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INNOVATION
마블의 블록버스터 머신
마블 스튜디오는 어떻게 시리즈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움도 충족시켰나
스펜서 해리슨
인시아드 조교수
안 칼슨
BI 노르웨이경영대학원 교수
미하 시케르라바이
류블랴나대 교수
IDEA IN BRIEF 문제 영화산업에서 시리즈물이 원작만큼 성과를 보이기는 어렵다.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이 때문에 프랜차이즈를 만든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유 시리즈물을 만들 때, 영화제작사들은 연속성과 새로움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느라 지나치게 조심한다. 그러다 보면 수익은 떨어지게 된다.
솔루션 역사상 가장 성공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균형을 찾은 방식은 다음과 같다. (1)경험이 있는 무경험자를 선택한다, (2)핵심 팀이 주는 안정감을 이용한다, (3)과거의 공식에 지속적으로 도전한다, (4)고객의 호기심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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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마블 스튜디오는 프랜차이즈 영화의 정의를 바꾸었다.
22개의 마블 영화가 벌어들인 수익은 약 170억 달러로, 역사상 그 어떤 프랜차이즈도 이렇게 높은 수익을 올리지는 못했다. 동시에 마블 영화가 평론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받은 호감도는 84%에 달했고(역대 가장 많은 이익을 남긴 15개 프랜차이즈 영화의 호감도는 평균 68% 정도다), 이 시리즈가 받은 영화상 또는 수상후보 지명 건수도 64건에 이른다. 올봄에 개봉한 영화 <어벤저스: 엔드게임>은 극찬을 받았으며, 영화 팬들의 온라인 예매가 몰리는 바람에 온라인 영화티켓예매 사이트들이 시스템을 개편해야 했다.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인 케빈 파이기Kevin Feige는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마블의 성공에 대해 당혹스러울 정도로 간단한 답을 내놓았다. “전 언제나 마블 영화의 한계를 키워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패턴이나 틀, 공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일을 해서 더 많은 관객을 불러모으려 했습니다.” 마블의 비밀은 혁신적인 영화를 만들어내면서도 연속성을 충분히 유지해서 한눈에 보기에도 한 가족임을 알 수 있도록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낸 것이다.
밸런스를 찾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프랜차이즈 하나를 버티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공적인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2017년 흥행 성적이 가장 나빴던 고예산 영화 8편 중 6편이 새로운 프랜차이즈를 시작하려는 의도에서 기획된 영화였다. 게다가 1편이 성공한다 해도 후속작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는 1편 이후 비평가 점수가 조금씩 낮아지게 마련이다. <아이언맨>의 감독 존 파브로Jon Favreau는 “두 편 정도 만들고 나면 프랜차이즈 영화는 기가 빠지게 마련이죠. 영화사를 돌아보면 2편 이후는 저무는 경우가 많습니다”라고 말한다. 픽사 CEO인 에드 캣멀Ed Catmull도 동의하는 것 같다. 그는 시리즈 영화를 일종의 ‘창의적 파산’이라고 묘사한다. 이 때문에 픽사가 시리즈물을 만든 경우는 단 네 번에 불과하다.
지금껏 마블은 이런 문제가 없었다. 22편의 영화를 만들어낸 마블 스튜디오는 마블 영화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에 관해 늘 새로운 답을 내놓는다. 2018년 초 <블랙팬서>가 개봉하며 박스 오피스 신기록을 세웠을 때, 평단에서는 이를 ‘천지개벽’이자 ‘탁월한 상상력의 산물’이라 치켜세우며, ‘생동감과 설득력 있는 리얼리티와 사회적으로 깨어있는 목소리’를 담았다고 평했다. 보스턴글로브의 영화칼럼니스트 타이 버Ty Burr는 블랙팬서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이 영화는 수퍼히어로 장르의 재발견했다기보다는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인물의 전형, 클리셰, 모든 면에서 상상력에 목마른 관객들을 위한 영화다. 블랙팬서는 전형적인 거대제작사 프랜차이즈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매우 특이한 감성을 지닌 영화다.” 그러나 다른 평론가들이 언급했듯, 블랙팬서는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마블 영화였다.
