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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가 모인 곳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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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커
Idea in Brief
변화 선진 도시들이 오래전부터 세계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지만, 요즘 보스턴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인재 클러스터들이 혁신에 끼치는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다.
과제 도심 혁신허브의 부동산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다. 이 지역에 집중된 지식과 스킬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대안 기업은 1) 혁신허브로 본사 이전, 2) 전초기지 혹은 혁신연구소 설립, 3) 임원진 대상 집중몰입 프로그램 운영 등 3가지 대안을 선택 할 수 있다. |
2016년 GE는 본사를 코네티컷 주 페어필드에서 보스턴으로 옮긴다고 밝혔다. 페어필드는 GE의 오랜 본거지였다. GE는 보다 혁신적인 디지털 기반 기업이 되려면 보스턴의 첨단 벤처기업이나 젊은 인재들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어떤 파괴적 기술이 등장해도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당시 CEO였던 제프 본스타인Jeff Bornstein은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본사 이전의 장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보스턴에서는 출근길에 걸어서 스타트업 네 군데는 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페어필드에서는 집을 나와서 샌드위치도 사기 힘들어요.”
선진 도시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지만 요즘 보스턴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인재 클러스터들이 혁신에 끼치는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다. 2017년 미국 10대 기술허브에서 출원한 특허는 미국 전체 특허의 58%에 이른다. 도쿄, 파리, 베이징, 선전(4252.png),
서울이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특허 비중과 맞먹는다. 오랫동안 시 외곽의 산업단지에 본사를 두고 인력을 배치해 온 기업들에 이런 허브도시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것은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혁신의 본거지에 자리 잡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특히 첨단기술 기업 대부분이 모인 비좁은 혁신지구로의 이전은 엄청난 비용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기업이 허브도시에 집중된 지식과 스킬 풀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는 전 세계 인재 흐름을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오늘날 기업이 주로 택하는 세 가지 전략을 확인했다. 첫째, GE처럼 극단적으로 아예 본사를 이전해 버리는 것이다. 두 번째는 비용이 덜 들고 되돌리기도 쉬운 방법으로 인재가 모인 지역에 회사의 혁신연구소, 전초기지 등을 세워 물리적 기반을 닦는 것이다. 세 번째는 가장 보수적인 방법으로 임원진이 시간을 내 혁신기업을 방문하는 몰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기업은 여러 클러스터들과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옵션을 동시에 적용할 수 있는데 그에 대한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소수의 도시들이 갖는 영향력이 계속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세 가지 접근법은 혁신지역 바깥에 있는 기업들에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다.
옵션 #1
본사를 옮긴다.
