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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심장’이 필요한 아프리카 비즈니스

매거진
2018. 11-12월(합본호)

Commentary on Feature

‘강철 심장이 필요한 아프리카 비즈니스

김태훈

 Commentary onFeature 보기 전 읽어야 할 아티클   > 아프리카, 창의력의보고

 

아프리카는 지구에 남은 마지막 기회의 땅이라 불린다. 아프리카에서 초보 사업가로서 일해 온 내가 이번 아차 레케 맥킨지앤컴퍼니 아프리카사무소 대표의 글아프리카, 창의력의 보고를 읽고 느낀 바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맞다.” 이 글은 미지의 땅 아프리카의 환상적 이미지에 놀라운 방법으로 성공을 거둔 비즈니스 사례들의 현실감이 더해져 아프리카로 눈을 한 번쯤 돌리게 만든다. 하지만 수많은 성공사례보다 내게 더 와 닿았던 부분은강철 심장의 소유자’시련 앞에서의 단호한 태도라는 표현이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상대적 선진국에서 경험하고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볼 때, 아프리카는 그야말로 상식 밖 미지의 세계였다. 어디까지 현지 기준으로 생각하고 어디부터 상식적으로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계속됐다. 나는 마다가스카르에서, 또 남아공, 케냐, 모리셔스 등에서 아프리카를 경험하며 느꼈던 아프리카의 환상 속에 숨겨진 매운맛을 적어보려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아프리카 비즈니스를 생각하는 분들께강철 심장의 작은 참고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마다가스카르 수도 안타나나리보의 도심 전경. 고층 건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마다가스카르의 인기 가구 브랜드인 hazovato에서 판매하는 원목가구.

선진국에서 보기 힘든 원목가구다.

 

 

 

다른 상식의 세계

 

내가 주로 활동한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 대륙 동쪽의 섬나라다. 한국에서는 동명의 애니메이션이나 바오바브나무의 군락지로 잘 알려져 있다. 면적이 한국의 6배에 달하고 인구는 2500만 명 이상으로 무시할 수 없는 규모를 가진 나라지만, 1인당 GDP 500달러 선에서 수년째 멈춰 있다. 2008년 말 쿠데타가 일어나 정권이 교체됐으며 새로 대통령선거를 한 이후에도 치안이 안정적이지는 않다. 한국과는 여러 교류가 시도됐으나 쿠데타 이후 소강 상태였고 2016년에야 대한민국 대사관이 개관했다. 기본적으로 이곳 사람들은 손재주가 있고 인건비는 저렴하지만 전반적 교육수준이 높지 않다. 그래서 사람마다 소득수준이나 의식수준의 차이가 매우 크다. 1960년 프랑스에서 독립했고 공식적으로 프랑스어와 마다가스카르어를 사용한다. 이처럼 거시적으로 보면 마다가스카르는 여느 아프리카 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저렴한 인건비와 이제 막 시작된 경제개발, 산업화되지 않은 수많은 비즈니스 기회영역들을 생각하면 초기에 진출해 거시적인 성장세를 타고 비전 있는 사업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필자도 처음 마다가스카르를 접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아프리카 지역은 정말 놀라운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비즈니스 접점에서의 이슈들은 의아하다 못해 신기할 정도였다.

 

은행에 갔던 날의 예를 들자. 회사 계좌에 현금을 입금해야 했던 날이다. 은행에 가면 다음과 같은 절차를 겪는다. 일단 여유 있게 두어 시간은 걸릴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경비원을 지나 보안문 두 개를 열고 은행에 들어간다. 준비된 종이에 입금하려는 금액을 적는데, 지폐 종류와 장수를 나누어 적고 또 전체 합계 금액을 적어야 한다. 그런 다음 서명하고 창구에 제출한다. 내 앞에 대기자가 얼마나 있는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다. 오늘은 운이 안 좋다. 앞사람이 엄청난 양의 동전과, 돈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겨진 지폐들을 한 보자기 가져왔다. 다른 창구가 더 빠르지만 이미 이쪽 창구에 제출한 종이는 다시 물릴 수 없다. 기다리던 도중 갑자기 전기가 나간다. 보조발전기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항상 문제가 있던 돈 세는 기계가 고장이 났다. 캐셔가 손으로 돈을 세기 시작했다. 늘 있는 일이므로 나는 당황하지 않는다. 여유 있게 스마트폰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마침내 입금 처리가 끝났다. 은행에 온 김에, 대출 관련 상담도 한다. 물론 제1금융권이지만 대출이자는 약 18%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평소 안면이 있는 매니저를 통해 좋은 조건으로 제안받은 이자율이다. 금리가 제로%까지 떨어졌다는 선진국 소식을 아침에 접한 것 같은데 18%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진다.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간다. 도로 옆 광고판에 새로 개업한 은행이 대출이자를 15% ‘초저리로 해준다는 광고가 보인다. 이렇게 사무실로 돌아가면 내가 오늘 하기로 생각했던 일의 절반(입금)이 끝난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한국의 은행 업무도 본다. 아까 입금한 금액보다 더 큰 금액을 스마트폰으로 약 30초 만에 한국 내에서 이체한다. 이런 차이가 각 나라의 전체 퍼포먼스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든다.

