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on the big idea
미투 운동, 남녀 대결 아닌 좋은 일터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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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투 운동, 일터를 바꾸다
2018년. 일터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성추행·성희롱에 대응하는 여성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상처를 드러내는 동안, 여성인 필자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이건 미투 아니지요?”였다. 여성의 외모에 대해 “예쁘다”고 칭찬하고, 비즈니스 현장에서 여성과 의례적인 악수를 하고, 매력적인 여성과 찍은 사진을 단체 채팅방에 올리며 이런 말을 슬쩍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미투 운동이 마치 일반적 상황에서 일어나는 남성과의 접촉을 성희롱이나 성추행이라고 여성들이 생떼를 쓰는 현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적지 않음을 말해 주는 듯하다. 혹은 지인이, 혹은 평소 좋아하던 예술가가 그리고 지지하던 정치 지도자가 검찰조사까지 받는 상황이 되다 보니 판단이 흐려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내가 이런 사람을 지지했나?’ 하는 자괴감을 느끼기보다는, ‘여성이 문제’라는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다. 사안에 대해 객관적-윤리적 판단을 하기보다 나와 (심리적으로) 가까운 사람의 편을 들고 싶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룰이 느슨했던 시절, ‘남성답게’ 성적 폭력을 가하던 동료나 선배들의 행동에 별 생각 없이 동참했거나 침묵했던 경험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반면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 사회는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의 인권과 권익 신장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번 호 The Big Idea 코너에 이렇게 전문적인 긴 글을 쓸 수 있는 저자들이 많다는 것 자체가 이를 방증한다. 이 콘텐츠는 깊이 고민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목숨을 걸고 참정권을 얻어내고, 남녀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치열한 노력의 과정에서 나온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양한 관점에서 저자들은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논리를 펼쳐내고 있다.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
미투에 대응하는 방식. 변화는 시작되었다. 성평등과 시민의식이 먼저 발달한 서구에서 시동을 걸었지만, 한국사회도 건강한 발전의 계기로 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HBR의 미투 관련 아티클들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의미가 있다. 최근 이슈는 단순히 남성과 여성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인간과 일터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의 존엄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모든 동시대인들에게 지침이 되는 글이다.
우선 이 글은 남성과 조직을 운영하는 경영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그리고 왜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설명해 준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더 이상 혼란스러워 하지 말고 침묵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더 좋은 일터를 만들기 위한 실질적 대안도 제시한다. 국내에서는 미투 운동이 일자 개인이나 조직 차원의 ‘펜스 룰’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에서 종교인들이 이성에게 유혹받지 않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 변해서 나온 것이다. 한국에서는 필요한 업무 이외에는 여성과 단둘이 대면하는 상황 자체를 없애거나, 회식이나 미팅 자리에 아예 여성을 배제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당하지 않다. 남성 입장에서 그렇다. 펜스 룰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성희롱을 하고 성추행을 하는 사람들과 같은 무리임을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여성 전체에 대한 보복이다. 지금 미투 운동의 대상은 함께 일하는 여성(혹은 남성)들의 의사에 반해, 그리고 자신이 가진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간절히 일자리가 필요한, 혹은 평생을 바쳐 일구어 온 커리어를 지켜야만 하는 여성들에게 행해진 구체적인 신체접촉, 부적절한 언어, 시각적 행위, 물리적 행위 등에 관한 것이다. 부적절한 행동을 자주 하기 때문에 아예 여성과의 접촉을 원천 차단해야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펜스 룰을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다. 무고에 대응하기 위해 이런 펜스 룰을 쓴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일어나는 강력범죄 중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비율이 80%라고 해서, 여성들이 모든 남성과의 접촉을 피하지는 않는다.
관계중심적 사회의 손익과 미투.윌리엄스와 렙속은 과연 일반적인 일터에서 자신이 당하지도 않은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해서 여성이 얻는 게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실제 일어난 성추행과 성폭력에 대응하는 여성도 업무재배치나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있다. 우리의 사회적 환경을 고려할 때 이 질문은 더욱 의미 있다. 성폭행, 성희롱이 기사화될 때마다 SNS 공간엔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해당 여성들의 사진이 돌아다닌다. 한국에서 미투 운동을 선도한 여성들의 소식을 전한 기사에 성적 비하, 외모 평가 등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충격적 댓글로 인한 2차, 3차 피해가 발생하는 사례도 목격된다. 또 인터넷이 발달한 한국에선 죽을 때까지 나의 이름과 사진이 모욕적인 댓글과 함께 온라인에 돌아다닐 수도 있다. 수백억 원대의 징벌적 배상이 이뤄지는 미국에서도 2차 피해 등의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인데, 모든 게 인정돼도 많아야 수천만 원의 보상이 전부일 재판에 인생을 걸 사람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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