마블은 연속성과 새로움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융합시켰나?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우리는 2018년 말까지 공개된 20편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영화에 대한 데이터를 모았고, 제작자, 감독, 작가의 비디오인터뷰 243건 및 영상인터뷰 95편을 분석했으며, 저명 평론가의 비평 140편을 검토했다. 또한 각 영화의 각본과 시각적 스타일을 디지털로 분석했고, 영화에서 영화로 이어지는 배우 1023명, 스태프 2만5853명의 네트워크도 분석했다. 이런 데이터 분석을 통해 우리는 마블 성공이 네 가지 원칙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1)경험이 있는 무경험자를 선택하라, (2)핵심 팀이 주는 안정감을 활용하라, (3)과거의 공식에 도전하라, (4)고객의 호기심을 키워라. 다음 섹션에서 우리는 이런 원칙을 살펴보며, 마블이 이 원칙을 적용한 방식뿐 아니라 이 원칙이 다른 분야 여러 기업의 성공에는 어떻게 작용했는지 알아보려 한다.
1. 경험이 있는 무경험자를 선택하라
영화 제작에서는 누구를 고용하느냐가 결과를 크게 좌우한다. 흔히 말하듯 “앞날이 어떨지는 과거를 보면 알 수 있다.” 마블 스튜디오는 이런 상식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마블은 감독을 기용할 때 마블의 전문분야가 아닌 분야에서 경험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
15명의 마블 시리즈 감독 중 슈퍼히어로 장르에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조스 웨든Joss Whedon은 <엑스맨>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고, 마블 코믹북을 만들어 평단의 찬사를 받은 사람이다.) 그 대신 이 감독들은 다른 장르, 즉 셰익스피어, 공포물, 첩보물, 코미디 등에 식견이 뛰어났다. 독립영화 출신도 있었다. 이들의 경험은 각 마블 영화에 독특한 비전과 색채를 불어넣었다. <토르: 다크 월드>는 셰익스피어의 세계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앤트맨>은 도둑질 영화였고,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는 스파이물이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시끌벅적한 우주 오페라였다. 더욱이 이 감독들 다수는 빠듯한 예산을 가지고 일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었다.(이 감독들의 이전 작품 예산은 평균적으로 MCU 영화 예산의 7분의 1 수준이었다.)
좋은 예가 마블 스튜디오의 첫 영화인 <아이언맨>(2008)이다. 이 영화는 파브로를 감독으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주연으로 기용한 엄청난 도박이었다. 파브로는 독립영화 출신으로, 규모는 작지만 좋은 평을 받았던 영화 <스윙어즈> <엘프> <자투라: 스페이스 어드벤처> 등을 만든 경험이 있었다. 그는 재미난 캐릭터를 만들 줄 알았고 유쾌한 대사를 잘 쓰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아찔한 시각효과가 넘쳐나는 블록버스터 슈퍼히어로 액션영화에는 경험이 없었다. 다우니는 <채플린>을 비롯해 여러 영화에서 위대한 배우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왔지만 마약 문제로 끝없이 구설에 올랐고 대규모 액션영화 주연으로 캐스팅된 적이 없었다. 둘 다 경험자이기도, 무경험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아이언맨> 공동주연이던 베테랑 배우 제프 브리지스는 이 영화가 “2억 달러짜리 학생 실습 영화”처럼 느껴졌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이 둘의 조합은 성공적이었다. 영화 비평가 로저 이버트Roger Ebert는 이 방정식의 경험 부분을 이렇게 묘사했다. “토니 스타크는 다우니가 여러 영화를 통해 빚어낸 페르소나의 산물이다. 불손하고, 기발하며, 자기비하적이지만 재치가 있다. 다우니가 그 모든 하드웨어를 장착한 상태에서 그런 식으로 말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한 것은 존 파브로 감독의 대담한 결정이다.” 이버트는 파브로가 슈퍼히어로 장르에 무경험자라는 사실이 장점이 됐다고 한다. “많은 대형 FX(특수효과) 영화들은 종료 30분을 남겨놓은 시점쯤 되면 스토리는 버리고 시각효과만 관객에게 투척한다. 그런데 <아이언맨>의 플롯은 매우 독창적이어서 특수효과가 아무리 요란하건 폭발음이 아무리 크건 끝까지 제 역할을 한다.”
