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옥스퍼드대에서 전염병을 연구하는 수네트라 굽타 교수가 영국 매체 ‘언허드(Unherd)’에 기고한 글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굽타 교수에 따르면, 코로나19는 인류와 영원히 함께 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팬데믹(전염병)이 아니라 엔데믹(고질병)이 된다는 뜻입니다. 개개인이 백신을 맞는다 해도 시간이 가면 면역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이 바이러스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박멸할 수는 없을 거라 합니다.
굽타 교수는 사실 이것이 일반적인 전염병의 속성이라 합니다. 말라리아, 에이즈, 결핵 같은 것들도 인류가 완전히 퇴치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파율과 치사율이 꽤 낮아졌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병들에 대한 큰 걱정 없이 일상생활을 이어갑니다. 인류와 병균이 서로 한참 싸운 후엔 서로의 존재를 어느 정도 용인하면서 공생한다는 얘기입니다. 코로나19 역시 이런 길을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요.
코로나19처럼 올 한 해 동안 우리의 새로운 일상이 돼버린 것이 또 있습니다. 바로 ‘줌’과 리모트워크입니다. 병의 전파를 막기 위해 전 세계 많은 사무직 직종 근로자들이 몇 달 동안 사무실이 아니라 집에서 근무하는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지요.
저희 HBR Korea 편집진 역시 말로만 듣던 재택근무라는 것을 직접 경험해보면서 개인 차원뿐 아니라 조직 차원에서도 업무의 본질에 대해 각성하게 되는 계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이제 기업이 코로나19 이전의 사무실 집합 문화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편의성 측면에서나 비용 측면에서나 말이죠. 리모트워크는 우리와 공생하게 될 운명입니다.
그래서 이번 호 HBR은 코로나를 피해 숨기 위한 목적의 리모트워크가 아닌, ‘일의 미래’로서의 리모트워크를 집중적으로 다뤘습니다. 이 주제에 관련해 8개의 아티클을 모아 담았습니다.
먼저, 하버드대 이선 번스타인 교수는 ‘오피스 없는 회사생활이 미치는 영향’(154페이지)에서 실패한 재택근무 실험과 성공한 재택근무 실험의 차이를 분석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법을 제시합니다. ‘모던 오피스의 간략한 역사’(166페이지)에서는 과거 큐비클, PC, 이메일 같은 것들이 기업 업무를 어떻게 바꿨는지를 되살펴보고 리모트워크 역시 그런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생각해봅니다.
또 ‘사무실 없는 우리의 미래’(180페이지)에서는 파격적으로 ‘전 세계 아무데서나 근무(Work from Anywhere, WFA)’를 오래전부터 시행 중인 미국 특허청의 사례 연구를 다뤘습니다. 연간 12일만 본부로 출근하면 된다고 하는데, 딱딱한 공기업 문화에서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지방으로 이전한 후 인력 유출을 겪고 있는 한국 공기업들이 참고해보면 어떨까요.
어느덧 연말입니다. 답답한 한 해였지만 앞으로는 좋아질 일만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따뜻한 가을과 겨울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