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
전략적 장기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더 좋은 방법
데이비드 프리드린저
치리오 매니징파트너
올리버 하트
하버드대 교수
케이트 비타섹
녹스빌 테네시대 연구원
Idea in Brief 문제점 전통적인 구매계약은 당사자들이 서로에게 매우 의존적이고, 미래 상황을 예측할 수 없고, 유연성과 신뢰가 요구되는 복잡한 전략적 관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전통적 계약은 불확실성을 헤쳐 나가기 위한 파트너십을 증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해한다.
원인 계약 상대방이 자기 이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하거나 내게 피해를 줄 가능성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업은 전통적인 계약을 이용해왔다. 이러한 적대적 마음가짐은 부정적 앙갚음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해결책 정식관계계약은 신뢰에 기반을 두며, 공동의 목표를 명시하고, 시간이 지나도 당사자들의 기대와 이익이 계속 일치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조를 수립한다. |
2005년 델이 하드웨어 반품과 수리 절차를 총괄하는 업체로 페덱스를 처음 선정할 당시, 둘은 전통적인 공급계약을 맺었다.
100페이지가 넘는 계약서에는 페덱스가 지켜야 할 구체적 의무들과 페덱스의 성과를 측정하기 위한 10여 가지의 방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거의 10년 가까이 페덱스는 계약서상 모든 의무를 충실히 지켰다. 그러나 어느 한 쪽도 이 관계에 만족하지 못했다. 델은 페덱스가 지속적인 개선과 혁신적인 솔루션 개발에 소극적이라고 느꼈다. 페덱스는 복잡한 요구사항 때문에 자원이 낭비되고 업무자율성이 제한되는 게 불만이었다. 델은 페덱스와 함께 한 8년 동안 세 번의 공급자 입찰을 추진하는 등 비용을 낮추려 했고, 이로 인해 페덱스의 이익은 감소했다.
8년차에 들어서자 둘은 한계에 다다랐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한 쪽도 관계를 쉽게 끝낼 수는 없었다. 델 입장에서는 공급업체를 바꾸는 데 많은 비용이 들었고, 페덱스 입장에서도 델과의 계약에서 창출되는 매출과 이익을 대체하기가 쉽지 않았다. 둘 다 잃을 게 많은 루즈-루즈lose-lose시나리오였다.
이런 상황은 종종 일어난다. 기업들은 공급업체가 비용절감, 품질향상, 혁신추진 등에 있어 중요한 파트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공동의 목표와 위험에 대비해 전략적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한다. 그런데 막상 계약협상이 시작되면 달라진다. 서로에게 적대적 태도를 보이며 전통적인 계약관계로 접근한다.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따지면서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한다. 다양한 계약서 조항을 활용해 관계의 우위를 점하려 애쓴다. 한쪽 당사자에게 특정기간 이후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편의에 따른 해지’ 조항이 그 예다. 이런 조항은 원하면 계약을 깰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막상 두 기업 모두 계약 상대방을 바꾸는 비용이 많이 들어 실제 그럴 확률은 낮은데도 말이다. 나아가 이런 조항은 파트너와의 관계와 계약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부정적 행동들을 유발한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려면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즉 ‘정식관계계약formal relational contract’을 맺어야 한다. 계약서상에 공동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적고, 두 기업이 장기간에 걸쳐 이해관계를 일치시킬 수 있도록 거버넌스를 확립해야 한다. 처음부터 둘의 신뢰와 협력을 촉진하면서 법적 효력이 있는 정식관계계약을 체결하는 게 필요하다. 발생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what-if scenario를 미리 예측할 수 없는 복잡한 관계일수록 더 그렇다. 복잡한 아웃소싱과 구매 관계, 전략적 제휴, 합작투자joint ventures, 프랜차이즈, 민관 파트너십, 대형 건설 프로젝트, 협력적 노사협약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캐나다 정부, 델, 인텔, 스웨덴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 스웨덴 통신회사 텔리아Telia등 많은 기업과 기관들이 정식관계계약을 성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아티클에서 우리는 정식관계계약의 이론적 근거를 살펴보고, 협상을 위한 5단계 방법을 설명하고자 한다.