마블은 다른 영화에도 비슷한 선택을 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저예산 호러 영화로 유명한 제임스 건James Gunn감독이 맡았다. 건 감독은 크리스 프랫을 캐스팅했는데, 프랫은 스스로를 TV 개그프로그램의 캐릭터 ‘뚱땡이 강아지’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건 감독은 프랫을 슈퍼히어로로 내세우고 1970년대 음악으로 영화를 가득 채웠다. 타이카 와이티티Taika Waititi감독은 코미디 영화와 인물중심극을 주로 만들었던 감독으로 슈퍼히어로 영화 경험은 전혀 없었으나 <토르: 라그나로크>를 만들었다. 그는 이전 두 편의 토르 시리즈와 거리를 두면서 레드 제플린의 노래 ‘Immigrant Song’을 입힌 홍보용 트레일러를 만들어 특이점을 만들어냈다. 뉴욕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와이티티는 작지만 훌륭한 독립영화로 이력서를 채운 감독으로, 마블의 가장 평이한 캐릭터를 화려한 우주 활극으로 데려다 놓았다. 기발하고 이상한 영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코믹스 원작 영화들은 너무 거창해지고 너무 진지한 모습으로 변해 왔는데 이 영화는 그와 정반대의 흐름을 보인다.” 비평가들은 와이티티의 토르가 MCU에 딱 적당한 정도의 셀프 패러디를 선보였다고 평했다.
마블 스튜디오는 촬영을 감독의 재량에 크게 맡기는 편인데, 특히 감독들의 전문분야는 더 그렇다. 파브로, 건, 와이티티 감독 모두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스튜디오가 놀라울 정도로 격려하고 자유를 부여해 주었다고 말한다. 2008년 인터뷰에서 파브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트레일러에 마블 측 사람들, 그러니까 프로듀서나 배우들과 앉아서 그날 찍어야 할 장면이 기본적으로 어떤 모양새여야 하는지, 지금까지 찍은 장면이나 새로이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 외에는 굉장히 유연하게 찍을 수 있어요. 여러 면에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굉장히 새롭고 놀라운 발견이었죠.” 동시에 마블은 영화의 블록버스터적인 면모에 대해서는 엄격히 통제하며 특수효과나 동선 등에 대해 지침을 준다. 파이기는 2013년 인터뷰를 통해 이런 마블의 방침을 설명한 적이 있다. “우리가 새 감독을 영입하는 건 이런 자원을 모두 동원해 뭔가 다른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합은 양 측 모두에 강력한 효과가 있었다. 이 감독들의 로튼토마토 호감도는 MCU 영화를 만든 후 평균 18% 올랐다.
영화 산업만 이런 전략을 취하고 있는 건 아니다. 에너지 기업들은 기상학자를 고용해 지속가능한 에너지 솔루션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받는다. 헤지펀드들은 뛰어난 패턴인식능력을 갖춘 일급 체스선수를 채용한다. 컨설팅회사들은 패션디자이너와 인류학자를 고용해 서비스를 재편하기도 한다. <태양의서커스Cirque du Soleil>는 1992년 겨울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프랑스 국가대표로 금메달을 딴 페브리스 베커Fabrice Becker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기용했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설립자 이본 슈나드Yvon Chouinard는 Inc. 매거진의 프로필에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비즈니스맨을 데려와 노숙자가 되라고 가르치느니 노숙자를 데려와 비즈니스를 하라고 가르치는 게 쉽다.” 파타고니아에 있어 ‘노숙자’ 란 적은 돈으로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즐기는 열정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고객과 상품에 대해서, 또 환경을 아끼는 마음을 다른 이들에게 전파시키는 방법에 대해 식견을 제공할 수 있다.