 

가벼운 에피소드로 시작했지만 이렇게 한국에서의 일상과는 크게 다른 일들이 마다가스카르에서는 흔하게 일어났다. 국민소득 500달러의 일반 국민을 중심으로 하는 현지 경제와 소득 수만 달러의 외국인들과 외국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 이렇게 두 가지 경제가 하나의 국가 안에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이곳의 특징이다. 현지 사람들은 10원짜리 빵을 잘 사먹는다. 동시에 한 접시에 5만원짜리 식사를 파는 고급 레스토랑이 지난 수년간 많이 늘어났다. 단순 계산하면 1인당 평균 국민소득이 500달러인 나라에서 5만 원짜리 식사라는 것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인 한국인에게는 300만 원짜리 식사 같은 것이다. 현지 대형 마트에서 파는 패스트푸드는 한 끼에 1만 원 정도 한다. 한국 물가 기준으로 보면 60만 원짜리 햄버거 세트를 사먹는 꼴이다. 애초에 시장이 완전히 분리될 수밖에 없다. 원자재가격과 인건비가 낮기 때문에 현지생산 제품들은 놀라울 정도로 저렴하지만, 공업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품질이 낮다. 반면 프랑스나 중국 등에서 수입된 제품들은 높은 세금과 유통업자 마진으로 인해 선진국보다 가격이 비싸다.

 

이런 간극을 사업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 한 현지 가구회사는 마다가스카르의 저렴한 고급 원목을 이용하여 선진국에서 보기 힘든 두꺼운 수제 원목가구를 만든다. 가격은 선진국의 무난한 합성목가구 정도. 그러다 보니 쇼룸은 외국인들과 현지 고소득층에게 항상 인기다. 현지의 저렴한 원목과 인건비를 활용하면서 프랑스식 디자인을 적절히 접목하니 상당한 수준의 결과물이 나온다. 이 업체 제품은 수년 사이에 가격이 몇 배나 뛰었다.

 

캐시미어 등 고급 의류를 생산하는 공장도 가끔 볼 수 있다. 공장에서 직영하는 매장에서는 캐시미어 니트를 5만 원 선에도 살 수 있다. 선진국으로 수출되면 50만 원은 족히 할 것이다. 이러한 비즈니스들은 대부분 외국인 주도로 개발되며, 저렴한 인건비, 원자재비와 같은 현지의 이점과 외국 자본, 디자인을 적절하게 믹스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대단한 비즈니스 기회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지인력 관리는 높은 허들이다. 단순노동직의 월급은 10만 원 선 이하인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잘 활용하면 높은 영업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으나, 전반적인 교육시스템이 안정적이지 않아 피고용인의 역량을 장담할 수 없다. 언어능력만 해도 그렇다. 공문서나 공적인 자리에서는 프랑스어가 지배적으로 쓰이지만, 일반인에게는 프랑스어 교육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사실상의 문맹률이 제법 높은 편이다.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또 한국 사회에서는 상식으로 생각되는 사회적 요소들, 즉 어느 정도의 정직과 성실성 등이 이곳에서는 상식이 아닌 경우를 흔하게 경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과 투입되는 리소스가 생각보다 커서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역설적이게도 날씨가 좋아 생산성이 떨어지는 현상도 있다.

1년에 3모작까지 가능한 지역이다 보니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여유가 있고 한국처럼 삶이 치열하지 않다. 가만히 있어도 다 먹지 못할 만큼의 바나나가 자라나고 연중 기온이 10~30도로 유지돼 난방할 필요가 없는 환경이니 마음의 여유를 가질 법하다.