발목 잡기, 불완전 계약, 감추기의 문제
기업은 전통적으로 상대방이 권한을 남용하거나 내게 피해를 줄 가능성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계약을 이용해 왔다. 상대가 일방적으로 가격을 인상 또는 인하하거나, 배송일자를 변경하거나, 고용조건을 보다 까다롭게 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홀드업hold-up’ 문제라고 부른다. 이는 상대방이 내 발목을 잡을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생긴다. 기업이 아무리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예측하려고 애써도 계약에는 누락되거나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런 구멍들이 기업의 홀드업 행동을 부추긴다.
기업은 강력한 파트너가 자신을 마음대로 휘두르지 못하도록 여러 방법을 사용한다. 다수의 공급자와 계약하거나, 공급자가 가격을 변동하지 못하게 하거나, 원할 때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조항을 넣는 식이다. 초기 계약 단계 이후 발생하는 모든 활동에 대해 공급자가 책임지도록 하기도 한다. 일부 기업은 공급업체를 밀착 관리하기 위해 ‘그림자조직shadow organization’을 설치하기까지 한다.
우리 필자 중 한 명이자 201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올리버 하트교수의 초기연구에 따르면, 상대방의 발목 잡기와 불완전한 계약의 문제는 기업이 왜곡된 투자 결정을 내리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결정은 기업에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하나의 공급자 대신 다수의 공급자를 사용하면 비용이 증가한다. 그림자조직 운영도 마찬가지다. 편의에 따른 해지 조항을 넣을 경우 공급자는 구매자와의 관계에 투자하는 것을 꺼리고 비뚤어진 태도를 취하게 된다. 한 공급업체의 CEO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60일 뒤 편의에 따른 해지 조항이 있는 계약은 계약기간이 60일인 것과 다름없습니다. 60일 뒤 해지 조항이 있는 고객을 위해서 이익을 내는 데 두 달 이상 걸리는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은 우리 회사의 주주들에 대한 충실 의무에 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혁신에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구매자들이 셈을 할 줄 안다면, 우리가 혁신에 투자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2008년 올리버는 경제이론가 존 무어John Moore와 함께 계약에 대한 연구를 재검토했다. 이들은 또 한 가지의 심각한 문제가 ‘감추기shading’라는 점을 깨달았다. 감추기란 한 계약 당사자가 협력을 중단하고 협조적 태도를 보이지 않거나 대응조치에 나서는 등의 보복성 행동을 말한다. 감추기 행동은 계약을 통해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느낄 때 발생한다. 상대방이 피해를 줄이기 위한 합리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느낄 때도 마찬가지다.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당사자는 이에 대한 보상심리로 은근히,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업무역량을 줄인다.
한 엔지니어링 서비스 공급업체가 경쟁입찰에 제안서를 내고 낙찰을 받았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실제 계약기간이 시작됐을 때 구매자가 제안요청서RFP에서 제시했던 것보다 수요가 적거나 예상치 못했던 부분으로 업무범위가 확대되면 공급자는 이익에 타격을 입게 될 수 있다. 만약 구매자가 공급자의 수수료나 업무기술서SOW를 조정해 주지 않는다면 공급자는 현재 프로젝트에 투입하고 있는 높은 비용의 A팀 인력을 더 낮은 비용의 C팀 인력으로 교체해 손실을 회수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복잡한 장기 계약에서 감추기 행동이 일어나고 서로에 대한 앙갚음이 계속되면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 수 있다. 올리버와 무어가 발전시킨 이론은 계약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는다.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거나 계약 당사자들이 원하는 바가 바뀔 때 기대에 계속 부응하기 위한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는 것, 이 기준을 계속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새로운 접근법
올리버와 무어가 경제학적 관점에서 계약의 문제를 살펴보고 있을 때, 우리 필자들인 케이트와 데이비드를 포함한 테네시대 연구원들은 기업들과 협업해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을 개발하고 있었다. 이들은 노력 끝에 정식관계계약을 맺기 위한 ‘기득권 방법론vested methodology’을 개발했다. 이는 “계약이 ‘우리’에게 무엇이 좋은가(what’s in it for we)”, 즉 파트너십 정신을 묻는 절차다. 기득권 방법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분명하다. 상대방의 성공이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에 서로가 상대방의 성공에 대한 확정적 이익 즉, 기득권vested interest을 가진다는 의미다. 또 법적 집행력이 있는 서면계약이기 때문에 정식formal계약이라고 부른다. 정식관계계약은 전통적인 계약에 있는 요소 외에도 공동의 비전, 지도원칙, 탄탄한 지배구조 등의 요소를 포함한다. 당사자들간 기대하는 바와 이익을 일치시키는 관계 구축에 필요한 요소들이다.
