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이라는 주제는 이제 기업계에서 주류가 됐다. 투자자들은 환경, 사회, 지배구조라는 ESG 관련 요인에서 기업이 이룬 성과가 장기 수익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빠르게 실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인식 속에서 ‘지속가능한 투자’가 ‘투자’의 기본 조건이 돼 가고 있다. 기업 CEO들도 대부분 ESG 이슈들이 기업 전략에 반영돼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지속가능성 혁명을 완강히 저지하는 이해집단이 하나 있다. 바로 기업의 이사회다. 기업의 미래를 수호해야 할 이사들이 단기수익 극대화라는 구시대적 가치를 고수하면서 종종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2019년에 글로벌 회계컨설팅법인인 PwC가 700여 명의 공개기업 이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6%는 이사회가 지속가능성 관련 사안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고 답했다. 이런 근시안이 형성된 데에는 이사회의 다양성 부족이라는 측면도 한몫 했을 것이다. 구미 기업의 경우 대부분의 이사들이 비슷한 배경의 백인 남성이면서 그중 다수는 ESG 요인들과 기업 실적의 연관성이 분명히 인식되지 않았던 시절에 직장생활을 했던, 비슷한 연배의 은퇴 임원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최근까지도 이사회에는 지속가능성 문제를 놓고 씨름할 권한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 대신 이사들은 기업 비서실과 조직 안팎의 협의체가 추진하는 컴플라이언스 업무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다.
‘기업의 목적corporate purpose’은 이사회가 ESG 사안들에 더 주목하고 장기적 성공을 위해 기업을 관리해야 한다는 자극제가 된다. 그런 점에서 기업이 환경과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높이고자 추진하는 모든 노력의 중심에는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미션이 있어야 한다. 그런 목적이 없으면 기업은 지속가능한 기업 전략을 세울 수 없고 투자자도 지속가능한 수익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이사회에는 경영진의 임기를 초월해 세대 간 견해를 수용할 의무가 있으므로 목적을 규정하는 궁극적인 책임은 이사회에 귀속돼야 한다.
본 연구는 목적을 기업 지배구조에 주입하는 주제를 가지고 20여 개국에서 다양한 산업에 속한 기업 100여 개의 오너, 이사회 의장, 임원들과 나눈 방대한 대화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이 연구는 옥스퍼드대의 주도로 버클리캘리포니아대, 투자관리사인 페더레이티드 에르메스Federated Hermes, 법무법인 WLRK1, 영국학사원British Academy이 참여한 EPI2라는 공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수행됐다. EPI 프로젝트의 목표는 미국과 유럽의 학계 및 업계 리더들이 모여 기업의 목적과 전략, 성과를 연계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 내용과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나온 주요 결과물이 바로 SCORE인데, 이는 이사회가 목적을 바탕으로 성과를 내도록 보조하는 하나의 방법론이다. SCORE의 기본 틀은 원래 옥스퍼드대 기업평판연구소 소장이자 EPI 의장인 루퍼트 영거Rupert Younger가 고안했다. 이 방법론은 이사회가 ‘오래 지속되는 가치 제안durable value proposition’과 그 동인들을 명확히 밝히고 육성하도록 돕는 다섯 가지 조치로 구성된다. 즉 단순화하기Simplify, 연계하기Connect, 책임지기Own, 보상하기Reward, 예증하기Exemplify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