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CEO 선정의 비밀
내부자가 알려주는 CEO 기용 노하우
Idea in Brief 관찰 결과 CEO를 잘 고르는 이사들은 어떤 점이 다를까? 이들은 CEO가 어떤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필요한 두세 가지 역량(피벗)에 초점을 맞춘다(후임 CEO는 피벗에 근거해 결정된다). 최고의 후보를 데려올 수만 있다면 그가 어디에 있든 상관하지 않는다. 어떤 후보가 가장 적임자인지 알아보기 위해 깊이 파고든다. 후보의 결점도 충분히 감안한다.
도전과제 기업에 따라 저마다 필요로 하는 CEO의 피벗도 다르다. 일단 이사진은 피벗을 매우 구체적인 용어로 표현하고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소매기업이 아마존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엔드-투-엔드 고객 경험에 집중하고 디지털 기술로 어떻게 사업을 바꿀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CEO가 필요할지 모른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경우에는 창의적으로 알고리즘을 적용하고, 디지털 자산을 축적하고, 자원과 인력을 재조직할 수 있는 CEO가 필요할지 모른다.
주요 행위자 인선 과정을 이끌어 갈 이사를 선정하는 일도 중요하다. 인선 작업에 뛰어난 이사들 중에는 전현직 CEO가 많고, 대개 통찰과 판단력 면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다. 다른 이사들은 질문을 통해 인선 과정에 객관성을 도모한다. 퇴임을 앞둔 CEO도 이사진이 회사와 내부인사 후보들에 대해 정보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한다. |
조직을 이끄는 사령탑인 CEO를 잘못 둔 기업이 잘될 리는 없다. 아무리 멘토링과 코칭을 제공하고 CEO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줄 믿음직한 고위 임원진이 곁에 있고 이사회의 특별한 지원이 뒷받침된다 해도 나쁜 CEO가 미치는 악영향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런 CEO의 실책과 오류는 치명적이며 그 영향은 개인 차원을 넘어선다. 그런데도 CEO를 잘못 선택하는 실수를 되풀이하는 이사회들이 있다. 멕 휘트먼이 CEO로 부임하기 전의 HP, 스티브 잡스가 CEO로 돌아오기 전의 애플,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야후에서 목격된 수장의 잦은 교체는 최근 사례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IBM의 루 거스너, 포드의 앨런 멀랠리, 애플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의 경우처럼 파격적인 CEO 인사가 단행된 뒤 놀라운 성공을 거둔 기업들의 사례도 볼 수 있었다.
어떤 이사회는 CEO를 잘 고르고 어떤 이사회는 CEO를 선임하는 데 애를 먹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나는 30년 넘게 미국, 중국, 일본, 인도, 브라질, 유럽에서 이사, 고문, 혹은 인선위원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여러 기업의 CEO 선임에 관여해 왔다. 이사회가 형편없는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직접 봤고, 탁월한 인선 결정을 해서 엄청난 기업가치를 창출한 이사회와 일해 보기도 했다. 나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사실상 한두 명의 이사가 탁월한 인선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들은 이사회 내에서 판단력과 전문성 측면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이들의 공통적인 접근방식과 ‘사고 알고리즘’을 알아내려고 노력해 왔다.
내 경험에 비춰 말하자면 CEO 기용을 잘하는 이사들의 행동은 네 가지 측면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첫째, 이들은 그 직책을 맡는 후임이 갖춰야 할 핵심 자질을 명확히 하기 위해 공을 들인다. 둘째, 이들은 최고의 후보를 데려올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 상관하지 않는다. 셋째, 이들은 어떤 후보가 최고 적임자인지 알아보기 위해 깊이 파고든다. 넷째, 이들은 선발된 후보의 결점도 충분히 감안한다.
철저한 후임 인선 계획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결국에는 누구를 선임할지 결정해야 하고, 두세 명의 최종후보 가운데 마지막 한 명을 선택할 때 판단력이 그야말로 중요하다. 좋은 CEO를 고를 줄 아는 이사들이 자신들의 판단이 올바른지 확인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한번 알아보자.