물론 당사자들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하는 관계계약의 개념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약식 ‘구두계약’의 이점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구두계약을 장려하는 이들도 많았다. 법학자 스튜어트 매콜리Stewart Macaulay와 이언 맥닐Ian Macneil이 1960년대 초 구두계약의 초기 지지자였다. 구매자가 공급자의 지분을 보유하는 등의 방법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는 일본의 게이레쓰keiretsu모델도 관계계약의 한 종류다.(‘The New, Improved Keiretsu’, HBR 2013년 9월호 참조)
그러나 당연히 대부분의 기업, 특히 기업의 법무 담당자들은 중요하거나 위험한 계약일수록 약식 구두계약으로 체결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도요타와 닛산 등 일부 기업이 성공적으로 활용한 게이레쓰 모델조차 자본을 묶어두고 유연성을 저해한다며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이런 기업들에 정식관계계약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델과 페덱스는 한계에 부닥쳤을 때 기존 계약을 과감히 버렸다. 그 대신 공동으로 기대하는 목표를 명시하고 운영, 관리, 경영 차원의 관계관리relationship-management절차를 확립한 정식관계계약을 만들었다. 그리고 첫 2년간 델과 페덱스는 비용을 42%, 폐기물을 67% 줄였다. 부품 100만 개당 결함이 있는 수를 가리키는 DPPM(defective parts per million)도 기록적인 수준으로 낮췄다. 현재 두 기업 모두 새로운 계약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기업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같은 모델을 적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57개 기업이 기득권 방법론을 도입했다. 데이비드와 케이트가 이 중 다수의 프로젝트에 컨설팅을 제공했으며, 몇몇 사례를 이 아티클에 소개했다. 모든 계약의 결과를 확인해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러 기업이 우리에게 양 쪽 모두 새로운 계약에 만족하며 비용절감, 이익개선, 서비스품질 향상, 관계증진 등 많은 이익을 거뒀다고 말했다.
실제 적용하기
정식관계계약 절차를 바로 맺기 전에 먼저 우리 회사와 맞는지 살펴봐야 한다. 일상적인 제품 및 서비스 구매계약 등 단순한 거래는 전통적 계약만 맺어도 충분하다. 그러나 복잡하고 장기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경우 기득권 방법론이 필요하다.(148p ‘어떤 유형의 계약이 나에게 맞을까?’ 참조)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서 행정당국인 밴쿠버아일랜드 보건당국Vancouver Island Health Authority과 입원전문의 기관인 사우스아일랜드 입원전문의 협회South Island Hospitalists가 체결한 협력 파트너십도 좋은 예이다. 이들은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입원환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 두 기관은 기존의 전통적인 계약이 만료된 뒤 2년간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협상과 논쟁을 벌였다. 한참 합의점을 못 찾다가, 결국 2016년 관계계약을 시도해 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케이트를 포함한 테네시대 연구원들과 협력해 다음 5단계 절차를 도출했다.