 

 

마다가스카르 도시의 일반적인 거리 풍경. 개발의 기회는 도처에 있다.

 

산은 대부분 민둥산이다. 매년 산을 태운다.

 

 

서부영화 같은 부동산 개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부동산개발 사업을 위한 대지를 알아볼 때의 일이다. 우선 수수료에 놀랐다. 프랑스령이었던 역사적 영향으로, 공인중개사 수수료가 5~9% 선이다. 0.5~0.9%를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하여 다시 확인해 봐도 5~9%가 맞다. 이건 국가마다 다르므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라고 빠르게 인정하고, 수익률 계산을 다시 해야겠다 생각하며 땅들을 알아봤다. 며칠 후 부동산매니저에게서 전화가 왔다. 공식수수료보다 훨씬 더 낮게 제안해 줄 수 있다는 연락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싶어 매니저를 찾아가 미팅을 가졌다. 그의 말인즉슨, 내가 요청한 거래의 관련 서류를 회사에서 가져올 테니 회사가 아니라 본인과 직접 거래하자는 것이다. 서류 원본이 회사에서 없어지기 때문에 회사에는 원래 이 거래가 없었던 것처럼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매우 위험하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모든 상황에서 외국인이 쉽게 불리해지기 때문에 바로 고사했다. 이런 매니저급 직원을 두고 있는 회사에서는 인력관리가 비즈니스의 핵심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현상은 심심찮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사무실에 커튼을 설치하러 온 인테리어업체 직원도 본인에게 따로 커튼 제작을 맡기면 회사보다 훨씬 싸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통해 이 부동산중개업체 내부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에 다른 부동산에 가서 땅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같은 땅이 무려 30% 이상 저렴하게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먼저 찾았던 중개업체는 주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거래하다 보니 외자 중심의 경제 흐름으로 가격이 책정돼 있었고 후자는 현지에서 오래 부동산을 한 사람이다 보니 실제 현지에서 거래되는 가격으로 제안하는 것이었다. 현지에는 한국의 공시지가 같은 개념이 없을뿐더러 아직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정보의 불균형이 심하다. 그래서 중개업체들이 정보를 잘 공개하지 않고 외국인을 상대로 할 때는 더 높은 가격을 부른다. 이런 차이를 충분히 기회로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현지 사람들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는 외국인 입장에서 이런 기회를 포착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시련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나름대로는 돌다리를 두드리며 개울을 건너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심지어 돌다리 사이사이 물도 건드려보며 건너야 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사업에 적합한 대지를 발견하고 상호 만족스러운 조건으로 거래 검토에 들어갔을 때였다. 매도자 측에서 거래를 일정 시기 이후로 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사업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승낙했다. 이미 구청 등 정부기관을 통해 토지대장과 소유권도 확인했고 현장실사 및 부동산의 공증도 확인한 상태였다. 하지만 우리 쪽 법무사를 통해 여러 검토를 하는 과정에서 이 대지가 현재 소송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매도자는 그 재판이 끝나는 시기에 맞춰 거래를 하자는 것이었다. 소송의 내용은 이렇다. 이 땅의 토지대장을 누군가가 복제해서 어떤 사람에게 팔았다. 그 복제 토지대장을 산 사람이 현재 이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기를 친 가짜 땅 주인은 이미 잠적한 후였다. 이 나라에서는 토지대장이 정부의 온라인 시스템에 정리돼 있지 않고 종이 서류로 보관돼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마음먹고 복제하면 이런 사기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어쨌든 재판은 본 주인의 승소로 끝났고 거래를 마칠 수 있었으나, 상식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큰 리스크가 될 뻔했다. 한국에서처럼 건축물이나 토지대장 등을 인터넷으로 조회할 수 있고, 부동산 공증 등 여러 시스템의 정보를 신뢰하고 일을 진행하면 될 것이라 믿었던 상식이 또 한 번 도전을 받는 경험이었다.

