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더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마케팅

정체성을 넘어 팬덤으로

매거진
2025. 11-12월호
Market Leader in Korea:
현대카드의 브랜딩 전략

128141_1

정체성을 넘어 팬덤으로

페르소나를 중심에 두고 크리에이티브로 변주하다



“브랜딩은 브랜드의 운명으로 선택이 아닌 필수다. 모든 브랜드에는 브랜딩이 필요하다. 소비자와 접점이 없는 비료회사라고 할지라도.”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9월 22일 서울 영등포구 현대카드 본사 ‘쿠킹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와 같이 밝혔다. 정 부회장은 현대카드의 ‘오버 더 레코드’ 영상에서도 마케팅, 홍보와는 다른 브랜딩만의 역할이 존재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현대카드는 국내 브랜딩 역사에 수차례 큰 족적을 남겼다. 국내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전용서체를 개발해 브랜딩에 활용하고 국내에는 생소했던 미니멀리즘 디자인을 선도적으로 차용해 디자인계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과거 광고계가 유명 모델의 이미지에 의존했던 것에 반해 모델을 없애고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던진 현대카드의 광고는 수많은 패러디의 모티브가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비욘세, 콜드플레이 등 세계 정상급 아티스트들의 첫 내한공연을 성사시킨 사건은 ‘카드회사가 이런 일까지?’라는 충격을 안겨줬다. 반면, 국내 인디밴드를 위한 소규모 공연장도 지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약 20년간 파트너십을 이어오는가 하면 디자인, 쿠킹 등을 테마로 한 라이브러리도 만들었다.

브랜딩에서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조하며 산업계를 넘어 사회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현대카드의 브랜딩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다채로움과 영향력 때문만은 아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전방위적인 브랜딩 활동을 펼침에도 불구하고 현대카드의 작업물에서는 ‘현대카드스럽다’는 인상이 강하게 전해진다. 현대카드 브랜딩을 교과서로 삼고 모방하려는 많은 브랜드가 좌절하는 것이 이 지점이다. 세련되고 신선해 보이는 디자인, 행사 등을 시도해도 일회성 프로모션에 그치거나 브랜드만의 정체성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 부회장이 강조한 ‘브랜딩만의 역할’은 무엇일까.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가운데 현대카드만의 브랜드 정체성이 선명히 드러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카드는 그 답이 “신선함, 창의성을 넘어 이를 구조화, 매뉴얼화, 체계화한 ‘로직logic’에 있다”고 말한다. 20여 년간 현대카드만의 뚜렷한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다채롭게 변주하며 독자적인 브랜드 자산을 쌓아온 현대카드의 브랜딩 전략을 HBR KOREA가 분석했다.


브랜딩을 관통하는 ‘페르소나 매니지먼트’

현대카드는 브랜딩을 기업의 ‘페르소나persona’로 규정한다. 흔히 마케팅에서 우리 브랜드의 주력 고객이 어떤 모습일지 설정하는 페르소나와는 다른 개념이다. 브랜드나 제품이 대중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즉 기업의 페르소나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작업이다.

‘현대카드스러움’이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이를 일관적으로 표현express하기 위해 그 기준이 되는 키워드를 도출하는 것이 현대카드 브랜딩의 출발점이다. 대내외적인 환경이나 전략의 변화와 같이 특정한 계기가 있을 때뿐만 아니라 상시적으로 키워드를 점검하며 업데이트한다. 현대카드가 지향하고자 하는 다양한 이미지를 수집해 이미지 보드를 구축하고 그중 가장 명확하고 함축적인 것을 골라 키워드를 도출하는 식이다.

지난 약 8년 동안의 현대카드의 브랜딩 활동은 ‘볼드bold’ ‘인사이트풀insightful’ ‘위티witty’라는 세 가지 키워드에 발맞춰 전개돼 왔다. ‘볼드’는 단번에 큰 임팩트를 남기는 대담한 활동, ‘인사이트풀’은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전하는 활동, ‘위티’는 현상을 한 차례 재치 있게 비트는twist 활동을 뜻한다. 예컨대 지금과는 달리 글로벌 아티스트의 내한공연이 흔치 않던 2007년부터 시작된 ‘슈퍼콘서트’는 비욘세와 같은 슈퍼스타의 한국 공연을 성사시키며 공연마다 전 국민의 관심을 끌어모은다.(볼드) 당시 ‘카드사가 왜 문화사업을 하느냐’는 혹자들의 비판에는 냉랭한 반응을 모아 제작한 <Believe it, or Not: 레고빌딩편> 캠페인을 공개하며 유쾌하게 응수했다.(위티) 한편 현대카드가 디자인, 음악, 요리 등 특정 분야의 지식을 큐레이션해 선보이는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는 각 분야의 본질을 파고들며 깊은 통찰을 선사한다.(인사이트풀)

정 부회장은 브랜딩에 있어서 “창의성creativity이 40%라면 동기화synchronization가 60%”라고 밝혔다. 이는 개성 있고 고유한 브랜드의 페르소나를 구축하는 것 이상으로 그 페르소나가 브랜딩 활동에 일관되게 드러나야 함을 뜻한다. 각 키워드에 대한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앞서 단편적인 예를 들었지만 현대카드의 모든 브랜드 활동에는 이 세 가지 키워드 모두가 두루 반영된다.

이를 위해 정 부회장은 현대카드의 모든 구성원이 현대카드의 페르소나를 동일하게 이해하고 이를 원칙에 따라 체계적으로 적용할 것을 주문한다. 예컨대 각 활동에 ‘현대카드스러움’을 얼마나 녹여낼 것인지도 척도scale를 마련해 철저히 관리한다. 라이브러리는 현대카드 회원들을 위한 전용 공간으로 건축, 인테리어, 큐레이팅 등 모든 영역에서 현대카드의 색이 짙게 묻어 있다. 반면 구시대의 산물이 될 뻔한 LP(바이닐)와 CD(플라스틱)를 모아 청음 공간을 꾸민 ‘바이닐앤플라스틱Vinyl & Plastic’이나 설치, 사진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실험적인 전시를 선보이는 공간인 ‘스토리지Storage’는 콘셉트 자체의 개성이 강하다. 이처럼 드러내고자 하는 브랜드 정체성의 농도에 따라 각 공간의 로고에 현대카드를 표기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나타난다. 라이브러리는 현대카드를 전면으로 내세우며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라고 지칭한다. 반면, 바이닐앤플라스틱과 스토리지는 ‘바이닐앤플라스틱 by 현대카드’ ‘스토리지 by 현대카드’와 같이 현대카드의 이름이 뒤로 간다. 로고의 서체 또한 현대카드의 전용서체 대신 콘셉트에 알맞은 서체를 적용했다.