혁신허브라고 하면 우리는 주로 창업가와 스타트업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들도 점점 기성세력에 가까워지고 있다. 20년 전 10대 도시에서 일하는 발명가들이 출원한 특허 비중은 미국 50대 기업이 출원한 특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2017년에는 그 비중이 포천 50대 기업이 출원한 특허의 70%에 이른다. 기술허브 지역에 숨어 있던 기업들이 이제는 국가 평균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포천 50대 기업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알파벳이나 아마존 같은 혁신기업에 뒤처지는 현상을 반영한다. 하지만 기술허브로 자원을 이동시키는 유명 대기업은 GE뿐만이 아니다. 2016년 포장식품 제조사 콘아그라Conagra는 네브라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시카고로 본사를 이전했다. 밀레니얼 세대를 끌어들이고 소비재 브랜드에 경험이 많은 관리자급 인사를 채용하기 위해서였다. 지역신문 오마하 월드 헤럴드Omaha World-Herald와의 인터뷰에서 콘아그라 CEO 션 코널리Sean Connolly는 오마하가 좋은 곳이라고 말하면서도 “시카고는 혁신적 기술과 브랜드 구축 능력을 갖춘 인재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언론에 보도되는 기업 대부분은 아예 다른 주로 이전하는 기업들인데, 그 외에 도시 외곽의 한산한 지역에서 인재가 몰려있는 도시 중심부로
이전하는 기업들도 있다. 보스턴에서도 리복, 컨버스와 같은 유명 기업뿐 아니라 현지 벤처캐피털 기업들이 다운타운 지역으로 이전하고 있다. 보스턴의 헤드헌팅업체 윈터와이먼WinterWyman의 리포트에 따르면 보스턴과 케임브리지 다운타운 내에 채용된 인원이 도시 전체에서 최근 채용한 기술인력의 60%에 달하는데 불과 20년 전만 해도 이 비중은 5%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콘아그라는 시카고 외곽의 공장을 닫고 시내에 있는 본사로 좀 더 많은 임원진을 이동시켰다. 맥도널드, 모토롤라 솔루션스, 크래프트 하인즈 외 50여 개 기업이 시카고 외곽에서 도시 중심부로 이전했다. 모토롤라 CEO 그렉 브라운Greg Brown은 본사를 이전하면서 기업문화 혁신에 속도를 내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나 데이터 전문가 채용도 더 쉬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허브도시에서 인재 채용은 굉장히 쉬워질 수 있다. 디지털 부문에 종사하는 대학 졸업자 수가 미국 평균보다 두세 배나 많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실력 있는 젊은 인재들은 다운타운의 세련되고 깔끔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어하지 주차장만 널찍한 외곽지역의 낡은 공단에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본사 이전에 따르는 리스크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존 대기업 입장에서 본사 이전은 매우 어렵고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드는 일이다. 본사 이전은 곧 기존 인력을 모두 옮기고 오래된 고객 기반을 바꿔 새로운 정치적 관계를 맺고 그에 따른 새로운 책임을 지게 된다는 의미다. 기존 관행에 파괴적인 결과가 뒤따르는데 이는 인재 클러스터가 미래에 제공할 이점마저 상쇄시킬 수 있다. 게다가 본사는 한번 이전하면 되돌릴 수도 없다. 인재집중 지역도 흥했다가 망할 수 있다. 1950년대 경제지도로 보자면 실리콘밸리는 점 하나에 불과했으며, 디트로이트는 급성장하는 산업 중심지였다. 기업들이 일시적인 경쟁우위에 과도하게 투자했다가 실패할 수도 있다.
이런 리스크를 완화하는 방법 중 하나는 소규모 본부를 여러 곳에 세워 혁신과 주요 의사결정자들의 핵심 요구사항만 집중적으로 다루게 하는 것이다. GE는 30만 인력 중 혁신과 디지털화에 특화된 인력 800명만 보스턴으로 이전시킨다. 기존 대기업의 핵심임원 중에는 이미 원격근무를 하는 사람이 많은데 대부분 출장 스케줄이 빡빡한 경우다. 새로 짓는 본부는 대기업보다 유니콘 스타트업에 가깝게 운영된다. 통신기술 덕분에 기업 본부의 규모는 작아졌지만 보다 넓은 안목과 스케일로 전체를 운영 관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런 아이디어는 본사 이전에 따른 두 번째 리스크를 낳는다. 인재허브 내에서 생산된 아이디어가 조직 전체로 확산되지 않는 것이다. 보스턴이나 베를린에서 아무리 기발한 콘셉트를 만들어내도 기업 전체 글로벌 경영 생산성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인재클러스터에 배치된 핵심 인원들은 기업 내 다른 직원들과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 도시 외곽의 오피스타운에 위치한 본부 직원들은 최소한 내부에서는 큰 거리감을 느끼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되면 좋은 아이디어도 외부의 분산된 지식 정도로 조직 전체에 받아들여지고 말 것이다.
순환근무는 이런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 중 하나다. 한 다국적기업의 인도 R&D센터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미국 본사로 짧게라도 출장을 다녀오면 생산성이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적 지식을 얻고 본사 임원들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을 뿐 아니라 스킬과 업무를 더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이 터득했겠지만 통신기술은 사람의 이동을 대체하기보다 보완재 역할만 할 뿐이다. 화상회의 기술이 아무리 유용하더라도 사람들이 직접 만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만큼 좋을 수는 없다.
