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전략은 세계 모든 기업이 고민하는 문제다. 글로벌 비즈니스의 실제적 공용어인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미국과 영국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언어 전략으로 글로벌 인재 경영과 비전을 하나로 묶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덜 닐리와 로버트 스티븐 캐플란은 논문 ‘당신 회사의 언어 전략은 어떠합니까?’에서 언어 문제로 고민하는 글로벌 기업에 두 가지 조언을 해준다. 첫째, 국제 업무의 획기적인 개선을 원한다면 공통어(common language) 채택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 둘째, 개인의 언어 능력을 평가할 때는 언어 능력뿐만 아니라 업무 능력과 문화 역량도 고려해야 한다.
닐리와 캐플란이 공통어 채택을 권고하는 기업은 국경을 초월한 협업이 중요하고, 외국 기업을 인수•합병하거나 기술 플랫폼을 표준화해야 하는, 그리고 전 세계 차원의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글로벌 기업이라면 어디라도 이 조건을 만족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도 공통어를 채택해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 중 하나다. 글로벌 비즈니스 언어인 영어를 공통어로 선정하든지, 아니면 한국어를 공통어로 사용하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기업은 ‘영어공용화(English as an official language)’가 불가피하다고 인식했다.[1] 세계의 글로벌 인재가 사용하는 영어가 공용어를 조기 정착시키고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LG전자 등 영어공용화를 실시한 기업이 늘면서 영어공용화에 대한 경험적 연구도 가능해 보였다.[2] 그러나 한국 기업의 영어공용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영어공용화를 선도했던 LG전자도 더 이상 이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는다.
한국 기업이 영어공용화를 포기한 이유는 간단하다. 적지 않은 영어공용화 투자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금방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공용화를 채택한 기업들은 영어 사용은 크게 개선되지 못한 상황에서 소통 부재 등 부작용이 늘어난 것에 대해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기업만이 영어교육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원어민교사 채용 축소, 초등학교 영어몰입교육 제한 등 한국 사회 여러 곳에서 영어에 집착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반세계화 움직임이 한국 사회의 영어 인식을 바꾼 것이다.
그렇다면 영어공용화를 대체할 언어 전략은 찾은 것일까? 한국 기업은 여전히 직원 개인의 영어 능력을 중시하고 영어를 잘하는 인재를 신입이나 경력 사원으로 우대한다. 그러나 영어 인재 채용이 늘어나도 사내 공식어는 여전히 한국어다. 그렇다고 한국어가 전체 조직의 공통어가 되었다고도 말하기 어렵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외국인 직원이 많아서 외국어를 부분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일부 기업은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 직원을 고용하는 것으로 외국인 직원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 직원의 채용만으로는 효과적인 언어 전략이 될 수 없다. 한국 기업이 소통해야 할 외국인에는 직원뿐만 아니라 고객과 이해 당사자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글로벌 기업은 영어를 공통어로 채택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전면적인 공통어화가 어렵다면 닐리와 캐플란이 권고한 대로 순차적으로 공통어를 도입한다. 처음에는 다른 나라 직원과 협업을 많이 하는 직원이나 부서를 대상으로 공통어 제도를 도입하고, 이를 점차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단계적 공통어 채택은 필자가 저서 <영어상용화와 국가경쟁력>에서 제안한 영어상용화 정책과 동일하다. 영어상용화는 영어가 반드시 필요한 분야에서 일상적으로 영어가 사용되는 환경을 만드는 정책을 말한다.
다행히 영어 조기 교육의 영향으로 영어를 잘하는 젊은이가 늘어나고 있다. 영어 능력자를 많이 보유한 기업은 영어 사용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집행에 필요한 평가와 보상을 함으로써 공통어 채택을 어렵지 않게 추진할 수 있다. 현재 한국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공통어 채택에 대한 최고경영자(CEO)의 실천 의지다. 닐리와 캐플란이 조언한 대로, 한국 기업의 CEO는 이제 개인의 언어 테스트 점수만을 강조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언어와 문화 역량’을 인재 채용, 교육, 평가, 승진을 결정하는 요인과 글로벌 팀을 경영하는 핵심 전략으로 인식해야 한다.
[1]닐리와 캐플란은 모국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상호 이해를 위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라는 의미의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로만 기업의 공통어를 이해한다. 반면 필자는 ‘공식 언어로 채택된 공통어’로 공용어를 정의한다.
[2]모종린, <영어상용화와 국가경쟁력: 영어공용화 논쟁을 넘어서>, 나남,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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