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on the Big Idea
고령화시대 한국 기업,
성별·나이·배경의 다양성 확대 시급하다
장은지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14%로 2017년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통계청 2017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 즉 직업에 종사할 수 있는 인구계층인 15~64세 연령층이 처음으로 감소했다. 이 속도를 이어가면 우리나라는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2037년까지 생산가능인구는 20%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기업이 조직과 또 시장 내 고객의 고령화에 얼마나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지는 사실 매우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인식 및 위기감은 사실 높지 않다. 이런 시점에 HBR에서, 고령화에 대한 이슈와 대책을 매우 다양한 각도에서 논의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우리 기업의 노령화와 이로 인한 승진 적체는 이미 매우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승진 적체로 인한 중간관리자층 비대화, 이로 인한 생산성 저하 및 관리자 스스로의 동기 저하, 이로 인한 업무몰입 저하 및 생산성 재저하로의 악순환이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많은 기업이 보직이 없는 고령의 관리자에게 어떻게 하면 동기를 부여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지를 앞다투어 고민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최근 중소기업 인사담당자들이 꼽은 ‘올해 회사의 가장 중요한 HR 이슈’ 결과에서도 이러한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력 증가에 따른 대응’ 및 ‘인구절벽으로 인한 인력 부족’ 등의 문제에 대해 16.8%에 해당하는 중소기업 인력담당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대응(35.5%)’에 이어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답했다. 즉, 실제 기업 현장에서도 인구구조 변화의 문제가 심각한 문제를 끼치는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음이 수치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사회적인 인식 변화가 감지된다. 그중 노인의 기준 연령을 올리려는 것은 평균수명이 급격히 올라가고 있는 시대에 어찌 보면 당연한 조치인 듯하다. 우리는 2017년이 돼서야 60세 정년 연장 의무화가 됐지만 일본은 1998년에 60세, 2013년에 이미 65세로 연장했으며 최근에는 노인 기준연령을 75세로 상향하는 문제가 공론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유엔도 2015년에 65세까지 청년, 79세까지 중년, 그리고 80세 이상을 노년으로 정의하자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기업들이 끌어안는다고, 우리 기업의 고령화와 생산성 저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젊은 인력은 줄어들고, 노년 인력은 조직에서 이탈하지 않으므로 현재의 문제는 더더욱 심각해질 뿐이다.
문제의 관점은 오히려 ‘우리의 고령 인력이 왜 저생산성을 유발하는 인력으로 남아 있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본다. 우리 기업의 고령화로 인한 문제는 사실 고령화 자체의 속도뿐만 아니라 고령화 이전에도 누적돼 온 낮은 생산성의 조직구조 및 조직운영의 문제가 고령화와 맞물려 극대화된 현상이다.
이에 대한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짚어야 할 부분은 관리자 중심의 조직이다. 물론 이것이 국내 기업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국내 기업의 대부분은 위계적인 조직구조를 유지하며 그 내부에 층층이 직급체계를 나누어 이 체계 간 승진과, 이와 연동된 보상을 통해 직원들을 유인하고 유지해 왔다. 공채 시스템을 통해 유입된 많은 인력들은 대리 직급을 넘기면서 중간관리자가 되고, 그 이후로 경력이 15년 정도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슬슬 실무에서 손을 떼기 시작해서 관리자로서의 기능만 남게 된다. 그 다음의 승진을 위해서는 직무보다는 관리자로서의 역량이 중요시된다.