일관된 키워드 아래서 현대카드스러움의 정도를 조절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선사하기 위함이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브랜드는 이내 따분한 브랜드로 굳어진다”는 게 류수진 현대카드 브랜드본부장(전무)의 설명이다. 카드사가 대형 콘서트(슈퍼콘서트)를 열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동시에 소규모 공연장을 만들어 신예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것(언더스테이지) 모두 브랜드로서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통일감 있되 신선한 ‘브랜딩 변주곡’

브랜드 관리 이론의 선구자인 다트머스대 케빈 켈러Kevin Keller 교수는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 구조를 설계하는 전략으로 4단계로 구성된 고객 기반 브랜드 자산Customer Based Brand Equity 모델을 제시했다. 이 모델에 따르면 현대카드가 페르소나라는 공통된 주제하에 쏟아낸 브랜딩의 변주는 착실히 쌓여 현대카드만의 ‘브랜드 자산brand equity’이 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1단계  현저성Salience

말 그대로 소비자들에게 드러나는 단계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소비자들이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서체

현대카드의 본격적인 브랜딩 활동은 전용서체에서부터 시작됐다. 2003년 정 부회장은 기아자동차에서 현대카드로 전격 합류하며 리브랜딩에 나섰다. 정 부회장은 이때를 회상하며 “신용카드 업계 점유율 1, 2위였다면 브랜딩은 후순위였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당시 현대카드의 점유율은 약 1.8%로 업계 꼴찌 수준이었다. 즉, 현대카드는 신용카드하면 떠오르는 브랜드가 아니었다. 현대그룹에서 건설업의 이미지가 강하던 때라 금융업과는 어울리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소비자들에게 현대카드라는 독자적 브랜드를 인식시키는 작업이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이유다.

당시 대부분 기업에서 리브랜딩의 1순위는 심벌이었다. ‘브랜딩=심벌’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현대카드에서는 당장 자체적인 심벌을 제작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모기업인 현대자동차의 심벌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카드는 그 돌파구를 ‘서체’에서 찾았다. 당시 국내에서 자체적인 서체를 보유한 기업은 없었다. 그러나 현대카드는 서체가 모든 브랜딩 활동에 적용되는 텍스트이자 이미지로 CI보다 활용성이 더 높다고 판단했다. 디자인과 CI 구축 과정에 통일된 서체를 일관적으로 사용하면 서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현대카드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렇게 2003년 국내 최초 기업용 서체인 ‘유앤아이Youandi’가 공개됐다. 한국 기업이 미국, 일본의 디자인 회사와 주로 작업하던 때, 이례적으로 네덜란드의 토탈아이덴티티와 협업했다. 카드 플레이트의 비율과 형태를 그리드로 차용한 디자인으로 업의 정체성을 충실히 표현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유럽식 기하학적 디자인을 구현해냈다. 곡선보다 직선이 강조된 형태로 금융사로서 갖춰야 할 신뢰성과 전문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도 받는다. 절제된 미니멀리즘 스타일은 향후 현대카드 디자인 전반에 방향성을 제시했다.

현대카드는 공전의 히트작인 현대카드M을 비롯한 알파벳카드 등 상품과 CI에 유앤아이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며 독자적인 서체로서의 유앤아이의 존재감을 쌓아감과 동시에 현대카드를 연상시키는 강력한 매개체로 활용했다. 데얀 수직Deyan Sudjic 디자인뮤지엄 명예 관장은 “유앤아이의 남다른 특별함은 현대카드라는 이름을 쓰지 않더라도 아주 작은 크기의 글자나 짧은 문구로도 현대카드의 아이덴티티를 바로 전달한다는 점에 있다”라고 평가했다.

유앤아이체의 파급 효과는 현대카드 내에서만 국한되지 않았다. 네이버, 우아한형제들 등에서도 전용서체를 출시하며 브랜딩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현대카드는 유앤아이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보통 기업 전용서체는 폭넓은 노출 효과를 기대하며 대중에게 공개되고 일상적인 용도의 사용이 권장된다. 반면 브랜딩의 중심에 서체를 세운 현대카드는 유앤아이체를 독자적으로 활용하며 브랜드 이미지가 희석되는 일을 방지한다. 예외적으로 2022년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고요의 바다’에 외부 사용을 허락했는데, 많은 시청자가 현대카드의 서체임을 단번에 알아차리며 반겼다.

유앤아이체의 엄격한 사용 원칙은 현대카드 내에서도 적용된다. 서체를 꼭 사용해야 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구분된다는 것이다. 현대카드의 핵심적인 브랜딩 활동인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의 경우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이름을 자신 고유의 서체로 표기하길 바라지만 모두 유앤아이체로 표기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사회공헌활동(CSR)의 일환인 섬 재생 프로젝트 ‘가파도 프로젝트’의 핵심은 현대카드가 아닌 섬 고유의 가치를 보존하는 것이기에 유앤아이체를 쓰지 않았다.

유앤아이체가 진화하고 있다는 점도 특별하다. 한 번 개발된 서체를 개선하기보다는 새로운 서체를 내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경우 일시적인 프로모션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는 있지만 서체가 브랜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기능하기는 어려워진다. 반면 현대카드는 비즈니스 환경에 따라 유앤아이체를 개선해 지속적으로 활용하며 현대카드의 뚜렷한 정체성을 각인시켰다. 2012년에는 가독성을 끌어올린 ‘유앤아이모던Youandi Modern’, 2021년에는 디지털 환경에 맞춘 ‘유앤아이뉴Younandi New’를 선보였다.

128141_2


 2단계  성과·형상화Performance·Imagery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통해 고객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브랜드에 대한 심리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단계다.

디자인

브랜드의 성과와 이미지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는 디자인이다. 현대카드는 카드 플레이트 디자인에 브랜드의 정체성을 입힌 최초의 신용카드 회사다. 기존의 플레이트는 단조로운 회사 로고와 카드번호, 유효기간, 사용자 이름이 투박한 양각으로 새겨진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을 따랐다. 그러나 2000년대 초 현대카드M을 비롯한 현대카드의 주력 라인업이던 알파벳카드는 고객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따른 맞춤형 혜택이 차별화 포인트였으며 플레이트에도 고객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게 설계했다.

2003년 현대카드M에서는 투명카드와 일반 카드의 절반 크기인 미니카드를 공개했다. 현대카드의 또 다른 핵심 라인업인 프리미엄 라인에는 블랙, 퍼플, 레드 등 컬러를 녹여 뚜렷한 존재감을 부여했다. 특히 현대카드의 검은색 카드(더 블랙)는 소유 자체로 상위 0.05%의 VVIP임을 증명하는 표식이었다. 2017년에는 스마트폰 세로 화면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을 겨냥해 세계 최초로 ‘세로카드’를 제작했으며, 2020년 이후에는 한 카드에 여러 디자인을 제시하며 고객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멀티 플레이트’를 선보이고 있다.