 

 

인력은 0.7로 계산하라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은 인프라도 허약하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비즈니스의 퍼포먼스를 저하시키는 사태에도 대비해야 한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단전이다. 전력공급량이 고질적으로 부족하기도 하지만 비가 많이 오거나 번개가 쳐서 전신주가 무너지면 전기가 한동안 끊기기도 한다. 가장 개발이 많이 된 신시가지에도 나무 전신주가 있어서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이 세게 불면 쓰러지기도 한다. 전기가 끊긴다는 것은 컴퓨터도, 스마트폰 충전도, 와이파이도, 냉장고도 안 된다는 의미다. 한 번은 무려 7일간 전기가 나간 적이 있었다. 도시로 들어오는 전신주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는데 문의를 해봐도 방법이 없단다. 전기가 자주 나가서 설치해 놓은 비상 휘발유 발전기가 있었지만 하루종일 이것을 틀 수는 없었기 때문에 하루에 몇 시간씩만 가동하며 그동안 모든 업무와 전자기기 충전, 인터넷 사용을 끝내야 했다. 또 전력 자체도 고르지 못하기 때문에 전기용량이 큰 제품은 제대로 작동을 안 하거나 고장 나는 경우도 있다. 듀얼 모니터 사용을 위해 노트북에 연결할 대형 모니터를 샀으나 전력 부족으로 켜지지 않아 그냥 전시용으로 쓴 적이 있었고, 불안정한 전력 때문인지 금속 케이스로 된 노트북을 쓸 때 손이 자꾸 찌릿찌릿 감전되기도 했다. 현지 사업가 중에는 공장 설립을 고려하다가 전기 문제 때문에 포기했다는 이야기도 여러 번 들었다. 예상치 못한 시간에 공장이 며칠간 멈추거나 갑자기 전력이 불안정해져 기계가 고장난다거나 하면 어떻게 공장을 운영할 수 있을까. 인프라 부족에 따른 리스크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두고 대비책을 항상 생각해 둬야 한다.

 

수도도 문제다. 비가 오면 수돗물도 황톳물이 된다. 마시기는커녕 씻기도 힘든 수질이라서 생수가 슈퍼마켓에서 불티나게 팔린다.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의 60분의 1 정도지만, 생수 한 병 가격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비싸다. 생수는 수입한 것이 아니라 외국 자본에 의한 현지생산인데, 아마 관리만 잘 되고 있다면 상당한 수익을 남기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생수광고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정수기도 한국처럼 저렴하게 렌털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당히 고가의 제품으로 포지셔닝 돼 있다. 별 일 아닌 것 같지만 물이라는 필수 인프라가 삶의 질에 영향을 끼치고 비즈니스 퍼포먼스를 저하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상수도만 그런 게 아니다. 하수도 인프라도 완벽하지 않다. 비가 한 번 오면 길이 쉽게 물에 잠기고, 한국으로 치면 테헤란로에 해당되는 신시가지 진입도로들이 운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잠겨서 출퇴근을 포함한 이동이 아예 불가능해지는 경우도 수시로 발생했다.

 

이처럼 저개발국가는 인프라가 부족해 일상생활이 자연현상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똑같이 한 명을 고용한다 해도 선진국 인력에 비해 0.7 정도의 인력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비가 온 후 판매되는 채소는 꼭 익혀 먹어야 한다. 폭우와 역류된 하수에 휩쓸린 채소들이 시장에 그대로 나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날로 먹었다가 식중독에 걸리기도 한다.

 

자연에 대한 지역 사람들의 대처가 사업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봄이 되면 도시 전체가 매캐한 연기에 둘러싸인다. 자동차 배기가스가 아니라 주변 산들을 태울 때 나는 연기 때문이다. 화전농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산을 태우면 나무가 더 잘 자라고 농사가 더 잘된다는 미신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지역 대부분의 산이 민둥산이다. 가뜩이나 이곳 사람들은 조리나 난방을 위해 나무 땔감을 많이 사용한다. 한 번 도시가 연기에 싸이면 며칠이고 공기가 뿌옇고 탄내가 난다. 주택이든 오피스빌딩이든 창문의 밀폐기능이 좋지 않아 실내에 있어도 계속 그 연기에 영향을 받는다.

 

메뚜기 떼가 도시를 습격하는 것도 보았다.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커다란 메뚜기가 철새 떼처럼 도시 하늘에 나타났다. 메뚜기를 쫓기 위해 이곳 사람들은 폐타이어를 태운다. 하늘에는 메뚜기 떼가 날아다니고, 도시 곳곳의 논밭에서는 타이어 매연이 올라오는 신기한 광경이었다. 전반적으로 저개발국가는 자연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므로, 생각지 못한 자연현상에 따른 리스크도 생각해야 한다.

