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컴Swisscom의 리더들은 어떻게 성장전략에 발맞춰 하나로 뭉칠 수 있었나?
idea in brief
도전과제 기업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혁신적인 신성장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하지만 리더십 팀은 어느 정도의 성장이 필요한지, 어떤 시장과 혁신 유형에 투자할 것인지에 관해 일치된 의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접근방법 성숙산업의 침체 또는 쇠퇴에 직면한 글로벌 통신기업 스위스컴의 리더들은 구조화된 대화와 상호 활동으로 구성된 특별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프로그램을 통해 의견 조율이 필요한 영역을 드러내고 팀원들이 공동 성장목표와 전략에 대한 합의를 이룰 수 있다.
결과 프로그램 참여 후 스위스컴은 명확한 장기 성장전략을 마련할 수 있었다. 혁신적인 벤처기업을 설립했으며, 투자를 감독하는 벤처캐피털과 같은 이사회를 만들고, 일정에 따라 매년 자금조달 규모를 늘려나갔다. |
2016년, 스위스 베른에 본사를 둔 스위스컴은 성숙기 산업의 덫에 걸린 것 같았다. 당시 전 세계 통신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연매출은 고작 1% 성장하는 데 그쳤고 이익이 줄었으며 가격도 떨어지고 있었다. 스위스컴은 오랫동안 혁신을 거듭해 온 기업이었다. 1960년대에는 국제 직통전화 서비스, 1990년대에는 2G 모바일 서비스 분야를 개척했다. 스위스가 광대역 인터넷망 보급률에서 세계 최고를 달성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시가총액 120억 달러에 달하는 이 거대 기업마저 정체기를 겪고 있었다. CEO 우르스 셰피Urs Schaeppi를 비롯한 고위경영진은 디지털기술로 인해 급변한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 장기적 성장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하지만 어떤 방향이 최선인지를 두고선 의견이 갈렸다. 일부 임원은 느리게 성장하더라도 효율성을 제고하면 이익을 더 많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 달리 새로운 시장을 담대하게 개척해야 한다고 믿는 임원들도 있었다. 어떤 리더는 “과제에 관한 공통된 인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스위스컴 고유의 기업문화와 의사결정 방식도 전략적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어떤 임원은 다수의 의견을 채택하는 관행이 “진정한 스위스식 민주주의”라고 주장했고, 또 다른 임원은 “스위스인은 갈등을 다루는 데 서툴다”고 비꼬기까지 했다.
이런 모습은 성공한 대기업이 흔하게 겪는 일이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의 클레이턴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교수와 조지프 바우어Joseph Bower교수는 명저 <혁신기업의 딜레마>의 기초가 된 1995년 HBR 기고 글에서 파괴적 변화disruptive change에 대응할 때 가장 힘든 과제가 바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경영자들은 신성장 영역에 인력과 자금을 투입해야 함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스타트업 같은 경쟁사에 뒤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과 미래에 대한 견해 차이가 발목을 잡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한다.
새로운 전략에 따라 조직을 정렬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이를 연구하는 별도의 분야가 생겨나기까지 했다. 예컨대 최근 MIT 슬론경영대학원에서 관리자 4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회사의 3가지 전략적 우선순위를 정확히 알고 있는 관리자는 28%에 불과했다. 많은 기업이 전략과 실행의 괴리가 커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리더들은 “세상이 변하고 있으니 우리도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촉구한다. 자문단을 영입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며, 숫자를 분석한다. 이에 근거해 의사결정을 내린다. 겉으론 합의가 이루어진 듯하다. 하지만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는 게 문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되풀이된다. 피상적인 전략적 재배치가 조직문화에까지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면서 실질적인 변화가 추진되지 않는 것이다.
분열된 리더십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인식한 CEO 셰피는 소수의 전략변혁 팀strategic transformation team을 결성해 이 글의 공동저자인 마커스 메서러와 스위스컴 내부의 변화관리 담당자로 하여금 이끌게 했다. 이노사이트의 버나드 퀴멀리가 팀의 자문을 담당했다. 변혁팀은 10명의 이사회(이하 ‘리더십 팀’)와 긴밀히 협력했다. 그동안 스위스컴의 전략기획 프로세스는 중·단기 계획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셰피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시도하기로 한다. 세 차례의 경영진회의에서 시각화된 데이터를 통해 공통된 이해 기반을 구축하고, 전략적으로 이견을 드러내며, 신체적 활동을 통해 의사결정을 촉진하고자 했다. 그 결과 리더십 팀의 의견은 스위스컴의 2025년 ‘북극성North Star’ 비전으로 모아졌다. 데이터 보안과 사물인터넷, 핀테크 및 교통 같은 수직 시장의 성장기회에 자원을 할당하기로 했다.