플라스틱 일변도였던 플레이트에 금속 등 다양한 물성을 적용한 것도 현대카드가 최초다. 2009년 더 블랙에 티타늄을 적용한 플레이트를 내놓은 이후 물 같은 질감의 ‘리퀴드 메탈(비정질 합금)’, 동전을 재해석한 ‘코팔’, 항공기 소재 ‘두랄루민’을 플레이트 소재로 활용했다. 플레이트를 오목하게 만들거나 양각·음각으로 파내는 등 카드를 손에 쥘 때 독특한 촉감과 감성을 선사하기도 했다. 2025년에는 프리미엄 카드를 중심으로 발급했던 메탈 플레이트를 M·X·Z·ZERO 등으로 확대하며 보다 넓은 회원들에게 선택의 재미를 제공한다.

128141_3

최근에는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플레이트 디자인을 더 고차원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2025년 7월 현대카드와 ‘제2의 앤디 워홀’로 불리는 톰 삭스가 함께 디자인한 ‘톰 삭스 크레딧 카드Tom Sachs Credit Card’를 출시하며 그간 쌓아 올린 플레이트 디자인 노하우를 총동원했다. 메탈 플레이트에는 구멍을 만들어 손가락을 넣고 돌리는 장난감 혹은 끈을 매달아 개성을 표현하는 액세서리로 재창조했다. 동시에 나무 질감을 느낄 수 있는 합판 소재로 만든 플라스틱 플레이트, 톰 삭스 고유의 컬러인 형광 레드Fluorescent Red를 전면에 입혀 아이코닉한 감성을 자아내는 플레이트 등도 공개했다. 톰 삭스 크레딧 카드는 별도의 상품이 아닌 디자인 상품으로 현대카드의 기존 제품을 신청하면 추가 혹은 대체로 발급받을 수 있다. ‘카드 플레이트 디자인을 구매한다’는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모바일 결제가 발전하면서 실물 카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가운데, 독특한 소재가 지닌 물성과 감도 높은 디자인 제품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 판단하며 플레이트를 스마트폰 케이스와 같은 액세서리로 재해석한 시도다.

현대카드가 타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출시하는 상업자 표시 신용카드PLCC, Private Label Credit Card 플레이트에는 파트너사의 정체성을 재해석한 현대카드만의 디자인이 돋보인다. 예컨대 패션 커머스 플랫폼인 무신사와 함께 기획한 카드 플레이트에는 청바지, 매거진, 신발상자 등 무신사를 상징하는 요소들이 녹아 있다.

광고

현대카드는 광고에서도 남다른 보법으로 브랜드와 제품의 가치를 스마트하게 알렸다. 현대카드 광고에는 여느 광고와는 달리 유명 모델이 등장하지 않는다. 특정 인물의 이미지가 현대카드 브랜드 이미지에 지나치게 강하게 각인되거나 혹은 브랜드보다 모델이 더 부각되는 광고는 지양한다. 대신 미니멀한 배경음악과 영상만으로 제품의 혜택과 브랜드의 이미지를 간결하게 전달한다.

기존에는 대형 스타가 등장해 브랜드의 슬로건을 강조하는 것이 카드업계 광고의 전형이었다. 개별 상품의 강점보다는 모델과 브랜드 자체의 인지도에 기댄 것이다. 그러나 현대카드가 후발주자였던 2000년대 초에는 현대카드의 자체적인 브랜드 파워로 대중에게 소구하기 어려웠다. 또한 양적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판단에 브랜드 광고보다 상품 광고에 집중했다. 당시 선보인 것이 신드롬 수준의 관심을 끌었던 현대카드M 광고다.

2003년 5월 1일, 현대카드M을 본격 출시하기 전 ‘M도 없으면서 쯧쯧…’이라는 카피가 담긴 티저광고를 내보냈다. 회사와 제품을 숨기고 알파벳 ‘M’만을 내세웠다. 이 광고의 정체를 두고 “자동차 광고다” “맥도날드 광고다” 갑론을박이 오가는 등 대중의 호기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이후 현대카드M을 본격적으로 공개하는 광고에는 “M으로 바꾸니까 차 살 때 200만 원 굳었잖아요”라고 혜택을 강조하며 “이제 당신도 M으로 바꿔야 할 때”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후 여행 및 레저에 특화된 카드인 현대카드W를 출시하면서는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라는 중독성 강한 CM송을 남겼다. 이 CM송은 음원 사이트에 등록되고 휴대전화 벨소리 및 통화연결음으로 사용되는 등 노래 자체로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이처럼 현대카드의 광고는 슈퍼스타 없이도 제품의 혜택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하면서 카드, 게임, 이동통신 등 업계를 불문하고 ‘알파벳 마케팅’ 시대를 열었다.

개별 상품이 성공을 거두고 브랜드가 파워를 지니면서부터 광고는 현대카드의 정신과 철학을 알리는 창구가 됐다. 예컨대, 현대카드의 문화마케팅이 출발한 2007년 선보인 <Believe it, or Not: 레고빌딩편>에서는 기존 금융사의 틀을 깨겠다는 현대카드의 선언이 담겨있다.

(어린 딸이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는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해요?
세계 1, 2위 스포츠선수를 한국에서 대결 시키지
카드회사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행 가이드북도 내고
카드회사라며?
헬기도 몰고, 캠핑카도 몰고, 요트도 몰고.
아빠, 카드회사 다니는 거 맞아?
글쎄다. 아빠도 가끔 헷갈려서.

또 다른 현대카드의 시그니처 캠페인인 <생각해봐> 시리즈에서는 일관된 톤앤드매너를 지키며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현대카드만의 광고문법이 드러난다. 카드 옆면에도 색을 입힌 ‘컬러코어’ 디자인을 소개하는 캠페인에서는 ‘‘앞면, 앞면, 앞면, 앞면, 뒷면, 뒷면, 뒷면, 뒷면’을 반복하는 CM송을 통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후 ‘왜?’라고 질문을 건네며 몇 초간 ‘생각해봐’란 자막 외엔 아무 소리도 삽입하지 않는다. 정적이 끝난 이후 음성을 통해 ‘잘 보이라고’라며 명료하게 밝히면서 현대카드가 컬러코어 카드를 만든 이유를 고객의 뇌리에 깊이 박히게 했다. 이 광고는 같은해 빙그레가 패러디해 ‘메타콘’ 광고를 제작했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 이외에도 <생각해봐> 시리즈에서는 현대카드의 유앤아이체와 CI, 상품 체계 등을 반복적인 음성과 환기를 위한 잠깐의 정적, 이후 명쾌한 해답으로 풀어내며 현대카드의 브랜드와 제품의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각인시켰다.