아웃핏7Outfit7도 좋은 예다. 이 기업은 8명의 슬로베니아인들이 설립한 다국적 가족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현재 이 업계에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아웃핏7은 전 세계적 인기를 끌었던 토킹 톰Talking Tom으로 유명세를 탔다. 토킹 톰은 100억 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글로벌 차트에서도 상위권에 오른 앱이다. 아시아 투자자들이 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32세 지가 바브포티치Žiga Vavpotič를 이사회 의장으로 임명했다. 바브포티치는 2014년 아웃핏7에 들어왔는데 이전에 컴퓨터게임을 다운로드 받은 적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는 비정부기구나 사회적기업과의 업무에는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었다. 기술적 무경험과 사업적 경험이 섞여 있는 사람으로서 그는 오히려 기술에 관해 논쟁하느라 기운을 빼지 않고 회사의 규모를 키우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이런 도박에 선뜻 나설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다. 신규 채용 직원의 조직 적응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업은 자신들의 기존 지식 기반과 경력이 겹치는 사람을 채용한다. 경력이 겹치지 않는 사람을 선택하는 경우에도, 새 직원을 조직에 맞게 길들이는 데 너무 치우친 나머지 외부에서 가져오는 전문성의 가치를 거세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기업들은 중요한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마블이 증명했듯이.
2. 핵심 팀이 주는 안정감을 활용하라
새로운 인재와 의견과 아이디어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마블은 다음 영화 제작에 들어갈 때 전편에서 일했던 사람 중 소수는 유지시킨다. 이 사람들이 줄 수 있는 안정감은 마블이 여러 영화를 찍으면서도 연속성을 지키게 하고 새로 온 사람들에게는 함께 어울리고 싶은 공동체라는 느낌을 만들어 준다.
우리는 핵심제작팀(영화마다 30명가량)에 속하는 스태프가 반복해서 영화 제작에 참여한 비율과, 전체 인력(약 2500명)이 반복 참여한 비율을 비교했다. 그 결과 핵심팀에 속하는 스태프의 재참여 비율이 훨씬 높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평균적으로 핵심제작팀의 25%가 한 편을 끝내고 다른 편에 재참여했고(범위는 14~68%), 이에 비해 전체 평균 재참여 비율은 14%였다(범위는 2~33%). 시리즈물인 경우 핵심팀의 재참여 비율은 더 높았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에서 <캡틴아메리카: 시빌 워>로 넘어간 핵심 스태프는 68%였고, <아이언맨1>에서 <아이언맨2>로 넘어간 비율도 55%였다.
핵심팀이 주는 안정감은 혁신을 지원해 줄 수 있다. 일종의 중력처럼 끌어당기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핵심팀이 아닌 사람들은 핵심에 들기 위해 열성을 보인다. 예를 들어 한때 슈퍼히어로 영화는 예술적 야망이 큰 배우들에게는 죽음의 키스와도 같았다. 하지만 아카데미상 수상자인 기네스 펠트로, 앤서니 홉킨스, 포레스트 휘테커, 루피타 뇽오도 모두 MCU에 출연했다. 역시 아카데미상 수상자인 케이트 블란쳇은 2017년 한 인터뷰에서 MCU에 합류했을 때 좋았던 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초반에 타이카 감독과 모션캡처 담당자들, 특수효과팀에 저의 아이디어를 많이 던졌어요. 그랬더니 그걸 받아들여서 그대로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이 장면에서는 총을 쏴 버리면 어떨까? 망토를 쓰고 연기하면 어떨까? 저기서 뭔가 나오면 어떨까? 이런 식이었죠.”