정밀한 가정(假定)의 중요성
장기적인 성장과 성과 목표를 정하는 것은 불확실성을 다루는 문제다. 핵심사업 중에서 어떤 분야가 급격히 쇠퇴하고 성장할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왜 어떤 혁신은 성공하는데 또 다른 혁신은 실패할까? 지금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없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 모두 명확하게 답을 내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데이터들은 모두 과거에 관한 것이다.
미래에 관한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리더는 전략 계획을 수립할 때 정확한 추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바람직한 추정은 시한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쉽게 추적,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대형 글로벌 은행의 HR리더들이 향후 인사관리 계획을 고민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들에게 ‘직원들의 연령대가 낮아질 것’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맞는 말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모호하다.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다 정확하게 추정하려면 ‘현재 30세 미만 직원의 비율은 21%지만 2023년에는 26%가 될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수치가 구체적이어야 측정도 하고 조정도 할 수 있다.
명료한 추정은 ‘모호성 효과’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모호성 효과는 사람들이 결과를 모르는 옵션보다 결과를 아는 옵션을 선택하길 선호하는 경향을 말한다. 추정이 명료할수록 더욱 예리하고 효과적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
스위스컴에서 사용한 기법은 신경과학과 행동심리학, 신체활동과 인공물이 창의적 사고에 미치는 영향의 연구에서 착안했다. 이 방법은 일반화가 가능해 의료기기, 법률서비스 같은 다양한 산업과 지역에 쓰이고 있다. 이 글은 스위스컴이 사용한 기법의 핵심 요소를 개괄해 설명한다. 먼저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전에 공통된 이해 기반을 탄탄하게 마련해야 하는 이유부터 살펴보자.
공통된 이해 기반을 구축하라
전략과 실행이 어긋나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기본 용어부터 제대로 정의해야 한다. 20세기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어떤 세계의 언어를 모르고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그 세계에 진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영진이 미래 성장전략의 세계에 진입하려면 다음 세 가지 주요 질문에 관해 공통된 정의와 가정을 공유해야 한다.
어떤 비즈니스에 몸담고 있는가? 스위스컴의 경우에 중요한 시발점이 된 질문은 ‘통신회사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였다. 산업 간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리더들 사이에서도 사업의 경계를 두고 서로 다르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전의 통신업은 네트워크 자산을 설치하고 그로부터 수년 또는 수십 년 동안 수익을 창출하는 예측 가능하고 제한된 비즈니스였다. 하지만 스위스컴이 처한 환경이 달라졌다. 콘텐츠와 연결성이 융합되고, 클라우드, 가상현실, 사물인터넷에 이르는 혁신적인 기술이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스위스컴의 리더 중 일부는 통신업이 음성, 데이터 서비스 같은 기존 사업 영역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통신을 훨씬 더 광범위한 ‘생산성 솔루션’ 비즈니스로 보면 더 많은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었다. 리더십 팀은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관점을 좁혀서는 안 된다고 보고, 처음부터 주력 사업의 범위를 확장하는 전략을 세우기로 했다.
그렇다면 어떤 분야를 어떻게 확장해야 하는가? 이 문제를 토론하려면 먼저 혁신을 논의하기 위한 공통된 언어가 필요했다.
어떤 유형에 속하는 혁신인가?스위스컴의 임원들은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혁신의 범주를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예컨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란 용어에 대한 이해도 서로 달랐다. 어떤 임원은 업계 리더가 점유하고 있던 시장에 스타트업이 진입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이해했다. 반면, ‘비이용자에 대한 접근을 확대하는 혁신’이라고 보다 구체적 정의를 내리는 이들도 있었다. ‘전략적 변혁strategic transformation’이라는 용어조차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됐다.
