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더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전략 & 마케팅

캐나다구스 CEO의 자국산 럭셔리 브랜드 만들기

매거진
2019. 9-10월호

캐나다구스 CEO의 자국산 럭셔리 브랜드 만들기

다니 레이스

 

 

 

나는 2001년의 그날을 명확하게 기억한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작은 회사 캐나다구스Canada Goose가 대표 상품인 파카를 꼭 캐나다 안에서만 생산하겠다고 결정한 날을. 그날 나는 토론토 공장(당시는 그 공장 하나뿐이었다) 위층에 있는 내 책상에 앉아, 북미에 있는 두 곳의 의류회사가 제조공장을 해외로 옮긴다는 기사가 실린 조간신문을 읽었다. 이 두 업체의 경영자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댔다. 첫째, 높은 국내 인건비 때문에 이윤이 줄어들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더 높은 이윤을 추구하는 건 더 나은 사업을 위한 결정일 따름이었다. 둘째, 그들은 브랜드와 제품의 질만 그대로 유지되면 고객은 제품이 어디서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나는 생각했다. 저들은 틀렸어.

 

나는 가격 경쟁을 통해 대량 판매를 달성하는 건 성공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그건 생필품 브랜드를 구축할 때나 쓰는 방법이다. 나는 지속가능한 글로벌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양보다 질을 우선하는 핵심 가치들의 토대 위에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나는 젊은 시절 해외 무역박람회를 돌아다니며 유럽과 아시아의 많은 고객들은 제품이 어디서 만들어지는지에 정말로 신경을 많이 쓴다는 사실을 배웠다. 특히 고가의 제품일수록 더 그렇다. 나는 사람들이 고품질의 정품 캐나다산 외투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사실 누가 캐나다 사람들보다 추위에 대해 더 잘 안단 말인가?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제품의 원산지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메이드 인 캐나다가 중요해지고 다른 모든 기업이 떠난 뒤에도 우리가 남아 있으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엄청난 비교우위를 갖게 될 터였다.

 

오늘날 캐나다구스는 아마도 캐나다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의류 브랜드 중 하나일 것이다. 자체 상점과 전자상거래 채널, 그리고 전 세계의 소매 파트너들과 함께 다양한 고품질 외투와 기타 의류를 판매하고 있다. 가격대는 295~1695달러다. 위니펙에 세 개, 토론토에 세 개, 퀘벡에 두 개의 공장이 있고 그 각각의 도시에 재봉사 훈련학교가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캐나다 의류제조산업의 인프라를 재건하는 선두주자로 인정받고 있다. 최근에는 캐나다의 우수 신발제조업체인 배핀Baffin을 인수하면서메이드 인 캐나다회사가 세계적인 럭셔리 기업이 될 수 있다는 몇 년 전 나의 베팅을 두 배로 올렸다.

 

 

가족 기업

 

캐나다구스는 1957년 폴란드 이민자였던 나의 외조부가 만든 회사에서 비롯됐다. 메트로 스포츠웨어Metro Sportswear라는 이 회사는 소수의 직원이 일하는 작은 산업용 의류 공장이었는데, 그들 중 몇 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은 이곳에 있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은퇴를 하지 않았다.

 

1970년대에 나의 아버지가 사업에 참여했고 오래지 않아 회장이 됐다. 그가 옷에 거위털을 채우는 기계를 발명한 덕분에 우리는 더 효율적으로 일하고 제품군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그는 또 스노구스Snow Goose라는 내부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 브랜드는 온타리오 지방에 있는 군 특수부대에 코트를 공급했는데, 엄청난 따뜻함 덕분에 북극권 지역에서는 이 코트의 팬클럽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 수익의 대부분은 다른 회사의 이름을 붙인 외투를 만드는 프라이빗 라벨private-label사업의 수수료에서 나왔다.

 

이런 사업관계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주문은 원하는 만큼 많지도, 자주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부모님은 직원들을 일년 내내 고용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끔은 공장을 계속 운영하기 위해 수익성이 낮은 주문도 받았다. 부모님은 내가 그들과 같은 커리어를 갖지 않았으면 했다. 그들은너는 전문직이 돼서 예정대로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을 받아야 한다면서공장 운영은 너무 힘들다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나는 파카를 만드는 일이나 부모님의 사업을 물려받는 데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부모님들의 조언대로예측 가능한 전문직직업을 갖지도 않았다. 영문학을 전공했고, 단편소설 작가가 되고자 했으니까. 하지만 1996년 대학을 졸업하고 우선 여행을 좀 다니고 싶었다.

 

여행을 가려면 돈을 좀 벌어야 했다. 그래서 시급 12달러를 받고 3개월 동안 공장에서 일할 수 있겠느냐고 여쭤봤다. 오래 일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그 일이 결국 내 인생의 일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일을 해보니 나는 돈을 버는 게 좋았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이 회사가 결코 단순한파카 만드는 사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뭔가 진정성 담긴 걸 만들고 있었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들에는 고객들의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사업을 개선할 수 있는 몇 가지 아이디어도 떠올리게 됐다. 예를 들면, 당시는 이메일과 인터넷의 초창기였는데 우리는 이런 것들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회사의 이메일 계정을 만들고 웹사이트도 만들었다. 내가 예정했던 3개월은 6개월로, 또 몇 년으로 늘어났다. 이젠 일하기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다.