 3단계 & 4단계  판단·감정Judgement·Feeling & 공명Resonance

세 번째 단계에서 소비자들은 브랜드가 구축한 이미지를 평가하고 이에 대한 판단과 감정을 형성한다. 이때 브랜드가 얼마나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느냐가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경험을 좌우하게 된다. 네 번째 단계는 고객이 자신을 브랜드와 동일시하는 단계다. 이 경지에 오른 브랜드에서 고객들은 브랜드와 일종의 공동체 의식을 느끼며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loyalty에 따라 행동한다.

음악

현대카드만의 차별화된 행보를 꼽자면 단연 문화마케팅이 떠오른다. 가장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슈퍼콘서트다. 현대카드가 2007년부터 진행한 공연 사업으로 약 20년간 27회, 총 관객 70만 명을 동원하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표 공연 브랜드로 자리매김 했다. 특히 슈퍼콘서트는 글로벌 아티스트의 첫 내한공연을 도맡는다. 비욘세, 에미넴, 콜드플레이, 샘 스미스, 퀸 등이 슈퍼콘서트를 통해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대중은 베일에 가려진 다음 아티스트에 대한 예측을 공유하며 슈퍼콘서트에 대한 기대감을 형성한다.

현대카드가 처음 슈퍼콘서트를 선보인 2007년 즈음 한국은 글로벌 아티스트들의 공연에 있어서는 불모지였다. 국가 자체의 인지도도 낮았을 뿐더러 애초에 한국에서 공연을 한 아티스트들이 많지 않아 흥행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아시아 투어에서도 일본, 태국 등은 방문해도 서울은 들르지 않거나 간혹 일본 투어 마지막 일정에 서울에서 하루 공연하는 수준이었다.

현대카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슈퍼콘서트의 가능성을 엿봤다. 한국 음악 팬들의 수준은 높아져가는데 그 갈증을 채워줄 레전드급 아티스트의 공연이 없었다. 여태 누구도 제대로 성사시킨 적이 없기에 현대카드가 이를 이뤄내면 한국 사회문화 전반에 막대한 파급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첫선을 보인 2007년 팝페라 그룹 일디보의 공연은 전석 매진됐고 그 다음으로 비욘세의 내한공연을 성사시키면서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콘서트가 연상시키는 화려한 이미지와는 달리 슈퍼콘서트를 준비하는 최소 8개월~2년 이상의 기간 동안 현대카드 내부는 전쟁통이나 다름없다. 두 번째 공연을 준비하며 승부수를 띄우고자 어떻게든 비욘세를 섭외해야 한다는 미션이 떨어졌지만 비욘세의 공연 에이전시에서는 한국 공연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담당자는 비욘세가 투어 중이던 태국 방콕의 공연장을 직접 찾아갔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기획사 관계자를 찾아냈고, 그의 열정과 실행력에 감탄한 관계자는 천막으로 만든 간이 사무실에서 그와 미팅을 가졌다.

이는 글로벌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내한공연에 대한 생생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귀중한 기회였다. 기존에는 한국 공연이 돈이 되지 않기에 글로벌 아티스트들이 내한 하지 않는다는 게 정설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그는 세계 정상급 아티스트에게 돈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답했다. 대신 전석 매진이 가능할지를 물었다. 자부심 강한 아티스트들에게는 돈보다 객석이 비는 것이 더 민감한 문제였던 것이다. 현대카드는 전석 매진을 약속하며 비욘세의 내한공연을 성사시켰고, 예매가 시작되고 단 1분 만에 모든 좌석이 다 팔리는 쾌거를 이뤘다.

2010년에는 한 해에만 총 6차례의 콘서트를 열었고 ‘가수 중의 가수’ 스티비 원더를 끌어들이며 본격적인 탄탄대로가 열렸다. 스티비 원더는 세 명의 기타리스트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공연을 열 수 있기에 섭외하기 까다로운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다. 스티비 원더가 참석한 공연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다른 아티스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수월해졌다.

현대카드가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를 섭외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공연업에 대한 전문성과 존중’도 빼놓을 수 없다. 기업이 후원을 하고 운영은 에이전시에 맡기는 관행과는 달리 현대카드는 보안, 관객 소품, 음료, 가수의 곡 리스트 모두를 직접 챙긴다. 이는 음악 팬들과 아티스트 모두에게 최고의 경험을 보장하기 위한 현대카드의 자발적인 노고다. 일례로 스티비 원더 공연 당시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Isn’t she lovely’와 ‘Lately’가 리스트에서 빠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현대카드는 가까스로 두 곡을 공연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런 현대카드의 진심에 팬들은 ‘떼창’으로 화답해 아티스트에게 감동을 선사하며 한국을 아티스트들이 꼭 공연하고 싶은 국가로 탈바꿈시켰다. 일례로 2015년 폴 매카트니가 ‘Hey Jude’ 공연 도중 관객들의 플래카드와 떼창에 머리를 양손으로 쥐며 충격에 빠진 영상이 크게 화제가 됐다. 현대카드 측은 “해외 최정상급 뮤지션들이 대한민국(서울)을 공연이 가능한 곳을 넘어 공연을 해야 하는 곳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며 “이제는 현대카드가 먼저 제안하지 않아도 한국 공연을 염두에 두는 해외 뮤지션이라면 현대카드의 관심 여부를 먼저 물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편 정 부회장은 슈퍼콘서트에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2023년 브루노 마스의 내한 이후 슈퍼콘서트에 대한 소식이 없자 많은 국내 음악 팬들이 슈퍼콘서트의 향후 계획에 궁금증을 가졌다. 정 부회장은 2026년 공연 계획을 밝히는 동시에 “올해만 해도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와 같은 규모의 공연이 20개는 열린다”며 “슈퍼콘서트는 최정상 해외 아티스트를 한국으로 모셔오는 물꼬를 트는 역할이었지만 지금은 슈퍼콘서트가 없어도 다 자기 발로 한국을 찾아온다”고 밝혔다.

슈퍼콘서트는 공연 자체의 파급력뿐만 아니라 월드스타를 현대카드의 모델로 간접 활용하는 효과를 가진다. 현대카드의 상품이나 브랜드가 아닌 공연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브랜드 모델 계약 없이도 글로벌 아티스트의 이름과 사진을 현대카드의 이름 아래 내걸 수 있는 것이다.