‘피벗’을 찾아라
이사회는 항상 가시적인 CEO 후보군을 마련해 둬야 한다. 급작스럽게 후임 CEO가 필요한 상황이 올 경우를 대비해 소위 ‘봉투 속 이름’이라 부르는 유력후보군을 정해둬야 한다. 그런데 CEO를 잘 선택하는 이사들은 정작 후임 CEO를 발표할 순간이 임박하면 이 후보 목록을 일단 제쳐 둔다. 그 대신 현재 CEO의 자격 요건과 미래 CEO의 자격 요건을 파악하는 작업부터 시작해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CEO의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데 집중한다. 그렇게 해서 CEO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리더십 특성들을 장황하게 뽑아보거나 반대로 단 하나의 리더십 특성을 알아내려는 게 아니다. 이들은 새 CEO가 성공하기 위해 갖춰야 할 두세 가지 역량을 찾아낸다. 이 역량들은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 이를 기준으로 여러 후보들 가운데 적임자를 가려낸다. 내가 이런 역량들을 ‘피벗(중심축)’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황에 따라 사정이 다르듯이 기업마다 CEO 자리에 필요한 피벗도 제각기 다르다. 피벗을 매우 구체적인 용어로 표현하고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소매업계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오늘날 전통적인 소매기업들은 아마존과 그 CEO인 제프 베조스에 확실히 대적할 수 있는 유형의 리더를 필요로 한다. 이런 리더의 피벗에는 엔드-투-엔드 고객 경험에 집중하는 능력, 매장 내 위치추적 기술, 디지털 기반 유통전략 등 디지털 혁신에 대한 통달, 공급업체와 배송 서비스를 갖춘 소매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이 포함돼야 한다. 반면에 전통적인 엔터테인먼트 기업에는 디지털 자산을 축적하고, 스트리밍과 알고리즘을 활용해 사업을 공격적으로 추진할 팀을 꾸리고, 인력과 자원을 필요에 맞게 바꿀 수 있는 CEO가 필요할지 모른다. 전통적인 자동차부품 공급업체 CEO의 피벗에는 OEM업체들이 기술표준과 동향을 논의할 때 거론하는 여러 기술에 대한 충분한 지식, 선진기술을 조직의 핵심 역량으로 개발해내는 능력, 향후 등장할 디지털 기업들과 협력할 수 있는 능력 등이 포함될 수 있다.
후임자를 정하는 승계 계획을 세워두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최종후보를 뽑을 때 적임자를 판단하는 능력이야말로 중요한 역량이다.
CEO 선택에 탁월한 이사진은 피벗을 알아내기까지 상당히 공을 들인다. 회사의 당면과제와 외부 환경조건의 변화추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들인다. 분석 보고서를 읽고, 내부 인사와 소통하고, 사고를 확장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와 상담한다. 이들은 일반적인 이사들보다 더 넓고 깊게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복잡하거나 모순된 문제들을 섣불리 간과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 문제들을 철저하게 파헤치고 필수적인 기술과 역량이 무엇인지 추론해본다. 이들은 올바른 역량 조합을 찾아낼 때까지 이런 과정을 되풀이한다.
캐피털시티즈/ABC의 CEO였던 토머스 머피와 존슨앤드존슨의 CEO였던 고 제임스 E. 버크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이들은 1993년 루 거스너를 IBM의 수장으로 앉혔다. 이때 IBM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자리에서 물러날 당시의 CEO는 회사를 떠나기 전에 이미 IBM의 몰락이 임박했다고 선언한 상황이었다. IBM이사회의 일원이던 머피와 버크는 한 달 동안 전 세계에 있는 고객과 업계 전문가들을 찾아가 회사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더 잘 파악하기 위해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조사 끝에 두 사람은 IBM의 문제가 기술적 문제라기보다는 사업적 문제에 가깝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들은 IT업계 출신 CEO 후보들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IT업계 경험이 IBM의 리더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경제·경영 분야의 매체들 사이에서는 IBM이사회가 어떤 기술전문가를 최종 선택할지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구인: 컴퓨터 능력 필수’라는 제목의 뉴욕타임스 기사에서는 애플의 존 스컬리, 컴팩의 벤 로슨, 모토롤라의 조지 피셔를 유력한 후보로 지목했다. 하지만 IBM이사회는 예상 밖의 인물을 택했다. 이들이 염두에 둔 피벗은 검증된 사업적 통찰력, 고객중심주의적 시각, 대기업의 결단력과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는 능력을 두루 갖추는 것이었다.
맨 처음으로 IBM의 수장 제의를 받은 인물은 뛰어난 사업적 통찰력과 경영성과를 보여 준 GE의 전설적인 CEO 잭 웰치였다. 웰치가 CEO 제안을 거절하자 머피와 버크는 웰치에게 GE가 IBM을 인수할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웰치는 또 거절했다. 머피와 버크가 찾아간 두 번째 후보는 웰치 사단 중 한 명인 래리 보시디였다. 보시디는 GE의 부회장과 얼라이드시그널의 CEO를 맡으면서 마크와 버크가 찾고 있던 재능을 보여준 인물이다. 보시디에게도 퇴짜를 맞은 두 사람은 이제 거스너에게 접촉했다. 거스너는 10년 동안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수익 증대를 이뤄낸 마케팅의 귀재다. 아멕스에서 한계를 느끼고 RJR 나비스코의 CEO직을 수락했지만 그다지 만족하지 못하고 있던 거스너는 IBM이라는 도전대에 오를 의향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전에도 그랬듯이 거스너는 보란 듯이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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