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쿵, 쿵, 시위대가 전진합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이들의 얼굴에 분노가 이글거립니다. 시위대가 행진하던 거리 한쪽에서 화보 촬영을 하던 모델 켄들 제너가 촬영 의상을 벗어던지고 시위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녀는 시위하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눈을 맞추다가 펩시콜라 하나를 들고 시위대와 대치하던 경찰 쪽으로 다가갑니다. 경찰에게 펩시를 건네주자 경찰은 받아들고 시원하게 들이켜며 웃음을 짓습니다. 시위를 벌이던 군중이 환호하며 축제를 벌입니다.
2017년 펩시가 선보인 광고입니다. ‘펩시가 갈등을 멈추고 평화를 가져왔다’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취지는 좋았지만 펩시는 공개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 광고를 내려야 했습니다. 출연한 켄들 제너 역시 엄청난 악플에 시달렸죠.
대중의 반발을 산 표면적 이유는 201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취지를 훼손했다는 것이었는데,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대체 콜라와 세계 평화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펩시가 내세운 대의적 명분이 회사의 활동이나 역사와 아무 관계가 없어 보였던 거죠.
펩시가 이 광고를 통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크고 해결에 앞장서는 참여형 브랜드로 포지셔닝하고 싶었다면 다음과 같은 과제들이 선행돼야 했을 겁니다. 펩시가 생산하는 제품이나 제공하는 서비스가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거나(역량), 평소 윤리경영에 힘써왔거나 사회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전담 조직을 뒀다거나(문화), 회사 또는 직원들이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갖고 해결에 꾸준히 애써온 히스토리를 갖고 있는(대의) 등입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꾸준히 쌓아 온 역량, 문화, 대의적 자산 없이 시류에 올라타거나 단순히 흥미를 끌기 위한 의도가 앞선다면 펩시처럼 역풍을 맞기 쉽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비즈니스 리더들은 이익 창출 극대화를 넘어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데 기업의 더 큰 목적이 있다고 믿습니다. 기업 내•외부 이해관계자들과 공유된 강한 목적의식이 혁신을 촉진하고 직원 만족도를 높이며 충성스러운 고객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죠.
HBR이 전하는 구체적인 조언을 참고해보는 건 어떨까요. 가장 잘하는 것을 내걸어라, 훌륭한 조직문화부터 만들어라, 진심으로 대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대의를 주장하지 마라 등입니다. 메르세데스의 ‘세상을 움직이는 첫 번째 움직임’이나 파타고니아의 ‘고향별 지구를 살리기 위한 비즈니스’는 업의 본질과 맞고 이들이 하는 활동을 잘 나타내는 좋은 사례입니다.
이번 호는 특히 목적을 찾는 기업들에 좋은 가이드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 밖에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는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내용의 ‘관리자는 슈퍼맨이 아니다’와 자존심 높은 인재들을 특급 대우하는 실용적인 방법을 다룬 ‘인재를 놓치지 않는 핵심 비결’ 등도 일독을 권합니다.