리더십 팀은 토론에 활용할 공동의 언어로 새로운 어휘를 도입하기로 했다. 일례로 코어형 혁신core innovation은 기존 제품을 향상시키면서 제조와 유통 비용을 낮춘다는 의미다. 인접형 혁신adjacent innovation과 변혁형 혁신transformative innovation(파괴적 혁신 포함)은 새로운 시장, 고객 부문 및 비즈니스 모델의 성장을 주도하는 혁신을 가리킨다.
리더십 팀은 이 같은 정의를 바탕으로 잠재적인 성장 기회를 조사했다. 신성장 영역마다 하위팀을 결성해 통신업이 ‘생산성 솔루션’이라는 광의의 개념에 부합하는 사업 기회를 조사했다. 하위팀은 인공지능, 운송 플랫폼, 데이터 보안, 5G 네트워크, 클라우드 애플리케이션, 텔레매틱스 및 블록체인 기반 금융서비스를 검토했다. 각 부문의 시장 규모를 평가하고 잠재적 인수대상을 확인하며 경쟁구도를 조사했다.
성장 격차growth gap는 얼마나 되는가?미래를 계획하는 데 중요한 단계 중 하나는 기업의 성장 격차를 측정하는 것이다. 과감하게 도전할 경우와 큰 변화 없이 현 상태를 유지할 경우 각각 발생하는 매출과 이익의 차이를 측정해 비교한다.
성장 격차는 경쟁, 투입비용, 시장수요, 신규 벤처기업의 성과 등 굉장히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는 중요한 단계다. 그래서 인터랙티브하게 시각화된 데이터를 통해 제시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연구 결과도 시각화를 활용할 때 의사결정의 신뢰도가 높아져 더 나은 성과가 나온다고 밝힌다.
전략적 변혁 팀은 2025년 시점에 예상되는 성장 격차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폭포차트waterfall chart라는 시각적 툴을 사용했다. 폭포차트는 본래 재무 팀이 시나리오 플래닝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작성하는 데이터를 시각적 형태로 제공하는 툴이다. 전략적 변혁 팀은 이 툴을 이용해 다양한 시나리오상에서 기본 가정을 변경함에 따라 격차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줬다. 리더십 팀에 미래를 예측하는 부담을 줄여주면서 보다 정확한 가정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목표였다.(‘정확한 가정의 중요성’ 참고)
스위스컴 경영진들은 전략을 토론할 때 폭포차트를 지속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운영 효율성, 새로운 규정 및 기술 동향 등에 대한 가정과 신성장 계획 및 기술 플랫폼의 다양한 조합에 따라 미래 수익의 추정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스위스컴은 5G 기술과 고급 모바일 서비스가 향후 실적을 크게 변화시킬 것임을 깨닫게 됐다.
리더십 팀이 가장 놀란 부분은 기회 손실 비용이었다. 신성장 분야에 집중하지 않을 경우 2025년에 이르러 잠재적 수익과 미실현 수익 간 격차가 무려 수십억 스위스프랑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스위스프랑의 가치는 미국 달러와 거의 동등하다. 리더십 팀은 폭포 차트에 나타난 놀라운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고 지금 새로운 전략에 따라 조직을 재배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됐다.
이견이 드러나게 하라
전략기획 프로세스의 두 번째 단계는 리더십 팀원 간 이견을 확인하는 단계다. 리더십 팀원 10명은 인구통계학적으로나 출신배경으로 볼 때 서로 비슷했기 때문에 의견 조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동질적인 팀 문화에서조차 관리자들은 이견이 있어도 그것을 숨긴 채 상사의 의견, 심지어는 직급이 같은 동료의 의견을 그대로 따르곤 했다.
이런 식의 의견 존중은 일련의 인지적 편향을 통해 강화되며 좋은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집단적 사고도 강력한 인지적 편향 중 하나다. 집단적 사고에 매몰되면 말 그대로 괜한 소란을 일으키기 싫어 솔직한 의견을 내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대신 말해줄 거라고 생각하거나 의견을 말하면 하고 싶지 않은 임무를 맡게 될까 걱정하는 경우도 많다. 결과적으로 여러 이유들 때문에 남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침묵을 지키거나 아예 딴생각을 하며 조용히 앉아있는다. 사람들이 혼자 일할 때보다 집단 속에서 덜 열심히 일하는 사회적 태만social loafing 현상이 나타난다. 대부분의 집단이 이런저런 편견들이 합쳐진 만장일치라는 환상에 굴복하고, 침묵이나 희미한 합의로 갈등을 감춰버리곤 한다.