 

 

정치와 자연재해

 

정치 이슈의 영향도 생각보다 클 수 있다. 건축 허가를 받을 때의 일이다. 인허가 기관을 가면 공무원들이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순진한 표정으로 대응하며 그들과 수차례 미팅을 가졌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허가 조건들이 있었고 이를 맞춰가며 진행하던 차에, 의외의 복병은 정치권에서 발생했다. 2008년 말 쿠데타가 일어나 당시 대통령은 국외로 잠적한 상황이었는데, 수년 후 그가 비밀리에 다시 입국하고 몰래 힘을 써서 자신의 부인을 수도의 시장으로 앉혔다는 정보를 접했다. 필자가 정말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인지 여전히 의심스럽지만, 아무튼 쿠데타를 일으킨 정권과 쿠데타로 인해 축출되었던 정권이 대통령과 수도의 시장이라는 역할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분명 사실이다. 정치 드라마에서나 볼 것 같은 이 상황에서 갈등은 당연한 일. 어떤 연유에서인지 갑자기 시장이 수도의 모든 건축 허가를 동결해 버렸다. 여러 차례 방문했던 허가 기관에 어느 날 찾아갔더니, 항상 시끌시끌하던 분위기와는 다르게 불이 대부분 꺼져 있고 소수의 직원만 앉아서 일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잔뜩 들고 간 건축도면을 내려놓으며 물어봤더니 현재 어떠한 새로운 건축허가도 나지 못하는 상황으로 언제 이 조치가 풀릴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 동결 기간은 수개월 지속됐고, 부동산개발 사업을 위해 마다가스카르에 머무르던 나의 거취는 묘해졌다. 또 그 기간 중 정치불안정 등으로 인해 현지 주택시장이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원래 세웠던 사업계획의 수정도 불가피해졌다. 이러한 사태 직전에 건축 인허가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좋았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건물을 다 짓고 분양할 때가 다 돼서 주택시장이 긴축상태에 접어들어 오히려 더 큰 사업 리스크가 생겼을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허가 동결이라는 사건이 그런 리스크를 막아준 꼴이 됐다. 예측할 수 없이 변하는 정세가 항상 리스크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한 번은 다른 개발업체와 함께 공동개발을 기획하던 도중 시내에 폭동이 발생하며 사업이 중단된 경우도 있었다.

 

 

글을 마치며

 

필자는 아차 레케의 글에서 말하는강철 심장은커녕 여전히유리 심장을 갖고 사는 것 같다. 그러나 여러 경험을 하면서 적어도 아프리카의 비즈니스가 가진 달콤한 기회들 속에 매콤한 맛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현지의 저렴한 인건비와 원료,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잘 결합시키고 그 간극을 기회로 활용하면, 시스템에 의해 제어되는 선진국의 비즈니스 상식을 넘어서는 놀라운 사업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 말랑말랑한 현지의 사회시스템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면서 오히려 선진국보다 더 치밀한 인력관리와 운영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현지 상황과 현지인들을 이해하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그들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으로 비즈니스 형태를 개편해야 한다.

 

물론 본 내용은 대부분 필자가 주로 시간을 보낸 마다가스카르를 중심으로 적은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도 경제가 발달한 케냐와 남아공, 모리셔스 등지의 상황과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 있다. 국민소득 1만 달러가 넘는 모리셔스나 6000달러의 남아공, 2000달러 선의 케냐는 이미 도시가 발달하고 시스템이 존재하며 일반적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그런 나라들은 예측 가능하고 상식이 통하는 곳이지만 반대로 얘기하면 그렇게 시스템과 인프라가 정착될수록 현지경제와 외자경제의 간극을 활용할 수 있는 창의적인 사업 기회의 영역은 줄어든다.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여기가 내가 아는 지구가 아닌, ‘외계(外界)’라고 상상해 보면 어떨까. 그러면 기존 상식에 휘둘리지 않고 더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아프리카 현지에 맞는 비즈니스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김태훈은 도메인을 넘나들며 가치를 창조하는 것을 즐기는 사업가다. 한국에서 커머스 기술 스타트업인 파라스타를 운영하며, 기업교육 기관 IGM Prime에서 가르치고 있다. 학생교육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여 <  공부자존감  >을 집필했다. 서울대 건축학과 석사를 마치고 우연한 기회로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부동산 개발에도 도전하고 있어, 그 생생한 경험을 이번 글에서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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