1단계 기반 구축. 1단계의 주요 목표는 파트너십 정신 구축이다. 당사자들은 각자의 고차원적 열망, 구체적 목표, 우려사항 등을 투명하게 공유할 수 있는 신뢰를 쌓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만약 당사자들의 기존 계약관계에서 불신과 감추기 행동이 반복됐다면 어쩌다, 왜 그 지경이 됐는지도 곱씹어봐야 한다.
밴쿠버아일랜드 보건 당국과 사우스아일랜드 입원전문의 협회는 기존 계약을 버리고 새로운 정식관계계약을 맺기 위해 행정관 열두 명과 입원전문의 열두 명으로 구성된 팀을 조직했다. 핵심영역별로 각 조직당 한 명씩 짝을 이뤄 협업했다. 가령 사우스아일랜드협회의 스펜서 클리브Spencer Cleave입원전문의와 밴쿠버아일랜드 보건 당국의 킴 케론Kim Kerrone재무부사장이 파트너가 돼 기존 서비스수수료 지급구조를 재검토하는 소그룹을 이끄는 식이었다.
계약 팀을 함께 이끌었던 사우스아일랜드협회의 진 매스키Jean Maskey입원전문의는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계약서를 쓰는 데에만 신경을 쏟지 않고, 행정관과 입원전문의로서 함께 캐나다 의료서비스의 선구자가 될 수 있도록 훌륭한 관계를 맺는 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2단계공동의 비전과 목표를 함께 수립. 계속해서 변하는 복잡한 환경에서 두 당사자의 기대를 일치시키려면 갑을관계로는 안 된다. 두 당사자가 동등한 관계에서 각자의 비전과 목표를 솔직하게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밴쿠버아일랜드 보건 당국과 사우스아일랜드협회 팀은 사흘에 걸친 외부 워크숍에서 함께 비전을 세웠다. “우리는 안전하고 우호적인 환경에서 공동 책임, 협력적 혁신, 상호 이해, 그리고 행동할 용기를 통해 환자들과 우리 스스로를 위한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증진하고 축하하는 한 팀이다.” 그리고 이런 공동의 비전은 네 가지 결과를 가져왔다.
• 최상의 환자 케어(고품질의 강력한 공식 구조 개발)
• 지속 가능하고 유연한 입원전문의 서비스(채용, 멘토링, 고용유지 절차 강화, 효율적이고 유연한 입원전문의 일정관리 모델 개발, 입원전문의 서비스와 업무영역을 명확히 정의, 부서간 협력관계 강화, 현재와 미래의 입원전문의 리더 훈련 및 양성)
• 강력한 파트너십(밴쿠버아일랜드 보건 당국과 사우스아일랜드 간의 건강한 관계 지속)
• 최고로 가치 있는 입원전문의 서비스(선제적 예산 관리, 청구비용 최적화, 업무영역 검토, 운영효율 개선)
후속 워크숍에는 이보다 더 깊이 들어가 높은 수준의 기대성과 네 개, 목표 일곱 개, 측정 가능한 세부 목표 22개를 도출했다. 예를 들어, 입원전문의가 수수료 비용을 회수할 때 지역의료보험Medical Services Plan·MSP비용청구절차를 개선하는 것이 여러 목표 중 하나였다. 이에 두 당사자는 비용청구서를 최대한 많이 수리할 수 있도록 전자 비용청구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공동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비용청구 지원 및 IT기술팀과 협업했다. 그 결과 비용 회수율은 87%에서 100%로 개선됐다.
3단계지도원칙 도입.가치를 깎아 먹는 갈등과 감추기 행동은 한 쪽 당사자 또는 두 당사자 모두가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낄 때 발생한다. 계약을 체결하고 난 뒤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매우 불확실할 때 리스크가 가장 크다. 3단계에서 당사자들은 상대방의 기회주의적 보복 조치를 계약으로 봉쇄하기 위해 여섯 가지 지도원칙에 합의했다.
여섯 개 원칙은 상호호혜, 자율성, 정직, 충실, 평등, 완전성이다. 이는 기득권 방법론을 사용하는 모든 계약의 토대가 되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잠재적 의견 충돌을 해결하기 위한 기준이 된다.