우리의 목표는 그런 갈등을 없애기보다 오히려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관점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토론방식을 도입했다. 코넬대 엘리자베스 매닉스Elizabeth Mannix교수와 멜버른대 카렌 젠Karen Jehn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갈등을 통제한 집단의 토론이 더 생산적이었다. 집단적 사고와 과열된 논쟁을 가장 성공적으로 피할 수 있었던 집단은 개인적 악감정 같은 ‘관계 갈등relationship conflict’은 줄이면서 리더 선택이나 자원배분 방법 같은 ‘과정상 갈등process conflict’을 점진적으로 늘렸다. 또 목표달성 방법 같이 일정 수준의 ‘과업 갈등task conflict’을 유지했다.
전략적 변혁 팀은 생산적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해 의견이 상충하는 항목들을 사전 조사했다. 회의 중 사람들이 이견 때문에 놀라게 되면 토론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합의에 도달하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팀원들은 회사의 전략적 포부, 벤처기업의 잠재력, 신기술의 영향, 핵심사업의 지속가능한 차별화 역량 등에 관해 솔직한 의견을 말했다. 팀원 10명의 설문조사 결과를 모두 확인했더니 의견조율이 필요한 부분이 놀라울 정도로 많았다. 팀원들은 자연스럽게 회의 중 진행될 활동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다.
사진: <사람이 바꾼 하늘 풍경> 연작
프랑스 사진작가 알랭 들롬(Alain Delorme)은 비닐봉지 작품 '떼(Murmurations)'로 세계적 환경오염 문제를 조명하고 있다. 2013년 9월
우선 리더십 팀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6명으로 이루어진 ‘낙관론자’ 그룹에는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충족돼야 하는지 설명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비관론자’ 그룹 4명은 상황이 악화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두 그룹의 다소 과장된 이름은 팀원들의 긴장을 완화하고 유머를 더하는 효과를 냈다. 한 팀원이 “정말 낙관주의자시네요”라고 말하자 상대가 “정말 비관주의자시네요”라고 웃으며 받아쳤다. 이어서 팀의 다른 멤버들은 차례로 일어나 성장 대 긴축에 관한 자기 입장을 설득했다. 한 사람도 예외없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규칙이다. 또 각 임원은 모든 견해와 주장을 빠짐없이 투명하게 진술해야 했다. 스위스 특유의 예의를 차리는 문화에서 이런 토론이 쉽지는 않았지만 팀원들 간 근본적인 의견차가 뒤늦게 발견되는 일이 없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였다. 이 활동을 통해 임원들은 서로 매우 다양한 의견차가 있음을 알게 됐다. 낙관론자는 성장 위주의 투자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비관론자들은 전략적 비용 절감을 옹호했다.
두 라이벌 그룹은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제시한 낙관과 비관의 이유를 요약해서 벽 크기의 포스터를 만들었다. 각 그룹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 전략적 변혁 팀은 마음이 바뀌거나 그룹을 바꾸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아무도 없었다. 놀랄 일이 아니었다. 견해차를 확인했다고 사람들의 마음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다음 세션에서는 입장을 수정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몸을 움직여라
다음 단계로 합의를 보기 위해 퍼실리테이터를 두고 원탁회의를 진행하는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활동은 의견 조율에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겉으로는 합의에 이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전략적 변혁 팀은 리더십 팀원들에게 몸을 움직여 달라는 이상한 부탁을 했다. 팀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만도 상당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 단계는 의견을 일치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거부감의 극복’ 참고)
많은 연구 결과들은 앉아서 말하고 듣는 기존 회의방식보다 신체적으로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활동이 어려운 아이디어도 생생하게 느껴지게 하고 토론을 유도하는 데 더욱 효과적이라고 밝힌다. 영국의 인지과학자인 앤디 클락Andy Clark은 저서에서 사고는 우리 마음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고는 ‘뇌와 몸, 세계의 경계를 종횡무진으로 넘나들 때 생겨난다’는 의미다. 그는 요가가 강조하는 가르침처럼 신체활동에서 폭 넓은 이해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싱가포르경영대의 앤젤라 렁 Angela Leung교수 팀은 이 이론을 바탕으로 신체활동이 인지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실험을 했다. 예를 들어, 한 손 또는 두 손을 모두 움직이며 얘기하느냐, 큰 상자 안에서 또는 밖에 서서 퍼즐을 맞추느냐에 따라 창의력과 지식 활용에 뚜렷한 차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기업 리더의 관점에서 보면 역동적인 소그룹 토론에 관한 연구는 그룹 구성원의 자리를 어떻게 배치하는지가 의사소통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배치만 달리 해도 에너지와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다. 전략적 변혁 팀은 임원들의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 다음의 두 가지 활동을 전개했다.
