 이슈를 일시적인 문제나 체크리스트의 한 항목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회사의 근본 문제라고 인식할 수 있다. 그래야만 현재 하고 있는 여러 다양성 증진 활동이 비백인들을 채용하고, 유지하고, 승진시키는 데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하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