지금에 와서 보면 이 배우들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세계와 자원에 이끌렸다는 것이 당연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MCU에는 처음부터 중력의 힘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언맨 1>의 세트장에서 했던 인터뷰에서 기네스 펠트로는 이 영화 세 편을 계약하면서 “혈서를 썼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전에는 펠트로가 그랬던 적이 없었다. 스칼릿 조핸슨, 베네딕트 컴버배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주연팀도 인터뷰에서 펠트로와 비슷한 이유를 댔다. 그들이 독자적 캐릭터를 만들 수 있도록, 미묘하고 흥미로운 캐릭터를 구축하도록 협업하고 탐험할 수 있도록 마블이 지원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아카데미상 수상자 브리 라슨은 캡틴 마블 역으로 등장할 일곱 편의 영화를 계약했다.
심지어 마블과 좋지 않은 경험을 했던 사람들도 복귀에는 긍정적이다.(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을 공동 집필한) 유명 각본가 자크 펜Zak Penn이 좋은 예다. 그는 <인크레더블 헐크>의 각본가로 기용됐는데, 이 영화의 주연 에드워드 노턴과 각본을 두고 다투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펜은 이후 수년간 어벤저스의 각본을 썼는데, 이후 웨든이 감독으로 합류해 이 각본마저 처음부터 다시 썼다. 많은 작가들이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앞으로는 함께 일하지 않으려 든다. 그럼에도 자크 펜은 또 다시 마블 영화를 위한 극비 각본을 쓰고 있다고 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UEFA 챔피언스리그의 최상위권 축구클럽들이 성공을 거둔 방식도 이런 것이다. 바르셀로나는 세계를 제패하던 시기(2008~2015년) 자체 아카데미에서 어린 스타들을 길러내 연속성을 유지했고, 핵심 선수라인을 유지하면서도 이들을 보완하기 위해 새로운 스타들(루이스 수아레즈, 네이마르)을 영입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원래 슈퍼스타들을 영입하는 데 큰돈을 쓰는 전통, 소위 ‘갈라티코(galácticos, 은하수)’로 유명했다. 2003년 이후에 번번이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에 실패하면서 이런 전략은 오히려 독이 됐다. 그러자 레알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식으로 전략을 바꿨다. 어린 선수들을 훈련해 핵심을 키우고, 스타 선수와 중간급 선수를 함께 투입하며, 선수 출신 감독 지네딘 지단이 이끄는 안정적인 관리팀을 조직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2016년부터 3년 연속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이 클럽의 스타팅 라인업은 시즌마다 거의 똑같았고, 이런 안정감 덕분에 유럽 전역에서도 손꼽히게 안정된 최고의 축구클럽이 될 수 있었다. 두 클럽 모두 핵심 부분의 안정감 덕분에 이들을 받쳐줄 보조 역할을 할 선수들을 흡수하기가 용이했다.
다른 분야에서 예를 들자면 밴드 ‘브로큰 소셜 신Broken Social Scene’을 들 수 있다. 브로큰 소셜 신은 밴드라기보다는 음악협동조합 같은 팀인데, 듀오로 출발했지만 다른 밴드들의 여러 아티스트가 드나들며 협업으로 음반을 함께 낸다. 일례로 브로큰 소셜 신의 2집은 11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했고, 8년 후 낸 앨범에는 28명이 참여했다. 원래 팀을 결성한 듀오는 이 밴드의 핵심이며, 다른 아티스트들은 주변부가 된다.