세 번째 리스크는 언론의 부정적 반응과 정치적 자본의 손실이다. 어떤 도시도 일류기업이 떠나는 것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이전할 새로운 지역에도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많은 기업들이 새 본부가 자리잡을 도시에서 세금감면과 같은 인센티브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신규 지역에서 특혜를 받는 동시에 파트너로 인정받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아마존은 북미 지역에 두 번째 본사 배치 지역을 선정하기 위해 여러 번에 걸친 경쟁입찰을 벌였는데 여러 혜택을 두고 저울질해 비난 받았다. 애플은 최근 미국에서 네 번째 캠퍼스부지 선정작업을 시작했는데 CEO 팀 쿡은 리코드Recode와의 인터뷰에서 아마존처럼 미인대회식 입찰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건 애플 스타일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본사 이전에 따르는 기대치도 충족시켜야 한다. 기업 지도부에 닥칠 수 있는 변화와 더불어 회사 실적이 흔들리는 것도 견뎌내야 한다. 2017년 존 플래너리John Flannery가 GE의 CEO로 취임하자마자 GE는 2억 달러 규모의 보스턴 시내 본부건물 공사를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GE가 지난가을 일자리 삭감을 발표하자 보스턴에 끼칠 영향을 우려한 한 지역신문 칼럼니스트는 다음과 같이 의구심을 표했다. “보스턴이 불량품을 산 건가?” GE는 본부 이전을 계속 추진 중이지만 보스턴 본부의 역할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업이 경계해야 할 네 번째 리스크는 이른바 ‘밑 빠진 독’이다. 허브 내에서 인재 채용은 좀 더 쉬워질지 모르지만 아이디어나 인재 손실의 위험도 커진다. 인재클러스터로 유명한 도시에서 잘나가는 현지 기업이 되려면 경쟁력 있는 급여와 복지혜택을 제공해 애플이나 스포티파이 같은 회사에 대적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의도하지 않은, 뜻밖의 결과가 발생할 리스크가 있다. 일례로 한 연구에 따르면 본사에 가까운 공장보다 멀리 위치한 공장이 폐쇄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본사 이전은 사내 업무방식을 영구적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 새로 이전한 지역 문화가 회사에 유입되는 것은 물론이고 임원진에도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조직을 바닥부터 바꾸고자 하는 임원이나 책임자라면 이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 대가로 판단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옵션 #2
전초기지와 혁신연구소 설립
많은 기업이 본사 이전은 아예 고려조차 못하고 있다. 2017년 9월 아마존이 두 번째 북미 본부를 물색하기 시작했을 때 월마트는 오랫동안 본거지였던 아칸소 주 밴턴빌에 새로운 본사 건물을 지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월마트가 아칸소 주에 영원히 뿌리 내린다 하더라도 아마존의 시애틀이나 알리바바의 항저우 같은 인재클러스터를 둘러싼 주도권 다툼에서 양보할 생각은 전혀 없을 것이다. 2011년 실리콘밸리에 설립된 월마트 랩스Walmart Labs는 인터넷 상거래의 최전선에서 음성인식 쇼핑, 크라우드소스 배송 등 다양한 첨단기술을 응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월마트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회사들도 인재클러스터에 접근하기 위해 월마트와 비슷한 전초기지를 마련한 경우가 많다. 이런 전초기지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현지 뉴스를 수집하고 사업개발 기회를 모색하는 소규모 팀의 사무실이 될 수도 있고, 월마트처럼 신규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혁신연구소로 사용할 수도 있다. 사내벤처로 집중 활용하는 기업도 있다. 여기에는 물론 투자를 통한 재정적 수익을 얻으려는 목적도 있지만 트렌드 변화를 더 가까이서 파악하려는 의도도 있다.
기업은 평범하지만 괜찮은 아이디어보다, 최고의 아이디어를 발굴해서 혁신을 추진할 때 가장 큰 이득을 본다. 인재클러스터에 자리 잡고 있으면 해당 분야에서 급부상하는 새롭고 강력한 콘셉트를 흡수하기 쉬워진다. 전초기지를 세우는 것은 본사를 이전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덜 드는데, 일부 기업은 현지의 젊은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전초기지를 매수하기도 한다. 일례로 월마트 랩스가 탄생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계기는 바로 2011년 월마트가 코스믹스Kosmix를 인수한 것이었다.