언더스테이지와 바이닐앤플라스틱은 슈퍼콘서트와는 대척점에 있는 프로젝트다. 언더스테이지는 현대카드의 공연장이자 신진 아티스트를 위한 기회의 장이다. 규모는 작지만 국내 최고 수준의 음향과 조명을 자랑하며 유희열, 윤종신 등 국내 최고의 뮤지션들이 공연 큐레이션에 참여한다. 가수 겸 작곡가 유희열은 “여기(스토리지)에서 첫 공연하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다”며 “언더스테이지는 젊은 뮤지션들에게 기회를 주는 생태계의 작은 연못 같은 일을 한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그는 “1년에 한 번 있는 큰 이벤트보다 일주일에 한 번씩 20명, 50명 앞에서 첫 발자국을 찍고 있는 어설픈 뮤지션들을 응원하고 지원하는 게 훨씬 의미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언더스테이지를 통해 탄생한 국민 아티스트로는 잔나비를 꼽을 수 있다. 길거리 버스커에서 인디밴드로서는 처음 돔
(올림픽 체조경기장)에 입성한 잔나비는 2015년, 2017년, 2018년, 2019년 등 언더스테이지에서 공연을 펼치며 이름을 알렸다.

바이닐앤플라스틱은 스트리밍이 음악 시장을 잠식한 2010년대 중반 LP 감상을 트렌디한 문화로 재해석한 주역이다. 전 세계적으로 LP 회사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던 때 현대카드는 전 세계에서 수집한 1만 장 이상의 바이닐 컬렉션을 선보였고, 이태원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서 사람들이 이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바이닐앤플라스틱이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LP 감상이 힙한 문화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뮤지션들이 한정판 LP 음반을 발매하며 품귀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128141_4

예술

현대카드는 현대미술 등 예술 분야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현대카드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약 20년간 MoMA와 파트너십을 지속하며 국내에 MoMA의 디자인 상품을 독점적으로 들여오거나 MoMA 주요 전시를 50여 차례 단독으로 후원했다. 특히 미디어아트와 같이 예술계에서의 중요성은 커지는 반면 대중 인지도가 낮아 후원을 구하기 어려운 전시에 현대카드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유망한 한국 디자이너들을 MoMA 디자인 스토어에 소개해 글로벌 경력을 쌓도록 돕고, 국내 큐레이터를 MoMA에 파견해 해외 전시 기획에 참여시키거나 소장품 연구 기회를 제공하는 등 국내 예술계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한다.

2024년 파트너십을 연장하면서 글렌 로리 전 관장은 “지난 20년 동안 현대카드는 MoMA에 없어선 안 될 중요한 파트너였다”라며 “현대미술과 전 세계의 더 많은 사람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협업을 확대하게 돼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2025년 9월 초 취임한 크리스토프 셰릭스 신임 관장 또한 첫 해외 방문지로 현대카드를 선택하며 정 부회장과 파트너십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같은 달 서울 압구정에는 정 부회장의 제안으로 MoMA가 출판한 전시 도록을 비롯해 아트, 디자인, 건축 관련 200여 종의 도서와 디자인 상품을 선보인 MoMA 최초의 북스토어를 열었다.

MoMA와의 파트너십이 현대미술계 자체에 굵직한 업적을 남기는 활동이라면 ‘스토리지’는 보다 다양한 장르를 펼치는 실험 플랫폼이다. 미술관의 질서로 여겨졌던 하얀 벽, 즉 ‘화이트 큐브’를 깬 미드 사이즈 전시 공간으로 회화, 사진, 설치, 건축, 디자인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독자적인 큐레이팅을 통해 과감하고 다양한 전시를 선보이며 한국 현대예술에 새로운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특히 미디어, 퍼포먼스 등 그간 상대적으로 후원이 적었던 장르에도 적극적인 전시 기회를 제공한다. 데이비드 살레 등 현대 미술계 주요 인물의 최초 회고전을 비롯해 미국 컨템포러리 사진가 그룹전 등 서울에서 국제 전시를 볼 수 있는 장소로서도 기능하며 대중에게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현대미술의 대중적 접근성과 문화적 다양성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현대카드가 전방위적인 문화마케팅을 펼치는 까닭에 늘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카드회사가 왜?” 이에 대해 현대카드는 “수익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슈퍼콘서트의 경우 회당 수십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지출이 발생한다.

그러나 문화마케팅이 음악, 예술 팬을 현대카드의 팬덤으로 흡수하는 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예컨대 슈퍼콘서트 예매 시 현대카드 고객들에게는 할인 혜택이 제공된다. 이에 슈퍼콘서트에 가기 위해 현대카드를 만들었다는 음악 팬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첫 슈퍼콘서트에서 현대카드 결제 비율은 64%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90%에 달한다. 아울러 현대카드 회원은 전 세계 MoMA 전시장에서 2인 무료 입장, 디자인 스토어 20% 할인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현대카드를 통해 매년 약 4만 명의 한국인 관람객들이 MoMA에 방문하는데, 이는 관람객 수로 전 세계 관람객 중 상위권이다. 즉, 현대카드의 문화마케팅은 고객들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선사하는 동시에 현대카드 고객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하며 막강한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과 소속감을 구축한다.

128141_5

라이브러리

현대카드의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는 문화마케팅을 한 차례 더 진화시킨 브랜드 공간이다. 공연, 전시 등의 문화마케팅은 단발성 행사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갖는다. 상시적으로 고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이 필요했고 이에 대한 해답을 공간에서 찾았다. 특히 특정 분야의 심도 깊은 지식을 물성을 지닌 책의 형태로 큐레이션·아카이빙하는 도서관은 모든 것이 빠르게 휘발되고 소비되는 디지털 시대에도 현대카드가 전하고자 하는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관을 영속적이고 감각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판단했다.

현대카드는 2013년 서울 가회동에 현대카드의 정체성이자 리더십을 드러낼 수 있는 ‘디자인’을 주제로 한 ‘디자인 라이브러리’로 첫선을 보였다. 준비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특정 분야를 주제로 전문적인 서적을 꾸린 도서관의 사례가 많지 않았다. 세상에 없던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아마존에서 50여 권의 도서관 관련 책을 구매했고, 미국·영국·프랑스·스페인·일본 등 전 세계 수십 개 도서관을 직접 방문했다. 근대 디자인 정신이 태동한 바우하우스 이후의 디자인, 건축, 현대미술에 관한 1만9000여 권의 전문 서적을 엄선했다. 전 세계 디자인 서적과 정기간행물, 소량 인쇄됐거나 절판된 희귀 도서를 아우르는 전문적인 큐레이션은 국내 디자인계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기존 도서관의 청구기호로는 큐레이션 관점이 다른 디자인 라이브러리의 소장 도서를 관리할 수 없어서 청구기호도 다시 만들었다.