3M과 네슬레도 비슷한 전략을 추구한다. 이 회사는 전통적인 조직구조와 팀 단위로 이루어진 네트워크가 결합된 형태이며, 이 네트워크는 새로운 사람들이 들고 나며 꾸준하게 진보하도록 돼 있다. 핵심을 유지하면서 주변부를 활성화하고 네트워크를 이해할 수 있는 기업은 혁신, 역동성, 유연성을 가능케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면서도 전반적 조직구조는 그대로 두어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3. 공식에 계속 도전하라
기업은 창의적 제품이 한 번 성공하고 나면 같은 방식을 고수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마블에서 일한 감독들은 한결같이 이전 MCU를 성공시킨 비결을 기꺼이 버렸다고 말한다. <앤트맨과 와스프>의 감독 페이턴 리드Peyton Reed는 2018년 인터뷰에서 직전의 마블 영화(블랙 팬서,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와 차별점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구조적으로는 범죄영화 장르의 형식을 취하고 싶었습니다. 엘모어 리어나드Elmore Leonard소설이라던가 <미드나잇 런>, 스콜세지의 <특근> 같은 영화의 형식을 만들려 했죠. 우리는 전작이 <블랙팬서>고 <인피니티 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어떻게 생각했냐면 ‘그래 전작과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면서도 아주 다른 작품이 될 거야’였어요.”
리드 감독의 말은 립서비스 아닐까? 우리는 MCU의 모든 영화를 분석해 흥행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았다. 사람들이 실은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처음엔 얻은 답은 ‘맞다’였다. 모든 MCU 영화에는 슈퍼히어로와 빌런이 등장하고 3막쯤에는 CG로 범벅이 된 전투가 벌어지면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차지하곤 했다. 영화마다 코믹스 원작자인 스탠 리Stan Lee가 카메오로 등장했다. 하지만 좀 더 세밀한 분석에 들어가자 뭔가 좀 더 복잡한 면이 드러났다. 우리는 마블이 창조한 드라마와 마블이 들려주는 시각적 스토리를 경험한다. 이런 면을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각 영화의 각본을 컴퓨터로 텍스트 분석하고, 이미지에 관해서도 시각적 분석을 실시했다. 또한 저명 비평가들이 기존의 슈퍼히어로 영화 장르와는 다르다고 꼽았던 요소도 분석했다. 우리 목표는 마블 영화의 극적, 시각적, 서술적 요소가 어떻게 차별성이 있는지를 보다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각본 분석을 통해 우리는 마블 영화들이 서로 다른 감정적 톤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캐릭터들의 대사를 통해 드러나는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 간 균형이 다르다는 뜻이다.) <아이언맨 2>에는 유머코드가 많은데, 이를테면 닉 퓨리가 식당의 거대한 도넛 모양 간판 위에 걸터앉아 있는 아이언맨에게 “선생님! 도넛 밖으로 좀 나오시지요!”라고 외치는 식이다. 반대로 다음 영화인 토르는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쫓겨난다는 줄거리인데 한층 어둡고 슬픈 분위기였다.
시각적으로도 MCU 영화들은 서로 달랐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간에 가장 큰 변주가 있다. 첫 번째와 세 번째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가디언즈의 배경은 우주와 외계행성이다.
더구나 마블에서도 평단의 (또한 관객의) 가장 큰 지지를 받았던 영화들은 슈퍼히어로 장르의 관습을 어기는 것으로 보이는 영화였다. <인크레더블 헐크>와 첫 두 편의 <토르>는 ‘지루할 정도로 관습을 따른다’ ‘젊은층만을 위한’ 영화이며, 관객을 ‘클리셰로 연달아 두들겨 팬다’ ‘완전히 비주얼만 살아 있다’라는 평을 받았다. 반대로 <아이언맨>은 리얼리즘이 살아 있으며 주인공에 이례적인 깊이와 진정성을 입혔다는 평을 들었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1970년대 팝송의 재활용과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예찬이, <닥터 스트레인저>는 예술적인 시각효과와 지적인 분위기가,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우주 전쟁극이 아닌 일상적 안전에 대한 판타지를 일으킨다는 점, <블랙팬서>는 사회적 발언과 정치적으로 의식이 있는 캐릭터가 주목받았다.
