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미국의 대표적인 철도운송기업 CSX 경영진에게 예상치 못한 소식이 날아왔다. CSX의 모태 기업은 19세기 초 설립됐는데, 당시 미국에 노예로 잡혀 온 이들의 후손이 뉴욕연방지방법원에 CSX를 상대로 보상을 청구하는 집단 소송을 낸 것이었다.
내용 요약
원인 오랜 역사를 가진 일부 기업의 경우 노예제, 홀로코스트, 토착민 강제이주 등 잔악무도한 행위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반응 현재의 경영진은 과거의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그러나 과거 잘못에 대해 더는 심판을 미룰 수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대책 먼저 신의의 원칙과 윤리적 의무에 따라 이런 머나먼 과거의 범죄에 대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업이 인정해야 한다. 보상을 위해 피해자 커뮤니티와 후손과 힘을 합쳐 완전히 투명하게 과거사를 밝히고 사과하는 한편 과도기적 정의의 현장에서 단서를 얻어야 한다.
피고 측은 CSX 말고도 미 생명•건강 보험회사인 애트나, 뱅크오브 아메리카가 인수한 미 금융서비스회사 플리트보스턴FleetBoston Financial 등 3개사였고 불특정 손해배상, 무급 강제 노역에 대한 보상, 노동으로 인해 올린 수익 일부에 대한 보상을 청구하는 소송이었다. 원고에 따르면 CSX는 노예를 동원해 철로를 놨고 플리트보스턴은 노예무역선의 선주가 설립한 은행과 연관이 있으며 애트나는 ‘노예 자산human chattel의 손실에 대비해 노예 소유자를 대상으로 (보험)영업’을 벌였다.
고발 내용은 아주 명확했고 법과 윤리 측면에서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오랜 역사를 지닌 기업이 먼 과거에 저지른 만행에 속죄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당시 CSX 회장이자 CEO였던 존 W. 스노John W. Snow는 “아니다”라고 답했다.(스노 회장은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으로 재임했다.) CSX가 발표한 성명서에 따르면 노예제도는 역사적 비극이지만 이번 소송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CSX 대변인 캐틀린 A. 번스Kathleen A. Burns는 한 세기도 전에 발생한 과오에 대해 현재의 직원과 주주에게 책임을 물으려 한다며 원고 측을 비판했다. 소송은 본안 심리 없이 기각됐다. 원고들과 피해자 사이에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연관성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법조계 일반적인 동향을 볼 때 충분히 예측 가능한 판결이었다. 기업의 역사적 범죄에 대한 배상 청구 소송에서 미 법원이 원고의 손을 들어준 적은 많지 않고, 국제형사재판소는 기업과 관련한 사건은 심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 분위기가 더는 역사적 심판을 미뤄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기울면서 옛날 옛적의 행적으로 인해 기업이 지는 법률 및 평판 리스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학교들은 그릇된 역사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이름을 바꾸거나 마스코트를 퇴출시키고, 겨우 몇 년 전만 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역사적 인물의 동상을 찾아 철거한다. 기업은 그동안 축적한 부의 기원을 조사하고 현재의 수익률이 가능해질 때까지 어떻게 사람들을 착취했는지 집중적으로 파헤쳐야 했다. 소셜미디어 덕분에 시민운동가들은 보다 수월하게 비판 세력을 결집하고 보이콧을 조직하고 행동에 나서자고 촉구한다.
법은 국민의 정서를 따르기 마련이다. 입법부가 윤리적 심판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무시하는 법을 법전에 그대로 남겨둘 리가 없다. 옥스퍼드대의 리 페인Leigh Payne 교수와 연구진이 전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만행을 자행한 기업에 책임을 요구하는 케이스를 종합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보면, 현재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압도적이지만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는 만큼 수년 안에 지금과 다른 풍경이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볼티모어대 협상 및 갈등 관리 분야의 조교수로 과거의 집단 잔학 행위에서 기업이 맡은 역할과 이후 보상 노력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를 하면서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알 수 있는 모태 기업의 범죄가 밝혀지면서 어떻게 경영진이 허를 찔리는지, 그리고 흔히 취하는 그 방어적인 대응 때문에 얼마나 큰 역효과가 야기됐는지도 직접 볼 수 있었다. 최근 필자는 〈Last Train to Auschwitz〉를 펴냈다. 이는 프랑스국유철도 회사(SNCF)가 끔찍한 상황에서 수만 명의 유대인과 기타 소수민족을 화물 기차에 실어 폴란드 나치 강제수용소로 보낸 데 대한 보상을 요구하며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낸 소송들에 대한 책이다. 이와 더불어 비슷한 여러 사안을 바탕으로 수세대에 걸쳐 지금까지 활동하는 기업들이 자사의 부끄러운 역사에 어떻게 선제적으로 대처하는가와 관련한 베스트 프랙티스를 수집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