기업은 대개 여러 클러스터에 지사를 세우고자 한다. 어디서 혁신적 아이디어가 시작될지 알 수 없는데다 한 번에 여러 지역을 공략하면 인재 채용 경쟁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Microsoft Research는 워싱턴 주의 레드먼드 외의 다른 지역에도 연구소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현재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영국 케임브리지, 뉴욕, 몬트리올, 베이징, 방갈로르 등에 이들 연구소가 위치해 있다. 중국의 백색가전 대기업 하이얼Haier은 R&D센터만 다섯 곳인데 미국, 유럽, 일본, 호주, 중국의 핵심 인재클러스터 안팎에 위치하고 있으며, 최근 사물인터넷을 활용할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전초기지를 세울 부동산을 물색할 때는 ‘소탐대실’하는 실수를 조심해야 한다. 같은 도시 안에서도 위치가 중요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샌드힐 로드나 마켓 스트리트 인근에 사무실을 내려면 임차료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비싼데 거기에는 그만한 혜택이 뒤따른다. 미국 광고의 4분의 1을 책임지고 있는 맨해튼의 광고에이전시들에 관한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들은 개인 네트워킹을 통해 프로젝트를 공유하고 대규모 작업을 부문별로 나눠서 각 회사가 독립적으로 전담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 결과 이들간 거리가 지리적으로 멀어지자 프로젝트 공유 사례가 줄었고 특히 반 마일 이상 거리가 멀어지면 공동작업이 아예 없어지기도 했다. 맨해튼의 광고시장에 진출하려면 뉴욕 시내에서도 매디슨 애비뉴에서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무실을 내야 한다는 얘기다.
한 가지 좋은 소식은 전초기지를 세우려는 기업의 비용을 절감해 주는 부동산업자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의 켄들 스퀘어 중심부에 위치한 코워킹coworking회사 CIC가 이에 해당된다. CIC는 공간 조정이 가능한 고급 사무실을 월 단위로 공급한다. 대기업 혁신기지에 적합한 패키지 상품도 출시해 아마존, 바이엘, PwC, 로열더치셸 등에 제공하고 있다. 기업과 현지 혁신기업을 연결해주는 ‘캡틴 오브 이노베이션Captains of Innovation’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전초기지는 작은 팀을 꾸려 실험해 볼 수 있다는 게 이점이다. 미래의 투자에 대한 옵션을 열어 두는 것이다. 보스턴으로 본사 이전을 발표하기 5년 전 GE는 실리콘밸리에 전초기지를 세워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하고자 했다. 처음에는 1인용 사무실을 마련해 시스코에서 스카우트한 임원 빌 루Bill Ruh가 연구소장으로 근무했다. 3년이 지나자 이 사무실은 실리콘밸리에서 끌어 모은 인재 150명 규모로 커졌다. GE의 혁신기지 전략의 핵심은 초기 목표를 낮게 잡고, 빌 루로 하여금 GE의 전형적인 전략 전술이 아닌 실리콘밸리의 관행에 맞춰 자유롭게 운영하도록 위임한 것이었다. 이 그룹은 1800명 규모로 커져서 자체적으로 하나의 사업부를 이뤘으며, 지금은 GE 디지털GE Digital이라는 하나의 브랜드를 이뤘다.
전초기지도 효과가 없으면 문 닫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리스크가 따른다. 기업이 비현실적으로 빨리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치를 높게 잡았다가 잘 안되면 전초기지가 망했다고 섣불리 판단해 쉽게 운영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는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데 3~6개월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인재 클러스터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인재의 수가 많고 활동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CIC의 코워킹 공간에서 일하는 스타트업이 유치한 투자금액은 미국의 웬만한 주 전체의 벤처 투자금액을 상회하기도 한다. 새로운 전초기지에서 성과를 내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배워야 하며 이런 과정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본사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투자하는 기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또 다른 리스크는 기업 본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소규모 팀들이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 현지 창업가들과 혁신가들이 대기업이 세운 전초기지에서 일하는 임원들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지 스태프들이 회사를 대리해 작은 거래라도 성사시킬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면 전초기지를 이끄는 리더들의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전초기지를 설립한 초창기에 임원진을 잘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이 임원들은 회사 내부뿐 아니라 외부의 인재클러스터로부터도 개인적인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이때 취할 수 있는 방식은 ‘양쪽에서 최고’인 직원을 뽑아 팀을 구성하는 것이다. 회사 본사에서 일하던 임원과 해당 지역에서 유능한 사람을 같은 팀에 합류시키는 것이다. 외국 기업이 미국에 진입할 때 현지에서 채용하는 인재들은 종종 모회사와 같은 국적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혁신기지 설립의 리스크는 혁신적 사고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모회사로 흘러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특허 데이터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특히 본사와 혁신기지가 위치한 국가가 다를 경우 아이디어가 순환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많은 기업이 해외 혁신 프로젝트의 결과에 실망하는 대표적 이유다. 혁신 프로젝트의 성과는 적절한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으면 고립되기 십상이다.