이런 마블의 끈질긴 실험은 관객들의 호응을 받았을 뿐 아니라 MCU 경험의 핵심적인 특성이 됐다. 팬들은 뭔가 색다른 것을 찾아 다음 마블 영화를 보게 되었다. 반대로 어떤 하나의 흥행공식을 고수하는 프랜차이즈는 나중에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문제에 부딪치곤 한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를 보자. 이 영화가 비평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비주얼이 이전 스타워즈 시리즈와는 크게 달랐고, 이전 영화의 극적 구조를 파괴하는 데도 망설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타워즈 시리즈를 오래 사랑해 온 팬들은 이런 정형성의 위반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신성모독으로 여겼다. 10만 명 이상의 팬들이 Change.org에서 이 영화를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제외해 달라는 청원에 동의했다.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은 인터넷에서 괴롭힘을 당했다. 스타워즈는 관객에게 혁신을 보여줄 수 있는 감독들의 재능을 억누르는 공식을 따라왔다. 새로운 시도는 역풍을 맞았다. 스타워즈의 팬들이 새로운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MCU의 경험은 지속적 실험을 통해 프랜차이즈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교훈은 영화산업 밖에서도 유효할 것 같다. 예를 들어, 스페인 의류브랜드 자라는 최신 트렌드에 맞춘 신상품을 빠른 간격으로 출시하며 오트 쿠튀르 패션 브랜드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는다. 자라의 경쟁사들은 고객이 1년에 두세 번 매장에 오는 것으로 예상하지만 자라의 고객들은 많으면 1년에 다섯 번까지 매장에 들른다. 신상품이 이전 상품과는 매우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4. 고객의 호기심을 키워라
마블 스튜디오는 캐릭터, 플롯,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관한 강렬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마블의 우주는 누구든 시도해 볼 수 있는 퍼즐 같은 느낌이다. 관객은 더 큰 우주를 경험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마블은 여러 방법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중 한 가지 방법은 SNS상의 의사소통을 통해 관객을 간접적 공동제작자로 개입시키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팬덤 양성을 지지하는 마블의 오랜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마블 만화책 뒷면에 팬레터를 싣는 것도 그중 하나다. 이 페이지를 통해 팬들도 공공연히 팬심을 표현할 수 있고, 창작자들도 팬의 피드백에 응답할 수 있었다. 이런 전통을 따른 파브로와 마블 감독은 SNS를 사용해 마블 코믹스의 진성 팬들과 계속 연락하며 채팅이나 게시글을 통해 인사이트를 얻기도 한다.
마블은 ‘이스터 에그’를 개봉작에 넣어 이후의 작품에 대한 기대를 유발한다. 스토리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다음 작품이 어떤 것일지 암시하는 것이다. 마블의 유명한 쿠키 영상이 그 예다. 첫 번째는 <아이언맨> 마지막에 새뮤얼 L. 잭슨이 연기하는 쉴드의 국장 닉 퓨리가 등장한 영상이었다. 팬들은 이 장면을 보며 <아이언맨>이 더 큰 세계의 일부가 되리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또한 마블 영화는 열혈 팬만 알아볼 수 있는 요소나 레퍼런스를 은근히 숨겨 놓기도 하고, 마블의 여러 영화나 상품 전체를 아우르는 캐릭터나 스토리라인을 살짝 보여주기도 한다. 그 예로, 19번째 마블 영화를 장악했던 인피니티 건틀렛은 네 번째 영화인 <토르>의 배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무기 리빙 트리뷰널의 지팡이는 <닥터 스트레인지>에 잠깐 등장하며 이후 시리즈에 새 인물, 즉 리빙 트리뷰널이 등장할 것을 암시한다. <토르: 다크 월드>에서는 칠판에 방정식이 가득 써져 있는데, 이 중 하나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인크레더블 헐크를 함정에 빠뜨리는 만화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반전의 조짐을 보여준다.
