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오늘날 인간 사회를 설명하는 강력한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근대의 문이 활짝 열렸고, 이 두 가지 사상적 토대 위에 근대를 지나 현대로 이어지는 인류 역사가 진행돼 왔습니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소외시킨다고 카를 마르크스가 일갈한 이래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공격과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자본의 집중과 독과점, 그로 인한 빈부 격차와 갈등이 단골 소재였는데요, 이런 자성적 사고가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돌아보고 치유해가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고 근래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CSV나 ESG 등의 개념도 그런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자국 우선주의가 확산하고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착한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이 주춤하는 모양새이기는 하지만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 어떤 식으로든 계속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업의 ‘전략’ 분야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혁신은 파괴와 동의어로 여겨졌습니다. 기술이 진보해가는 흐름을 창조적 파괴라고 꿰뚫은 조지 슘페터, 파괴적 혁신이라는 말을 처음 쓴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등 유수의 사상가들은 기존 시장을 벗어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의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혁신을 추구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성장과 혁신, 창조는 파괴 또는 와해를 기반으로 했죠.
블루오션 전략으로 유명한 김위찬, 르네 마보안 교수는 혁신이 꼭 파괴적일 필요는 없다며 파괴를 동반하지 않은 혁신의 유형과 그 방법을 탐구합니다. 혁신과 창조에 따라붙는 파괴에 대한 일침이 처음은 아닙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는 저서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에서 “창조적 파괴는 과거에 존재했던 일자리를 없애고 있다. …일자리들이 지탱해 줬던 삶과 공동체는 위기에 빠졌고 최악의 경우 절망과 죽음을 초래한다”라고 쓴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김위찬 교수 등의 아티클은 기존의 패러다임에 의문을 제기하고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해보려는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성장과 공존을 위한 인류의 고민과 성찰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챗GPT의 등장으로 AI 시대가 더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면서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 것인가 궁금해하는 분이 많죠. 아이러니하게도 간호사보다는 의사가, 건설 현장직보다는 건축가가, 어린이집 선생님보다는 교수가 더 빠르게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질적이나 양적인 면에서 우월한 지식의 축적이라는 상대적 우위가 의미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AI의 잠재력과 한계에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은 지금, 현장에서 인간 본연의 가치를 아낌없이 발휘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아 온 현장 근로직에 대한 이번 호 스포트라이트 아티클도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