선 위 걷기.변혁 팀은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바닥에 5m 길이의 두꺼운 테이프를 반원형으로 붙였다. 테이프 위에는 각 리더십 팀원이 사전조사 때 제시한 2025년 경영성과 예측결과를 표시했다. 테이프 한 쪽 끝은 2% 축소, 반대쪽 끝은 30% 성장이라고 표시됐다. 각 팀원은 이 선 위에서 자신의 예측 결과에 해당하는 부분에 섰다.
변혁 팀은 임원들에게 다른 사람이 자기가 서 있는 자리로 옮겨오게 설득해 보라고 했다. 낙관론자들과 비관론자들은 각자의 주장을 펼치며 언성을 높이거나 불편해하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놀람, 희망, 분노,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자기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히기 시작하면서 위치를 바꾸는 사람들이 생겼고, 새로운 비즈니스와 미래 성장에 대한 낙관적 견해가 분위기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처음의 비관주의 그룹이 선호했던 효율성 향상 또는 낙관주의 그룹이 선호했던 성장 중심의 혁신만으로는 스위스컴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스위스컴에는 양쪽 모두가 필요했다. 결론적으로 디지털기술이 비용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핵심 분야의 품질 향상과 차별화를 이룰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성장 분야에 투자할 상당한 자본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된 셈이다.
토론이 끝난 후 팀원들에게 합의된 시각을 바탕으로 한 방향 또는 반대쪽 방향으로 선 위를 옮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줬다. 결과는 놀라웠다. 모두 2025년까지 두 자릿수 실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지점에 모인 것이다. 충격적일 만큼 낙관적 견해였지만 성장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수많은 잠재적 혁신과 인수에 관한 상세한 논의를 마친 결과물이었다. 가장 낮은 성장치에 서 있던 팀원은 가장 많은 거리를 이동했다. 그는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으로 걸어가며 벅찬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그 팀원은 “기쁨과 안도감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투표하기.이제 팀의 비전 달성 계획에 투표할 시간이다. 스위스컴은 파괴적 성장disruptive-growth영역에서 새로운 조직역량을 구축하기 위해 인수buy, 설립build, 파트너십partner중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한정된 자원의 배분과 관련된 질문이기 때문에 타협이 필요한 어려운 사안이라는 점을 먼저 주지시켰다. 변혁 팀은 임원들에게 각자 인수, 설립, 파트너십 등 세 가지 옵션을 표시한 그릇에 100스위스프랑을 나눠 담도록 했다.
임원진이 차례로 회의실 앞으로 나와 동전을 넣었다. 어려운 결정이었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투자했지만 실패한 전력도 있었고, 최근 벤처캐피털 스타트업을 검토한 결과 유망한 거래 대상이 거의 없다는 사실 등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최종집계 결과, 가장 중요한 전략적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나왔다. 리더십 팀은 기업을 설립하는, 기업육성 계획entrepreneurial initiatives을 통해 새로운 역량과 자산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세션 내내 거대한 스크린에는 폭포차트가 펼쳐져 있었다. 특히 성장 격차는 밝은 빨강으로 표시해서 점진적인, 어중간한 개선 조치로는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팀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상기시켰다. 리더십 팀이 성장 이니셔티브와 관련해 새로운 역량을 구축하는 옵션의 잠재적인 수익을 모색하기 시작하자 비로소 빨간색 영역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전략의 윤곽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기술, 효율성, 규제 및 성장 잠재력에 관한 초기 토론은 스위스컴의 핵심 역량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선택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됐다. 리더십 팀은 사이버 보안, 클라우드 애플리케이션,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 블록체인 및 자동차 텔레매틱스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이 중 일부는 세계적인 디지털 플랫폼이 될 가능성도 있다.