 

전 세계의 무역박람회에 참석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부터였다. 일본과 유럽에서는 스노구스가 이미 상표등록이 돼 있어서 캐나다구스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는데, 이 작은 라벨이 그 지역 고객들에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상에서 가장 추운 곳에서 살고 일하는 사람들이 우리 코트를 입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가진진짜라는 평판을 토대로 상징성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런 기반 위에 뭔가를 더 쌓기 위해서는, 우선 프라이빗 라벨 사업에서 벗어나야 하고, 스노구스라는 이름을 없애고 오로지 캐나다구스에 집중해야 했다.

 

브랜드 구축

 

2001년 나는 부모님께 회사 경영을 맡을 준비가 됐다고 말씀드렸다. 이는 몇 가지 큰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뜻이었다. 아버지는 공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지만 내가 추진하려 하는 브랜드 전략을 이해했다.(사실 나는 어린 시절 라코스테 셔츠의 악어 마크를 잘라내고 입을 정도로 라벨을 싫어했다. 그런 내가 이런 일을 추진한다고 하니 아버지는 아이러니하게 생각하셨을 것이다.) 아버지 덕분에 나는 경영권을 갖게 됐고 내가 꿈꾸는 캐나다구스의 비전을 추구할 수 있게 됐다.

 

느리지만 꾸준히, 프라이빗 라벨 계약을 하나씩 줄여나가고 캐나다구스 브랜드에 집중했다. 유럽과 아시아 전역을 두루 여행하면서 소비자들이 무엇을 중시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연하지만 품질이 핵심이었다. 사람들은 제대로 디자인되고 완벽하게 꿰매진, 최고의 재료로 만든, 엄청나게 따뜻한 코트를 원했다. 그건 내가 부모님께 배운 것이기도 했다. 그들은 몇 번 쓰고 버리는 싼 물건을 사는 대신 오래 입을 수 있는 고품질 제품에 투자하기 위해 항상 돈을 모았다. 캐나다라는 원산지 또한 중요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캐나다구스 재킷을 소유하는 건 캐나다의 작은 일부를 소유하는 것과 같았다. 사람들은 그걸 위해 기꺼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다른 기업들이 나라를 떠나더라도 우리는메이드 인 캐나다브랜드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이 299달러짜리 코트를 사서 10년만 입고 버리는 상황이라면 캐나다 국내에서의 생산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겠지만, 외투가 최고급 시계나 자동차와 같이 명품 대접을 받고 선망과 수집의 대상이 되는 새로운 환경에서는 국내 생산비를 감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위스에는 롤렉스가 있고, 영국에는 레인지로버가 있다면, 캐나다에는 캐나다구스가 있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작은 기업이었기 때문에 화려한 광고 캠페인으로 소비자 인지도나 수요를 높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어쩌면 더 강력한 종류의 마케팅에 초점을 맞췄다. 바로 입소문을 내고 진짜 스토리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북극 탐험에 나선 탐험대의 이야기가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리게 됐을 때, 우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탐험대원들에게 우리 재킷을 입혔다. 우리는 기온이 영하로 크게 내려갈 수 있는 멀리 떨어진 추운 지역에서 촬영하는 TV와 영화 제작진에게도 우리 옷을 입혔다. 우리는 지구에서 가장 추운 환경에서 살고 일하는 사람들을 보호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새로운 생산인력 만들어내기

 

인지도가 높아지고 판매가 급증하기 시작하자 생산량을 늘려야 했다. 토론토에 있는 훨씬 더 큰 제조시설로 옮겼고 나중에는 지금의 여덟개 공장 체제로 확장했다.

 

인재도 더 많이 필요했다. 놀랍게도 우리의 옷 한 벌은 여전히 엄청나게 많은 양의 숙련된 손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전 세대 캐나다인 중에는 이민자를 비롯해 숙련된 바느질 솜씨를 가진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의 노동시장에서는 그런 기술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필요로 하는 생산인력이 존재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직접 만들어 내면 된다. 우리의 훈련 학교에서는 산업용 재봉틀 사용법과 지퍼를 다는 법을 비롯해 많은 것을 가르친다. 위니펙에서는 지역정부 및 채용 에이전시와 협력해 우리 프로그램에 들어올 학생들을 모으고 있다. 위니펙에서 채용한 1250명에 더해 매니토바 주에서도 지난 1년 동안 770명 이상을 훈련시켜서 고용했다. 현재 우리는 캐나다 전역에서 35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다.