디자인 라이브러리가 문을 연 그 주말, 예상보다 4배나 많은 고객들이 방문했고 정 부회장은 담당 직원들에게 “이 정도면 바로 다음 라이브러리를 만드는 데 착수해도 되겠다”고 말했다. 1년 후에 후속 프로젝트의 진행 여부를 결정하려 했던 당초의 계획은 수정됐고 바로 다음 라이브러리 설립에 착수했다. 이후 뮤직, 쿠킹, 아트 라이브러리가 이태원, 압구정 등지에 조성됐고 각 공간이 하나의 클러스터를 형성하며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MoMA의 필립 존슨Philip Johnson 건축&디자인 부문 수석 큐레이터는 “현대카드의 공간들은 서울을 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며 혁신적인 도시 이미지로 구축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역시 모든 곳에 ‘현대카드스러움’이 강하게 묻어 있는 공간으로 현대카드 회원과 그 동반인에게만 공개된다. 독서 외에도 콘서트, 전시회, 쿠킹클래스 등을 기획하며 현대카드 회원들에게 풍성한 지적·문화적 체험을 선물한다.

128141_6

축제

2019년 론칭한 다빈치모텔은 약 20년간 쌓아온 공연, 전시, 공간 등의 브랜딩 역량과 문화적 자산을 집대성한 축제다. 예술과 과학을 모두 진화시킨 르네상스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1960년대 여행자들이 긴 여정 사이 쉬고 가는 ‘캘리포니아 모터 호텔’에서 영감 받은 융복합 행사로서 공연, 강연, 팝업 스토어를 동시다발적으로 선보인다. 다빈치와 같이 여러 장르의 무대와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모텔과 같이 부담 없이 쉬다 갈 수 있는 장을 의도했다. 예컨대 2025년 행사 마지막 날에는 오후에 스토리지에서 개그우먼 이수지의 토크쇼를 즐기다가 밤에 언더스테이지로 넘어가 뮤지션 정재형의 공연을 음미할 수 있었다. 현대카드와 파트너사가 함께 꾸민 팝업 공간에서는 각양각색의 굿즈와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다빈치모텔은 현대카드만의 축제가 아닌 이태원 지역 전체의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이태원동, 한남동 일대 40여 개 매장과 연계해 다빈치모텔 참석자들에게 할인 및 사은 혜택을 제공하며 거리 곳곳에서 버스킹 등 다양한 퍼포먼스를 펼친다. 실제 2024년 다빈치모텔 행사 직전 주인 9월 20~22일과 행사 기간인 27~29일의 지역 결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용금액은 26%, 이용건수는 33% 증가했다. 2025년 5회 행사 또한 현대카드 회원 대상 선예매에 이어 일반예매까지 당일 마감됐으며 특히 글로벌 티켓 예매도 호응을 얻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태원참사를 연속으로 겪으며 정체됐던 이태원 지역에 소비를 유도하며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음악, 영화, 기술 등 다양한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페스티벌이자 콘퍼런스로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의 지역경제를 견인하는 음악축제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의 한국판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이처럼 현대카드가 국내 브랜딩 역사에 큰 획을 긋기까지 막대한 노력과 투자가 뒷받침됐음에도 정 부회장은 “브랜딩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약 20년 동안 현대카드가 브랜딩을 통해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AI를 중심으로 모든 산업이 재편되는 가운데 AI를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삼아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현대카드는 2010년대부터 AI에 조 단위의 투자를 쏟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2024년 10월 일본 스미토모미쓰이카드(SMCC)에 금융용 AI 소프트웨어 플랫폼 ‘유니버스(Universe)’를 수백억 원대에 판매했다. 금융업계에서는 최초로 독자 개발한 AI 소프트웨어를 수출한 사례다. 한편, 현대카드의 브랜딩 방향성에 대해서는 “과거에는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튀는 일을 많이 벌였고 현재는 현대카드의 브랜딩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며 “확고한 페르소나를 중심으로 진정성 있는 브랜딩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HBR 에디터 이규열




Implication

브랜드 이미지와 경험을 설계하는 법

송수진 고려대 글로벌비즈니스대 교수 songsj@korea.ac.kr

후발주자였던 현대카드는 어떻게 아무도 모르는 카드에서 모두가 아는 문화적 자산을 가진 브랜드가 됐을까. 어떻게 고유한 개성을 지닌 브랜드가 됐을까. ‘아는 브랜드’를 넘어 ‘갖고 싶은 브랜드’가 되기까지 현대카드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자.


‘마인드셰어’에서 ‘하트셰어’로

브랜드 이미지는 ‘소비자가 브랜드를 인식하고 해석해 저장하는 연상의 집합’이다. 즉, 우리 브랜드가 소비자의 기억과 인식 속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브랜드 사이언티스트 밤방 수크마 위자야Bambang Sukma Wijaya 교수는 2013년 그의 연구에서 다음 5단계의 계층 구조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가 형성된다고 소개한다.

128141_7

‘마인드셰어Mind-share’ 단계는 소비자들이 브랜드에 대한 정보를 얻는 단계다. 새로운 브랜드의 정보나 이름을 인지하고 속성과 혜택을 알게 된다. 현대카드는 전용서체를 개발하고 현대카드M을 필두로 대규모 TV광고를 일관적으로 진행하며 빠르게 인지도를 높였다. 동시에 성별과 연령 중심으로 혜택을 제공해오던 카드 산업에서 라이프스타일 중심으로 혜택을 재편했다. 이름 알리기와 혜택 차별화를 통한 사용자 전환이 목표였다. 마인드셰어를 ‘마켓셰어Market-share’ 확보로 연결한 것이다.

카드사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금융감독원이 과도한 부가서비스 제공에 제동을 걸던 2000년대 중반, 현대카드는 문화마케팅을 시도했다. 현대카드의 문화마케팅은 두 가지 효과를 이끌어냈다. 첫째, 후발 주자였던 현대카드가 선두 주자로서의 이미지를 얻게 됐다. 금융과 무관해 보이는 스포츠, 콘서트, 미술 등을 현대카드만의 브랜드 유산으로 끌어안으며 누구도 해낸 적 없는 일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아 두각을 드러냈다. 둘째, 혜택 차별화, 경험 차별화를 통해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하트셰어Heart-share’를 얻었다.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스포츠와 감각을 설계하는 예술 활동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자극하며 우리 브랜드의 편으로 움직이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렇게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은 현대카드는 팬덤을 구축한 브랜드가 됐다. 브랜드 충성도를 확보한 것이다.