전략기획의 마지막 단계로 리더십 팀은 전용 리소스를 갖춘 별도 조직을 구성해 매년 늘어나는 자금 조달 일정에 맞추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스위스컴이 선택한 성장 분야에 투자가 5배 증가했다. 투자금은 수천억 스위스프랑에 달했다. 스위스컴은 회사의 우선순위를 성공적으로 정비함으로써 명확한 장기 성장전략을 수립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리더십회의 후 스위스컴 집행이사회는 상위 100명의 관리자들을 모아 스위스컴 2025를 공개하고 향후 계획을 제시했다. 계획의 네 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사회는 조직 안팎에서 이뤄지는 모든 의사소통의 길잡이로서 2만 명에 달하는 직원 모두가 참여하며 의견을 조율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이야기를 전달했다. 이야기의 핵심은 코어형, 인접형, 변혁형 혁신을 통해 전통적인 통신기업을 넘어서겠다는 스위스컴의 2025년 성장목표였다.
책임을 다하는 거버넌스.스위스컴은 마치 벤처캐피털처럼 신성장 관련 투자를 감독하는 담당 이사회를 설립했다. 이 이사회의 임무는 측정가능한 업적이 달성된 경우에만 신속하게 자원을 할당하는 것이다.
별도의 관리팀 조직. 신성장 벤처를 위한 별도의 관리팀이 조직됐다. 관리팀의 임무는 기존 사업부서들과 협력해 성장분야 전용 자금을 활용할 M&A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새로운 지표와 인센티브 도입.스위스컴은 고객 중심성과 비즈니스 민첩성같이 변혁전략의 성공 여부를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를 도입했다. 기업 전체가 혁신을 우선순위에 두도록 인센티브 제도 또한 바꿨다.
리더십 회의를 개최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스위스컴은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주력 사업에서 과감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스위스컴은 2017년 9월 취리히에 스위스컴 블록체인이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했다. 지분의 70%는 스위스컴, 30%는 새로 고용된 경영자들이 소유한 벤처기업이었다. 2017년 11월에는 개방형 금융허브Open Banking Hub를 출시했다. 다양한 규모의 기업이 휴대전화를 통해 액세스해 안전한 재무정보를 교환하는 글로벌 플랫폼이다. 2018년 5월에는 인터넷을 통해 차량을 관리할 수 있는 운전자와 회사를 위한 개방형 텔레매틱스 플랫폼 오토센스AutoSense를 출시했다. 이 모든 도전 덕분에 셰피는 스위스컴이 디지털 업계에서 장기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선택은 지도자의 몫
파괴적 변화가 일어나면 리더십 팀은 존재론적 도전에 직면하고 기업의 포부, 정체성,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한다. 미래 계획을 합의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이 글은 리더십을 단합시키는 실질적 로드맵을 제시했다. 또 때로 감정적 반응이 수반되는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구체적 방법도 제시했다.
팀원들은 서로 의견이 잘 조율된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견들을 수면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지속적인 의견 조율로 강력한 신성장 전략을 이끌어 내는 첫 번째 단추다.
번역 류아람 에디팅 배미정
거부감의 극복
이노사이트의 핵심적인 전략조율 방식 중 하나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고위임원들은 이런 파격적인 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한다. 프로그램 운영자들에게 눈을 부라리는 임원들도 있다. 대개는 격렬히 저항하기보다는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이노사이트의 경험상 폭넓은 참여를 이끌어내는 좋은 방법은 먼저 핵심 인물 몇 명에게 활동에 관해 상의하고 설득한 뒤, 그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도록 요청하는 방법이다. 동일한 활동을 먼저 진행했던 다른 기업의 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는 방법도 효과적이다. 프로그램의 퍼실리테이터는 이 활동이 행동 연구와 집단역학 연구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임원에게는 ‘당장 별다른 대안이 없는데, 이거 한 번 해본다고 손해 볼 일도 없지 않으냐’고 가볍게 말해 줄 필요도 있다. |
버나드 C. 퀴멀리(Bernard C. Kümmerli)와 스콧 D. 앤서니(Scott D. Anthony)는 기업 이노사이트의 선임파트너로 휴런 컨설팅그룹(Huron Consulting Group)의 전략 및 혁신 분야를 담당한다. 마커스 메서러(Markus Messerer)는 스위스컴의 전략책임자를 지냈으며 현재는 알트론의 CEO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