과거 성장시대에서는 조직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며 이를 제대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일사불란한 성장을 제대로 컨트롤하는 ‘관리자 역할’이 중요했으며, 이들이 낳는 부가가치는 매우 높았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불확실성, 변동의 경영환경에서 관리 자체가 조직에 가져올 수 있는 부가가치는 높지 않다. 따라서 연령에 상관없이 중간관리자들이 이미 조직에서 저부가가치를 낳는 환경에 처했고, 더욱이 외부로의 인력순환이 쉽지 않은 국내 노동시장과 경제 저성장으로 퇴로가 막히는 것이 현재의 고령화와 생산성 저하를 더욱 더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관리자로 성장하면서 관리 외에는 직무 전문성을 잃어버린 관리자들의 재고용 문제에서 더욱 심각해진다. 이는 이 글에서 언급된 미국 시장보다도 한국 기업의 고령 노동자에게서 상대적으로 훨씬 더 심각하게 드러난다. 국내와 해외 시장을 포괄하는 글로벌 리크루터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바가 있다. 미국·홍콩·싱가폴 시장에서는 내가 X기업에서 Y기업으로 이직한다고 했을 때 이전 직장에서의 경험과 전문성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한국 기업에서는 임원들이 퇴직해도 다른 기업에서 데려다 쓸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직장을 구할 수 있는 어떠한 전문성도 사라진 지 오래이며, 이들은 X기업에서만 필요로 하는 일들을 너무 오랫동안 해 온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관리자 출신의 이러한 고령 인력들은 잡 마켓에서 힘없는 을(乙)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고령 인력들의 생산성과 재교육 문제는 조직 내에서의 지속적인 성장 및 역할 부여를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다시 말해, 관리자로서 성장하는 것이 조직에서 성공한다는 인식을 이제는 버리고, 전문가로서 조직에서 기여하면서 오래오래 남을 수 있는 기회들을 조직에서 보장하는 범위가 훨씬 더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IT서비스를 영위하는 고객사의 인력들을 전반적으로 코칭 및 피드백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이미 이러한 지식서비스 산업에서도 상당 부분의 인력이 50세 이상의 고연령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관리자로서의 포지션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더욱 더 흥미로운 것은, 이들 대부분은 스스로 관리자로서의 승진에 관심이 없고 개발자로서 계속 근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여전히 관리자로서 또 경영자로서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했으며, 승진은 하고 싶으나 관리자로서의 업무는 부담스러워하는 고령 인력들도 상당수였다. 몇몇의 인력들은 관리자보다는 전문가로서 남고 싶으나 조직이 ‘관리자가 아닌 상태로 둘 뿐’ 공식적인 커리어 경로와 옵션을 제도적으로 마련하고 지원하고 있지는 못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구성원들의 커리어에 대한 니즈 변화를 조직이 제대로 담아내고 이들이 전문성을 발휘하면서도 적체인력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조직에서 관리자로서의 승진이 아니면 인정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굳어져 있는가? 이는 한국이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과도 큰 관련이 있다. 논공행상(論功行賞)의 불필요한 유교적, 폐습적 인식도 존재하지만, 무엇보다 동일한 남성인력, 비슷한 연공서열의 기준으로 노동인력들을 평가하다 보니 서열화 인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식 변화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성별, 나이에 있어서의 다양성과 그에 더해 교육 및 배경 등에 있어서도 다양성을 추구하는 ‘다양성의 일상화’가 조직 내에 전제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불필요한 직급 체계가 승진 적체의 비효율성을 고스란히 드러내지 않도록 하루 빨리 조직을 관리자 중심의 위계조직에서 수평화된 조직으로 변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고령화로 인해 승진할 자리가 부족해서 직급을 더 만드는 악순환은 단기적인 처방이 될 수밖에 없다. 위계가 아닌 역할 조직으로의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이번 고령화 특집 기사에서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어린이를 돌봐야 하는 주부가 아이 돌봄을 위한 직장문화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노령화 인구의 폭발적 증가에 대비해 노인·부모를 돌봐야 하는 직장문화 또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족 돌봄’의 범위가 아이뿐만 아니라 노인들도 포함해야 하는 환경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출산률이 점점 더 낮아지는 상황에 처해 있으므로 아마도 이러한 문제가 실제 이슈로 공론화되는 시점도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올 것 같다. 생산인구의 육아를 위한 사회기반 인프라도 충분하지 않은 마당에, 이런 문제까지 다가온다면 우리 사회가 이 켜켜이 묵은 저생산성의 난제를 과연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직장문화에 있어 유연한 근로형태의 확산도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이는 관리자가 되기 위해 돌봄의 역할을 포기해온 중년 이상의 남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인식 변화이기도 하다. 직장에 대한 개인적 희생이 더 이상 생산성과 성장을 담보해 주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가 돌봄을 받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조직구조와 관행을 조속히 바꾸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였다.
장은지 이머징 리더십 인터벤션즈(Emerging Leadership Interventions) 대표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모니터그룹, 액센추어 등 글로벌 전략컨설팅 회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했고, 맥킨지 서울사무소 맥킨지리더십센터장을 지냈다. 국내외 유수 기업 대상 전략 및 조직개발, 리더십–인재육성 관련 프로젝트를 15년간 수행했으며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가 진행한 한국 100개 기업 기업조직건강도와 기업문화 진단보고서 프로젝트를 총괄했다. ejchang@emerg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