 

캐나다적인 전통과 파카 국내 생산 방침은 우리 사업과 브랜드의 중심이다. 업계의 많은 기업들이 해외 제조기업에 생산을 아웃소싱하고 있지만 우리는 캐나다 안에서 프리미엄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공격적인 투자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캐나다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캐나다의 임금은 해외 제조공장보다 최대 다섯 배 높지만 우리의 제조시설과 숙련된 기능공들은 세계 무대에서 그리고 고객의 마음속에서 우리를 돋보이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새로운 의류 카테고리를 추가할 때는 인건비에 상관 없이 가장 품질이 좋은 제품을 필요한 만큼 만들 수 있는 장소를 선택했다. , 이윤을 많이 남기는 것을 추구하지 않았다. 외투 이외 우리의 첫 제품군이었던 니트웨어의 경우는 많은 연구 끝에 이탈리아와 루마니아에서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캐나다 땅에서 핵심 거위털 제품을 모두 제조하겠다는 약속을 유지하면서, 전 세계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역량과 인프라를 구축했던 것이 우리가 했던 최고의 투자였다.

 

물살 거슬러 올라가기

 

여러 해 동안 나는 우리의 자체 매장을 여는 것을 꿈꿔 왔다. 비록 세계 최고의 유통업체들과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었지만, 우리의 전통과 전체 제품군을 보여주고 쇼핑객들을 여과 없이 캐나다구스의 스토리에 몰입시킬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

 

이 꿈은 2016년 현실이 됐다. 토론토와 뉴욕 에우리의 첫 매장을 열었다. 이때는 우리가 이미 북미 지역에서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을 때라 순수 제조업체에서 유통업체로의 전환이 새로운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수많은 기업들이 오프라인 매장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오프라인 사업으로의 확장은 전 부서에 걸쳐 사업과 운영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다. 오늘날 전 세계 12개 도시에 캐나다구스 점포가 있으며 온라인 판매는 글로벌하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는 옷의 기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고객에게 탁월한 경험을 제공하려 한다. 이렇게 하다 보니 최근콜드 룸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고객들이 구매 전에 영하 25도의 낮은 온도에서 제품을 테스트할 수 있는 공간을 매장에 둔 것이다. 이는 고객이 완벽한 재킷을 구매하도록 도와주는 창의적이고 진정성 있는 방법이다.

 

2017년 우리는 회사를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나는 이를 또 다른 스토리텔링 기회로 삼았다. 아마도 가장 큰 기회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건 전 세계 사람들이 캐나다구스의 일부를 소유하고 우리의 여행에 동참할 수 있게 했다. 상장을 하면 변화가 불가피할 거라고 경고한 사람도 많았다. 투자자들을 기쁘게 만들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도록 회사에 압력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우리에게 맞는 공식이 아니었으며 우리는 그 사실을 첫날부터 명확히 했다. 나는 처음 CEO가 됐을 때와 변함 없이 똑같은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사업을 계속 운영하고 있다.

 

IPO 로드쇼[1]에서는 캐나다구스가 일시적인 유행인지, 너무 많은 인기를 얻고 있어 걱정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이는 내가 회사를 다닌 동안 아마도 매해 들었던 질문이지만 그 질문은 여전히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 우리 브랜드는 60년이 넘었고 적어도 지난 15년 동안 매년 성장해 왔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시작일뿐이다. 나는 이제서야 우리를 발견하는 사람들로부터 그들이 얼마나 우리 제품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자주 얘기를 듣는다. 나이가 적든 많든, 인근 지방에 살든 해외에 살든, 야외 탐험가이든 패셔니스타든, 사람들은 모두 품질과 진정성, ‘캐나다구스다움이라는 DNA를 유지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반응한다. 그것이 우리가 성장하고 오래가는 브랜드를 구축하면서도 의미를 잃지 않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나는 우리 사업의 한 측면은 절대로 협상 불가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캐나다구스는 영원히메이드 인 캐나다의 옹호자가 될 것이다. 우리가 시간을 초월한 브랜드로 남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번역 김선우 에디팅 조진서

 

[1]회사를 주식시장에 상장하기 전 증권회사나 은행 등 기관투자가들에게 사업 내용을 설명하는 자리

아티클을 끝까지 보시려면
유료 멤버십에 가입하세요.
첫 달은 무료입니다!

관련 매거진

아티클이 실린 매거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코리아 2019.9-10월호 성과를 갉아먹는 성과지표? 25,000원 22,500원

아티클 PDF

하버드비즈니스리뷰코리아 2019.9-10월호 캐나다구스 CEO의 자국산 럭셔리 브랜드 만들기 5,000원
  • ※ 아티클 PDF 구매는 월별 제공되는 PDF 다운로드 권한을 모두 사용하신 1년 또는 월 자동결제 서비스 구독자에 한해 제공되는 서비스입니다.
  • ※ 아티클 PDF 다운로드가 필요하신 분께서는 HBR Korea 서비스 구독을 신청하세요!
(03187) 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1 동아일보사빌딩 (주)동아일보사
대표자: 김재호 | 등록번호: 종로라00434 | 등록일자: 2014.01.16 | 사업자 등록번호: 102-81-03525
(03737)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 29 동아일보사빌딩 15층 (주)동아미디어엔(온라인비즈니스)
대표이사: 김승환 | 통신판매신고번호: 제 서대문 1,096호 | 사업자 등록번호: 110-81-47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