아일랜드 보건 당국과 사우스아일랜드협회는 계약서 서문에 위의 여섯 가지 원칙을 공식적으로 포함시켰다. 이들 원칙은 각각 파트너십의 새로운 표준norm을 수립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상호호혜’는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할 필요를 강조한다. ‘평등’에 대해서는 ‘우리는 공정함을 약속하지만, 이 공정함이 반드시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수요, 위험, 자원 등을 균형 있게 평가해 의사결정을 내릴 것이다’라고 정의함으로써 계약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불균등은 인정하고 있다.
지도원칙은 반드시 강력한 효력을 가져야 한다. 계약상 문구가 모호할 수 있지만,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법정에서 해석해줘야 한다. 실제로 캐나다 대법원에서는 최근 한 가맹점이 본사로부터 공정하지 못한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건이 다뤄졌다. 바로 여기에 정식관계계약의 장점이 있다. 지도원칙을 위반해 많은 비용이 드는 법정 다툼까지 벌이고 싶어 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계약은 비생산적 행동을 막는 억제효과를 갖는다.
4단계기대와 이익의 일치. 1~3단계에서 관계를 위한 기반을 다지고 난 후 계약 쌍방은 서로의 의무, 가격, 성과지표 등 거래조건에 합의해야 한다. 정식관계계약의 모든 조건은 반드시 지도원칙과 일관돼야 한다.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지면 계약협상은 적대적, 경쟁적 협상이 아니라 공동의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가 된다.
아일랜드 보건 당국과 사우스아일랜드협회가 가장 까다로운 쟁점이던 가격 조건에 어떻게 합의했는지 살펴보자. 이전까지 두 당사자들은 불투명한 장막을 치고 각자 운영해 왔다. 예를 들면, 아일랜드 보건 당국은 사우스아일랜드협회와 한 번도 예산을 공유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사우스아일랜드협회의 보고체계가 최적화돼 있지 않아 청구비용에 대한 논쟁도 끊이지 않았다.
아일랜드 보건 당국의 킴 케론은 기득권 방법론이 어떻게 이 같은 교착상태를 해결했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이 문제를 관계의 경제economics of the relationship로 접근했습니다. 협상의 마음가짐이 아니라 문제해결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완전히 투명하게 공개했습니다. 모든 것을 솔직하게 밝히고, 우리가 가진 예산 안에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계약 팀과 논의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기존의 비용청구 방법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도출했다. 고정요금과 변동요금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가격모델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인센티브 체계를 고안했다. 이 모델은 입원전문의에게 일정관리의 자율성을 부여했다. 팀은 더 나은 환자진료를 위해 일정관리를 최적화하는 작업을 의료 최전선에 있는 입원전문의들보다 더 잘할 사람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가격모델에서는 환자 수가 적을 때 입원전문의들이 알아서 단축근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일랜드 보건 당국의 비용도 절감됐다. 입원환자 수가 많을 때는 입원전문의들은 예산 안에서 자신의 진료일정을 관리한다. 사우스아일랜드협회 입장에서도 이렇게 입원전문의들의 업무효율성과 비용청구절차가 개선되면 인센티브를 얻을 수 있고, 이를 연구나 고품질 진료서비스에 원하는 대로 투자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두 당사자 모두 새로운 모델이 과거 계약에서는 불가능했던 윈-윈 솔루션이라고 느꼈다.
5단계지속적 관리.이 단계에서 계약 당사자들은 계약조건을 넘어 계약서에 공식적으로 포함될 거버넌스 메커니즘을 수립한다.
아일랜드 보건 당국과 사우스아일랜드협회는 네 개의 공동 거버넌스 팀을 만들고 관계계약에 명시했다.