열혈 코믹북 팬들은 마블 시리즈나 외부 영화에 대한 은근한 또는 노골적인 레퍼런스와 더불어 수없이 많은 힌트들을 찾아낸다. 눈에 잘 띄는 레퍼런스들은 영화평론가들도 재빨리 찾아낸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레이더스(인디아나존스1)> <말타의 매> <스타워즈> 등을 따라한 부분이나, <블랙 팬서>가 007 제임스 본드를 오마주하는 부분들 등이다. 열혈 팬들은 마블의 세계에 더욱 깊숙이 들어가는 전문 블로그나 웹사이트를 찾는다. <블랙 팬서>만 해도 그런 사이트가 수십 개 있다. 이런 사이트에서 팬들은 원작 코믹스의 비주얼, <백투더 퓨처II>에 나왔던 자동으로 끈이 묶이는 운동화를 따라 한 부분, 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암시, 오프닝 장면의 배경이 오클랜드라는 것의 의미에서부터 웨일스가 독립국가로 묘사되는 것이나 트럼프의 멕시코 장벽에 대한 은근한 (혹은 노골적인) 비유 등 온갖 것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마블 외 다른 조직에서도 미스터리와 호기심을 적절히 섞어 혁신 우주를 키워 왔다. 이스터 에그의 개념은 1979년 비디오게임인 <어드벤처>에서 유래했으며 이후 다른 비디오게임, 코믹스, 홈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제품으로 확장됐다. 구글은 이런 메커니즘을 이용해 직원들이 장난기를 부릴 수 있게 했고, 최근에는 검색엔진 출시 20주년을 기념해 향수를 자극하는 이스터 에그를 시리즈로 내놓았다.
나이키의 조던 농구화 브랜드는 새 모델을 출시할 때마다 숨겨진특징으로 호기심을 자아낸다. 운동화의 신발끈 아래 ‘혀’ 부분에 ‘Jordan’이라는 글씨를 점자로 새겨 둔다든가, 탄소섬유로 된 신발 뼈대를 슬쩍 보여주는 ‘창문’을 밑창에 만들어 둔다거나, 실패를 극복하라는 내용을 밑창에 레이저로 새겨 둔다든가 등이다. 실제로 나이키는 마블과 비슷한 전략을 많이 사용한다. 제품 간 연결점이 되는 디테일이 있고, 제품 론칭까지 비밀을 유지하며, 광범위한 온라인 고객 네트워크에서 피드백을 받는다. 나이키의 경우 한정판매 제품을 팬들이 먼저 구매할 수 있게도 한다.
창의성과 혁신을 유지하는 전략은 대부분 문화를 형성하고 프로세스를 따르는 데 집중한다. 이런 전략은 유용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다. 성공한 제품이 후속작에는 제약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마블의 네 가지 원칙은 기업이 이런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하지만 이 원칙들은 다같이 적용해야 한다. 과거의 성공 공식에 지속적으로 도전하겠다는 강한 의지(원칙3)나 안정감을 주는 핵심직원(원칙2) 없이 경험이 있는 무경험자를 선택한다면(원칙 1), 이 사람들은 당신이 원하는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과거의 성공 공식에 도전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원칙3) 고객의 호기심을 키울 수 있는 잠재력(원칙4)을 갉아먹게 된다. 이스터 에그만 잘 숨겨놓는다 해서 스토리가 뻔한 영화나 지루한 제품을 성공시킬 수는 없다. 이 네 가지 피스톤 모두를 점화시킬 수 있는 기업만이 지속가능하며 끝없이 반복할 수 있는 혁신의 엔진을 갖게 될 것이다.
번역 송채영 에디팅 조진서
스펜서 해리슨(Spencer Harrison)은 인시아드의 조교수다.
안 칼슨(Arne Carlsen)은 BI 노르웨이경영대학원 교수다.
미하 시케르라바이(Miha Škerlavaj)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 교수이며, BI 노르웨이경영대학원의 겸임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