이런 리스크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역을 넘나들며 협업하는 팀을 구성해 아이디어의 내부순환 속도를 올리는 방법이 있다. 이런 식의 기업 혁신은 여러 지역에서 출원된 특허의 효과를 강화시킬 수 있다. 기업이 해외 지사를 처음 설립했을 때 흔히 사용되는 방식으로 자사의 지식재산권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 혹은 신규 지사를 지원하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다. 국가간 협업팀이 생산하는 특허는 1975년만 해도 미국 대기업이 출원하는 1%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3%에 이른다. 이런 글로벌 팀은 특히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데, 인재클러스터로 진출하려는 기업이 많아지는 만큼 중요성도 더욱 커질 것이다.(HBR 2015년 10월호, 세덜 닐리의 ‘글로벌 팀, 제대로 꾸리려면’ 참조)
옵션 #3
임원진 대상 집중몰입 프로그램
임원진의 인재클러스터 방문은 혁신을 가속화하고 비즈니스모델 및 경영전략 재구성에 대한 인지도와 흥미를 끌어올리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임원들이 일주일 출장으로 기업의 혁신 퍼즐에서 빠진 조각을 다 찾아 넣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혁신의 최전선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현실적으로 이해하고 대응 방식을 고민할 수 있다.
2014년 대형 유럽계 은행 ING네덜란드의 중역들은 ING가 수익도 내고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급변하는 금융환경에서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포티파이, 구글, 넷플릭스, 자포스 같은 혁신기업들을 찾아 다니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출장을 다녀온 ING 임원들은 더 작으면서도 민첩한 조직으로 회사를 재편성해 고객 집중도를 높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새로운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 ING는 전사적으로 애자일 팀을 구성했으며 네덜란드 본사의 인력을 25% 감축하고 CEO 포함 개인 사무실을 모두 없앤 개방 구조로 사무실을 개조해 팀간 커뮤니케이션을 촉진시켰다. 본사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은 모두 새로운 직무에 다시 지원하도록 했으며 이들은 모두 다른 직무에 배치됐다. ING는 2015년 한 해 동안 이런 변화를 겪었다. CEO 빈센트 판덴 부거르트Vincent van den Boogert는 상품 혁신, 고객 만족, 디지털 인재 채용 등에 있어 ING네덜란드가 이뤄낸 성과에 크게 만족했다.
글로벌 통신회사 보다폰은 혁신 전략의 일환으로 임원진 몰입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보다폰 본사가 위치한 런던은 최고급 인재가 모이는 지역이다. 하지만 이번에 사퇴하는 CEO 비토리오 콜라오Vittorio Colao는 보다폰이 최첨단 통신기술이나 기타 회사 운영에 필요한 첨단기술을 뒤처지지 않으려면 다른 지역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매해 보다폰의 임원 50여 명을 실리콘밸리에 일주일 정도 보내 식견을 넓히는 기회로 삼게 했다. 다른 기업들도 뉴욕, 런던, 보스턴, 상하이 등 인재클러스터에 임원이나 이사회 구성원이 가보게 하고 있다.(필자도 보스턴에서 기업 임원진의 몰입 프로그램을 주최한 적이 있고, 이 기사 또한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사에 언급된 기업 중 필자의 고객은 없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들은 이런 몰입 프로그램에 투자하는 데 인색한데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임원진들이 이런 출장을 반쯤 휴가로 여기거나, 아예 반대로 출장을 가서도 본사의 일상적인 업무 이메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CEO는 몰입 프로그램에 얼마나 비싼 비용을 투자했는지, 특히 임원진 출장에 들어가는 기회비용이 얼마인지 모든 참석자에게 분명히 알려야 한다. CEO 지시에 따라 출장을 가기 전 준비작업을 의무화해 기조를 확실하게 정하고, CEO가 열정과 관심을 보여야만 임원들이 스마트폰에서 눈을 뗄 것이다. 몰입 프로그램은 참가하는 리더들이 모든 것을 쏟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현실적으로 임원진이 참여할 만한 여유가 있을 때 프로그램이 실행돼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몰입 프로그램 참가자가 충분히 깊게 파고들지 않는 것이다. 