위자야 교수가 제안한 모델에 따르면 마지막 단계는 ‘소셜셰어Social-share’를 만드는 것이다. 현대카드는 철학과 영혼spirit이 있는 브랜드로서 공동체적 소속감을 제공했다. 도서관과 미술관이 많은 북촌 지역에 어우러져 세워진 디자인 라이브러리, 공연장이 많은 한남 지역에 연대하듯 세워진 뮤직 라이브러리,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가 되려는 듯한 다빈치모텔 등이 소셜셰어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브랜드 경험을 만드는 방법

현대카드의 사례로부터 교훈을 얻고 싶다면 현대카드가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브랜드 경험은 무엇으로 구성되고,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마케팅 연구자 베른트 H. 슈미트Bernd H. Schmitt, 리아 자란토넬로Lia Zarantonello, J. 요슈코 브라쿠스J.Josko Brakus의 2009년 연구에 따르면 브랜드 경험은 감각적sensory, 정서적affective, 행동적behavioral, 지적intellectual 등 4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카드사는 브랜드 경험을 충분히 제공하기 어렵다. 금융상품 특성상 고객과의 접점이 주로 비물리적, 기능적, 거래적 수준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카드는 브랜드를 단순한 금융서비스가 아닌 라이프스타일 경험으로 확장하며 이 한계를 극복했다. 뮤직 라이브러리, 디자인 라이브러리, 슈퍼콘서트 등 소비자에게 감각적·정서적 자극을 제공하며 다양한 프로그램 참여와 콘텐츠 경험은 행동적 관여를 유도한다. 또한 디자인 중심의 철학과 스토리텔링은 지적 자극intellectual engagement을 유발해 브랜드에 대한 사고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처럼 현대카드는 금융 브랜드로서는 드물게 4가지 경험적 차원을 모두 활성화하며 결제 수단을 넘어 감각·정서·행동·사고를 자극하는 종합적 경험 브랜드로 진화시켰다.

브랜드 경험 설계도의 4가지 차원을 측정하는 12가지 문항을 살펴보면 거꾸로 브랜드 경험을 창조하고 싶은 기업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된다. ‘이 브랜드는 내게 시각적으로 강한 자극을 준다’ ‘나에게 강렬한 감정을 선사한다’ ‘이 브랜드는 내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브랜드는 활동 중심적이다’ 등 브랜드 경험을 측정하는 문항의 내용들이 지난 20여 년간 현대카드가 시도했던 활동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비물질적인 서비스를 파는 금융 산업에서 거꾸로 물리적인 요소인 카드의 소재와 컬러, 디자인을 강조한 것 혹은 감각적 즐거움을 제공한 것, 문화 산업을 적극적으로 포용해 자신의 브랜드 자산으로 삼은 것 등이 모두 포함된다.

128141_8


현대카드가 사람이라면

현대카드는 ‘카드를 사람과 같은 존재’로 인식시킨 첫 번째 기업으로서 얻는 혜택이 컸다. 이 작업은 난도가 높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라 그렇다. 게다가 현대자동차와 같이 나름의 브랜드 개성을 가진 기업과 이름을 공유한 상태에서 현대카드만의 브랜드 정체성을 창조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카드는 기업 철학, DNA를 중심으로 카드 디자인에서부터 서체, 스폰서십, 파트너십 등을 포괄한 모든 접점에서 핵심 가치를 오래 일관되게 표현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현대카드를 ‘세련된 감각을 갖고 합리적 실험을 하는 사람’으로 내가 살고 싶은 예술적 삶을 응원해주는 동반자로서 인식하게 됐다. 우리 브랜드가 고객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을지 자문해보자. 만약 우리 브랜드가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인지, 사람일 필요가 없는지, 사람이 아니라면 다른 어떤 의미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는 있는지 살펴보고 소비자들에게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싶은지 점검해보는 것이다.


송수진은 고려대 글로벌비즈니스대학 교수로 소비행동학자이자 <소비자의 마음을 읽어드립니다>의 저자다. 주 연구분야는 브랜드 관계 및 AI 시대의 소비자로 Psychology & Marketing, Journal of Advertising, Journal of Business Research 등 국제 저명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했다.




Implication

동적 역량 학습 모델로 본 현대카드의 브랜딩 전략

신형덕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 shinhd@hongik.ac.kr

2000년대 초반 독특한 서체와 카드 디자인을 내세우기 시작하며 현대카드는 성공적인 브랜딩의 교본을 제시해 왔다. 음악 공연과 공간 운영, 지역사회와 연계한 축제 개최를 포함하는 전방위적 활동에 대해 학자들은 브랜드 매니지먼트 또는 문화마케팅의 관점에서 분석해 왔다. 이 아티클에서는 보다 상위 관점, 즉 전략경영의 이론을 활용하는 시각에서 현대카드의 브랜딩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동적 역량을 발현하는 과정을 제시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데이비드 J. 티스 교수1의 이론 체계와 기회를 발견하는 두 가지 접근법인 탐색과 활용 개념을 제시한 스탠퍼드대 제임스 G. 마치 명예교수2의 이론 체계를 결합한 모델3을 통해 분석하고 시사점을 모색했다.

먼저 간략하게 이 모델의 구조를 설명한다. 가로축에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동적 역량, 즉 새로운 환경에서의 새로운 강점을 창출하는 과정으로 티스 교수가 제안한 3가지 단계를 기술했다. 기회 요인을 포착하는 단계sensing, 기회를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단계seizing, 지속적 우위를 다지기 위해 자원을 재구성하는 단계reconfiguring로 구성된다. 세로축에는 기회를 발견하는 두 가지 접근법으로서 마치 교수가 제안한 두 가지 방법, 즉 기존 역량의 활용exploitation과 새로운 역량의 탐색exploration 방식을 기술했다. 두 축으로 이루어진 6가지 격자는 기업이 선택하는 성장 경로trajectory를 보여준다. 물론 기업에 따라 특정 단계에서 활용과 탐색을 동시에 추구하는 양손잡이ambidextrous 전략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 모델은 일반적인 경영 전략은 물론 문화예술적 수단을 경영에 활용하는 문화예술경영 전략 또는 마케팅 분야에서의 브랜딩 전략에도 적용할 수도 있다. 모델을 적용해 현대카드가 택했던 경로를 추적해 보기로 하자.

128141_9


기회와 위협 포착Sensing

현대카드는 2001년에 다이너스 클럽 코리아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신용카드 사업을 시작했다. 사실 신용카드 사업은 다른 경쟁자와 차별화하기 힘든 분야다. 가입자 수를 늘리면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외부효과가 크게 발생한다. 따라서 카드 사업자 사이에는 출혈 경쟁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과다 경쟁은 소비자들의 과대한 현금 대출을 야기하고 정부의 규제 완화까지 결합되면 2003년 발생한 바와 같이 카드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협력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기존 영업 방식에 기반해 협력 관계를 늘려가는 ‘푸시 전략’으로는 뚜렷한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기 힘들다.