• 관계팀은 관계의 건전성을 모니터링
• 성과팀은 품질 관리, 변화를 위한 이니셔티브, 지속적 개선, 혁신 아이디어 발굴 및 관리
• 지속가능성팀은 업무부하, 일정관리, 인력 채용 및 유지
• 가치최적화팀은 재무, 비용청구, 업무부하 최적화, 운영효율성 관리
각 팀은 정기적으로 만나 공동의 비전, 목표, 결과, 평가측정 차원에서 성과를 검토한다.
계약에는 두 번째 거버넌스 메커니즘도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네 개의 거버넌스 팀 각각에 대해 행정관 한 명이 입원전문의 한 명과 팀이 되는 ‘2인 1조’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사우스아일랜드협회의 켄 스미스Ken Smith입원전문의는 이 방식이 두 당사자 간 신뢰와 정직한 의사소통을 촉진시킨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걱정되는 점이 있어도 어느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어요. 이제는 내가 잘 아는 고위급 행정관이 있으니까, 급하게 의사결정을 해야 하거나 다음 공식미팅 전 처리해야 하는 시급한 문제가 있으면, 저의 2인 1조 파트너에게 전화해서 만나자고 합니다.”
두 당사자는 관계를 증진하고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거버넌스팀 간의 공식 2인 1조뿐 아니라 조직 전체적으로도 2인 1조 방식을 매우 권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킴 케론과 진 매스키는 비공식 2인 1조다. 이들은 정식관계계약이 두 기관 모두에 ‘혁신적’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관계계약 협상이 시작되기 직전, 그리고 체결 후 1년 뒤 시행됐던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들었다. 2년 만에 두 기관 사이의 관계가 긍정적이라고 답한 사람의 수가 84%나 증가했다. 과거에는 하나같이 두 기관의 관계가 “망가졌고, 제 기능을 못하며, 신뢰할 수 없다”라고 답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협력적이고, 신뢰할 수 있으며, 많은 지원을 받는다”라고 답했다.
케론은 재무적 이점도 언급했다. “처음으로 두 기관은 효율성을 높이고 제한된 예산 안에서 환자 관리를 최적화하기 위해 협력적으로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산 내에서 운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MSP 비용청구절차를 개선해 수입도 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공공자금으로 운영되는 의료기관인 만큼 바로 이런 데 집중해야 합니다.”
거버넌스 구조는 업무범위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관계계약을 논의 중이던 2016년과 2017년 캐나다는 사망 시 의료지원을 합법화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당시에는 통과된 법이 어떻게 시행될지 구체적 내용이 정해지지 않아서 관련 내용을 계약에 포함시키기 어려웠다. 그래서 지속가능성팀은 입원전문의들의 일정 및 가격모델에 어떻게 새로운 업무범위와 역할을 추가할지 결정하기 위해 시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예전처럼 “이 일은 내 업무범위가 아니다”라는 주장이나 태도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의 계약의도에 맞춰 새로운 현실을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까?”라는 정신이 나타났다.
미래: 경쟁우위를 위한 계약 체결
정식관계계약은 결코 전통적 거래계약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할 것이며, 대체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제시한 프로세스는 협력과 유연성을 요구하는 매우 복잡한 관계에서 유용한 도구로 사용돼야 한다.
사우스아일랜드협회를 대변하는 변호사이자 빅토리아대 법학교수 글렌 갤린스Glenn Gallins는 정식관계계약을 도입하는 것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우선 관계에 기반한 협상에 집중하는 것은 훌륭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런 관계가 당사자들이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핵심 의사결정으로 잘 연결됐을 때 진정한 힘이 생깁니다.”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면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관계를 맺는 게 필수적인 비즈니스 세계에서 리더들은 기존 계약접근법을 바꿀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번역 한지은 에디팅 김윤진
데이비드 프리드린저(David Frydlinger)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로펌 치리오(Cirio)의 매니징파트너이며, 녹스빌 테네시대 하슬람경영대학원 부교수다.
올리버 하트(Oliver Hart)는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이자 2016년 노벨경제학상 공동수상자다.
케이트 비타섹(Kate Vitasek)은 하슬람경영대학원 연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