현지 기업 방문은 많은 정보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지만 기존에 설정된 틀 안에만 있으면 효과가 없다. ING의 스포티파이 방문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스포티파이 직원들이 애자일 방법론의 이점뿐 아니라 비용과 난제도 고민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잘 활용되지는 않지만 몰입도를 높이는 방법 중 하나는 임원진을 좀 더 오랜 시간 현지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스타우드호텔은 신흥 성장지역의 혁신 기술과 서비스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본부 직원 전체를 미국에서 중국, 인도, 아랍에미리트 등으로 한 달간 몰입 프로그램에 보냈다. 방문기간이 짧을 때는 현지 기업에 비즈니스 리더, 대학 교수진 같은 전문가를 초빙해 맞춤형 세션을 준비하도록 맡김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몰입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는 본사로 이식돼 활성화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한 번의 몰입 프로그램은 아무리 당시에 임원들 마음속에 진한 인상을 남겼다고 해도 다른 급한 업무에 밀려 단기적 변화만 이끌어낼 수 있을 뿐이다. 몰입 프로그램을 정규 전략 과정이나 리더십 개발 과정으로 연결시키면 효과를 낼 수 있다. 출장 가기 전과 후에 몰입 프로그램과 회사의 주요 직무 간 관련성을 부각시키면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임원진도 출장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토론하고 활용하며 출장 기간을 보내야 한다.
보다폰은 몰입 프로그램의 인사이트를 회사에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다. 보다폰은 250명의 우수 직원을 런던에서 개최한 3일간의 트레이닝 세션에 초대해 50여 명의 임원이 선정한 첨단기술을 공유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커피 주문용 기초단계 챗봇 개발 같은 실습도 포함돼 보다폰의 중간관리자급도 신기술에 대한 친밀도를 높일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보다폰은 새로운 인사이트를 조직 전체로 확산시키기 위해 몰입 프로그램에서 얻은 최신기술 트렌드 정보를 디지털 ‘보다폰 대학’ 플랫폼을 통해 개인학습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또 리더들을 젊은 ‘디지털 닌자’들과 짝 지어줘 젊은 직원들이 신기술 트렌드와 응용 프로그램에 대한 지속적인 멘토링을 리더들에게 제공하도록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몰입 프로그램을 이수한 임원들이 회사에 잘못된 인사이트를 전달할 위험도 있다. 인재클러스터가 앞서 나갈 수 있는 비결은 지역공동체가 이들의 우선순위와 관점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가 세상의 판도를 바꾼 창업가들을 얼마나 우대하는지 생각해 보라. 하지만 이런 유대가 긴밀한 조직일수록 집단사고에 빠질 위험도 크다. 실리콘밸리 특유의 ‘빨리 움직이고, 틀을 깨라’는 식의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많은 기술 거대기업들이 프라이버시, 데이터 보안, 감시 이슈에 관한 대중의 불만에 눈 감는 실수를 저질렀다. 몰입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임원들도 그들의 잘못된 관행에 시선이 팔려 정작 중요한 내용을 신중하게 경청하거나 물어보지 못할 수 있다.
오늘날 비즈니스 지형의 두드러진 특징은 혁신활동이 갈수록 소수의 클러스터와 그곳에서 일하는 우수한 인재들에게 집중된다는 것이다. 신기술이 파괴적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하는 가운데 기업의 운명은 인재집중 지역에서 판가름 나게 될 것이다. 기업은 필자가 제시한 전략 중 하나 이상을 택해 핵심 지역의 인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급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아야 한다.
윌리엄 커(William Kerr)는 디미트리 V. 다벨로프-MBA의 1955년 졸업생으로 하버드경영대학원 경영학 교수다. 저서가 스탠퍼드대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번역 송채영 에디팅 배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