현대카드는 획기적인 차별화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 했다. 그 시작점은 바로 서체를 필두로 한 CI였다. 현대카드의 역대 심벌을 보면 초창기 다이너스 클럽의 심벌을 사용했고 현대자동차의 심벌을 그대로 사용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던 중 2003년에 유앤아이 서체를 개발하고 기업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디자인을 차별화 포인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새로운 디자인만으로 충분한 차별화가 가능할까? 외형적 요소에 의존해 차별화를 꾀하는 방식은 매우 쉽게 모방될 수 있다. 아무리 획기적인 디자인을 차용한다 하더라도 이를 목격한 경쟁사가 그에 필적하는 디자인을 내세우면 참신한 디자인의 효능이 오래 가기 힘들다.

현대카드의 차별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5년 GE캐피탈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학습한 금융기법, 과학적 신용관리, 고객 편의성 증대를 종합적인 차별화 방식으로 사용했다. 즉, 카드 대란의 환경적 위협을 딛고 새로운 역량을 개척하기 위해 기존의 영업 방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정체성을 탐색하는 결정을 내렸다. 고객에게 보여지는 시각적 브랜딩은 이런 기회 탐색 노력의 일부였다.


기회 상품화Seizing

이 단계에는 고객과의 접점에서 기존 플랫폼에 기반해 제품 또는 서비스를 강화하는 전략과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하며 새로운 제품 또는 서비스를 출시하는 전략이 포함된다. 물론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양손잡이 전략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현대카드가 선택했던 길은 기본적인 신용카드 사업의 수익 모델은 유지하는 동시에 새로운 정체성을 강화하면서 충성도를 확보하는 전략이었다. 카드사의 수익 구조에는 가맹점 수수료, 할부 수수료와 함께 연회비가 포함된다. 특히 프리미엄 카드는 수십만~수백만 원에 이르는 높은 연회비가 수반된다. 현대카드가 발급했던 프리미엄 카드는 국내 최초의 VVIP카드인 더 블랙(2005년), 더 퍼플(2006년), 더 레드(2008년), 더 그린(2018년), 더 핑크(2021년)로 이어졌고 2025년 6월부터 연회비가 700만 원에 이르는 아멕스의 센츄리온 카드를 발급했다.

프리미엄 카드의 성공에 힘입어 현대카드의 당기순이익은 2025년 상반기에 국내 6개 카드사 중 유일하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애플페이 도입의 긍정적인 영향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차별화된 브랜딩의 효과가 회원 증가 및 수익률 제고로 나타났던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낮은 연체율과 대손충당금 역시 안정적인 수익률을 유지하는 것에 기여했다. 이것은 현대카드가 단지 외형적인 브랜딩을 추구했던 것이 아니라 차별화된 정체성을 수익률 제고로 연결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협 관리와 자원 재구성Reconfiguring

그렇다면 이런 차별화된 정체성을 정착시키는 방식은 어떠했을까? 마지막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조직과 업무방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정하는 단계다. 현대카드가 지속하는 다양한 문화예술경영 방식은 이 단계의 활동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슈퍼콘서트를 통해 세계 정상급 아티스트의 공연을 국내에서 볼 수 있게 한 활동은 콘서트 참가자의 애국심까지 자극하면서 공연 분야에서의 독보적인 지위를 강화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제휴는 전시 분야에서의 글로벌한 존재감을 구축했고, 이태원과 압구정, 북촌 등에 자리잡은 라이브러리는 공간 차원에서 고객과의 접점을 확보하면서 서울이라는 도시 브랜드 향상에도 기여했다. 이태원에서 진행되는 다빈치모텔에서는 점진적으로 장르를 확대하는 추세를 발견할 수 있다.


시사점

현대카드가 보여주는 문화예술경영의 사례는 기회와 위협 포착sensing 단계에서는 탐색, 기회 상품화seizing와 위협 관리와 자원 재구성configuring 단계에서는 활용 중심의 활동을 수행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즉, 차별점을 찾기 힘든 신용카드 산업에서 획기적인 브랜딩 활동으로 새로운 기회를 탐색했고, 이를 단편적이거나 일회성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체질 개선을 수반해 수익률 개선과 결합한 정체성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지속적이고 다양한 문화예술경영 활동을 확장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러 번 강조해도 부족할 티스 교수의 조언으로 글을 맺는다. “창업자의 마인드를 가진 경영은 분석과 최적화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기회 포착과 수익 실현, 미래의 기회를 맞이할 준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정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1. Teece, D. J. (2007). Explicating dynamic capabilities: The nature and microfoundations of (sustainable) enterprise performance.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28(13), 1319-1350.

2. March, J.G. (1991). Exploration and exploitation in organizational learning. Organization Science, 2(1), 71-87.

3. Ahn, Y., H. Shin, S. Hong. (2025). The role of exploration, exploitation and dynamic capabilities: South Korean entertainment firms’ proactive response strategies to the COVID-19 pandemic, Economics and Culture, 22(1), 34-45.


신형덕은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로 서울대에서 경영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전략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버지니아 주 조지메이슨대를 거쳐 2006년 홍익대로 자리를 옮겼다. 주된 연구 분야는 전략경영, 국제경영, 창업, 문화예술경영이다.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장,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초대 원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기업 윤리와 사회적 책임> <잘되는 기업은 무엇이 다를까>, 매년 발간하는 <문화 트렌드>가 있다.

관련 매거진

아티클이 실린 매거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코리아 2025.11-12월호 리더의 발목을 잡는 숨겨진 신념 25,000원

아티클 PDF

하버드비즈니스리뷰코리아 2025.11-12월호 정체성을 넘어 팬덤으로 5,000원
  • ※ 아티클 PDF 구매는 월별 제공되는 PDF 다운로드 권한을 모두 사용하신 1년 또는 월 자동결제 서비스 구독자에 한해 제공되는 서비스입니다.
  • ※ 아티클 PDF 다운로드가 필요하신 분께서는 HBR Korea 서비스 구독을 신청하세요!
(03187) 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1 동아일보사빌딩 (주)동아일보사
대표자: 김재호 | 등록번호: 종로라00434 | 등록일자: 2014.01.16 | 사업자 등록번호: 102-81-03525
(03737)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 29 동아일보사빌딩 15층 (주)동아미디어엔(온라인비즈니스)
대표이사: 김승환 | 통신판매신고번호: 제 서대문 1,096호 | 사업자 등록번호: 110-81-47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