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기사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09년 3월 호에 실린 필립 레이 TCG 어드바이저 이사 등의 글 ‘In a Downturn, Provoke Your Customers’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의문의 여지없이 고객사의 지갑을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졌다. 사용 가능한 예산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고객사의 예산 가운데 85%가 기존 거래에 배정돼 있고 나머지 15%는 재량껏 지출되던 시절에도 거래를 성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예산의 15%에 해당하는 재량 지출마저 사라져버린 지금은 고객사의 지갑을 열기가 한층 어려워 보일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지금껏 공들여 쌓아왔던 고객과의 관계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사용 가능한 예산이 줄어들면서 구매 담당 조직에서 좀더 직급이 높은 담당자가 의사결정을 내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지금껏 상대해왔던 관리자들에게는 더 이상 의사결정 권한이 없다.
이런 상황이 너무도 실망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위안이 될 만한 사실은, 많은 기업들이 이미 불황을 이겨냈을 뿐 아니라 몇몇 기업들은 불황 속에서도 이윤을 창출해왔다는 것이다. 2001년 ‘닷컴 거품’이 붕괴된 후, 필자들은 다양한 연구 및 컨설팅을 통해 불황 속에서 이윤을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이 무엇인지 발견했다. 불황이 시작되면 모든 고객사들은 한결같이 “죄송하지만 예산이 없네요”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일부 기업들은 고객이 필요로 하는 자원을 확보하고 있는 쪽에 접근해 필요한 자원을 내어주도록 유도한다. 신생기업이 이런 전략을 활용한 사례도 있었다. 이런 기업들은 필자들이 ‘자극을 이용한 판매 기법(provocation-based selling)’이라고 부르는 방법을 사용했다. 자사에서 내놓는 솔루션이 단순히 괜찮은 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설득한 것이다.
자극을 이용한 판매 기법은 상담을 이용한 기존 방법이나 솔루션 중심의 접근법과는 다르다. 기존 방법들을 이용할 경우에는 판매하고자 하는 회사의 영업팀이 고객사의 관리자와 질의응답식 대화를 거쳐 문제점을 찾아낸다. 뿐만 아니라 자극을 이용한 판매 기법은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제품 중심의 판매 기법, 즉 제품의 특징·기능·장점 등을 포괄적으로 강조하는 방법과도 판이하게 다르다. 자극을 이용한 판매 기법을 활용하면 고객사는 자사가 직면한 경쟁과 관련된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일부 심각한 문제를 신속히 처리할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물건을 팔려는 모든 상황에 이런 접근법을 접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에만 이 방법을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기존의 접근법이 그 위력을 잃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많은 기업들이 자극을 이용한 판매 기법을 활용할 때가 됐다.
[HBR TIP] 이론의 적용
기존의 판매 기법 대신 자극을 이용한 판매 기법을 택하려면 영업 및 마케팅팀이 새로운 연구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 또 미리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 고객과 만난 자리에서 상대의 생각을 자극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 다음을 실천하자.
중대한 문제를 찾아내라 고객사의 중역이 만나자는 제안에 응할 가치가 있다고 느낄 만큼 고객사의 손익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많은 비용이 드는 판매 과정에 투자한 돈을 충분히 보상받을 만한 문제에 집중한다.
사례:건축업체용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미국 기업이 2004년에 해당 업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50개 기업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했다. 이 회사는 현장 조사를 통해 모든 기업들이 한 가지 성가신 문제, 즉 하청업체들의 입찰 내용 관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건축업체들은 관련 자료를 엑셀, 팩스 등 여러 수단을 통해 정리해오고 있었다. 이 소프트웨어 판매업체의 마케팅팀은 이 같은 잘못된 관리 방식이 제때 정해진 예산 내에서 새로운 주택을 공급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대를 자극하는 관점을 개발하라 고객사에서 현재 사용하는 접근 방식은 나름의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통념을 바탕으로 한 그 논리에 변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
사례:이 건축업체용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가 고객을 자극한 방식은 다음과 같다. “귀사는 입찰 관리가 필요악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를 경쟁 우위 확보의 열쇠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의사결정권자를 도발하라 한 가지 불행한 진실은, 불황기에는 의사결정 권한이 평소에 연락하고 지내지 않던 고위급 중역의 손에 넘어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원을 재분배할 권한을 가진 사람을 만나려면 뛰어난 추천인이 될 만한 사람을 찾아라.
사례:이 소프트웨어 판매 회사는 각 잠재 고객사의 핵심 중역이 누구인지 찾아낸 다음, 그 중역들에게 접근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사람을 찾으려고 자사의 인맥을 샅샅이 뒤졌다. 일단 고객과의 만남이 성사되면 영업팀은 고객사의 의사결정권자에게 자극적인 관점을 제시한 다음,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건축업체는 잘 해결한 경쟁업체에 먹히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소프트웨어 판매 회사의 설득력 있는 주장과 함께 이 회사가 밝혀낸 건축업계 현황에 대한 정보가 더해지자 고객사는 경쟁업체들에 비해 선전할 수 있었고, 결국 해당 시장을 독점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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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자극하는 법을 배워라
자극을 이용한 판매 기법이란, 고객사 측에서 재량껏 쓸 수 있는 지출이 말라버린 듯 보일 때라도 고객으로 하여금 투자할 자금을 확보하도록 돕는 방법이다. 데이터 관리 및 모바일 소프트웨어 회사인 사이베이스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객사의 투자를 따내기 위해 2008년 봄에 바로 이 방법을 썼다. 사이베이스가 지난 몇 년간 관리해왔던 업체들이 당시에 운영 비용을 대폭 삭감했다. 사이베이스 영업 담당자들은 귀한 시간을 할애해 고객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무엇인지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대신, 고객사의 담당자들에게 무엇을 위해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지 알려줬다. 즉 금융업계에 몸담고 있는 관리자들이 위험을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방식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금융기관들은 별도의 위험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신용카드, 주택담보대출, 상업대출, 자산투자상품, 고정수입, 필수상품, 파생상품 등의 위험을 따로 관리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이베이스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주택담보대출 같은 하나의 분야에서 위험 관리에 실패하면 자산담보부증권 및 기타 파생상품 등의 다른 분야에서도 위험에 노출되는 결과가 초래되므로, 여러 종류의 위험을 하나의 시각으로 바라볼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이베이스는 위협과 기회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밝혀냈고, 이를 통해 지금까지 통합 위험 관리 시스템 없이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고객들에게 ‘위험 관리 플랫폼(risk analytics platform)’이라는 새로운 통합 위험 관리 도구를 판매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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